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최준용, 우리 시대 농구왕의 꿈

매거진 / 홍성한 기자 / 2026-08-01 08:00:14
  • 카카오톡 보내기

[점프볼=홍성한 기자] ‘원피스’는 단순한 만화가 아니다. 20년 넘게 전 세계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작품이자, 꿈을 향해 나아가는 한 소년과 그의 동료들의 이야기다. 해적왕을 꿈꾸는 주인공 루피는 수없이 넘어지고 좌절하지만 끝내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자유를 갈망하고, 동료를 믿으며,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지켜낸다.

최준용에게도 그런 작품이었다.

수많은 캐릭터 가운데 망설임 없이 루피를 꼽은 그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나 동료애가 내가 원하는 삶과 닮아있다”고 말했다. 부상도 있었고, 비판도 있었다. 예상치 못한 발언으로 화제의 중심에 선 적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의 길을 바꾸지 않았다.

루피에게 ‘해적왕’이라는 꿈이 있다면, 최준용에게는 어떤 꿈이 있을까.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돌아온 답은 짧고도 분명했다.

“해적왕이면 저도 농구왕이죠.”

농담처럼 웃으며 던진 말이었지만 이 한마디는 최준용이라는 사람을 가장 잘 설명했다. 그의 ‘원피스’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본 기사는 농구전문 매거진 점프볼 8월호에 게재됐습니다.  



CHAPTER. 1 : 다시 가슴에 새긴 태극마크

4년 만에 국가대표팀으로 돌아왔다. 대표팀과 오랜 시간 떨어져 있었지만, 태극마크를 다시 가슴에 다는 순간만큼은 달라진 것이 없었다. 최준용은 “너무 가슴이 뜨거웠다”고 표현했다. 어린 시절 농구를 시작하며 품었던 꿈이 다시 현실이 된 순간이었다.

“어떤 선수들과 함께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어요. 태극마크를 다니까 그냥 가슴이 뜨거웠어요. 제가 농구를 처음 시작하면서 가졌던 꿈 자체가 국가대표였으니까요.”

최준용은 자신의 역할도 다시 생각하게 됐다. 함께한 선수들은 대부분 자신보다 어린 후배들이었다. 처음에는 후배들의 장점을 살려주는 데 집중하려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 생각은 조금씩 달라졌다.

“다 너무 좋은 선수들이라 ‘이 선수들과 어떻게 해야 더 좋은 조합으로 경기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최대한 각자가 가진 장점을 모두 살려주고 싶었죠. 돌아보니 그런 생각을 조금은 덜어내도 됐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왜냐면 제가 어렸을 땐 항상 ‘형들이 해주겠지’라는 마음이 있었어요. 형들을 바라보면서 조금은 편안하게 농구를 했던 것 같아요. 이후 객관적으로 보는데 이제는 제가 고참 중 한 명이고, 그 역할을 해야 하는 위치더라고요. ‘어린 선수들이 내가 어릴 때처럼 똑같이 생각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확 들었어요. 그러다 보니 ‘내가 잘해야 어린 선수들도 더 적극적으로 뛰겠구나’ 싶었어요. 그래서 중간에 마음가짐을 바꿨죠. 저를 인정해 주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제가 조금 더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했는데 그렇다고 제가 살아야만 해결되는 문제도 아니더라고요.”

대표팀은 대만전에서 경기 대부분을 앞서고도 승리를 놓쳤다. 누구보다 아쉬움이 컸던 최준용은 경기 내용을 곱씹으며 스스로를 돌아봤다.

“많이 아쉬웠죠. 충분히 이길 수 있는 경기였잖아요. 제가 적극적이지 못했던 부분도 있었고요. 사실 선수라면 누구나 불만은 있을 수밖에 없잖아요. 저도 그런 생각을 했어요. ‘감독님이 나를 처음 본거니까, 몸 상태도 완전하지 않으니까 많이 안 쓰는건가’ 싶었죠. 그러면서도 인정했어요. 팀에 저보다 젊은 선수들이 많았고, 그 선수들에게 기회가 가는 게 맞다고 생각했죠. 한편으로 제게 주어진 공격 옵션이 많지 않았음에도 조금 더 적극적으로 했었어야 했다는 생각이 계속 들더라고요. 그 부분에서 내적 갈등이 정말 컸어요. 저한테 그런 역할이 주어진 것도 아닌데 공격을 해버리면 팀 입장에서는 돌발행동이 되는 거잖아요.”



