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시드니올림픽 여자농구 4강 신화 20주년…태극낭자, 세계를 호령하다

매거진 / 민준구 / 2020-01-27 15: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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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민준구 기자] 새천년을 빛낸 제27회 시드니올림픽은 대한민국 여자농구가 새로운 신화를 써낸 영광의 순간이었다. 그 누구도 좋은 성적을 기대하지 않았지만 유수종 감독을 비롯한 12인의 태극낭자는 끝내 4강 신화라는 대단한 업적을 세우고 돌아왔다. 비록 메달권에 진입하지 못했지만 황무지에서 금을 캔 것만큼 값진 성과였다. 대한민국 여자농구의 전설들이 세계 강호 앞에 ‘KOREAN SPIRIT’을 뽐낸 그 때는 100년, 1000년이 흘러도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 본 기사는 점프볼 2020년 1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역사의 시작 알린 1999년 일본 시즈오카

대한민국 여자농구의 황금기였던 1980년대 이후 1990년대에 새로 등장한 황금 세대는 농구 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정은순, 유영주, 전주원, 정선민 등이 대한민국은 물론 아시아를 지배하며 세계로 눈을 돌리던 때였다. 1997년 방콕 아시아여자농구선수권대회 우승 이후 역대 4번째 2연패를 노리던 대한민국은 1999년 일본 시즈오카로 떠난다. 유수종 감독을 필두로 이문규 코치, 정은순, 유영주, 전주원, 정선민, 김지윤 등이 주축이 되어 단 1장만 배정된 2000년 시드니올림픽 티켓을 목표로 한 것이다. 그러나 대회 전망은 밝지 않았다. 1970년 이후 29년 만에 우승을 노린 홈팀 일본과 숙적 중국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은순은 “일본이 정말 강했다. 지금만큼 아시아를 호령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일본 언론에서는 역대 최강의 멤버가 모였다고 자화자찬했을 때였다. 이미 히로시마 아시안게임부터 일본과는 시소게임을 할 정도였으니 크게 부풀린 말도 아니었다. 중국은 예전보다 약해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신장도 좋고 전력 자체가 탄탄했다. 그렇다고 우리가 최고의 전력을 보유한 것도 아니었다.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힘든 시기였고 현역 은퇴까지 바라보던 때였다. 여러모로 우승을 쉽게 노려볼 상황은 아니었다”라고 회상했다. 박정은 역시 “시즈오카 대회 때의 나는 벤치 멤버로 많은 시간 출전하지는 않았다. 그 당시를 돌이켜보면 일단 우리가 입은 쫄쫄이 유니폼을 보고 중국과 일본의 선수들이 굉장히 당황한 표정을 지었던 게 기억난다(웃음). 상대 전력도 좋았고 쉽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사실 시즈오카 대회는 대한민국에서도 관심이 집중된 대회였다. 당시만 하더라도 시드니올림픽 티켓을 따낸 종목이 없었던 만큼 최초의 기회라는 부분에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됐다. 유수종 감독은 “정말 부담이 된 대회였다. 일본은 시드니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서 시즈오카 대회를 개최했다. 중국과 일본은 물론 다른 팀들의 전력도 만만치 않았다. 솔직한 말로 우승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라고 전했다.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을까. 대한민국은 예선에서 단 1패를 기록하는 등 승승장구했다. 특히 3차전에서 만난 중국을 81-64로 누르며 기분 좋게 4강으로 진출했다. 4강에서 다시 만난 중국은 예선과 달랐다. 전반 내내 고전한 대한민국은 34-42로 리드를 내주며 만리장성의 위력을 새삼 다시 맛봐야 했다. 그러나 유영주의 고군분투, 정은순과 전주원, 양선애(당시 양정옥), 이종애가 활약하며 80-79, 짜릿한 1점차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결승 상대는 예선에서 1패를 안긴 홈팀 일본. 전반을 간신히 앞서 나간 대한민국은 일본의 올림픽 진출 의지를 쉽게 꺾지 못했다. 경기 막판 64-65, 역전을 허용하는 등 쉽지 않은 승부를 이어갔다. 눈앞에서 올림픽 티켓을 놓칠 뻔했던 대한민국은 정은순이 해결사 능력을 발휘하며 68-65로 승리 및 통산 11번째 아시아 정상에 서게 됐다. 무엇보다 이 승리로 시드니올림픽 티켓을 거머쥐었다는 게 고무적인 성과였다. 이 대회에서 MVP에 선정된 전주원은 “시드니올림픽 진출에 성공했다는 기억 하나만으로 시즈오카 대회는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됐다. 특히 처음으로 MVP에 선정되면서 더 기뻤던 것 같다. 국내에서 MVP는 꿈의 자리였는데 아시아 최고의 선수가 되면서 한을 풀었다”라며 기쁨을 더했다.



