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슬램게임] ‘대체 불가한 퍼즐 조각’을 꿈꾸는 코트 위의 사령탑, 중앙대 이경민(010)

아마추어 / 박효진 기자 / 2026-09-22 11: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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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박효진 인터넷기자] 지금껏 농구 하나를 바라보며 달려온 시간은 이제 프로라는 다음 무대를 앞두고 있다. '26슬램게임'은 KBL 드래프트를 향해 저마다의 시간과 가능성을 증명해야 하는 선수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열 번째 주인공은 중앙대 이경민(183cm, G)이다.

 

#001_Scan: 중앙대 이경민

이경민과 농구의 인연은 우연한 관람에서 시작됐다. 전주에 있던 친척 집을 방문했을 때 전주 KCC(現 부산 KCC)의 경기를 보게 됐고 그 뒤로 홀린 듯이 빠져들었다. 그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부모님께 농구를 하고 싶다고 이야기를 꺼냈다.

“부모님께서 농구가 좋으면 취미로 하면서 그냥 해보라고 하셨어요. 어렸을 때부터 운동 많이 하면 좋으니까 허락해 주셨던 것 같아요.”

발끝만 살짝 담가보려던 흥미는 어느새 걷잡을 수 없이 깊어졌다. 더는 취미라는 가벼운 단어로는 커져 버린 열정을 담아낼 수 없을 때쯤, 이경민의 발걸음은 자연스레 엘리트로 향했다.

하지만 노선 변경이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먼저 엘리트 농구에 몸담았던 두 살 터울 친형의 뼈아픈 경험 때문이었다.

“금방 그만두긴 했지만, 저희 형도 중학교 1학년 때 농구를 했었어요. 그래서 부모님께서 하지 말라고 반대하셨죠. 그런데 저랑 같이 클럽에 뛰던 친구들이 다 엘리트로 넘어가서 부러워서 꼭 하겠다고 말씀드렸어요.”

결국 부모님의 허락을 받게 된 이경민은 들뜬 마음을 가득 안고 양정중으로 향했다. 농구를 향한 마음이 점차 무거운 긴장감으로 변할 때쯤 이경민에게 코트를 밟을 기회가 주어졌다.

“주말리그였어요. 처음 자유투를 던졌는데 너무 긴장해서 에어볼이 난 거에요. 저 혼자 슛을 쏘니까 림도 갑자기 더 멀어 보이고 눈 앞도 까맸어요. 림에 맞지도 않고 그 앞에 떨어져서 너무 부끄러워서 그 때를 계기로 더욱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첫 경기의 창피함을 원동력 삼아 이를 악물었지만, 엘리트 무대의 현실은 혹독했다. 1학년 시절은 그야말로 시련의 연속이었다. 생전 처음 겪어보는 트랙 훈련에 매일같이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고, 소속 팀마저 1년 내내 승리 없이 전패의 쓴잔을 마셔야 했다. 육체적, 정신적 체력이 한계에 도달한 이경민에게 어두운 터널을 밝혀줄 등불이 등장했다. 2학년 때 양정중으로 부임하게 된 고(故) 표명일 코치다.

“코치님께서 프로에 오래 계셨기도 하고 해서 진짜 자세하게 하나하나 다 알려주셨던 게 도움 많이 됐어요. 특히 기본기 위주로 가르쳐 주시고, 또 같은 가드이다 보니까 가드로서 가져야 할 것들을 알려주셔서 스스로 자신감도 많이 얻었어요.”

표명일 코치의 지도 아래 차곡차곡 쌓아 올린 기본기와 자신감은 3학년 진학과 함께 송태영 코치를 만나며 화려하게 만개했다. 머릿속에서 그린 그림이 그대로 코트에 완벽하게 색칠됐다.

“제가 어느 순간부터 몸에 힘이 붙어서 전에 안 나왔던 플레이가 다 나오기 시작했어요. 제가 느끼기에는 똑같이 플레이했는데 상대가 저를 못 막는게 느껴지니까 갑자기 막 재밌어졌죠. 코치님께서도 원하는 대로 하라고 해주시니까 그때부터 진짜 농구를 제대로 눈을 뜬 느낌이었어요.”


양정중이 1986년 이후 우승을 차지하게 된 추계전국남녀중고농구 대회, 이경민은 최우수선수상(MVP)어시스트상을 동시에 받았다.