그 고민은 경기 후에도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 더 과감했어야 했던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리고 마주한 운명의 한일전. 대표팀은 이날마저 패한다면 사상 초유의 월드컵 예선 1라운드 탈락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받아들여야 했다. 상대는 중국을 꺾고 상승세를 탄 일본.

벼랑 끝에서 최준용이 나섰다. 19분 30초 동안 16점 3리바운드 3어시스트를 기록했다. 16점은 모두 승부처였던 후반전에 나왔다. 해결사 역할을 자처한 그는 대표팀을 패배의 위기에서 건져냈다. 대만전이 남긴 후회가 행동으로 이어진 경기였다.

“안 시켰다고 안 하는 선수가 원래 나였나…. 대만전처럼 하다가 다시 지면 혼자 너무 후회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차라리 나를 보여주자. 감독님께 믿음과 신뢰를 얻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최대한 적극적으로 했죠. 어린 선수들에게 뭔가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요. 사실 이것도 결과론적인 이야기예요. 그렇게 해서 잘됐으니까 다행인 거지, 제가 못하고 팀까지 졌다면 또 역적이 됐겠죠. 그래서 ‘내가 선택한 만큼 책임지고 잘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조금은 돌발행동이었던 거죠.”

일본전을 앞두고는 선수들을 따로 모아 이야기를 건넸다. 거창한 연설은 아니었다. 경기 흐름에 흔들리지 말고, 누군가의 눈치를 보기보다 오직 승리를 위해 뛰자는 당부였다.

“별말은 안 했어요. 경기가 잘 풀려서 20점을 앞서고 있든, 반대로 잘 안 풀려서 20점을 뒤지고 있든 아무렇지 않은 척하자고 했어요. 우리가 이길 거니까요. 그리고 서로 눈치 보면서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농구를 하지 말고, 이기기 위해 하자고 했죠.”



최준용은 후배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대표팀 훈련 명단에 이름을 올린 15명 가운데 실제 경기에 나설 수 있는 선수는 12명. 누군가는 최종 엔트리에서 빠져야 했다. 그 불안감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면 ‘내가 빠질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 때문에 감독님이나 팬들에게 뭔가 보여주기 위한 농구를 할 수도 있어요. 저도 그런 입장이 돼봤고, 실제로 탈락도 해봤기 때문에 충분히 이해해요. 그래도 이날만큼은 그런 생각을 내려놓고 이기기 위한 농구를 하자고 이야기했어요.”
대표팀은 최준용에게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다. 어린 시절부터 수없이 태극마크를 달았지만, 정작 스스로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남기지는 못했다고 돌아봤다. 그래서 여전히 배가 고팠다.

“대표팀에서 제가 이룬 건 없어요. 잘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경기도 많지 않고요. 아직 많이 배고파요. 그런 기회를 꼭 다시 잡고 싶었어요.”

그 마음 때문에 수술 시기를 두고도 오랫동안 고민했다. 시즌을 마친 뒤 곧바로 수술대에 올라야 했지만, 대표팀 일정을 포기하기가 쉽지 않았다. 무리해서 경기를 뛰다가 선수 생활이 더 짧아질 수도 있다는 걱정과 다시 찾아온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계속 부딪혔다.



“고민을 정말 많이 했죠. ‘대표팀 경기를 뛰고 수술할까’, ‘이제 농구 인생도 몇 년 남지 않았는데 무리하다가 선수 수명이 줄어드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계속했어요.”

그 순간 KCC 최형길 단장이 등을 떠밀었다. 몸 상태가 정말 심각하다면 수술을 받는 것이 맞지만, 뛸 수 있다면 국가대표로서 자신의 농구를 보여주고 오라는 말이었다.

최형길 단장은 최준용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네가 우리나라에서 농구를 가장 잘하는 선수라고 생각한다. 나만 알고 있기 싫다. 이번에 국가대표에 가서 네가 가진 걸 증명했으면 좋겠다. 조금 아프더라도 참고 가서 네 농구를 보여줘라.”

그 한마디는 최준용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 말을 듣고 ‘그래, 한번 해보자’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국 그는 수술보다 태극마크를 선택했다. 그리고 4년 만에 다시 밟은 국가대표 무대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



CHAPTER. 2 : 꿈꾸는 것도 재능이다

‘악마의 재능.’ 최준용을 따라다니는 대표적인 수식어다. 큰 신장을 활용한 유연한 움직임, 시야를 살린 패스, 승부처를 지배하는 타짜 기질까지. 많은 사람은 그를 타고난 선수라고 말한다. 정작 본인은 고개를 저었다. 재능에 대한 기준부터 달랐다.

