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상상도 못 했던, 아니 안 했죠” DB 단장-감독으로 만난 이흥섭-이규섭 형제가 그리는 명가 재건
- 매거진 / 최창환 기자 / 2026-07-10 06:00:46
웃음기 넘쳤던 8년 전과 달리, 한 배를 탄 후 진행한 이번 인터뷰가 지니는 무게감은 남달랐다. 이흥섭 사무국장은 단장이 됐고, 이규섭 코치는 해설위원과 부산 KCC 코치를 거쳐 DB의 지휘봉을 잡았다. 형제가 한 팀에서 단장과 감독으로 만나는 건 KBL 최초이자 국내 프로스포츠에서 보기 드문 사례다.
물론 특수한 상황이 이들의 마음가짐에 변화를 준 건 아니었다. 20여 년 동안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역할을 소화하며 최고의 자리에 올랐듯, 형제가 농구를 대하는 자세는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 본 기사는 농구전문 매거진 점프볼 7월호에 게재됐습니다.
이규섭 감독 큰 기회를 준 DB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농구인이라면 누구나 다 감독이라는 자리를 꿈꾸잖아요. 감독은 한 번 맡을 수 있는 직책이라고 생각해요. 길게 하냐, 짧게 하냐의 차이인 것 같아요. 성공하면 보너스 개념으로 더 오래 할 수 있는 거죠. 2026년은 제 농구 인생에서 가장 잊지 못할 한 해가 됐지만, 개인적인 영광은 여기까지입니다. 감독이라는 자리가 지니는 무게감, 책임감에 대해 잘 알고 있어요. 팀이 계속해서 좋아지고, 잘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만큼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스트레스도 받고 있지만, 이게 제 업무라고 생각해요. 감독은 좋은 전술, 플랜을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관리인 것 같아요. 팀의 에너지가 떨어지지 않도록 이끌어야 하고 선수단, 스태프, 구단, 팬들까지 다 신경 써야 하죠. 선수들이 잘해야 감독들도 평가를 받을 수 있어요. 아무리 좋은 걸 준비해도 경기력으로 발휘되지 않는다면 그에 따른 책임도 다 저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챔피언결정전 기간부터 소문이 떠돌았습니다. 구체적으로 제안을 받은 시점은 언제였나요?
이규섭 감독 DB가 기존 코칭스태프와 재계약하지 않는다는 기사가 나온 날 지인들로부터 연락을 받았어요. 이상민 감독님도 “그래서 누가 간다는 거야?”라고 하셨죠. 저도 궁금했고요. (이흥섭) 단장님께 직접 물어보기도 했는데 DB와 관련된 지도자가 갈 거라 예상하고 있었죠. KCC 선수들도 DB 감독으로 가시는 거 아니냐고 했는데 해설위원 맡고 있을 때도 저와 관련된 소문이 많았잖아요. 심지어 지난 시즌에는 여자팀으로 간다는 소문도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루머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했죠. 그러다 이상민 감독님이 직접적으로 물어보더라고요. 사실이면 얘기 안 할 이유가 있냐며 웃어넘겼는데 우승한 다음 날 실제로 연락을 받아서 당황했습니다.
이흥섭 단장 이 부분을 설명하자면, KCC 최형길 단장님께 양해를 구하는 게 시작이었어요. 최형길 단장님은 TG(DB 전신) 시절 제가 모셨던 분이었고, 이규섭 감독은 코치임에도 KCC와 3년 계약을 맺은 상황이었습니다. 코치라 해도 계약이 남아있는 지도자가 이동하는 건 말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었고, 모든 출발점은 최형길 단장님께 연락드리는 순간부터였습니다. 그게 예의라고 생각했어요. 작업하고 통보하는 건 예의가 아니잖아요. 내부에서 결정됐지만, 보완은 잘 이뤄진 상황이었습니다. 이규섭 감독에게도 전혀 얘기하지 않았죠. 중요한 시리즈를 치르고 있는 팀과 코칭스태프에게 알릴 순 없잖아요. KCC가 우승한 날 최형길 단장님께 축하 문자와 함께 상의드릴 일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늦은 시간이어서 내일 전화하겠다고 하셨고, 이튿날 오전 통화하며 설명을 드렸죠. 이후 이규섭 감독에게 전화했고, 계약기간이나 연봉에 대해선 전혀 얘기하지 않은 상태에서 마북동으로 갔어요. 이후 계약이 성사됐습니다.
감독 제안을 선뜻 받아들였나요, 망설였나요?