“원래 저희가 마지막 대회를 안 나가기로 한 상태였어요. 종별 대회 8강에서 금명중 상대로 아쉽게 졌던 기억이 있었어요. 그 때 코치님께서 선수들을 모아서 ‘이대로 그냥 끝낼래, 마지막 대회 나갈래’라고 여쭤 보셨어요. 저랑 (한)재혁이가 마지막 대회에서 우승 한번 해보고 싶어서 나가게 됐어요. 마침 결승전 상대가 금명중이어서 더욱 불타올랐던 것 같아요.”

“사실 최우수선수상은 받을 줄 몰랐는데 운 좋게 받았던 것 같고 옛날부터 어시스트상을 받는 게 꿈이었는데 그 대회 때 받아서 좋았던 기억이 있어요.”

이경민은 자신의 수상을 그저 ‘운’이라고 말하며 겸손한 자세를 취했지만, MVP 수상은 결코 운만은 아니었다. 결승전 당시 풀타임에 가까운 39분 동안 코트에서 26점(3P 3개) 8리바운드 6어시스트를 터뜨리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중학교 마지막 경기를 우승으로 마무리하며 유종의 미를 거둔 이경민은 경복고에 진학했다. 그러나 시련은 코트가 아닌 예상치 못한 곳에서 찾아왔다. 코로나로 1년 내내 공식 대회가 모두 취소되면서, 이경민은 실전 대신 개인운동에 더욱 치중할 수밖에 없었다. 이경민은 부족했던 근력 운동을 하며 미래를 위해 담금질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렇게 실전 무대를 갈망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경복고 동문 선배들과의 연습게임을 가졌다.

중학교 무대를 평정하며 자신감에 차 있던 이경민이었지만, 이때 처음으로 자신의 한계를 실감하며 벽에 부딪히는 경험을 하게 된다.

“형들하고 경기를 뛰어보니까 아무것도 못하겠는 거예요."

"수비를 워낙 잘하는 형들이라 제가 뭘 할지 또 어디로 갈지 다 알고 있는 거예요. 생각이 다 보이나 싶을 정도로 돌파하려고 하면 이미 와 있고, 패스 주려 했는데 딱 자르고 있고. 그때 처음으로 벽을 느꼈던 것 같아요. '나는 아직 아무것도 아니구나, 진짜 열심히 해야겠구나' 생각이 들어서 그때부터 더더욱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2학년이 되자 이경민에게는 더욱 많은 기회가 주어졌다. 팀의 주축으로 경기를 뛰기 시작하면서 코트 위에서 점차 자신의 진가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주말리그 왕중왕전 결선 낙생고와의 맞대결에서는 21점 3리바운드 12어시스트 3스틸을 기록하며 팀을 승리로 이끌기도 했다. 그러나 온 열정을 쏟아부은 것이 무색하게도 팀은 우승의 문턱에서 자꾸 무너졌다. 이경민은 동기들과 함께 아쉬움을 삼키고 3학년 때 꼭 우승하자며 고된 훈련들을 버티고 하나의 목표를 정조준했다.

절치부심으로 나선 고등학교 3학년, 경복고는 춘계대회 3위, 협회장기 준우승, 종별대회 3위를 달성하며 여러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이경민은 27경기에 출전해 평균 16.2점 5.5리바운드 10.3어시스트 3.3스틸을 기록하며 에이스로서 맹활약했다. 심지어 춘계 대회에서는 어시스트상수비상까지 차지하며 개인 수상도 놓치지 않았다. 뛰어난 개인 성적에도 팀 우승이라는 마지막 조각은 채워지지 않았다. 그런 이경민이 마침내 갈증을 풀어낸 무대가 바로 8월에 열린 주말리그 왕중왕전이었다.

“마지막 대회 때 U18 대표선수들이 다 없었어요. 저희 팀의 (임)성채도 빠졌고 다 같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우승하자고 했는데 완전체는 아니어도 그래도 우승이니까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결국 끝은 모두 우승이었다. 중학교 시절을 우승으로 마무리했던 이경민은 고등학교 3학년 마지막 무대에서도 팀을 최고의 자리에 올렸다. 이경민은 한층 단단해진 마음가짐으로 중앙대로 향했다.

