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슬램게임: 드래프트에 참가하시겠습니까?] (022) 단국대 ‘최강 슈터’ 최강민 “분위기 메이커 역할? 맡겨만 주세요!”
- 아마추어 / 이상준 기자 / 2025-10-20 11:00:20


최강민의 농구 입문기는 특별하다. KBL 가드 ‘GOAT’라고 불리는 울산 현대모비스 양동근 감독을 보면서 농구에 ‘입덕’했고, 매일 같이 농구를 챙겨보게 된다. “양동근 감독님의 플레이를 보게 된 것이 농구를 좋아한 계기가 되었어요. 감독님은 선수 때도 코트 안의 사령탑 같은 플레이를 보여주셨잖아요? 왠지 모를 아우라가 느껴져서 너무 멋있었어요.”
선수 양동근의 일거수일투족을 따라 한 것은 곧 농구부 입문으로 이어졌다. 반 대항전 농구를 휘저은 최강민을 본 농구부 코치는 그를 체육관에 안착시킨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반 대항전 행사가 있었어요. 농구도 그중 하나여서 참가했죠. 그런데 다니던 초등학교 농구부 코치님이 저를 보신 거예요? ‘너 농구공 만질 줄 아네’라고 하시면서 농구부로 스카우트를 하셨죠. 처음에는 농구를 잘 몰랐지만, 그저 농구공 튀기는 소리 듣는 것만으로도 재밌었어요.”
즐거워하는 일도 때로는 힘들게 다가올 수 있다. 누구나 슬럼프를 겪게 되는 시기는 있다. 최강민 역시 마찬가지였다. 공 튀기는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던 농구였지만, 군산중 시절의 시행착오로 쳐다도 보기 싫을 때가 있었다. 특히 유급으로 인한 2년 간의 중학교 2학년 생활은 불안한 마음의 원인이 되었다. “군산중 시절이요? 솔직히 많이 힘들었어요. 저한테 화가 났거든요. 저보다 잘하는 선수들이 워낙 많았고, 출전 시간도 적다 보니 자신감이 떨어졌거든요. 신장도 또래 친구들보다 작았다 보니 2학년 때 들어서는 유급까지 하게 됐어요.”
“유급의 영향은 꽤 컸어요. 중학교 2학년 생활을 두 번이나 했지만, 출전 정지 징계로 인해 2년 동안 연맹 주최 경기는 단 1경기도 못 뛰었죠. 중학교 3학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실전 경기를 치렀는데 그때도 실망의 연속이었어요. 제 기대치만큼 코트에서 실력 발휘가 안 됐거든요. 출전을 갈구할 것이 아닌 ‘연습 만이 살길이구나’라는 것을 느끼게 된 순간이었어요.”
“반전을 마련하고자 정말 열심히 했어요. 스트레스도 결국 운동으로 풀어야겠음을 느꼈죠. 매일 같이 새벽 1시까지 남아서 운동을 했고, 집 가서 4시간 자고 5시 반에 다시 학교로 나와서 또 운동했습니다. 드리블, 슈팅 훈련…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면서 연구했죠.”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법칙 같은 말이 있지 않나. 최강민에게도 이 말이 적용됐다. 잠까지 줄여가며 매진한 결과, 최강민은 군산고 진학 후 본격적으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타 학교보다 적은 7명의 선수만으로 경기를 뛰어야 하는 악조건 속에서도 군산고가 힘을 낼 수 있었던 것은 최강민의 폭발적인 득점력 때문이었다. “중학교 때보다는 자신 있게 했던 결과 같아요. 그래도 항상 지금도 후회되는 것이 있어요. 좀 더 자신 있게 하면 어땠겠냐는 생각이 들거든요. 기록은 좋았을지 몰라도 정작 중요할 때는 주눅 들 때가 많았어요. 운동할 때는 100%~120% 정도로 하다가 과호흡이나 탈수, 탈진 증세가 와서 쓰러진 적도 많았거든요.”
겸손했던 최강민의 말. 그렇지만 그의 기록은 겸손함이 필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된 2021년, 그는 춘계연맹전에서 평균 31점 8.7리바운드 5.3어시스트 4스틸을 기록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협회장기에서는 평균 34.8점 8.8리바운드 5.2어시스트 6.4스틸을 기록, 매서운 손 끝 감각을 과시했다. 군산고의 두 대회 결선 토너먼트를 이끈 주역으로 나설 정도로 성장한 것이다.