혹독했던 태릉선수촌에서의 나날들

금의환향한 대한민국 선수단은 성취감을 맛보기도 전에 시드니올림픽 대비 훈련에 돌입했다. 유수종 감독은 세계 강호들과의 경쟁에서 앞서기 위해 두 가지를 강조했다. 하나는 체력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바로 3점슛이었다. 태릉선수촌에 소집된 선수들은 지옥과도 같았던 하루, 하루를 보내며 시드니로 떠날 날만을 기다렸다. “귀중한 올림픽 티켓을 따냈지만 진짜 승부는 아직 펼쳐지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다른 것보다 열심히 패스하고 던지는 것만이 살 길이었다. 그 어떤 팀들이더라도 우리보다 크고 강했다. 서서 하는 농구보다 부지런히 뛰고 던져야만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체력 훈련을 정말 혹독하게 시켰던 기억이 있다. 3점슛은 워낙 좋았으니 체력만 더 키우면 충분히 해볼만하다는 생각이 컸다.” 유수종 감독의 말이다.

대한민국 선수들이 얼마나 혹독한 훈련을 했는지는 쉽게 상상할 수 없다. 정은순은 그때를 떠올리며 “슈퍼 서킷이라고 들어봤는지 모르겠다. 그냥 서킷 트레이닝도 아니고 매주 두 번씩 음악과 함께 하는 지옥의 훈련이었다(웃음). 한 번 하고 나면 대부분 다 기어서 태릉선수촌을 나왔다. 구토하는 선수들도 있었으니 말해 뭐하나. 그래도 싫어하는 선수들은 한 명도 없었다. 그걸 다 소화해야만 세계적인 선수들과 상대할 수 있다고 믿었으니까”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서킷 트레이닝으로 지옥 훈련을 전부 설명할 수는 없다. 정은순은 “서킷 트레이닝이 끝나면 400m 트랙 훈련이 준비되어 있다. 한 바퀴에 1분 초반대로 들어와야 하는데 (전)주원이랑 나만 항상 제 시간에 들어왔던 기억이 있다. 아마 내가 그렇게 잘 뛰는지는 아무도 몰랐을 걸(웃음). 태릉선수촌에도 여러 국가대표 선수들이 있지 않나. 옆에서 그걸 보던 선수들이 ‘여자농구 왜 저러냐, 안 하던 짓을 하네’라며 눈총을 주기도 했다. 새벽에도 뛰었다니까”라며 혀를 내둘렀다.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이 가는 이야기. 그런데도 단 한 명의 선수도 포기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유수종 감독님의 체력 훈련이 얼마나 힘든지는 이미 다 알고 있었다. 근데 체력도 중요하지만 정신적인 부분도 강조하셨다. 그러다 보니 힘들어도 버틸 수 있는 힘이 생기더라. 또 힘들 때마다 옆에서 아버지처럼 챙겨주셨다.” 전주원의 말이다. 박정은도 “서킷 트레이닝을 마친 뒤에 트랙 훈련까지 하면 얼마나 힘들겠나. 그래도 모든 선수들이 마지막 지점을 통과해야만 훈련이 끝났다. 정말 힘들어서 못 뛰고 있는 선수들을 부축하면서 같이 들어온 기억도 있다. 그런 부분을 유수종 감독님이 원하신 것 같기도 하다. 사실 언니들이 솔선수범해서 잘 뛰다보니 막내까지 열심히 한 부분도 있다(웃음)”라고 밝혔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했던가. 엄청난 체력 훈련으로 무장한 대한민국은 어느 때보다 완벽한 무장을 마무리한 채 결정의 장소인 시드니로 가볍게 떠날 수 있었다.

