“재도야, 그냥 웃어” 이재도의 길었던 겨울, 웃음이 먼저 봄을 데려왔다
- 프로농구 / 정다윤 기자 / 2026-08-26 08:00:43

고양 소노 이재도(35, 180cm)에게 지난 시즌이 그랬다. 웃음을 잃을 만큼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다시 웃기 시작하자 엉켜 있던 매듭이 풀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10년 이상이라는 시간 동안 508번의 코트를 쉼 없이 지켜온 발걸음. 이재도에게 성실함은 단순한 미덕을 넘어 그를 받치는 가장 단단한 뼈대였다.
하지만 예고 없이 찾아온 부상은 굳건했던 일상을 멈춰 세웠다. 오프시즌 훈련 도중 허리를 다쳐 두 차례 수술을 받았고, 지난해 11월 창원 LG와의 경기에서는 갈비뼈까지 골절됐다. 쉼 없이 달려온 그의 선수 생활에 처음으로 긴 쉼표가 찍혔다.
성실함이 너무 깊게 밴 탓이었을까. 갈비뼈를 다친 직후 밀려온 묵직한 통증 앞에서도 그는 그저 참아낼 만하다고 여겼다. 코트 위에서 ‘부러진 건 아닌 것 같다. 조금 지나면 괜찮아지겠지’라며 대수롭지 않게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내려진 검사 결과는 야속하게도 골절. 인생 처음으로 구급차에 몸을 실었다.
골절 판정이라는 현실 앞에서도 그가 가장 먼저 다잡은 것은 쉬어야 할 이유가 아닌, 코트로 돌아갈 조그만 틈새였다. 테이핑으로 동여매고 통증을 참아낸다면 어떻게든 다시 코트를 밟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트레이너들과 구단은 “아닌 건 아닌 거다”라며 단호하게 그를 만류했다.
그렇게 꾸준하게 이어온 508경기 연속 출전 기록이 멈췄다.
“뛸 수 없는 몸으로 기록을 위해 출전하는 건 지금까지 해온 것의 의미마저 퇴색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모두가 만류했을 때 깔끔하게 포기했죠. 덕분에 연속 경기 출전 2위라는 기록을 명예롭게 남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재도가 건넨 진심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마음까지 곧바로 정리된 것은 아니었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몸에 제동이 걸리자 의심의 먹구름이 그의 마음 한편을 슬그머니 비집고 들어왔다.
‘운동선수로서 쓸 수 있는 것을 이제 다 쓴 건 아닐까….’
두 달가량 이어진 휴식기 동안 이재도의 일상은 대부분 집 안에 머물렀다. 게임을 하고 TV를 보며 시간을 보내다가도 문득 창밖을 바라본 채 한참 멍하니 있곤 했다. 마음은 하루라도 빨리 코트로 돌아갈 날을 향해 달려갔다.
부지런히 몸을 만들어 다시 코트에 섰건만 마음의 속도를 몸이 따라가지 못했다. 여름 내내 땀을 흘리지 못한 공백은 유난히 깊었다. 개인의 능력보다 동료들과 숨을 맞추며 빛을 발해 온 그였기에, 함께 손발을 맞추지 못한 지난 시간은 더욱 뼈아프게 다가왔다.
출전 시간의 변화도 있었다. 신인이었던 2013-2014시즌을 제외하면 늘 평균 20분에서 30분가량을 책임졌던 핵심 가드였다. 2025-2026시즌에야 처음으로 평균 출전 시간이 10분대로 떨어졌다. 이재도는 평균 16분 42초 동안 5점을 기록했다. 앞선 5시즌 연속 평균 두 자릿수 득점을 올렸던 선수에게는 낯선 숫자였다.
팀 안에서 자신의 박자를 찾지 못한 이재도는 한동안 제자리를 맴돌았다. 소노도 시즌 초반 하위권에 머물렀지만 막판 연승을 달리며 반전의 문을 열었다. 팀은 앞으로 나아가는데 정작 자신은 그 과정에 선수로서 힘을 보태지 못한다는 사실이 마음을 무겁게 눌렀다.
그때 흔들리던 그를 단단히 잡아준 건 선배들이었다. 정희재, 임동섭, 홍경기는 순간의 감정에 휩쓸려 오랜 시간 일궈온 가치마저 무너뜨리지 말라며 그의 어지러운 마음에 다정한 닻을 내려주었다.
‘지금까지 네가 쌓아온 이미지나 평판, 그런 기록들이 있지 않냐. 지금 네 기분이 안 좋다고 그 모든 것을 잃지 말아라. 선배로서 안타깝다. 그러면 네가 후회할 수 있지 않냐.’
