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슬램게임] "수비로 오래 살아남고 싶어요" 단국대 김태영(017)
- 아마추어 / 김동환 기자 / 2026-10-08 11:00:27


#001_Scan: 단국대 김태영
김태영이 농구공을 처음 잡은 시기는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친구들과 함께 운동을 즐겼던 그는 농구 역시 친구의 제안으로 시작하게 됐다. 학교 농구부에 입단해보자는 친구의 말에 운동을 좋아하던 김태영은 큰 고민 없이 농구장으로 향했다. 공부를 못하지 않았던 그였기에, 부모님은 아쉬움을 표했지만 고민 끝에 아들의 선택을 존중해주기로 했다.
김태영은 침산중으로 진학하며 구병두 코치를 만났고, 이는 본격적인 엘리트 농구 인생의 시작이었다. 초등학생 때까지는 농구에 대한 이해나 체계적인 훈련 없이 경기만 뛰었던 김태영은 중학생이 된 이후 엘리트 훈련의 고된 강도를 느꼈다. 하지만 수확도 분명했다. 구병두 코치에게 수비에 대한 많은 것을 배웠고, 이는 현재 강한 수비력의 발판이 되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는 뭣도 모르고 그냥 했어요. 중학교 올라와서는 구병두 코치님의 지도를 받게 됐는데, 그때부터 운동량이 늘면서 많이 힘들었던 것 같아요. 솔직히 공격하는 것이 재밌어서 공격을 우선으로 생각했었어요. 구병두 코치님께서 수비 길 자르는 것이나 길을 잡는 것, 스크린 대처 같은 것을 많이 알려주셔서 그 이후로 수비에 대한 노력도 많이 기울였던 것 같아요."
엘리트 농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김태영은 스피드에 일가견이 있었다. 특유의 빠른 스피드를 활용한 돌파를 통해 김태영은 많은 득점을 쌓았고, 상대의 파울도 이끌어냈다. 그렇게 공격에 흥미를 느끼던 김태영은 크나큰 벽을 마주했는데, 바로 피지컬이었다. 남들에 비해 김태영은 힘과 피지컬이 부족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다.
"중학교 때는 힘이나 피지컬이 많이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웨이트를 키우기 위해 집에 가서 최대한 많이 먹고 일찍 자려고 했어요. 10~11시에 바로 자고 했던 것이 고등학교에 가서 많이 도움됐던 것 같아요."
김태영은 중학교 3학년이라는 어린 나이에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부모님 곁을 떠나 청주로 발걸음을 돌린 것이다. 그가 무모한 선택을 감행하기로 결심한 것은 청주신흥고로 진학하기 위함이었다. 가드였던 김태영에게는 확실한 빅맨 파트너가 필요했고, 유민수가 그 적임자였다.
"3학년 경기가 완전히 다 끝난 뒤에 청주신흥고로 진학하려고 9~10월쯤에 주성중으로 전학을 갔어요. 주성중에서도 농구부를 하긴 했지만 운동은 청주신흥고에 가서 많이 했어요. 전학 가서 잘 모를 때 이재환 코치님이 많이 잘해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개성고도 좋은 학교였지만 유민수라는 확실한 빅맨이 있어서 같이 뛰어보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청주신흥고 시설도 좋았고, 윤명수 코치님이 밀어줄 때는 잘 밀어주시는 지도자로 알고 있었어서 선택한 것 같아요. 원주 DB에 있었던 (박)상우 형을 포함해서 좋은 선배들이 많아서 보고 배우면 잘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간 것도 있어요."
부모님 곁을 떠나 홀로서기에 나서는 힘든 결정을 통해 김태영은 청주신흥고로 진학했지만 코로나 19라는 예상치 못한 악재가 터지며 첫 1년이 지워졌다. 유민수와의 호흡을 기대했던 김태영은 상실감을 느낄 수 있었지만 오히려 개인 운동을 통해 성장과 발전의 시간으로 바꿔놓았다.
"1학년 때는 코로나 19가 터지는 바람에 경기가 아예 없었어요. 오히려 그때 운동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돌아보면 실력이 가장 많이 늘었던 시기인 것 같아요. 부모님이랑 떨어져서 친구랑 살았는데, 할 수 있는 것이 운동밖에 없더라고요. 윤명수 코치님이 운동을 많이 할 수 있게 지원해주시고, 밥을 못 챙겨 먹을까봐 식대도 많이 지원해주셨어요. 너무 감사했죠. 덕분에 1학년 때 개인 운동을 많이 해서 슛이나 돌파가 많이 늘었던 것 같아요."