16년 만에 이룬 8강 진출

대한민국의 조편성은 사실 끔찍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전 대회 챔피언이었던 미국은 물론 유럽 챔피언 폴란드, 아메리카 챔피언 쿠바, 전통의 강호 러시아 등 뉴질랜드를 제외하면 확실한 1승 상대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심지어 첫 상대는 세계 최강 미국. 유수종 감독은 “큰 점수차로 패하지만 않았으면 하는 경기였다. 만약 크게 지면 선수들의 사기가 떨어질 수 있었으니까. 근데 예상 밖의 결과가 나왔다”라고 말했다. 당시 대한민국은 미국을 상대로 완벽한 경기력을 선보였다. 미국에 흐름을 내주지 않았고 자신들만의 경기를 펼쳐나갈 수 있었다. 특히 전반 막판에 연출된 정은순의 노룩 패스와 이종애의 마무리는 아직도 농구 팬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명장면이다. 정은순은 “1984 LA올림픽 때 (박)찬숙 언니와 (성)정아 언니가 비슷한 플레이를 한 적이 있었다. 사실 훈련 때 맞춰보지 않았는데 (이)종애의 움직임을 보고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확신이 있었다. 종애도 경기 끝나고 난 후 패스가 올 것 같았다고 하더라”라며 그 순간을 설명했다. 대한민국의 분전은 후반에도 계속됐다. 아쉽게도 공세를 막아내지 못한 부분은 아쉬웠다. 신체 조건의 열세는 시간이 지날수록 체력 저하로 이어졌고 끝내 75-89로 패했다. 그러나 미국과의 첫 경기는 성공적이라는 평가가 주를 이루고 있다. 대한민국은 세계 강호와의 경쟁에서 해볼만하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반면 미국은 1992년 이후 최소 점수차 승리를 거둔 경기가 될 정도로 고전했다. 또 리사 레슬리와 함께 미국을 올림픽 정상으로 이끈 WNBA의 전설 셰릴 스웁스는 “가장 괴로웠던 기억은 정은순의 패스를 그냥 지켜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라며 대한민국 전을 가장 힘든 경기로 꼽았다. 기세가 오른 대한민국은 뉴질랜드와의 2차전을 101-62로 크게 승리했다. 확실한 1승 상대를 누르며 목표로 한 8강 진출 가능성을 높일 수 있었다.

그러나 위기는 존재했다. 상대에 대한 전력 파악이 완벽하지 않았던 그때 대한민국은 유럽 챔피언 폴란드를 약체로 평가했다. 1998년WNBA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이자 213cm의 故마고 디덱(디덱은 2011년 셋째 아이를 임신 중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이 버티고 있었음에도 말이다. 박정은은 “폴란드에 그렇게 신장이 큰 선수가 있을 줄은 몰랐다. 전체적으로 신장 차이가 많이 컸다”라며 아쉬움을 전했다. 다이덱과 직접 맞붙은 정은순 역시 “폴란드 전에서 패배한 다음에는 거의 반 포기 상태였다. 러시아가 더 강할 거라고 봤기 때문에 폴란드는 무조건 이겼어야 하는 상대였다”라며 “우리의 모든 계획이 다 무너진 상황이었다. 농구를 하면서 디덱처럼 큰 선수는 처음 만나봤고 그러다 보니 거리 유지가 전혀 안 되더라. 폴란드는 큰 선수들이 많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만 있었지 그 정도로 클 줄은 몰랐다. 나 때문에 졌다는 생각에 너무 슬펐던 기억이 있다”라고 말했다.