틀린 말이 하나 없었다. 선배들의 진심에 고개를 끄덕이던 이재도에게 박찬희 코치는 얽혀 있던 마음의 매듭을 단숨에 풀어내는 담백한 한마디를 건넸다.
“재도야, 그냥 웃어. 네가 어떤 생각과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 나도 겪어봐서 아니까, 그냥 웃어.”
‘웃으라’는 그 짧은 한마디에 담긴 만감을 그 역시 알고 있었다. ‘웃으면 복이 온다’는 진부하다면 진부한 말마저 이재도는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았다.
“사실 마음이 찝찝했거든요. 경기를 못 뛰고 경기력도 안 좋으니까요. 그냥 웃으라는 말에 마음을 내려놓고 웃으면서 지내자고 생각했어요. 평상시나 연습할 때라든지 경기장에서 많이 웃으려고 했거든요.”
엉켜 있던 생각부터 하나씩 내려놓기로 했다. 일상에서도, 훈련장에서도, 코트 위에서도 의식적으로 웃으려 애썼다. 처음에는 애써 지은 웃음이었지만 답답했던 흐름에 거짓말처럼 틈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거짓말같이 웃고 다니기 시작할 때부터 경기가 잘 풀리더라고요. 경기가 풀리면서 플레이오프가 온 거죠. 그때도 잘됐던 것 같아요. 현실을 받아들이고 웃으며 지내니까 신기하게 좋은 모습도 나오고 맞아 떨어지더라고요.”
감정의 벽이 높아지면 아무리 옳은 말도 마음에 곧장 닿지 않는다. 이재도 역시 이를 모르지 않았다. 다만 자신에게 필요한 이야기를 끝내 외면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힘도 장점이라고 여겼다. 다시 잘하고 싶다는 마음과 간절함이 분명했기에 무엇부터 바꿔야 하는지도 알 수 있었다.

웃음을 되찾은 이재도는 플레이오프에서 다시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냈다. LG와 맞붙은 4강 플레이오프에서 존재감이 선명해졌다. 세 경기 모두 20분 이상을 소화하며 두 자릿수 득점을 올렸고, 소노의 창단 첫 챔피언결정전 진출에 힘을 보탰다.
“4강 플레이오프와 챔피언결정전에서는 '동료들과 함께 뛰는 게 정말 행복하고 편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신나게 했죠. 이 나이에 다시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줄도 몰랐거든요. 웃으니까 복이 알아서 찾아오더라고요.”
긴 선수 생활 끝에 새롭게 깨달은 것도 있었다. 누구나 어려운 상황에서는 누군가의 조언을 받아들이는 일이 쉽지 않지만, 결국 마음의 문을 열 수 있는 사람도 자신뿐이라는 점이다. 무엇을 우선할 것인지는 주어진 상황보다 이를 마주하는 태도에 달려 있었다.
“받아들이는 것도 제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잘되고 싶고, 잘하고 싶으니까 무엇이 우선인지 생각했죠.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프로 생활을 하면서 받아들일 줄 아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결국 받아들이기 나름이더라고요. 심플하게 태도의 문제랄까요.”
“선수 생활을 하면서 나이를 먹다 보면 언젠가는 끝이 오겠다는 생각을 하잖아요. 선수 생명이 짧다는 것도 모두 알고 있고요. 그런데 막상 저에게 그런 상황이 다가오니까 쉽지는 않더라고요. 그래도 피드백을 잘 받아들였기에 시즌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지난 시즌 기대치를 높인 소노는 우승을 위해 새로운 변화를 택했다. 이재도 역시 주요 선수들을 뒷받침하는 베테랑이라는 새로운 옷에 자신을 맞추고 있다. 오랫동안 지켜온 것을 내려놓는 일이 곧 물러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달라진 자리에서 필요한 선수가 되는 것 역시 앞으로 나아가는 하나의 방식이다.
“소노에게 이번 시즌이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 지난 시즌에 기대를 높여놨고 우승까지 한 걸음이 모자랐으니까요. 이번 시즌 다들 느꼈다시피 우승하기 위해 변화를 줬죠. 그만한 성적을 무조건 내기 위해 선수들도 열심히 하고 있어요.”
한결같이 코트를 지켰던 이재도는 이제 익숙한 방식이 아닌 새로운 모습으로 남은 시간을 준비한다. 지난봄 그랬던 것처럼 웃음 뒤에 찾아올 다음 기회를 기다리면서.
“항상 주전이자 핵심 선수로 10년을 뛰다가 역할이 줄어든 거잖아요. 지금은 새로운 농구를 배우고 공부하고 있어요. 언제 은퇴할지는 모르겠지만 남은 선수 생활 동안 제 것을 많이 내려놓고 새로운 역할을 잘해내려고 해요. 주요 선수들을 잘 보좌하면서 베테랑으로서 최고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사진_점프볼DB(유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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