이규섭 감독 당연히 고민했지만, 최형길 단장님이나 이상민 감독님이 긍정적인 말씀을 해주셨어요. 일에는 시기라는 게 있는 건데 다음에 또 기회가 오는 건 아니라고 하셨죠. 부담되는 부분도 있지만, 감독으로서 해야 할 일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감독은 어느 팀이든 부담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자리예요. 우승한 KCC나 LG, SK 등등 전력이 좋은 팀에 가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해요. 전력 약한 팀 감독이라고 부담이 없는 것도 아니잖아요. 냉정하게 형은 단장 역할을 하면 되는 거고, 저도 (형제라는 것을) 연관 짓지 않고 제 일에 충실하면 됩니다.
이상민 감독과는 어떤 얘기를 주고받았나요?
이규섭 감독 그동안 고생했다고, 좋은 기회니까 미안해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굉장히 오랫동안 가깝게 지낸 사이인데도 직접 말로는 얘기를 못하겠더라고요. 문자로 주고받았습니다. 굉장히 긴 문자로요(웃음). 단장님도 좋은 자리니까 결정 내려도 된다고 하셨습니다.
KCC에 대한 감사 인사를 남긴다면?
이규섭 감독 감독님이 불러주셨고 단장님이 자리를 주셨지만 정몽진, 정몽익, 정몽열 회장님으로부터 정말 많은 관심을 받는 팀이잖아요. 플레이오프 중 구단주(정몽열 회장)가 새로 오신 것도 부담이 되는 한편으로는 KCC가 그만큼 농구에 진심이라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었죠. 짧은 시간이었지만 많은 추억을 만들었고 마무리도 완벽했습니다. 감독님과 삼성에서 감독-코치로 8년 정도 함께했는데 감독님 말씀대로 실패한 코칭스태프였어요. 그럼에도 그 조합을 선택해 주셨고, 덕분에 인식을 바꿀 수 있었습니다. 세부적인 부분은 차이가 조금 있었지만 삼성, KCC에서 일하는 방식이 달라진 건 아니었어요. 감독님이 선수 시절의 명성을 멋있게 되찾으셨고, 그걸 도운 것만으로도 저에겐 굉장한 추억이 됐습니다. 구단 관계자들도 모두 잘 챙겨주셨죠. 덕분에 좋은 기억만 안고 떠날 수 있었고, 감사했습니다.
아무래도 형이 단장으로 있는 팀에 동생이 감독으로 부임하는 것에 대해 오해의 시선이 따랐습니다.
이흥섭 단장 팬들은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보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장이라고 동생을 데려올 수 있는 거라면, 그만큼 제 파워가 세다는 건가요? 저에게 그 정도 능력이 있는 건 아닙니다(웃음). 감독 리스트업 작업은 권순철 상무님(전 DB 단장)이 진행하셨습니다. 김주성 감독과 재계약하지 않기로 결정을 내린 후 감독 후보를 정리하셨는데 어느 팀이든, 누가 적든 나올 수 있는 리스트였습니다. 여기서 구단주님이 추린 후보가 3명이었고, 이규섭 감독도 있었습니다. 그 얘기를 들었을 때 ‘굳이?’ 싶긴 했어요. 다른 팀의 코치를 맡고 있는 데다 민감한 자리잖아요. 상무님도 구단주님께 “형이 단장으로 있어서…”라고 말씀하셨지만, 구단주님이 정리를 해주셨습니다. 형제라서 생기는 문제, 방향성에 대해선 관리자가 조정해야 하는 거라고, 능력 있는 지도자를 단장의 동생이라는 이유로 배제하는 건 오히려 맞지 않다고 말씀하셨죠. 그러면서 대화가 진척이 됐습니다. 부담스러운 측면만 보면 당연히 부담스럽겠죠. 그런데 이규섭 감독이 다른 팀 감독이 됐다면, 그렇다고 부담이 없는 걸까요? 제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감독을 선임했는데 결과가 안 좋다면 제 책임이 없는 걸까요? 누가 감독이 되든 똑같은 책임이 따르는 거죠. 이규섭 감독이 자신의 말대로 본인 역할을 하면 되듯 저는 단장으로서 구단의 방향성을 잡아주면 되는 겁니다. 제가 거꾸로 묻고 싶어요. 형제가 단장-감독이라고 해서 다른 팀과 크게 다른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게 있을까요? 감독으로서 역량이 없고 검토 자체가 안 된 인물에게 감독 자리를 만들어준 거라면 비난을 받아야겠죠. 우려하는 부분에 관해서는 부담 없습니다. 물론 팀이 삐걱대면 비난의 화살도 무게감이 다르겠지만, 회사 임원이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그렇지만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면 그게 스토리가 되는 거고 더 좋은 영향력이 발휘되지 않겠나”라고요. 결국 어떤 결과가 나오느냐에 달렸다고 생각합니다.
