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석의 농담(籠談)] 은퇴한 스타를 위한 팬레터

아마농구 / 기자 / 2022-01-11 16:16:12
김영기의 『갈채와의 밀어』 다시 읽기④
▲김영기의 은퇴를 보도한 동아일보 1966년 2월 12일자 8면

『갈채와의 밀어』는 김영기가 은퇴한 해에 쓴 책이다. 김영기는 아주 서정적인 프롤로그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코트를 떠난 그는 기업은행의 직원으로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 오전 여덟 시에 은행 문을 열고 들어간 그를 데스크가 반기고, 하루가 시작된다. 은행원이니만큼 숫자와 돈더미에 파묻혀 살 수밖에 없다.


‘숫자, 숫자, 숫자…… 도장, 도장, 도장…… 지폐, 지폐, 지폐…….’

종일 일하고 저녁이 되어 퇴근하면 마당의 화초들 사이로 아내와 아들이 뛰어나온다. 그 시절 샐러리맨의 평화로운 삶, 그 정경을 상상할 수 있다. 그가 반짝이는 마루와 아늑한 안방을 습관처럼 둘러볼 때 수많은 트로피들이 눈에 들어온다. 아내는 오늘도 팬레터가 수없이 왔음을 조심스럽게 전한다.

“여보, 이것 보셔요, 오늘도 이렇게…… 많이 왔지요?”

팬들은 묻고 있다.

“왜, 왜, 그만뒀지요?”
“왜, 왜, 다시 안 나오지요?”

김영기는 마음이 울적해진다. 미련이 남았을 리 없지만 팬들의 아쉬워하는 감정은 그의 가슴에도 잔잔한 파문을 남기는 것이다. 그는 1966년 2월 12일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제20회 전국남녀농구종합선수권대회 결승전을 마지막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연세대와의 경기에 나가 기업은행을 93-85 승리로 이끈 다음 취재기자들 앞에서 이 경기가 자신의 현역 마지막 경기임을 밝혔다.

“사실은, 지금, 여러분 앞에서 거행된 이 경기를 마지막으로…… 저는…… 농구계를 떠나기로 결심했습니다. 오늘의 게임은 저의 …… 마지막 게임이었습니다. 저는, 오늘의 영광을 제 팀메이트 들에게 모두 돌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영기가 은퇴를 선언하자 인터뷰 기자들과 아나운서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이 사실은 곧 트랜지스터라디오를 사용해 중계방송을 듣던 관중석의 팬들에게도 알려졌다. 관중들은 갑자기 웅성거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박수를 보냈다. 폭발적인 박수였다. 관중들은 그렇게 박수를 치면서 경기장을 떠날 줄 몰랐다. 김영기는 고개를 숙였다. 관중들을 향해 어떻게 인사해야 할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불현듯 고독감에 휩싸였다. 그런 김영기를 기자들이 그냥 놓아둘 리 없다. 질문 공세가 시작된 것이다.

“저어, 김 선수!”
“지금 은퇴하겠다고……(했나요?)”
“무슨 이유이신지요!”
“좀 묻겠습니다, 김영기 씨!”
“저어, 김 선수! 우리가, 아니 팬들이 믿기에는 그건 당치도 않은…….”
“이유 좀 말씀해 주십시오!”

김영기에게 “은퇴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기자도 있었다. “그럴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는 법이 어디 있느냐, 팬들이, 한국이 용서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김영기는 난감해졌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어느 누가 이 착잡한 심정을 몇 분의 일이나마 이해해 줄까. 어떻게 몇 마디로 납득을 바란단 말인가. 곧 시상식이 열렸고, 김영기는 그 자리에서 다시 한 번 은퇴를 확인했다. 대한농구협회 이병희 회장에게 은퇴의사를 분명히 밝힌 것이다.

우승컵을 품에 안은 김영기에게 다시 관중의 박수가 쏟아졌다. 그는 두 손을 들어 인사했다. 마음 같아서는 관중석으로 달려 올라가 한 사람 한 사람 손이라도 잡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우승컵을 품에 안은 채 박수가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제 모든 것은 끝났다고. 기쁨도 슬픔도 아쉬움도 승부를 향한 그 알 수 없는 집념도 이제는 모두 막을 내렸다고.

“13년 동안의 농구 하나로 덮인 나날은 이제 끝났다. 얼마나 많은 오해가, 질문이, 공격이, 설득이, 그리고는 강권이 앞으로 닥칠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하나 분명한 것은, 내일부터는 한 사람의 은행원의 자리를 차분히 지키며 살아간다는 것. 조용히 그렇게 살아야 한다. 막이 내린 무대는 쓸쓸하다.” (『갈채와의 밀어』 388쪽)

김영기는 동료들에게 둘러싸인 채 한 발 두 발 출입구를 향해 걸어 나갔다. 아쉬운 듯 다시 박수가 터졌다. 그는 돌아서서 쏟아지는 박수세례에 몸을 맡겼다. 그리고 손을 흔들었다. 그가 멈추어 선 곳은 출입구 한 복판, 코트와 바깥세상의 정중앙이었다. 그는 거기 서서 손을 흔들었다. 한 발만 뒤로 물러서면 코트와의 인연은 이제 끝이었다. 그는 속삭였다.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게, 그러나 그의 고막을 터뜨리기라도 할 것처럼 혼신의 힘을 다해.

“고맙습니다, 나의 팬들이여. 아듀!”

김영기는 경기장을 떠났다. 바깥세상에서는 2월의 매서운 바람이 거리를 휩쓸고 있었다. 그는 생각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물었다. 자신에게, 그리고 미지의 누군가에게. 자신이 13년 동안 추구해 온 것은 무엇이었는지. 승리의 의미란 도대체 무엇인지. 이 갈채와 명성의 의미는 무엇인지. 헤아릴 수 없이 받은 사랑과 도움의 뜻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오늘을 사는 우리는 물어야 한다. 김영기는 왜 1966년 2월 12일 장충체육관에서 그를 사랑한 사람들에게 작별을 고했는지.

허진석 한국체육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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