“이게 보는 시선 차이인 것 같아요. 악마의 재능이라고들 하시는데 한국에서는 재능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저는 재능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웃음). 노력도 그렇게 많이 하는 편은 아니고요. 물론 이기고 싶어서 했던 평범한 행동들이 노력이 될 수도 있고, 재능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훈련을 반복하고, 하루도 빠짐없이 자신을 관리하는 선수들. 그는 오히려 그런 꾸준함이 큰 재능이라고 말했다. “남들이 새벽마다 일어나 운동하는 게 최고의 재능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건 진짜 아무나 못하는 거예요. 저는 그걸 잘 못해요.”

최준용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자신이 생각하는 또 다른 재능을 꺼냈다. 그것은 슈팅도, 패스도, 운동능력도 아니었다. 바로 ‘꿈’이었다.

“저는 항상 꿈을 꾸거든요. 이 게임을 이겨야 된다, 이 게임은 이렇게 하고 싶다, 이기고 나서는 어떤 말을 하겠다, 다음에는 어떤 플레이를 하겠다…. 그런 꿈을 정말 많이 꿔요. 하루도 빠짐없이요. 그것도 재능 아닐까요? 저는 그게 제 재능인 것 같아요.”



지난 시즌을 돌아보면 먼저 떠오르는 것은 부상이다. 몸 상태가 조금만 더 좋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선수라면 누구나 품는다. 하지만 최준용은 이제 ‘100%’라는 숫자를 쫓지 않았다.

“모든 선수들이 하는 생각 아닐까요? 몸이 아무리 건강해도 컨디션 안 좋은 날이 있고, 반대로 아픈 데가 있어도 잘되는 날이 있어요. 다들 항상 100%를 찾으려고 하는데 사실 그게 제일 어렵거든요. 저는 오히려 60~70%가 제 100%라고 생각해요. 500경기를 뛰면 컨디션이 120%인 날은 진짜 두세 경기밖에 없는 것 같아요. 여기서 120%라고 해서 무조건 잘하는 것도 아니더라고요.”

완벽한 몸을 기다리기보다 지금의 몸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 시간이 흐르며 최준용이 얻은 답이었다. “그래서 저는 항상 60~70%만 돼도 ‘이게 내 100%구나’ 하고 받아들이려고 해요. 그 상황에서 어떻게 이겨낼지 고민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물론 몸 상태를 인정한다고 해서 마음까지 편한 것은 아니었다. 이번 대표팀에서도 가장 답답했던 사람은 다름 아닌 최준용 자신이었다.

“많이 힘들죠. 이번에도 주변 형들한테 전화해서 털어놨어요. ‘진짜 몸 상태만 100%였으면 대만은 다 죽일 수 있었을 것 같은데….’ 그걸 하지 못하니까 너무 답답하더라고요. 그러다가도 또 돌아보면 ‘만약 100%였으면 과연 잘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결국 지금 처해 있는 상황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어떻게 준비하느냐가 선수에게 중요하죠. 답은 찾은 것 같은데, 아직도 찾아가는 과정인 것 같아요.”



몸 상태를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고 있는 지금도 단 하나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더 큰 무대를 향한 도전이다.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현실과 새로운 도전을 향한 마음은 최준용에게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당연하죠. 몸이 좋든 안 좋든 저는 무조건 해외 무대에 도전할 거예요. 사람들이 ‘나이 다 먹고 이제 와서 도전하냐’, ‘안 될 거다’라고 많이 하시죠. ‘이미 이룰 거 다 이뤘는데 굳이 돈까지 포기하면서 도전하러 나가냐’는 말도 듣고요. 그래도 나가야죠. 저는 1~2년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10년 앞을 바라보고 있어요. 도전 자체가 큰 의미예요.”

최준용의 말처럼 그는 이미 많은 것을 이뤘다. 우승도 경험했고, 국가대표도 달았다. 지금도 자신의 가치를 충분히 인정받고 있다. 그럼에도 익숙한 자리에 머무르기보다 새로운 도전을 선택하고 싶다고 했다.

“어린 선수들이 저를 보면 부러워하기도 하고, 인정도 많이 해주더라고요. 팀도 제 가치를 인정해주고, 좋은 대우도 받고요. 사실 지금도 편하게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어요. 그런데 이 모든 걸 포기하고 도전한다? 지금 제 인생에 있어서 이보다 큰 터닝포인트는 없을 것 같아요.”