한 해가 지날수록 성장을 거듭한 김태영은 대학 진학에 있어 가장 중요한 3학년 시즌을 부풀어가는 기대감을 안고 준비했다. 하지만 그의 기대와 달리 최악의 팀 성적표를 받아들었고, 이는 깊은 좌절과 후회로 이어졌다.
"3학년 동계훈련 때는 솔직히 우리가 잘할 줄 알았어요. 대학팀과의 연습 경기에서도 쉽게 지지 않았고, 여준석 선수가 있던 고려대를 상대로도 3쿼터까지 이겼거든요. 윤명수 코치님도 이번 시즌에 잘해야 한다고 해서 개인 연습이나 훈련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어요."
"득점이나 리바운드 등 개인 성적은 잘 나왔는데, 3월 춘계연맹전 대회에서 제물포고전에 전반까지 20점 차로 이기다가 파울이 많이 나오면서 뒤집히고 난 뒤로 많이 떨어졌던 것 같아요. 구민교를 막는 과정에 (유)민수가 반칙 4개를 하는 바람에 수비가 무너졌던 것 같아요."
"결국, 전반기 대회를 다 예선 탈락했어요. 그때 대학교에 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고, 더 잘하고 싶은데 못해서 좌절감과 상실감을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더 잘할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 때문에 지금도 후회가 많이 남아요. 그때 더 잘했으면 지금 더 잘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아쉬운 팀 성적 속에서도 꾸준히 20점을 기록하며 본인의 기량을 증명한 김태영은 단국대 진학에 성공했다. 청주신흥고 시절 단국대와 많은 연습 경기를 치렀던 김태영은 그때부터 단국대의 농구 스타일에 관심을 가졌고, 수비가 강한 단국대의 팀컬러가 그를 천안으로 이끌었다.
단국대에서의 시작은 쉽지 않았다. 승리의 기쁨보다 패배의 아픔을 더 많이 경험해야 했고, 고등학교 때와 달리 규칙적인 출전 시간도 보장받지 못했다. 몸과 마음이 모두 지친 김태영은 인생의 절반 이상을 함께 한 농구를 그만둘 생각까지 했다. 그런 그를 버티게 한 것은 주변 사람들의 응원과 지지였다.
"제가 원래 1학년 1학기 끝나고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려고 했었어요. 부모님께서 끝까지 한 번 해보자는 식으로 말씀해주시고 감독님과 코치님도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셔서 마음을 다잡았던 것 같아요."
부정적인 생각을 지우고 다시 농구에 매진한 김태영은 성실함과 수비력을 인정받으며 출전 시간을 늘려갔다. 주축 선수들의 부상까지 겹치며 팀에서의 입지를 점점 늘려가기 시작했다.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내려놓자 김태영의 농구가 다시 빛나기 시작했고, 플레이오프에서 9어시스트로 눈도장을 확실히 찍었다.
"1학년 한양대와의 플레이오프 때 (이)경도 형이 부상을 당하면서 제가 또 선발로 나가게 됐어요. 그때 전반전에 연습한 것에 비해 많이 못했어서 후반전에 형들을 많이 살려주려고 했더니 역전에 성공했고, 20점 차로 이겼어요. 솔직히 그렇게 크게 이길 줄 몰랐어요. 그만둘 생각으로 마음을 내려놓고 했는데, 그때 농구가 제일 잘됐던 것 같아요."
굴곡이 있는 1학년을 보낸 김태영은 대학 첫 동계 훈련을 지옥과 같았다고 표현했다. 하지만 힘든 과정 뒤에는 달콤한 열매가 따라왔다. 몸의 성장뿐만 아니라 마음의 성장까지 이뤄냈고, 고등학교 때까지와 다른 마인드셋을 장착할 수 있었다. 1학년 초반 심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낸 김태영이었기에 마음의 성장은 그 누구보다 중요했고 의미가 있었다.
"살면서 그때가 제일 힘들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1학년 동계 훈련이 많이 힘들었어요. 강원도 평창으로 갔는데, 영하 20도 정도로 춥고 운동도 엄청 힘들었어요. 2주 하고 발바닥 족저근막염이 터져서 남은 동계 훈련을 쉬었는데도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2주였습니다."