득점도 놀랍지만, 스틸을 11개나 기록했다는 것에서 상징하는 바가 큰 기록이었다. 여기에는 최강민보다 쿼드러플더블을 바란 코칭스태프, 동료들의 외침이 자리 잡고 있었다.
“경기 뛸 때는 그냥 승리 하나만 보고 가느라 기록 달성 도전 중인 것은 전혀 모르고 있었어요. 그런데 코치님이 ‘스틸 하나만 더!’라고 외치시더라고요? 그 외침이 아직도 생생해요. 저는 왜 스틸을 그렇게 계속하라고 하시는지도 몰랐거든요(웃음). 그 말씀 하나만 듣고 볼을 뺏으러 갔던 기억이 많이 남아 있어요. 경기 끝나고 나서 동료들이 ‘야 너 쿼드러플 더블 했대!’라고 알려주면서 알게 됐어요. 좋았지만, 기록을 신경 쓰면서 했던 경기가 아니라 당황의 연속이었던 것 같아요.”

군산고 시절을 훌륭하게 마친 최강민의 발걸음은 단국대로 향했다. 최강민은 오로지 더 큰 성장 하나만 보고 단국대 진학을 선택했다. “단국대가 운동이 힘들다고 들었는데, 오히려 잘하려면 더 힘들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진학을 결정했어요. 게다가 단국대 출신 선수들이 성공한 사례도 많았잖아요? 권시현 코치님도 그렇고 (윤)원상이 형, (이)경도, (염)유성이까지… 이 선수들 본받아서 하려 했어요.”
당찬 각오는 코트에서도 드러났다. 최강민은 신입생 시절부터 단국대의 핵심 자원으로 자리 잡는다. 자신 있게 림을 바라보고, 악착같이 상대를 따라다니는 최강민을 석승호 감독이 외면할 이유는 적었다. 그 결과 최강민은 1학년 시절 10경기 평균 13.5점 야투 성공률 68.8% 5.4리바운드 1.9스틸을 기록하며 대학 농구 관계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2학년 시절에는 부상의 여파로 평균 8.7점 3.3리바운드 1.8스틸로 주춤했지만, 이 또한 잠시였다. 최강민은 3학년이었던 지난 시즌 평균 17.6점을 기록하며 단국대 공격의 핵심으로 올라섰다. 나성호와 이경도(이상 창원 LG)의 프로 지명 공백 속에서 당당히 주축 선수로 올라선 것이다. “쭉 돌이켜보자면, 1학년 시절은 그저 자신 있게만 했던 것 같아요. 반면 2학년 시절은 (염)유성이가 프로에 가면서 제가 해야 할 역할을 못 찾는 느낌이 강했죠. 그러면서 감독님이 피드백도 많이 주셨고, 오히려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자신감도 불어주셨어요. 그 효과가 나오면서 3학년 들어서 다시 개인 기록 측면에서 개선이 많이 된 것 같아요.”

최강민의 진가는 곧 단국대의 돌풍으로도 이어졌다. 단국대는 2022년과 2023년, 모두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했지만, 지난 시즌 9위에 그치며 일찍 짐을 싸야 했다. 올 시즌 역시 전반기 9위에 머물렀고,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듯했다.

“9월 10일 연세대와의 경기가 기억에 많이 남아요. 점수가 전반전에 너무 벌어져서 그런지 긴장의 끈을 놓쳤습니다. 안일하게 생각했죠. 감독님도 1쿼터 경기력으로 복귀할 것을 이야기하셨고, 저도 팀원들 정신 무장에 힘썼습니다. 연세대에 승리한 것도 자신감을 얻는 큰 원동력이 됐습니다.”

최강민에게 이번 플레이오프 진출이 남다른 이유는 하나 더 있었다. 지난 시즌을 끝으로 학교를 일찍 떠날 마음을 먹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 최강민은 얼리 엔트리를 고민했으나 참가 접수가 다가온 시점에서 철회 후 졸업을 선택했다. 자신의 선택으로 값진 결과를 얻었고, 한편으로는 더 단단해진 상태에서 프로 무대를 노크할 수 있게 됐다.
“프로 무대에 가는 목적은 기회를 받고, 더 잘하고 싶어서이잖아요? 그런데 지난 시즌 부상도 있었고, 복귀해도 경기력이 좋지 못했어요. ‘1년 더 다듬고 프로에 가는 게 어떻겠냐?’라는 감독님의 말씀 덕분에 올바른 선택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후회 안 해요!”