단장으로서 이규섭 해설위원은 어떻게 봤나요?
이흥섭 단장 이상범 감독님이 경기 전 라커룸 인터뷰에 같이 들어가는 걸 좋게 평가해 주셨듯 농구에 대한 기준이 확실했어요. 해설위원마다 성향이 다르잖아요. 결과만 놓고 저렇게 하면 안 됐다며 부정적인 해설을 하는 분들도 있는데 그런 톤이 계속 이어지면 시청자 입장에서 짜증 부리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습니다. 반면, 이규섭 감독은 왜 이런 시도를 했고, 어떤 과정을 통해 이뤄졌는지를 설명하니까 시청자 입장에서 좋게 전달됐죠. 코트에서 열심히 하지 않는 선수는 없습니다. 다만, 준비하는 과정에 얼마나 충실했고 절실했느냐가 결과물의 차이를 만들죠. 해설위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경기를 준비한 해설, 보여지는 부분만 평가하는 해설은 시청자가 받아들이는 차이가 클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초반에는 어색했죠. 톤이 많이 다운되어 있더라고요(웃음).

이규섭 감독 삼성에서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은 후 둘째와 미국에 3개월 정도 다녀왔어요. 유소년 시스템도 보고 싶어서 LA 클리퍼스 캠프, 나이키 캠프, 대학 캠프 등등을 다 신청했죠. 다양한 농구를 접하고 있던 차에 한상웅(전 SK)이 운영 중인 클럽과 얘기가 닿았어요. 클럽 이름이 ‘JMGP’인데, 재미교포라는 뜻이에요(웃음). 거기에 있는 남상현 코치를 통해 에이전트들이 주최한 쇼케이스를 보러 갔는데 KBL 관계자는 아무도 안 왔었죠. 제가 거기서 코피 코번을 제일 먼저 봤습니다. “유명한 필리핀 선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봤을 땐 드와이트 라모스보다 잘해요”라는 얘기도 들었어요. 그게 알바노였고, DB와 또 다른 한 팀에 추천했죠. 그 팀은 다른 아시아쿼터와의 계약을 추진 중이었던 반면, 이상범 감독님은 바로 건너가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때 하셨던 말씀도 기억나요. “야, 죽으란 법은 없구나” 하셨죠(웃음). 이후 DB와 계약이 성사됐고, 저도 틈틈이 DM으로 연락을 주고받았어요. 감독으로 선임된 후 제일 먼저 한 일도 알바노와의 연락이었습니다. 저에게 다 맞추겠다고 해서 고마웠죠.
MVP가 될 거라는 것도, 감독-선수로 만날 거란 것도 예상 못 했을 것 같아요.
이규섭 감독 루키 시즌은 그 정도가 아니었잖아요. 잘하긴 했는데 팀에서 내린 평가를 들은 후 ‘아니, 알바노보다 더 잘하는 선수를 원한다고?’라며 놀랐던 기억이 있어요. DB에 추천했을 때 에이전트 등록했다면 수수료라도 받았을 텐데…(웃음). 알바노가 최근 오렌지카운티로 이사 갔어요. 이전에 살았던 동네를 돌아보면 ‘출세했네’ 싶다가도 다시 생각해 보니 알바노가 KBL을 먹여 살리고 있다고 봐야 할 것 같아요.
KCC 코치로 본 DB의 장점, 아쉬웠던 부분은?
이규섭 감독 좋은 팀이었죠. 훌륭한 포인트가드(알바노)에 강상재, 정효근, 헨리 엘런슨까지. 높이가 위력적인 데다 이유진, 김보배라는 미래 자원도 있잖아요. 입대한 박인웅도 경쟁력을 보여준 선수였고요. 기록적인 측면에서 봤을 땐 KCC와 더불어 공격은 부족한 부분이 없는 팀이었죠. 수비가 약한 두 팀이 KCC와 DB였지만, 공격 횟수가 많아서 팬들 입장에서 재밌는 농구라고 느껴지셨을 거예요. 여기에 템포 푸쉬를 더하면 생산력이 더 좋아질 텐데 결국 앞서 언급한 3명(이유진, 김보배, 박인웅)이 얼마나 성장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봅니다. 베테랑들은 실력이 더 좋아지는 게 쉽지 않아요. 중심을 잡으면서 후배들을 잘 이끌어줘야 하죠. 물론 김보배, 이유진도 드라마틱한 성장보단 점차 출전시간을 끌어올리면서 실력을 향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록을 꼼꼼히 챙기는 지도자로서 지난 시즌 DB의 데이터 가운데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
이규섭 감독 안 좋은 부분만 생각나네요. 코치 입장에서는 상대의 약점을 분석해야 하잖아요. 일단 실책, 속공 허용 2위였습니다. KCC가 독보적 1위였거든요(웃음). 2점슛 성공률은 양 팀 모두 상위권(KCC 1위, DB 3위)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사실 슛 성공률이 높다는 건 반대로 쉽게 실점할 여지도 있다는 겁니다. 보완이라기보단 잘하는 걸 더 잘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고 싶어요. 약점은 줄이는 게 정답이고요. 말처럼 되면 좋은데 쉬운 작업은 아니죠. 데이터도 데이터지만 경기에 임하는 자세, 태도에서 나오는 에너지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본인들이 잘하는 걸 할 수 있도록 돕고, 위기가 왔을 때 빠르게 분위기를 전환할 수 있도록 이끄는 게 제 역할이고요.