새로운 도전을 꿈꾸는 선수지만, 경기장 안에서는 누구보다 현실적이고 디테일하다. 상대의 습관을 읽고 작은 빈틈까지 놓치지 않는 플레이는 최준용의 강점 중 하나다. 그렇지만 의외로 경기 전 준비 방식은 단순했다. 특별한 비법도, 억지로 몸을 만드는 과정도 없었다.

“경기 전에 잘하려고 애쓰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경기 전이라고 일찍 자고, 몸에 좋은 거 먹고, 컨디션을 억지로 맞추려고 하는 편도 아니고요. 잠이 안 오면 안 자고, 게임하고 싶으면 게임도 하고요. 다 해봤는데 제 몸은 제가 제일 잘 알잖아요. 참고 일찍 잔다고 해서 다음 날 컨디션이 좋아지는 것도 아니더라고요. 그냥 제 머릿속이 편하고 재밌으면 경기가 잘 풀렸어요.”



특별한 방법은 없지만 결과는 달랐다. 큰 경기일수록 최준용은 더욱 강했다. 바로 그 점이 최준용의 진짜 가치다. 2016-2017시즌 데뷔 후 플레이오프에서 무려 33승 8패(승률 80.5%)를 기록 중이며, 그가 뛴 시리즈에서는 아직까지 패배가 없다. 플레이오프 통산 기록은 평균 14.4점 5.5리바운드 3.3어시스트 1.0스틸. 숫자만 봐도 ‘악마의 재능’이라는 수식어가 어색하지 않다.

정작 본인은 이 기록을 크게 의식하지 않았다. 오히려 주변에서 계속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기록을 돌아보게 됐다고 했다.

“이런 기록에 대해서 자부심을 가진 적은 없어요. 지난 시즌 플레이오프를 치르면서 엄청 언급이 되더라고요. 저는 아무 생각도 없었는데 모든 사람이 계속 ‘한 번도 시리즈에서 진 적이 없다’, ‘승률이 좋다’고 가스라이팅을 하더라고요.(웃음) 계속 듣다 보니까 ‘이 기록도 나쁘지는 않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승률이 좋긴 좋더라고요.”

그러면서도 하나만큼은 분명히 했다. “사람들이 좋은 선수들을 만나 우승을 많이(4번) 했다고 하잖아요. 보면 좋은 선수들이 우승을 많이 한 게 아니라, 제가 있는 팀이 우승한 거예요. 있는 팀마다 우승한 거죠. 이제는 조금 인정해주셔도 되지 않을까요?”

이제 이야기는 ‘다음 최준용’은 어떻게 나올 수 있을까로 이어졌다. 최준용은 한국 농구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장신 포워드다. 그렇다면 언젠가 그 뒤를 이을 선수도 등장할 수 있을까. 누구도 쉽게 답을 내릴 수 없는 질문이지만, 최준용이라면 자신만의 답을 들려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최악의 환경에서 제가 나왔는데, 환경이 조금만 좋아지면 저보다 더 좋은 선수들이 많이 나오지 않을까요? 그리고 이미 나왔잖아요(웃음). (이)현중이요. 이미 말도 안 되는 무대에서 도전하고 있잖아요. 그 친구도 분명 쉬운 길을 선택할 수 있었고, 돈도 더 많이 받을 수 있었어요. 그런데도 저렇게 도전을 이어가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죠. 그런 부분은 저는 못 따라가요. 중앙대에서 경기를 거의 못 뛰었던 (이)대성이 형도 NBA를 가겠다고 미국으로 갔잖아요. NCAA도 뛰고, KBL로 돌아와 우승도 했고 국가대표 주장도 했어요. 정말 말도 안 되는 스토리죠. 저도 어릴 때는 환경을 많이 따졌어요. ‘이것도 해달라, 저것도 해달라’, ‘우리는 왜 이런 지원을 안 해주냐’, ‘다른 팀은 더 좋은 환경에서 농구하는데’ 이런 생각을 많이 했죠. 그런데 자기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린 것 같아요. 환경도 결국 자기가 만들어가는 거죠. 좋은 환경이 주어진다고 해서 좋은 선수가 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아무것도 없는 환경에서도 빛나고 돌아온 선수들이 있잖아요.”



환경을 만드는 건 선수 자신이었다. 그렇다면 그 시작은 무엇일까. 최준용은 망설임 없이 ‘꿈’이라고 말했다. 유망주들에게도 먼저 꿈꾸는 선수가 되라고 당부했다.