#002_Life in University


청룡 군단에 합류하게 된 이경민은 신입생 때부터 많은 경기에 출전하며 기회를 부여받았다. 12경기에 출전해 평균 21분을 소화하고 6.5점을 기록했다. 팀 내 1학년 중에서 제일 높은 득점을 뽐냈다. 선배들을 도우며 든든한 감초 역할을 소화하며 대학 무대를 경험했다.

그 해 겨울 이경민에게 큰 변화가 생겼다. 선발로 경기에 나서며 자연스럽게 팀의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됐다. 그러나 계속되는 실수와 정체되는 것 같은 실력에 자신도 모르게 슬럼프의 늪에 빠져 농구를 포기하고 싶은 생각으로 이어졌다.

“저에게 주어진 역할을 잘 수행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스스로 자책도 많이 하고 동계훈련 때부터 스트레스도 엄청 쌓였던 것 같아요. 제가 힘든 걸 말을 잘 안 하는 스타일인데 부모님께 처음으로 말씀드렸어요.”

“진지하게 부모님과 대화를 나눴어요. 제가 계속 게임을 많이 뛰는 입장이어서 그런지 아버지께서 ‘책임감을 좀 가져라’라고 강하게 얘기를 하셨거든요. 제가 너무 힘드니까 그런 마음에 어리광을 부렸던 것 같은데, 아버지께서 단호하게 얘기하시니까 아차 싶었던 마음이 들었어요. 또 부모님께서 저를 그만큼 믿어주고 계시는 걸 다시 한 번 느끼게 됐고요.”

흔들리던 그를 다잡은 건 가족이었다. 아버지의 뼈아픈 한마디는 강력한 동기부여가 되었다. 이경민은 그렇게 스스로 마음을 다잡고 다시 코트에 올라섰다. 결과는 괄목상대다. 약점이라고 판단되던 3점 슛을 보강했다. 1학년 때 15.8%이던 성공률이 2학년 32.6%로 급상승했다.

이경민이 3학년이 되자 소속팀 중앙대에 변화가 생겼다. KBL MVP 출신이자 중앙대의 레전드 윤호영 감독이 새롭게 지휘봉을 잡은 것이다. 이경민은 윤호영 감독 체재 아래서 한 번 더 성장을 이뤄냈다. 그 첫 단추는 한계를 시험하는 동계 훈련이었다.

“지금까지 농구하면서 제일 힘들었어요. 새벽에 일어나서 기본기 훈련하고 오전에는 뛰고 오후에도 뛰고 야간에는 웨이트 훈련을 했어요. 선수들끼리도 정말 힘들었다고 계속 말했죠.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요.”

하지만 이 때 쏟아부은 땀방울은 중앙대의 팀컬러에 가장 기초적인 부분을 채워주었다. 나아가 경기 마지막까지 버틸 수 있는 확실한 자양분이 되었다.

"저희가 상대들보다 4쿼터 득점이 워낙 많고 리바운드 그런 부분도 잘 되는 것 같아요. 그게 진짜 체력적인 부분이라서 경기를 하다 보면 상대가 저를 못 따라간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좀 있어요. 그 덕분에 동계 훈련의 효과를 실감하고 있어요."

4학년에 진학하자 이경민의 어깨는 한층 더 무거워졌다. 팀을 이끌어야 하는 고참인 건 당연, 완장까지 팔에 찼다.


"농구하면서 주장을 맡은 건 처음이었기에 걱정이 많이 됐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동기들과 후배들이 제 말을 되게 귀 기울여주고 저를 믿고 따라와주려고 하니까 그래서 더 책임감을 갖게 되더라고요. 주장하면서 팀을 단합시키려는 마음이 생긴 것 같아요."

이경민의 리더십이 더해진 중앙대는 올해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그야말로 돌풍과 같은 시즌을 보내고 있다. 9월 23일 현재, 리그 1위를 달리고 있다. 승률은 무려 88.9%다. 특히 홈에서는 단 한번도 패배한 적이 없다. 또 강팀의 증거인 연패가 없다.

이경민 또한 상위권 싸움을 치열하게 해오던 리그 판도 속에서 강팀들을 상대로 지울 수 없는 강한 존재감을 보였다. 고려대와의 홈경기에 던진 3점슛 하나로 팀의 승리를 가져오기도 했으며 성균관대와의 맞대결에서는 19점 2리바운드 9어시스트 4스틸로 해결사의 면모를 보였다.

