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재린의 의지 확인” 그 후 2년, 귀화선수 영입 작업 어디까지 왔나?
- 매거진 / 최창환 기자 / 2026-08-14 06:00:37

그 후 2년이 흘렀지만, 한국은 여전히 귀화선수 없이 싸우고 있다. 구체적인 귀화 시점뿐만 아니라 귀화 절차가 마무리될 거란 보장도 없다. 귀화선수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시대. 무엇이 도약을 노리는 한국 농구의 걸림돌이 되는 걸까.
※본 기사는 농구전문 매거진 점프볼 8월호에 게재됐습니다.

특별 귀화는 과학, 경제, 문화, 체육 등 특정 분야에서 매우 우수한 능력을 보유한 사람으로서 대한민국의 국익에 기여할 것으로 인정되는 외국 국적자에게 대한민국 국적을 부여하는 제도다. 이중국적이 가능하다.
문태종-문태영 형제를 비롯해 김한별이 특별 귀화를 통해 한국 국적을 취득했고, 이 가운데 문태종은 한국이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획득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필리핀과의 8강에서 3점슛 6개 포함 38점을 퍼부었고, 이란과의 결승에서는 불혹을 넘긴 팀 내 최고참임에도 경기 종료 부저가 울리는 순간까지 코트를 지켰다. 이들 모두 미국인 아버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이었다.
한국인의 피를 물려받지 않은 외국선수 가운데 최초이자 현재까지 유일한 특별 귀화 사례는 라건아다. 귀화 전 이름은 리카르도 라틀리프였다. 라건아는 2012 KBL 외국선수 드래프트에서 울산 모비스(현 현대모비스)에 6순위로 지명되며 한국과 연을 맺었고, 2014-2015시즌을 기점으로 KBL 최고의 외국선수로 군림했다.
대학 졸업 후 줄곧 KBL에서만 커리어를 쌓았던 라건아는 2017년 1월 1일 경기를 마친 후 새해 소망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패스포트”라는 답변을 남겨 농구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라건아는 이미 삼성 관계자, 당시 소속팀 사령탑이었던 이상민 감독과 면담도 마친 터였다.
심지어 본격적인 귀화 절차에 돌입하지 않은 시점이었음에도 세계 각국 선수들의 프로필이 업데이트되는 ‘유로바스켓’에서 자신의 국가를 ‘미국/한국’이라 표기했다. ‘유로바스켓’은 에이전트나 선수 본인의 의지가 아니면 프로필을 바꿀 수 없는 사이트다.
귀화에 대한 라건아의 굳은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고, 1년 후 뜻을 이뤘다. 라건아는 2018년 1월 22일 법무부 국적심의위원회 면접 심사를 통과했고, 이튿날 법무부로부터 귀화 허가통지서도 받았다.
라건아는 이를 통해 2018년 2월 23일 2019 FIBA(국제농구연맹) 농구 월드컵 아시아 예선 홍콩과의 홈경기에서 국가대표 데뷔 경기를 치렀고, 2024년 2월 열렸던 2025 아시아컵 예선 윈도우1에 이르기까지 대표팀에서 총 40경기를 소화했다.