“꿈을 많이 꿨으면 좋겠어요. 내가 어떤 경기에서 위닝샷을 넣고, 우승하고…. 그런 모든 상황을 계속 상상하면서 꿈꿨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계속 꿈을 꾸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그 상황과 익숙해져요. 실제로 기회가 왔을 때 ‘이거 내가 늘 꿈꾸던 장면인데?’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러면 당황하지 않고 잘 준비된 상태로 그 기회를 마주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기회는 항상 와요. 마주쳤을 때 잡을 수 있도록 꿈을 많이 꾸고, 계속 상상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돈도 많이 벌었으면 좋겠습니다(웃음).”



CHAPTER. 3 : 사람 최준용, ‘누군가는 해야 하니까’

최준용은 늘 남들과 다른 선택을 했다. 코트 안에서도, 밖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때로는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자신의 생각을 숨기지 않았고, 누구보다 먼저 목소리를 냈다. 그 선택으로 오해를 받기도 했고, 비판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그럼에도 한 번도 자신의 방식을 바꾼 적은 없었다. 왜 그 길을 선택하느냐는 질문에 담담하게 답했다.

“제가 돌발행동을 많이 하는 편이죠. 누군가는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걸 제가 해야겠다는 생각이에요. 어릴 때 ‘한국 농구가 이렇게 바뀌면 좋겠다’, ‘선배들이 이렇게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커리어를 지켜야 하는 입장에서 행동하기 쉽지 않죠. 돌발행동을 하면 불이익도 따르고요. 당연히 목소리를 내기 어렵죠. 그래도 제 커리어가 끝난 뒤에는 지금 농구하는 초·중·고 선수들이 조금이라도 더 좋은 환경에서 농구했으면 좋겠어요. 제가 욕을 먹더라도 그게 바뀔 수 있다면 제가 하겠다는 생각이에요.”

단 한 번도 자신의 방식이 틀렸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말씀드렸듯이 저는 항상 꿈을 꿨어요. 원피스의 루피처럼 제가 원하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마음먹었어요. 그렇게 하다가 무너지더라도 후회는 안 하겠다고 생각하죠.”

최준용은 주변 사람을 챙기는 일에도 익숙하다. 후배들이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카페에 미리 돈을 넣어두는가 하면, 구단 소속이 아닌 외부 용역업체 직원으로 묵묵히 선수단 공간을 관리하는 청소 직원들에게도 따로 보너스를 건넨다. 가까운 사람만이 아니라 쉽게 조명받지 못하는 사람들까지 살피는 것이 그의 방식이었다. 어쩌면 당연해 보일 수도 있지만, 결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모르겠어요(웃음). 저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행복해하면 저도 더 행복해지는 것 같아요. 부모님을 닮은 것 같기도 해요. 부모님도 주변 사람들에게 잘하시고, 퍼주는 것도 좋아하시고, 기부도 많이 하시거든요. 그런 부분을 물려받은 것 같아요. 저도 남을 많이 신경 쓰는 스타일거든요. 어디를 가든 ‘저 사람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어떻게 하면 기분이 좋아질까?’ 이런 생각을 계속해요. 끊임없이요. 한 명이라도 소외돼 있거나 혼자 있는 모습이 보이면 괜히 마음이 불편하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이것도 제가 돋보이기 위한 행동일 수도 있지만, 저는 근본적으로 ‘남들한테 잘해야 좋은 사람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특히 외국선수들에게는 더 그랬다. 먼저 다가가 말을 걸고, 함께 밥을 먹고, 어디를 가든 자연스럽게 곁을 지킨다. 낯선 환경에서 혼자라는 기분만큼은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 외로운 걸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에요. 외로움을 느꼈을 때 많이 힘들었던 기억이 있거든요. 요즘도 가끔 그런 느낌을 받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가 가장 괴롭더라고요. 외국선수들한테는 외로운 게 보이잖아요.”

루키 시즌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함께 뛰던 외국선수가 부상으로 팀을 떠나는 모습을 보며 숙소에서 혼자 울었다.

“이거 처음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코트니 심스와 함께 정말 재밌게 시즌을 치르고 있었어요. 그런데 심스가 허리가 안 좋아졌거든요. 조금 아프니까 바로 팀을 떠나더라고요. 그때 제가 방에서 울었어요. 신인이었는데 진짜 눈물이 나더라고요. 프로에 와서 외국선수와 같이 뛰는 게 꿈이었는데 그렇게 바로 떠나버리니까…. 마음이 너무 안 좋았어요. 트라우마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게 좀 남았어요.

