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ALERT! 농구 명문대학들이 나란히 맞이한 위기

매거진 / 김윤호 / 2020-01-09 00: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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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김윤호 칼럼니스트] 미국 NCAA에 속한 대학 중에서 전〮현직 NBA 및 ABA 선수를 가장 많이 배출한 대학을 꼽으라면 켄터키(116명), UCLA(99명), 노스 캐롤라이나(97명), 듀크(84명) 대학 등을 꼽을 수 있다. 지금 NBA에서도 해당 대학 출신 선수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학교 동문들을 찾게 되는 연말연시에 이들이 동문회를 한다면, 그 분위기는 그리 좋을 것 같지가 않다. ‘명문대학’의 간판이 점점 의미가 없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켄터키, 원앤던(one and done)의 끝에서

켄터키 대학은 NCAA 챔피언을 8번이나 차지한 대표적인 명문일 뿐만 아니라, NBA 스타의 산실이기도 하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댄 이셀, 프랭크 램지 등의 전설적인 선수들을 배출했으며 NBA 대표 명장 팻 라일리 또한 켄터키 대학 출신이다. 켄터키는 NBA 스타의 명맥이 과거부터 지금까지 이어진 몇 안 되는 대학이다.

지난 2009년 존 칼리파리 감독 부임 후 켄터키 대학은 대학 농구 팀 중에서 얼리 엔트리를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해 왔다. 덕분에 켄터키 대학이 최근에 배출한 스타들의 면면도 화려하다. 존 월, 드마커스 커즌스에서 시작해서 앤써니 데이비스, 칼-앤써니 타운스, 데빈 부커 등에 이르기까지 다수의 스타들을 배출해 왔다. 하지만 그 켄터키의 명성도 예전만 못하다는 분위기다. 켄터키는 2019년 드래프트에서 10순위 안에 지명된 선수가 한 명도 없었다. 칼리파리 감독 부임 이후 처음있는 일이었다. 매년 고교 농구 선수 리쿠르팅 경쟁에서 앞서며 최고의 신입생들을 휩쓸어왔던 지난 10년 간의 명성을 고려하면 초라한 결과다. NCAA 토너먼트 결과와 관계없이 NBA 드래프트 진출 성적은 늘 좋았던 켄터키의 자존심에도 상처가 날 만한 일이다.

물론 2019년 드래프트에서 지명된 P.J. 워싱턴(샬럿 호네츠), 타일러 히로(마이애미 히트) 둘 다 NBA에 순조롭게 정착하고 있으나, 이들이 칼리파리 시대가 낳은 켄터키 스타 명맥을 이을 수 있을 지는 아직 미지수다. 게다가 최근 2~3년 간 데뷔한 켄터키 출신 NBA 선수 중에도 기대에 못 미치는 경우가 많아, 스타의 명맥이 이전보다 약해졌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마이애미 히트의 뱀 아데바요, 오클라호마 시티 썬더의 샤이 길저스 알렉산더가 칼리파리 시대의 마지막 켄터키 출신 올스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올해 켄터키 대학에 입학한 신입생 칼릴 휘트니, 타이리스 맥시 또한 내년 드래프트에서 로터리에 지명될 가능성이 낮다. 켄터키 대학의 성적도 눈에 띄지 않을 뿐더러, 맥시와 휘트니의 기량이 소위 ‘초특급 신입생’에 걸맞는 수준이라고 보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앞으로 켄터키 1학년들의 드래프트 지명 순위가 계속 떨어질 수도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켄터키의 원앤던(one and done) 정책이 더는 통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켄터키의 최근 리쿠르팅 성과가 예전보다 떨어지기 때문에, 대학을 1년만 다니고도 NBA 드래프트 현장의 스포트라이트를 독차지하는 스타를 다시 보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원래 계획과 달리 대학에 계속 다니는 경우도 있어, 칼리파리 감독의 원앤던 체제도 서서히 끝이 보인다.



듀크, 푸른 악마의 저주가 다시?