라건아는 아시아컵, 아시안게임, 월드컵 등등 6년 동안 굵직한 국제대회에 빠짐없이 차출되며 대표팀의 골밑을 지켰다. 최전성기에 비할 순 없지만, 마지막 국제대회가 된 2025 아시아컵 예선 윈도우1에서도 강호 호주를 상대로 21점 14리바운드 2블록슛으로 활약했다.
당시 소속 팀이었던 부산 KCC에서 여전히 1옵션 외국선수였던 데다 만 34세에 불과했지만, 라건아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돌연 대표팀 은퇴 의사를 밝혔다. 적법한 절차를 거쳐 특별 귀화했지만, 얽히고설킨 계약 관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라건아는 귀화 당시 대표팀에서 별도의 수당을 받되 대표팀 차출에 반드시 응한다는 조건을 전제로 한 계약을 맺었다. KBL에서의 소속팀뿐만 아니라 대한민국농구협회, KBL까지 엮인 4자 계약 형태였으며 2025 아시아컵 예선 윈도우1은 2024년 5월 계약 만료를 앞두고 치른 마지막 국제대회였다.
라건아는 2023년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을 현장 취재했던 ‘스포츠조선’과의 인터뷰를 통해서도 “나와 대표팀의 계약은 끝났다. 계속 대표팀의 일원으로 함께하고 싶지만 대표팀이 나와의 계약을 연장할지, 떠나보낼지 알 수 없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농구계 관계자는 “구체적인 액수를 언급할 순 없지만, 라건아의 대표팀 훈련 수당은 국내선수들에 비하면 5~7배였다. 출전 수당도 경기당 100만 원 이상이었고, 대회의 가치에 따라 최대 3배의 출전 수당 옵션도 있었다. 당연히 별도의 승리 수당도 있었다”라고 말했다. 국내선수들의 대표팀 차출 시 일당이 10만 원 안팎이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한국에 대한 애정과 별개로 라건아의 대표팀 출전은 계약에 따른 비즈니스 성격이 짙었다는 의미다.
뿐만 아니라 당시 라건아의 세금은 KBL 소속팀이 지불했고, KCC에서의 마지막 시즌이 된 2023-2024시즌 연봉은 56만 4000달러였다. 또 다른 관계자는 “KCC를 비롯해 KBL, 대한민국농구협회도 라건아의 총 연봉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않았다. 계약의 특수성 때문인데 연간 10억 원 안팎이었다는 것은 관계자들 사이에서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대한민국농구협회는 4자 계약이라는 특수성 덕분에 라건아를 대표팀에 선발할 수 있었지만, 큰 금액을 지급할 수 없는 현 상황에서는 라건아와 같은 방식의 귀화 선수 영입이 사실상 힘들다. 노력의 차원이 아닌 여력의 문제다.
정재용 대한민국농구협회 상근 부회장 역시 “몇십억 원이 들었던 라건아와 같은 케이스는 더 이상 고려하지 않고 있다. 현재로선 비현실적이다”라고 선을 그었다.

재정적 부담을 줄이고 라건아와 같은 4자 계약 형식에 발목 잡히지 않는 최선의 대안이 바로 재린이었다. 대한민국농구협회 관계자는 재린에 대해 “어린 시절 아버지가 대한민국 대표로 뛰는 모습을 보며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귀화를 통해 대표팀에 합류해 나라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의지를 분명하게 전했다”라고 말했다.
대한민국농구협회가 단순히 금전적 부담을 줄이거나 문태종의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재린을 귀화 후보에 포함시킨 건 아니었다. 재린은 앨라배마대에 입학한 2024년 현지 언론 ‘ESPN’이 선정한 신입생 랭킹에서 21위에 이름을 올린 유망주였다.
211cm의 신장에 슈팅 능력을 겸비한 유형으로 현지 언론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는 “수비로 상대의 리듬을 흐트러뜨리는 한편, 팀에 공격 찬스도 제공하는 선수다.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유형의 선수는 아닐지라도 그가 경기에 끼치는 영향력, 존재감은 결코 작지 않다”라고 평가했다.
추일승 전 남자대표팀 감독 역시 “아버지 문태종이 스윙맨이라면, 재린은 전형적인 스트레치4 유형이다. 국내에서는 더더욱 그 정도 신장에 움직임을 겸비한 선수가 나오는 게 어렵다”라고 견해를 남겼다.
재린은 2025년 마이클 조던의 모교 노스캐롤라이나대학으로 자리를 옮겼고, 2027 NBA 드래프트에 도전할 가능성이 높다. 2024년 당시 대표팀 코칭스태프를 맡았던 안준호 감독, 서동철 코치가 미국에서 직접 재린을 만나며 귀화 작업은 급물살을 타는 듯했다.
실제 재린은 대한체육회 위원들을 대상으로 한 화상 인터뷰를 통해 직접 자신의 뜻을 밝혔고, 2025년 12월 대한체육회 스포츠공정위원회 심사도 통과했다.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까지 불과 9개월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었지만, 남자농구 특별 귀화 대상자로 이름을 올렸다는 것만으로도 ‘황금세대’를 구축한 남자대표팀으로선 의미가 있는 진전이었다.

귀화선수 영입을 향해 한 걸음씩 내딛고 있던 대한민국농구협회는 예상치 못한 난관에 봉착했다. 재린과 더불어 여자대표팀 전력 강화를 위해 특별 귀화를 추진했던 키아나 스미스가 뜻을 이루지 못한 것.
재린보다 더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던 키아나의 특별 귀화가 불발되자, 대한민국농구협회도 당시 소속팀 용인 삼성생명도 충격에 빠졌다. 미국인 아버지-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키아나는 WNBA LA 스팍스에서 뛴 경력이 있는 데다 WKBL에서는 드래프트 1순위 출신으로 신인상까지 수상, 스포츠 분야 우수 능력자 특별 귀화 요건 6가지 가운데 2가지를 충족했다. 참고로 요건은 다음과 같다.