폴란드에 62-77로 크게 패한 대한민국은 러시아와의 4차전을 남겨두고 있었다. 당시 러시아는 소비에트 연방 해체 이후 전체적으로 어수선한 상황을 맞이하고 있었다. 다만 전통의 강호라는 이미지로 인해 대한민국에는 공포의 대상이었던 셈. 예상대로 경기는 쉽게 흘러가지 않았고 매 순간 리드를 허용하고 말았다. 하나, 대한민국의 ‘KOREAN SPIRIT’은 위기 상황에서 발휘됐다. 전주원과 정은순이 러시아의 장대 숲을 뚫고 38득점을 합작하면서 접전 승부를 이어갔다. 리바운드 싸움에선 15-30으로 밀렸지만 장기인 3점슛을 11개 성공시키며 러시아의 수비를 극복해냈다. 끝내 이 승부는 연장까지 이어졌고 경기 종료 2.7초 전 이종애의 극적인 위닝슛이 림을 가르며 예선 통과의 희망을 이어갔다. 승리의 일등공신이 된 이종애는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라고 하면 무조건 러시아 전이다(웃음). 경기 내내 부진하다가 (정)은순 언니의 패스를 받고 마지막 득점을 기록했다. 사실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도 확인하지 못했다. 슛 성공 이후 러시아 애들은 포기하고 있는 상태에서 혼자 백코트를 할 정도였으니까”라며 그날의 짜릿함을 한 번 더 느꼈다. 이날 10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한 정은순은 “폴란드 전 때의 부진을 만회하려고 모든 힘을 다 쏟았었다. 내가 직접 해결하는 것보다 슈터들을 살려주려는 노력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어시스트만 10개를 했으니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 아닐까”라고 이야기했다. 러시아 전의 비하인드 스토리 역시 대한민국의 승리를 예견하는 것과 같았다. 당시 대한민국과 러시아의 예선전은 현지 시간 오전 9시에 치러졌다. 시차 적응에 실패한 러시아에 비해 대한민국은 비교적 쌩쌩한 몸 상태로 코트에 나설 수 있었던 것. 전주원은 “러시아를 오전 9시에 만난 건 천운이라고 생각한다. 코트에 선 러시아 애들은 대부분 잠이 덜 깬 모습이더라. 하하. 우리는 컨디션이 크게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폴란드 전 때보다 더 좋은 경기를 할 수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양선애도 “비몽사몽 경기를 했던 러시아 전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웃음). 그래도 러시아 애들보다는 우리가 더 쌩쌩하게 경기를 치를 수 있었다”라며 웃음 지었다.

쿠바와의 예선 최종전은 대한민국의 경기력이 최고조에 올라있음을 증명한 경기였다. 올림픽 여자농구 역사상 첫 트리플더블을 달성한 전주원의 활약은 물론 양선애 박정은의 신들린 3점포, 정은순과 정선민의 트윈 타워가 맹위를 떨치며 69-56, 대승을 거뒀다. 이로써 3승 2패를 기록한 대한민국은 B조 3위를 차지하며 LA올림픽 이후 16년 만에 예선 통과의 기쁨을 만끽하게 된다.



세계를 놀라게 한 태극낭자, 4강 신화를 쏘다

이틀의 달콤한 휴식 이후 대한민국은 8강 상대인 프랑스와 마주했다. A조에서 호주 다음으로 막강함을 과시한 유럽의 강호는 쉽게 넘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부담이 없었다. 목표로 한 8강 진출을 이뤄냈고 다음 무대는 보너스였기 때문이다. 오히려 부담이 덜한 것이 도움이 됐을까. 대한민국 특유의 지역 방어는 프랑스가 넘을 수 없는 경지에 올랐다. 주축 선수들의 컨디션 역시 최고 수준이었다. 양선애가 15득점을 퍼부었고 박정은 역시 쐐기 3점포를 더한 11득점으로 68-59, 승리를 이끌었다. 선수들 역시 입을 모아 “프랑스 전은 크게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쉽게 승리한 경기”라며 특별하지 않았음을 알렸다. 전주원만이 “모두가 다 프랑스가 이긴다고 기사를 썼을 때였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이겨버리니 정말 속이 후련했다”라며 미소를 보였다.