최근 듀크에게는 특이한 징크스가 생겼다. 2010년 이후 NCAA 챔피언의 주역들이 NBA에서 별다른 활약이 없다는 점이다. 2010년과 2015년에 듀크의 NCAA 챔피언 등극을 이끈 선수들의 활약상이 하나같이 저조한 것을 보면, 예전에 한창 유행처럼 돌았던 ‘푸른 악마의 저주’를 연상시킨다. ‘푸른 악마의 저주’는 듀크의 엠블럼인 블루 데블(Blue Devil)에서 유래된 것으로, 듀크 대학 출신 선수들이 여러 이유로 NBA에 진출하지 못하거나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을 일컫는다. 2000년 이후 수년 간 부상에 시달렸던 그랜트 힐, 교통사고를 당하며 선수 수명이 단축된 제이 윌리엄스와 바비 헐리, 드래프트 3순위에 걸맞지 않게 초라한 커리어로 선수 생활을 보낸 마이크 던리비 주니어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모두 듀크 대학의 NCAA 우승 주역이다. 푸른 악마의 저주는 쉽게 사그러 들지 않았다. 2010년 NCAA 우승을 이끈 주역들 대부분은 정작 우승 이후에 농구계에서 자취를 감췄다. 존 샤이어, 브라이언 주벡은 NBA 드래프트에 지명조차 되지 못했고, 놀란 스미스는 포틀랜드 트레일 블레이저스의 역대 드래프트에서 손꼽히는 흑역사라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다. 카일 싱글러, 라이언 켈리 역시 NBA에서 얼마 못 버티고 도태됐다.

이후 신입생 리쿠르팅에서 연이어 성공하며 저주가 풀리는 듯 했지만, 잠잠했던 푸른 악마의 저주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2015년 NCAA 우승을 이끈 주역들도 푸른 악마의 저주를 피하지 못했다. 약체 뉴올리언스 펠리컨스에서도 잉여 전력이 된 자릴 오카포, 마이애미에서 필요 없는 전력이 된 저스티스 윈슬로우,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에서 멤피스 그리즐리스로 이적한 후에도 자리를 못 잡는 타이어스 존스 등 대학농구 우승의 주역들 모두 3년 이내에 도태될 위기에 처해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전미의 관심을 받으며 듀크 대학에 입학했던 신입생 출신 NBA 선수들도 기대에 못 미치고 있어, 듀크 대학의 명성이 무색해진 상황이다. 그나마 듀크 대학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던 카이리 어빙(브루클린 네츠)은 잦은 부상과 리더십 부족으로 커리어 위기를 맞았다. 한때 코치 K로부터 극찬을 받았던 자바리 파커는 과거형 유망주이며, 마빈 배글리는 새크라멘토 킹스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올 시즌에 생애 첫 NBA 올스타에 도전 중인 브랜든 잉그램(뉴올리언스), 제이슨 테이텀(보스턴 셀틱스) 정도만이 모교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게다가 올 시즌 신인으로 NBA에 들어온 선수들도 팬들에게 실망을 안겨주고 있다. 화려하게 전체 1순위로 지명된 자이언 윌리엄슨(뉴올리언스)은 아직 데뷔 경기도 치르지 못했고 올 시즌에 데뷔할 수 있을 지도 알 수 없다. R.J. 바렛(뉴욕 닉스)과 캠 레디쉬(애틀랜타 호크스)는 팀의 기대치를 보란듯이 저버리고 있다. 듀크 대학이라는 간판의 신뢰성은 악마의 저주와 함께 점점 떨어져 간다.



UNC와 UCLA의 영광은 어디에

켄터키, 듀크보다 더 심각한 상황에 놓여 있는 명문 대학도 있다. 바로 UNC와 UCLA다. 마이클 조던, 제임스 워디, 바비 존스, 빈스 카터 등의 걸출한 스타들을 배출한 UNC, 그리고 NCAA 토너먼트 최다 우승 (11회) 기록을 보유했으며 카림 압둘-자바를 배출한 UCLA의 현실은 과거와 비교하면 한없이 초라하다.