"그때 운동하면서 몸이 많이 좋아졌어요. 수비나 다른 힘든 훈련을 해도 그때 생각하면 별로 힘들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몸도 많이 좋아졌지만 정신적으로 많이 성숙해진 것 같아요. 그때를 이겨내면서 정신적으로 발전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기대가 컸던만큼 실망과 아쉬움도 컸지만 넋 놓고 있을 수 없었다. 다가오는 시즌은 송재환, 최강민 등 4학년들과의 마지막 1년이었고, 박야베스, 신현빈 등 2학년 후배들의 성장도 기대할 수 있었다. 그러한 이유에서 김태영의 3학년 시즌 준비에 대한 열정은 컸지만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3학년 때는 동계 훈련에서 발날 부상을 당하면서 많이 꼬였어요. 제가 원래 아픈 곳이 있어도 티를 내지 않고 참고 하는 스타일이거든요. 그런데 2주 동안 운동했는데 너무 아파서 일주일을 쉬었어요. 병원에서도 뼈 문제는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쉬고 운동하려고 했는데, 도저히 안되겠더라고요. 그래서 CT를 찍어봤는데 발날 피로골절이라 해서 바로 수술을 받았어요."
3개월의 휴식이 필요했지만 빠른 회복세를 보이며 6주 만에 다시 코트를 밟았다. 하지만 부상에 대한 트라우마와 부족한 운동량은 또 다른 부상을 낳았다. 5월 왼쪽 발날 골절로 수술을 했고, 11월에는 오른쪽 발날 부상을 당했다. 농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4학년을 앞두고 가장 긴 쉼표가 찍히며 김태영의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한 번 다치니까 계속 아프고 다치더라고요. 5월에 왼쪽 발날이 또 골절돼서 수술을 또 했어요. 심하지 않아서 한 달 넘게 쉬고 복귀했는데, 11월에 오른쪽 발날을 크게 다쳐서 2월까지 계속 쉬었어요. 중요한 4학년 시즌을 앞두고 다치니까 생각이 많아지더라고요. 10년 넘게 농구를 해온 세월들이 물거품되는 것 같아서 아깝고, 마음도 조급해졌어요. 그때도 부모님과 감독님, 코치님께서 좋은 말씀만 해주셔서 버틸 수 있었어요."
"솔직히 많이 힘들었지만 주변에서 많은 도움을 주셔서 이겨내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어요. 그래도 후회는 많이 남아요. '부상이 발생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더 잘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라는 후회가 많이 남는 것 같아요. 그 시절을 생각하면 예방을 위해 관리를 열심히 할 걸 그랬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부상으로 아쉬운 한 해를 보낸 김태영은 4학년이 되자 프로 진출이라는 부담감과 함께 책임감도 더해졌다. 팀의 최고참이 된 그에게 주장 역할이 주어진 것이다. 최종 목표인 프로 진출을 앞두고 개인 기록에 대한 욕심이 생길 수도 있었지만 주장이 된 그에게는 팀 승리가 우선이었다.
"팀원들을 더 많이 챙기려고 했던 것 같아요. 훈련 때나 휴식 때나 농구 얘기를 많이 했어요. 저는 감독님의 농구를 4년 동안 많이 했다 보니까 감독님이 요구하고 추구하는 농구를 따라오지 못하는 선수들에게 많이 알려주려고 했어요. 감사하게도 선수들이 제 말을 잘 들어주고 따라와줬어요. 개인 기록보다 팀 성적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고 제가 못해도 팀이 승리하면 기분이 좋습니다."
"선배들과의 좋은 기억이 도움이 많이 됐죠. 후배들에게 선을 긋고 다가가기보다 친하게 다가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제가 망가지고 저를 낮춰서라도 편하게 생각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후배들도 장난을 스스럼없이 치고 저도 재미있게 받아주면서 저를 어려워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김태영의 4학년 기록은 8.7점 4리바운드 2.3어시스트 1.3스틸. 눈에 띄는 기록은 아니지만 주장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하며 팀을 플레이오프로 이끌었다. 팀 승리를 먼저 바라본 김태영은 공격보다 수비에 더 많은 집중력과 에너지를 쏟았고, 이는 석승호 감독의 주문과 가르침이 밑바탕에 깔려 있었다.
"감독님께서 30점 넣는다고 다 프로 가는 것 아니라고 말씀하셨어요. 프로에서 잘하는 선수들이나 대학교 때 많은 득점을 했던 선수들도 프로에 가서는 수비부터 하고 팀 퍼스트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공격만 잘하는 것이 아닌 팀을 우선시하는 선수가 되라는 말을 많이 하셨죠. 감독님께서 수비를 중요시하시고 혼자 하는 농구가 아닌 팀원들이 다 같이 공을 만지는 농구를 중요하게 생각하셔서 그렇게 말씀하신 것 같아요. 농구를 하면서 모토로 삼고 있는 가르침입니다."