LA올림픽 이후 다시 한 번 4강 무대를 밟은 대한민국은 목표를 상향 조정했다. 다시 한 번 메달을 목에 거는 것. 하지만 4강에서 대한민국의 앞을 가로 막은 건 2연패를 노리는 미국이었다. 전승 행진을 달리며 승승장구한 미국은 이미 적수가 없는 팀으로 평가됐다. 이미 한 번 만난 경험이 있는 대한민국은 그들의 공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유수종 감독은 “불가사의한 기적을 창출하자!”라는 말로 선수단을 독려하며 운명의 날을 준비했다.

결과적으로 대한민국은 미국과의 4강에서 65-78로 패했다. 하나, 무기력한 패배는 아니었다. 전반 초반 박정은의 3점슛으로 리드를 잡기도 했으며 전반을 40-42, 접전으로 가져가기도 했다. 어쩌면 또 한 번의 대이변을 만들 수 있었던 기회. 그러나 미국은 견고했고 이변의 희생양이 되기에는 너무 거대했다. 베스트5에 의존했던 대한민국과 달리 미국은 모든 선수들이 제 몫을 다 해낼 수 있는 드림팀이었다. 박정은(14득점)과 전주원(12득점), 정선민(11득점)의 활약에도 대한민국은 결승 진출의 꿈을 잠시 접어둬야 했다. 비록 패했지만 대한민국은 패자가 아니었다. 경기 후 미국의 넬 앤 포트너 감독은 “체격도 작고 신장도 작은 동양 선수들이 어떻게 저토록 농구를 잘하는지 알 수 없다. 경의를 표한다. 대한민국은 존경할만한 농구를 보여줬다”라며 극찬했다. 당시 FIBA 관계자 역시 “대한민국은 가장 모범적인 농구 전술을 이번 올림픽에서 보여줬다”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기도 했다.

메달 획득을 위한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대한민국은 호주에 패해 동메달 결정전으로 내려온 브라질과 마지막 대결을 기다리고 있었다. 경기 전 상황은 좋지 않았다. 주포 정은순이 엉덩이, 발목에 부상을 당하며 정상 컨디션이 아니었던 것이다. 당시 브라질은 올림픽 득점왕 자넷 아르케인과 WKBL에도 진출했던 200cm의 장신 알렉산드라 올리베이라를 앞세운 팀으로 정은순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던 상황. 동메달을 향한 열정으로 맞섰던 대한민국은 정은순과 전주원, 정선민이 5반칙 퇴장을 당하는 위기 속에서도 양선애의 3점슛으로 연장까지 승부를 이어갔다. 하나, 아르케인과 올리베이라에게 54득점을 내주며 끝내 4위로 시드니올림픽을 마무리해야 했다.

통한의 패배란 말이 이보다 더 잘 어울릴 수 있을까.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코트에 섰던 이들은 그 순간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정은순은 “너무 부어서 테이핑을 해도 고정이 안 되더라. 얼마나 부었는지 유니폼을 입었는데도 티가 났다. 예선부터 8강, 4강까지 너무 치열한 몸싸움을 한 탓에 몸이 망가지고 있었던 걸 알지 못했다. 내 엉덩이가 조금만 더 튼튼했다면…. 조금만 더 튼튼했다면 브라질을 이길 수 있었을 것이다”라고 아쉬움을 남겼다. 연장으로 이끈 양선애 역시 “모두가 힘든 상황 속에서도 1승을 위해 달렸던 경기였다. 나 역시 손가락을 다쳐 아픈 데도 꼭 넣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3점슛을 던졌다. 여러모로 메달을 따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지금까지 남는다”라고 이야기했다. 주축 선수들의 연쇄 퇴장에도 코트를 끝까지 지켰던 박정은은 “그때는 내가 막내급이었음에도 무게감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언니들이 차례로 퇴장을 당하면서 홀로 남겨졌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아르케인이 정말 잘했지만 우리가 질 정도는 아니었다. 우리 포워드들이 더 잘했다고 생각했다”라며 “은순 언니의 엉덩이가 괜찮았다면 우리가 무조건 이기는 경기였다”라고 진한 아쉬움을 나타냈다.