“리그 1등이긴 하지만 사실 어떻게 상황이 흘러갈지 모르기 때문에 당연하지만 리그 1등 지키는 게 가장 큰 목표에요. 플레이오프를 홈에서 치러서 전부 이기고 싶어요. 저희가 역사를 써서 저희 이름을 남기자 이런 얘기를 많이 하는 것 같아요.”

#003_Application

‘코트 위의 야전사령관’이라는 호칭처럼 포인트가드는 포지션 특성상 주어진 역할이 무수히 많다. 이상적인 포인트가드라면 자신의 득점 기회뿐만이 아니라 동료들의 위치, 코트의 흐름까지 전부 파악하고 머릿속의 그림을 그려두어야 한다. 이경민 역시 자신의 최대 장점을 ‘시야’라고 생각했다.

그의 시야는 단순한 타고남만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다. 자신의 장점이라고 생각했던 패스가 고등학교 땐 대학교, 대학교 때는 프로와의 맞대결을 통해 여러 번 벽에 부딪혔다. 그 뿐만 아니라 자신이 뜻대로 경기가 풀리지 않거나 지는 경기에는 더욱 고개를 숙여야 했다. 그러나 이경민은 좌절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독하게 마음을 먹고 자신의 실수들을 하나하나 분석했다.

“질 때마다 진짜 엄청 분하고 ‘왜 졌지’라는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사실 경기를 지면 그날 밤에 잠도 못 잘 정도로 계속 머리에 맴돌거든요. 그 행동 하나하나를 항상 복기하고 경기 다시 보면서 계속 고치려고 하고 연구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저는 근데 저는 진짜 제 게임만 보는 게 아니라 다 보거든요. 가드 입장에서 ‘내가 만약 저 자리에서 뛰고 있었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하면서 꼼꼼하게 체크하고 배워가려고 합니다.”

이경민은 확실한 장점을 가진 만큼 자신이 채워야 할 약점도 명확히 인지하고 있다. 프로 무대의 거친 몸싸움을 버텨내기 위해 꾸준히 웨이트 트레이닝에 열중하며 약점을 극복해내고 있다. 몸싸움을 선호하는 편이 아니라는 핑계를 대기보다 “그냥 해라”라는 자신의 좌우명처럼 묵묵히 부족한 땀방울을 채워 나가는 부지런함이 그의 숨겨진 무기다.

 

#004_My Future


누구에게나 한번쯤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먼저 그려보는 순간이 있다. KBL 입성을 꿈꾸는 드래프트 참가자들에게도 '프로 선수가 된 나'는 오래 품어온 가장 선명한 상상일 터다. 이경민은 그 꿈의 끝을 ‘대체 불가’로 그려두었다.

"솔직히 저는 에이스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어요. 항상 저는 에이스보다는 그 팀에 없으면 안 되는 선수가 되는 게 목표에요. 팀 퍼즐의 한 '조각'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이경민은 화려한 스타보다는 이타적인 가드로 프로에서 살아남고 싶다는 결론을 내렸다. 자신만 잘하는 선수가 되기보다는 자신으로 인한 ‘우리’의 플레이가 빛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가드로서 롤모델이 있느냐는 질문에 이경민은 주저 없이 은퇴한 선배의 이름을 꺼냈다.

“이현민 선배님을 정말 닮고 싶어요. 단신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패스 센스와 자기만의 뚜렷한 색깔로 프로 무대에서 오랜 기간 살아남으셨잖아요. 저 역시 어떤 역할이 주어지든 저만의 시야와 센스를 바탕으로 코트 위에서 제 가치를 증명해 낼 자신이 있습니다.”


롤모델을 향한 존경심과 프로 무대를 향한 당찬 각오를 밝힌 이경민. 인터뷰 말미, 새로운 출발선에 선 그는 지금의 자신을 만들어준 이들에게 진심 어린 고마움을 전했다.

“중학교 때부터 묵묵히 뒷바라지해 주신 부모님, 그리고 늘 제 경기를 챙겨보고 피드백을 해주는 든든한 멘토인 친형에게 가장 먼저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또 제가 농구를 처음 시작하던 출발선부터 지금까지, 변함없는 자리에서 묵묵히 저를 가장 빛나게 만들어주신 송태영 코치님께도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어요.”


#사진_점프볼DB, 양윤서 인터넷기자, 이경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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