UNC는 2000년 이후에도 NCAA 토너먼트 3회 우승을 기록하며 (2005년, 2009년, 2017년), 명문의 길을 이어나가고 있다. 그러나 정작 UNC가 배출하는 선수의 수준은 시간이 갈수록 낮아져 간다. 마이클 조던을 배출한 대학이라는 점이 무색할 수준이다. 지난 20년 간 드래프트에서 지명된 선수 중에 NBA 올스타로 선정된 선수가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이 UNC의 현 주소다. 1998년에 데뷔한 빈스 카터 이후로, UNC는 단 한 명의 올스타도 배출하지 못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미국의 고교 유망주들도 계속 UNC 진학을 기피하고 있다. 이미 UNC라는 간판의 유통기한이 지났음을 선수들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전미 고교 최고의 가드였던 콜 앤써니가 입학한 것이 기적으로 보일 정도로 UNC는 오랫동안 스타 기근에 시달리고 있다. 홈 구장 딘 스미스 센터에 과거의 스타들이 찾아오지 않는 이상, 미디어의 관심을 받기가 어렵다. UNC 출신 선수들에 대한 기대치는 여전히 낮다. 올 시즌에 데뷔한 카메론 존슨(피닉스 선즈), 코비 화이트(시카고 불스), 나시르 리틀(포틀랜드) 등도 뚜렷한 인상을 남기지 못한다. 한때 하나의 농구 브랜드와도 같았던 UNC의 명성은 과거형이다.

UCLA 또한 과거의 영광에 취한 대학이다. 존 우든 감독과 카림 압둘-자바가 일궈낸 UCLA의 전설은 이제 박물관의 유산일 뿐이다. 러셀 웨스트브룩(휴스턴 로케츠), 케빈 러브(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가 아니었다면 UCLA 역시 21세기에 NBA 올스타의 맥이 끊어졌을 것이다. 잭 라빈(시카고) 한 명에게 모든 희망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니, 그만큼 UCLA가 배출하는 선수의 수준도 점점 떨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캘리포니아를 대표하는 스포츠 명문 대학이며 한동안 LA 레이커스와도 밀접한 연결 고리가 있었던 UCLA지만, 그것도 다 옛날 얘기가 됐다. 게다가 UCLA가 속한 NCAA의 Pac-12 컨퍼런스의 경쟁력이 전반적으로 떨어지다 보니, UCLA로 농구 유망주들이 유입되지도 않을 뿐더러 NBA 관계자들도 UCLA 농구에 큰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심지어 NCAA 토너먼트 성적마저도 2008년 파이널 4 진출 이후로 뚜렷한 성과가 없어서, 선수들을 끌어들일 만한 요인이 사실상 없다.

NBA에서 사라지는 명문대 간판

얼마 전, 멤피스 대학의 제임스 와이즈먼이 자퇴를 선언했다. 페니 하더웨이 감독이 NCAA의 리쿠르팅 목적의 접촉 규정 위반한 점이 드러나면서 와이즈먼이 12경기 출장정지를 받았는데, 징계가 채 끝나기도 전에 와이즈먼이 자퇴를 선언한 것이다. 와이즈먼은 개인적으로 NBA 드래프트를 준비할 계획이다.

듀크 대학 출신의 제이 윌리엄스는 한 방송을 통해 NCAA에게 심각한 적신호라고 경고했다. 이제는 고교 유망주들이 대놓고 대학 진학을 거부한 채, 별도로 NBA 드래프트를 준비하는 사례가 더 많이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상위 레벨의 유망주들은 굳이 NCAA 경기를 뛰지 않더라도 지명이 된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대학 입학 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냥 1년 간 경기 없이 쉬는 것을 택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NCAA 입장에서는 다소 기분 나쁜 현실이다. 이제는 농구 명문대학이 무의미해진 시대가 왔고 NBA에서 명문대 간판을 찾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받아들여야 할 현실이기도 하다. 대학 농구부의 선수 육성 프로그램이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점, NBA와 세계 농구가 요구하는 인재상과 거리가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게다가 NCAA는 여전히 선수들에게 학생이라는 이유로 수익 활동을 금지하고 있으니, 자연히 어린 선수들은 허울뿐인 간판보다 실리를 택하고 있다.

농구 명문대학들은 그동안 NCAA 우승 타이틀, 그리고 NBA 스타 배출이라는 자존심으로 먹고 살아왔다. 하지만 그 자존심을 보여줄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스타 없는 NCAA, 스타 없는 명문 대학이라는 암울함만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명함에 의지하기에는 이미 세계 농구계가 너무 많이 바뀌었다. 대학농구는 물론 미국 아마추어 농구계가 바뀌지 않으면, 더 큰 위기가 찾아오게 될 것이다.

# 사진_나이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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