비록 메달을 따내지 못했지만 유수종 감독을 비롯한 모든 선수단은 승자로서 대한민국으로 돌아왔다.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나선 무대에서 4강 진출이라는 결과를 만들어냈다는 건 단순히 대한민국만의 승리는 아니었다. 아시아 농구가 세계 농구의 변방이 아니라는 걸 다시 한 번 각인시켜준 계기가 됐다.



20년 전 영광, 다시 재현할 수 있을까요?

시드니를 뜨겁게 달궜던 20년 전의 영웅들은 이제 현역에서 은퇴한 뒤 대부분 지도자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 영광의 시절이 한참 지났음에도 그들은 여전히 대한민국 여자농구의 부흥을 위해 피와 땀을 쏟고 있다. 아쉽게도 그들이 남긴 유산은 현재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시드니올림픽 이후 대한민국 여자농구는 기나긴 침체기를 맞이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8강 진출,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우승 이후 뚜렷한 성과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호주와 뉴질랜드가 편입되면서 경쟁자는 더 늘어났고 일본의 급성장과 중국의 건재함은 대한민국을 위협하고 있다. 당연한 듯 나섰던 올림픽 역시 2008년 이후 발길이 끊긴 지 오래다. 현재의 위기를 바라본 시드니올림픽의 영웅들은 앞으로의 미래를 어떻게 바라봤을까.

먼저 WKBL의 경기본부장이 된 박정은은 “20년 전 우리는 그 시대에 보여줄 수 있는 최대치의 농구를 선보였다. 지금은 걸음마 단계라고 해야 할까. 사실 시드니올림픽 바로 직전이었던 애틀란타올림픽에선 꼴찌를 하기도 했다. 이후 대부분의 멤버가 바뀌지 않은 상황에서 4년을 준비했고 성과를 낼 수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박지수를 중심으로 하나의 팀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해야 할까. 다만 많은 시간이 걸릴 거라고 본다”라며 “시드니올림픽 때는 모든 프로 팀 감독님들이 현장에 와서 많은 도움을 주셨다. 관중석을 보면 감독님들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고 있었다. 사실 잘 들리지는 않아도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많은 힘이 된다. 현재의 우리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선수들도 성장해야겠지만 어른들이 전폭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 일본이 20년 전 우리와 비슷하게 하고 있지 않나. 대한민국 여자농구는 아직 꽃을 활짝 피우지 않았을 뿐 한계가 아닌 시작이라고 생각한다”라고 격려했다. 아산 우리은행의 코치로 활약 중인 전주원은 “지금 당장 20년 전과 같은 성과를 내라고 하면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박지수가 잘 버텨주고 있고 그를 중심으로 어린 선수들이 성장한다면 그때와 버금가는 전력이 완성될 거라고 믿는다”라며 자신했다. 희망 넘치는 메시지 속에서 극동대의 감독을 맡고 있는 이종애의 의견은 사뭇 남달랐다. “얼마나 시간이 흘러야 20년 전처럼 좋아질지는 확신하기 힘들다. 그때는 인력도 풍부했고 팀도 많았다. 지금은 그렇지 않나. 일단 조건 자체가 틀리다. 선택의 폭이 넓고 좁고의 차이는 분명하다. 뻔한 말일 수 있지만 지금보다 더 넓은 인프라 구축이 절실하다.”

이상과 현실의 차이는 크다. 대한민국 여자농구가 처한 현실은 이상을 쫓는 것 자체가 욕심일 수도 있다. 그러나 힘든 상황 속에서도 ‘KOREAN SPIRIT’은 아직 존재하고 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최정예 중국을 꺾고 2020 도쿄올림픽 최종예선에 발을 디딘 것. 내년 2월, 중국 포산에서 열릴 도쿄올림픽 최종예선은 대한민국 여자농구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순간이 될 것이다. 20년 전 시드니에서 등장한 ‘KOREAN SPIRIT’이 아직 대한민국의 품을 떠나지 않았다면, 아직 희망을 잃지 않았다면 과거의 영광을 다시 재현할 수 있지 않을까?