#003_Application. (드래프트 참여를 원하십니까?)
성공적이었던 대학리그 마지막 정규리그까지 마쳤다. 그러나 최강민은 드래프트 준비 과정에서 누구보다 바쁜 일정을 소화한다. 전국체전과 플레이오프가 바로 그것이다. 최강민은 단국대의 호성적을 위해 힘쓴 후 프로 무대에 도전하고 싶다는 강한 ‘애교심’을 드러냈다. “상대가 누구든 간에 이길 각오로 남은 일정 치를 것입니다. 드래프트가 얼마 안 남았다는 이유로 몸 사리거나 그러지 않을 거예요.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요. 승리에 집착하면서 무조건 다 이기고 졸업하겠습니다.”
최강민과 ‘25슬램게임’의 만남은 지난 17일에 이뤄졌다. 최강민은 만남 하루 전인 16일, 드래프트 컴바인까지 마치고 천안으로 내려온 상태였다. 컴바인 당시 최강민은 근력을 측정하는 맥스 벤치 프레스(75kg)와 맥스 풀업에서 3위(16개)와 5위(22개)를 기록, 1차 관문을 무사히 통과했다. “한 종목 한 종목 할 때마다 긴장이 되더라고요. 손에 땀이 많이 났는데 이런 적이 처음이었습니다(웃음). 그래도 맥스 벤치 프레스, 맥스 풀업에서는 상위권을 기록했습니다. 나쁘지 않게 마무리한 것 같아서 다행이에요.”
치열한 경쟁 속 자기 PR의 중요성 역시 더욱 커진다. 취업준비생인 드래프트 도전자들이 입사 희망 기업인 KBL 10개 구단에게 왜 다른 도전자들보다 자신을 선발해야 하는지 적극적으로 어필해야 할 필요성은 더욱 커진다. 그렇기에 ‘25슬램게임’은 각 도전자들에게 ‘1분 자기소개’의 시간을 부여하기로 했다. 최강민은 자신을 ‘분위기 메이커’라고 당차게 소개했다.
“팀에 없어서는 안 될 ‘분위기 메이커’가 저라고 생각해요. 폭발적인 3점슛과 대인 수비가 제 장점이잖아요? 그런 면에서 팀의 분위기를 끌어올릴 수 있는 플레이들을 보여줄 수 있다는 자신이 있어요. 때로는 상황에 맞는 스틸로 분위기 전환을 할 수도 있고요. 에이스 선수들의 체력 세이브를 해드릴 수 있습니다! 일단 코트 안에서 저보다 열심히 하는 선수는 없다고 봐요. 누구나 좋아할 선수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누구나 행복한 상상이라는 것을 해본 적 있지 않나. KBL 일원이 되고 싶은 꿈을 가진 드래프트 참가자들은 저마다 한 번씩 “내가 프로 선수라면?”이라는 행복한 상상을 해봤을 것이다. 그래서 물었다. 프로 선수가 된 당신은 어떤 플레이를 펼치고 팬들과 동료들에게 어떤 칭호를 받는 선수가 되어있을 것 같은지에 대해 말이다. 최강민은 이를 듣자 ‘최강 슈터’라는 힘찬 대답을 내놨다. 그의 자신감이 엿보이는 대목이었다.
“안 그래도 저는 프로에 가면 어떻게 해야겠다는 상상을 많이 해요. 궂은일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싶고, 그렇게 될 것 같아요. 무엇보다 열심히 하며 해설위원분들께 주목 받고, 그분들을 통해 이름을 알리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3점슛도 폭발적으로 성공시키며 제 이름 앞 두 자리를 따 ‘최강 슈터’라 불리고 싶다는 욕심도 있습니다!”

‘꾸준함’ 대학 선수들에게는 쉬우면서도 어려운 단어다. 4년 내내 계속해서 출전 기회를 잡고, 정상적인 기량을 보여주는 것만큼 고난이도 과제도 없다.
최강민은 이 과제에서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을 만하다. 단국대가 중위권 다크호스로 자리 잡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알토란 같은 3점슛과 투지 넘치는 수비는 프로에서 활용할 가치가 많음을 보여줬다. 실제로 스카우트 사이에서 최강민은 최고의 스틸픽이 될 선수로 통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사진_최강민 제공, 점프볼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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