대학 시절을 돌이켜 보면 행복한 기억만 가득하다는 김태영은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후배들이 본인을 편하게 생각한다고 느낀 일화를 전하며 답변을 대신했다. 김태영이 후배를 대하는 마음이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대학 시절은 좋았던 기억만 있어요. 다 좋았지만 올해 종별선수권 대회 우승하고 다같이 대천 해수욕장에 놀러 간 게 기억에 남아요. 선생님들과 부모님들께서 지원을 해주셔서 갔는데, 야자 타임을 했어요. 1~2학년 후배들이 신나서 하더라고요. 욕도 많이 먹었지만 욕을 먹으면서도 되게 즐거웠어요. 후배들이 마음에 쌓아뒀던 이야기를 편하게 해줘서 고마웠어요. 잘못한 행동을 반성하기도 하면서 재밌게 즐긴 것 같아요."

드래프트는 지금까지 쌓아온 시간을 평가받는 자리인 동시에, 앞으로의 가능성을 직접 설명해야 하는 무대이기도 하다. 수많은 후보 가운데 자신의 이름을 남기기 위해서는 무엇을 잘하는 선수인지, 어떤 모습으로 팀에 보탬이 될 수 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 줄 필요가 있다.
"수비적인 부분에서 팀에 에너지를 불어넣을 수 있는 선수라고 생각합니다. 몸을 사리지 않는 플레이도 잘합니다. 그리고 스피드가 빨라서 상대팀의 주요 가드들을 막는 데 자신 있습니다. 요즘 아시아쿼터 선수들이 잘하고 있는데, 그런 선수들을 막기 위해 수비적인 연구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맡겨주신다면 후회는 하지 않도록 해줄 수 있습니다."
김태영의 롤모델은 그가 장점으로 꼽은 수비와 관련이 있었다. KBL에서 '수비'하면 생각나는 두 선수를 김태영은 롤모델로 선택했다. 슈팅 등 공격력은 다른 선수들에 비해 떨어지지만 수비력은 리그에서 손꼽히는 선수들을 언급한 김태영은 슈팅에 대한 자신감도 드러냈고, 그의 잠재력까지 어필했다.
"닮고 싶은 선수는 오재현(SK), 정성우(한국가스공사)입니다. 두 선수의 플레이를 많이 보면서 연구하고 있습니다. 코치님들께서도 많이 말씀해주시고 있고요. 저는 2~30점을 넣을 수 있는 선수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좀 더 수비를 통해 팀에 도움이 되는 선수로 성장하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그래도 슛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연습도 많이 하고 있고 자신감도 있는데, 슈팅 성공률이 좋지 않아서 아쉽긴 합니다. 그래도 발날도 다 낫고 했으니까 몸을 더 잘 만들면 더 나은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누구에게나 한번쯤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먼저 그려보는 순간이 있다. KBL 입성을 꿈꾸는 드래프트 참가자들에게도 '프로 선수가 된 나'는 오래 품어온 가장 선명한 상상일 터다.
김태영이 상상하고 원하는 모습은 수비를 잘하는 선수가 되어 유소년 선수들의 롤모델이 되는 것이었다. 그가 오재현과 정성우를 보며 미래를 꿈꾸었듯이 어린 선수들이 본인을 바라보며 미래를 그릴 수 있는 선수가 되는 것이 최종 목표였다.
"KBL에 지명돼서 프로에 가게 된다면,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선수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요즘 중고교 선수들이 진학이나 기록 때문에 득점에 신경을 많이 쓰는데, 나중에 수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기가 왔을 때 롤모델로 삼는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 수비나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저를 닮고 싶게 하는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
"수비나 궂은 일을 통해 살아남고 싶어요. 슈팅 찬스가 오면 꼬박꼬박 넣어주는 것이 장점이 되었으면 하고, 팀 케미적으로도 장점을 발휘할 수 있는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수비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싶어요. 상대팀 에이스 스토퍼를 생각했을 때, 저를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게 하는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
"단기적인 목표는 KBL 드래프트에서 지명돼서 1군 경기를 뛰는 것이 목표입니다. 장기적인 목표는 KBL에서 오래 살아남고 싶습니다. 전성기라고 생각하는 32~33살까지 KBL에 있는 것이 목표이고, 팀에 없어서는 안 될 선수로 자리 잡는 것이 장기적인 목표가 될 것 같습니다."
"파울을 많이 쓰는 한이 있더라도 상대 에이스 선수를 귀찮게 해서 20점을 10~15점으로 줄일 수 있는 선수가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런 선수가 되어서 롱런하고 싶습니다."
끝으로 그는 지도해준 은사님들과 부모님께 감사를 전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저를 지도해주신 코치님들과 석승호 감독님, 권시현 코치님, 이두호 코치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또, 항상 농구부가 잘될 수 있게 힘써주신 장지석 체육위원장님과 염경호 체육부장님께도 감사드립니다."
"23살까지 운동할 수 있게 뒷바라지해주신 부모님께도 감사함과 미안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더 열심히 해서 나중에 꼭 호강시켜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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