알바노에게 주장을 맡긴 배경은?
이규섭 감독 책임감이죠. 이정현이 주장 역할을 매우 잘했더라고요. 들어보니 국내선수들과의 관계도 괜찮다고 해서 고민했지만, 잘 설명했습니다. 아무래도 외국선수가 주장을 맡게 되면 책임감이 남달라집니다. 외국선수가 최대 3명까지 같이 뛸 수 있는 부분도 고려했죠. 국내선수들과의 관계도 괜찮은 만큼 주장이 되면 더 많은 걸 보여줄 수 있을 거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부주장도 필요한데 강상재가 흔쾌히 하겠다고 나섰습니다. 함께 선수단을 잘 이끌어줄 거라 기대하고 있어요.
엘런슨과의 재계약에 대해선 크게 고민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이흥섭 단장 재계약 마감 기간이 있기 때문에 감독 선임 전 엘런슨에게 먼저 제안을 했습니다. B리그에 가진 않을 거라고 했지만, 우리가 제안하지 않으면 CBA를 비롯한 다른 리그의 팀과 덜컥 계약할 수도 있었으니까요. KCC 코치였던 이규섭 감독에게 외국선수 시장에 대해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외국선수 시장이 좋지 않다는 게 중론이었고, 그래서 엘런슨과의 재계약은 당연히 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이규섭 감독 단장님 외에 다른 팀 관계자들도 저에게 물어봤는데 실제로 5월만 해도 외국선수 시장이 좋지 않았어요. 몸값이 폭등하는 시기였거든요. 그런데 흐름이 갑자기 바뀌었어요. 예상보다 좋은 외국선수가 무더기로 KBL에 들어와서 당황스럽긴 합니다. B리그가 샐러리캡을 도입해서 KBL에 오게 된 외국선수도 많은 것 같더라고요.
이흥섭 단장 그럼요. 제가 사무국 업무를 시작한 게 2000년 7월이었어요. 계약 만료까지 1년 남은 상황이었는데 당시만 해도 국내선수 보유 한도가 있어서 저를 포함해 3명이 계약 해지를 통보받았습니다. 그래도 남은 계약기간 동안 연봉은 지급이 되거든요. 첫째 아이가 태어난 해였는데 최형길 단장님이 당시 우리 팀 사무국장이었어요. 사무국에 출근해도, 안 해도 월급은 똑같이 나오지만 다른 일 준비하기 전 배워보고 싶다면 사무실에 출근하라고 하셨죠. 사무국으로 계약이 전환되는 건 아니라고 분명한 선도 그으셨고요.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농구만 했습니다. 자영업을 하더라도 1년 동안 출근하면서 서류는 어떻게 만드는지, 공문 접수는 어떻게 하는지 경험해 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출근했던 게 지금까지 오게 된 거죠. 2005년에는 TG삼보의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동부가 농구단을 인수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인수하면 기존 직원들은 3년 내에 정리되는 게 일반적이었는데 계속해서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사무국장을 맡겨주셨을 때 감사한 마음이 컸어요. 청춘을 다 바쳤는데 억울하다고 하는 회사원들도 있잖아요. 저는 정반대예요. 회사에서 좋게 봐주신 덕분에 아이들 키우며 지금까지 잘 다니고 있어서 감사할 따름이죠.
농구를 좋아하는 이들에겐 ‘꿈의 직장’인데 농구단 직원으로서의 삶은 어떤가요? 고충도 많을 텐데요.