대한민국농구협회는 키아나를 반면교사 삼아 더욱 철저히 재린의 귀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재린에게 한국어 과외를 지원하는 것은 물론, 법무부에서 종사했던 이들을 중심으로 한 TF(테스크포스)팀도 구성했다. 그럼에도 장벽이 남아있다.
“현재로선 파이널 스테이지만 남았다고 보면 된다. 법무부의 마지막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라고 운을 뗀 정재용 부회장은 “키아나는 변호사까지 선임해 특별 귀화를 진행했는데도 무산됐다. 여러 루트를 통해 도움을 받고 있지만, 협회 차원에서 해결하는 게 쉽지 않은 문제다. 결국 시간과의 싸움이다. 물리적으로 아시안게임은 어렵고, 2027 월드컵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재린은 NBA 도전도 병행 중인 선수다. 협회에서 최대한 도와주고 있지만 NBA를 노리고 있는 선수에게 한국어 공부에도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한다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결국 삼박자가 이뤄져야 한다
대한민국농구협회가 추진 중인 귀화 대상은 재린만이 아니다. 삼성에서 뛰었던 코피 코번, 울산 현대모비스로 돌아오는 게이지 프림에게도 각각 귀화 의사를 물었으나 답보 상태다. 코번은 고민 끝에 제안을 거절했고, 프림도 이렇다 할 진전이 없었다. 2024-2025시즌 종료 후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기 직전 공항에서 대한민국농구협회 관계자와 만나 잠시 얘기를 나눈 게 전부였다.
연달아 장벽을 만난 대한민국농구협회에 또 다른 대안이 떠올랐다. 2025-2026시즌을 삼성에서 치렀던 케렘 칸터가 귀화 의사를 드러낸 것. 칸터는 “여러 리그에서 뛰었지만, 한국은 생활면에서 가장 안정적이고 좋은 환경이 갖춰졌다. KBL에서 뛰면서 대표팀의 일원으로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무대를 누비는 것도 멋진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한민국농구협회에서 추진한다면 기꺼이 응하겠다”라고 말했다.
칸터는 튀르키예 18세 대표팀에 선발된 경험이 있지만, 성인 대표팀 이외의 경력은 FIBA와 튀르키예농구협회의 승인을 받으면 귀화 절차를 거치는 데에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문제는 앞서 언급했듯 법무부 승인이다. 일각에서 2018 평창 올림픽 이후 심사 기준이 까다로워졌다는 의견도 내놓았지만, 귀화선수 영입을 위한 대한민국농구협회의 의지가 강한 것만큼은 분명하다.
정재용 부회장은 “인터뷰에서 다 말할 순 없지만, 협회가 할 수 있는 선에서는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들으면 ‘이런 일까지 했다고?’라고 할 것이다. 우리가 가장 절박하다. 귀화선수는 필요한 정도가 아니라 필수다. 빅맨 전력에 하윤기 1명 없는 것만으로도 고생하지 않았나. 우리의 목표는 2028 LA 올림픽 본선 진출, 2032 브리즈번 올림픽 8강이다. ‘황금세대’에 귀화선수 1명이 더해지면 충분히 이룰 수 있는 목표다. FIBA를 통해 칸터와 관련된 절차를 밟고 있으며 최종 답변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프림도 의사가 없었던 건 아니다. 다시 추진할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원론적인 얘기지만, 결국 시간과의 싸움이다. 더불어 국익을 끌어올리는 데에 스포츠의 국제 경쟁력이 얼마나 긍정적 영향을 끼치는지 꾸준히 증명해야 한다는 과제도 따라붙는다. 대한민국농구협회만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의미다. 귀화를 원하는 선수의 노력, 법무부의 해석, 농구 팬들의 뜨거운 응원으로 만들어지는 여론 등 삼박자가 이뤄져야 한다.
이미 역대급 선수의 길에 들어선 이현중, 이정현 등을 앞세운 ‘황금세대’가 방점을 찍기 위해선 귀화선수가 반드시 필요하다. D-DAY가 명확하지 않은 힘겨운 싸움. 아시아 정상 탈환, 더 나아가 1996 애틀랜타 올림픽 이후 첫 올림픽 진출을 위한 협회의 노력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사진_점프볼DB(문복주, 유용우 기자), 대한민국농구협회 제공, WKB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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