그래서 다른 팀은 몰라도 우리 팀 외국선수만큼은 절대 외롭게 만들지 말아야겠다는 마음이 있어요. 다 그렇잖아요. 외로우면 워라밸도 무너지고, 스트레스도 받고, 재미도 없어지잖아요. 내가 만약 외국선수로 다른 나라에 갔는데 인종차별을 당하고, 아무도 안 놀아주고, 말이 안 통한다고 손가락질하면…. 다 같은 사람이고, 다 같은 어른이잖아요. 그런 건 느낌만으로도 다 알 수 있어요. 저는 그런 느낌을 절대 주고 싶지 않았어요.”

이어 그는 한국 농구가 외국선수를 대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솔직한 생각을 밝혔다.

“이것도 돌발답변이긴 한데…. 외국선수들이 와서 돌발행동을 하고 삐지는 건 결국 우리가 만드는 거라고 생각해요. 똑같은 사람이 와서 똑같이 경기를 뛰는데, 똑같이 대우해주고 똑같이 대화하면서 지내야 하는 거잖아요. 그래야 하는데 말이 안 통한다고 약간 어린아이 취급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아요. 저는 그런 게 너무 싫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저보다 더 어른일 수도 있고, 더 많은 생각을 하고, 더 힘든 일들을 겪어온 선수들일 수도 있잖아요. 우리가 이 선수들을 얼마나 안다고 함부로 대하겠어요. 그래서 이런 부분들은 우리가 만드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최준용은 이렇게 늘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말해왔다. 그만큼 호불호도 분명했다. 비판적인 시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특유의 웃음과 함께 거친 농담을 던졌다. 주변에서는 “순화해야 한다”는 말이 쏟아질 정도였다. 한바탕 웃음이 지나간 뒤, 최준용은 담담하게 자신의 생각을 이어갔다.

“사실 누가 욕먹는 걸 좋아하겠어요. 저도 욕하면 같이 욕하고 싶죠. 그런데 보면 저를 정말 싫어했던 분들이 나중에는 좋아해 주시는 경우도 많더라고요(웃음).”



마지막은 역시 팬들이었다.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지만, 쉽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라고 했다. 잠시 생각에 잠긴 최준용은 자신을 지금의 자리까지 있게 만든 존재를 먼저 떠올렸다.

“팬들이 없으면 지금의 저는 없죠. 이런 주목도 못 받고, 좋은 차를 타고 가족들이랑 좋은 데 여행도 못 갔을 거예요. 다 팬들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가 힘들고 안 좋은 상황이 있어도 다른 사람은 몰라도 팬들한테만큼은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어릴 때부터 많이 했어요. 저는 팬이 정말 많았으면 좋겠어요. 누구보다 팬이 많은 선수가 되고 싶어요. 왜냐하면 저는 다 잘해줄 자신이 있거든요. 경기 끝나고 나왔을 때 저를 바라봐 주시고 응원해 주는 그 힘이 정말 커요. 제가 한 골을 넣을 때마다, 넘어질 때마다 안타까워해 주시는 팬들의 목소리가 저한테는 제일 큰 힘이에요. 어떨 때는 가족들의 응원보다도 더 크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시간을 내서 경기장까지 와주시고, 응원하고, 소리 지르고, 에너지를 쏟아주시잖아요. 그게 절대 당연한 일이 아니에요. 저도 누군가를 응원해본 적이 있어서 그게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 알거든요. 모든 선수들이 이걸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어린 팬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이유도 그 마음과 다르지 않았다. 팬 서비스라기보다 어린 시절 자신이 받았던 소중한 기억을 되돌려주는 일이었다.

“어릴 때 우지원 선배님, 이상민 감독님, 외국선수들과 하이파이브를 했는데 그날은 손도 안 씻고 잤어요. ‘이 기운 받아서 농구 잘해야지’ 하면서요. 그 기억이 지금도 너무 선명해요. 저는 그냥 아무렇지 않게 손 한 번 잡아주는 거잖아요. 간단한 거지만 그 짧은 2초가 누군가에게는 평생 기억될 수도 있는 거예요. 그 기억 하나 때문에 농구를 시작할 수도 있고, 꿈을 더 크게 꾸게 될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농구도 농구지만, 그런 기억을 만들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사진_유용우 기자

[ⓒ 점프볼.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포토뉴스

많이 본 기사

최근기사

JUMPBALL S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