※ 사상 첫 남북 공동 기수가 된 정은순의 비하인드 스토리

2000년 9월 15일은 대한민국, 아니 세계 역사에서 길이 남을 명장면이 연출된 날이었다. 사상 처음으로 대한민국과 북한이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 첫 공동입장을 한 것이다. 당시 대한민국은 정은순, 북한은 박정철 유도 감독이 공동기수로서 역사의 한 장면에 나란히 섰다. 정은순은 “솔직하게 말하자면 공동기수를 하고 싶지 않았다. 개회식 다음날은 우리의 운명이 달린 폴란드 전이었고 대비 훈련을 해야 하는 날이었다. 근데 갑자기 공동기수를 해야 한다면서 일정이 다 바뀐 것이다. 유수종 감독님께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더니 ‘가문의 영광인줄 알아라’라며 시키셨다(웃음).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선수들에게 미안하다. 왜? 폴란드한테 패배한 원인이 나한테 있었다고 생각하니까”라며 당시를 추억했다. 갑작스레 정해진 공동기수로 인해 현실적인 문제도 존재했다. 정은순은 “원래는 우리 단복만 맞춰서 시드니로 떠났었다. 근데 공동기수로 선정되면서 단복을 다시 맞춰야 하는 상황이 됐다. 겨우 국내에서 단복을 맞췄고 간신히 나설 수 있었다”라고 전했다. 평화의 상징이었던 남북 공동입장은 사실 속내는 평화롭지 않았다. 한반도기를 잡는 위치까지 신경전을 벌일 정도였으니 두 말하면 잔소리다. “이걸 말해도 되나. 박정철 감독보다 무조건 위를 잡으라고 하더라.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웃음). 그 정도로 신경전이 있었다. 물론 박정철 감독과는 사이가 나쁘지는 않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정도였으니까.” 정은순의 말이다. 당시만 해도 죄책감에 젖어 영광의 순간을 누리지 못했던 정은순.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순간이라며 기쁨을 숨기지 않았다. “우리가 입장하는 순간 기립박수를 받았다. 현장에 계셨던 어른들은 눈물을 보였다고도 하더라. 그런 순간에 내가 서있었던 건 정말 영광이다. 앞으로 평생 잊지 못할 순간이 되지 않을까?”

※ 2000 시드니올림픽 대한민국 여자농구 대표팀 명단

감독_유수종
코치_이문규
선수_이미선, 전주원, 김지윤, 이언주, 장선형, 왕수진, 양선애, 박정은, 강지숙, 이종애, 정선민, 정은순

※ 2000 시드니올림픽 대한민국 여자농구 대표팀 전적

B조 예선
대한민국 75-89 미국
대한민국 101-62 뉴질랜드
대한민국 62-77 폴란드
대한민국 75-73 러시아
대한민국 69-56 쿠바

8강
대한민국 68-59 프랑스

4강
대한민국 65-78 미국

동메달 결정전
대한민국 73-84 브라질

STATS_2000 시드니올림픽 대한민국 여자농구 대표팀 기록

4. 이미선 4경기 1.3득점 0.5리바운드 1.7어시스트
5. 전주원 8G 11.9득점 4.5리바운드 4.5어시스트
6. 김지윤 5G 3.8득점 1.0리바운드 1.2어시스트
7. 이언주 7G 4.1 득점 1.2 리바운드 0.1어시스트
8. 장선형 8G 3.5 득점 2.0 리바운드 0.6어시스트
9. 왕수진 1G 3.0 득점 3.0리바운드 1.0어시스트
10. 양선애 8G 11.5득점 2.6리바운드 1.6어시스트
11. 박정은 8G 11.9득점 2.1리바운드 1.5어시스트
12. 강지숙 2G 1.0득점 0.5리바운드
13. 이종애 7G 2.3득점 1.4리바운드 0.7어시스트
14. 정선민 8G 13.9득점 4.8리바운드 2.3어시스트
15. 정은순 8G 11.6득점 3.6리바운드 3.7어시스트

# 사진_점프볼 DB(문복주 기자), 대한민국농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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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준구 민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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