이흥섭 단장 첫째도 아빠는 좋아하는 일 하지 않냐고 하더라고요. 좋죠. 재밌기도 하고요. 한동안 멋모르고 일했는데 20년 넘게 일하다 보니 최근에는 생각이 바뀌었어요. 예전에는 결과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조급했고, 상대 팀과 신경전을 벌인 적도 있었죠. 결과에 집중했던 예전과 달리 지금은 상황에 따라선 시간이 지나야 해결되는 부분도 있다는 것에 대한 개념이 넓어졌어요. 좋게 말하면 경험이 쌓이면서 여유가 생긴 거겠죠. 아까 얘기했던 것과 비슷한 건데 갑자기 좋은 결과물을 만들 순 없어요. 예를 들어 2023-2024시즌에 앞서 강상재가 체중을 7kg 감량했어요. 그러면서 MVP급 활약을 했는데 체중 감량한 것만으로 농구가 늘진 않습니다. FA를 앞두고 있었을 때라 초인적인 힘도 나왔겠지만(웃음), 결국 오프시즌부터 어떤 마음가짐을 갖느냐의 차이였죠. 체중 감량과 그에 따른 마음가짐이 바탕이 됐기 때문에 좋은 성적을 거뒀다고 생각합니다. 사무국도 마찬가지예요. 홈경기에 앞서 리허설을 여러 차례 하는 것과 문서로 확인 후 몇 차례 안 해보고 경기를 치르는 건 차이가 큽니다. 사무국도 팬들에게 감동을 주려면 오프시즌을 잘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전 기사를 보니 형제 사이라는 걸 몰랐던 직원도 있었더라고요.
이흥섭 단장 제가 과장이었을 땐데 당시 매니저가 “과장님은 꼭 이규섭 코치님만 보면 대화를 많이 하시더라고요. 많이 친하신가 봐요”라고 물었습니다. 매니저가 할 얘기는 아닌데…(웃음). 형제라는 얘기를 들으니 깜짝 놀라더라고요. 이제는 다 알겠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도 모르는 사람이 많았어요. (정)효근이도 트레이드로 우리 팀에 와서야 제가 고등학교-대학교 선배라는 걸 알았죠. 당연한 거라 생각해요. 저도 20년 차이 나는 대학 선배는 모릅니다(웃음).
2007-2008시즌 챔피언결정전에서 형(동부)이 우승했고, 동생(삼성)은 준우승했습니다. 어떤 시리즈로 기억에 남아있나요?
이규섭 감독 제가 그 시리즈에서 부진했어요. 무릎 바깥쪽 인대가 끊어진 것도 모르고 플레이오프부터 계속 뛰었거든요. FA 계약 후 첫 시즌이어서 정말 힘든 시즌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게다가 제 매치업 상대가 외국선수(카를로스 딕슨) 아니면 김주성이었죠. 이상민 감독님 팬들에게 “너 때문에 우리 오빠 우승 못 했잖아!”라는 혈서까지 받았어요. 고려대 시절에 계속 우승했고, 프로에 오자마자 통합우승을 해서 ‘열심히 하면 이렇게 계속 우승하는 거구나’라고 생각했었어요. 물론 2005-2006시즌 우승 이후 플레이오프는 꾸준히 갔지만, 더 이상 우승을 못 하면서 우승이 힘들다는 걸 새삼 깨달았습니다. 코치가 됐을 때는 ‘플레이오프 가는 것도 진짜 힘든 거였구나’라고 느꼈고요(웃음).
이흥섭 단장 그 시즌의 김주성은 ‘마징가Z’처럼 농구했어요. 기량이 물올랐고, 나이로 봐도 최전성기였죠. 레지 오코사가 있었지만 딕슨은 압도적인 외국선수는 아니었고, 삼성은 ‘가드왕국’이라 불릴 정도로 가드 전력이 화려했습니다. 그런데 희한하게 (이)광재를 못 따라다니더라고요(웃음).
당시 삼성을 꺾었던 게 DB가 농구단을 창단한 후 처음이자 마지막 우승으로 남아있습니다. 감독으로서 목표는 당연히 우승일까요?
이규섭 감독 어느 팀이든 우승을 생각하며 팀을 운영합니다. (우승이) 당연한 목표고 선수들에게도 똑같이 얘기했어요. 현실적인 목표라는 표현도 있지만 결국 프로팀이라면 다 같은 생각, 목표를 가지고 시즌을 준비한다고 생각해요.

이규섭 감독 얘기 안 나오는 감독이요. 그럼 성공한 거 아닐까요(웃음)? 선수들 잘하고 있다는 얘기만 나왔으면 좋겠어요. 개별적으로 면담을 하고 있어요. 이 자리에서 어떤 걸 준비하겠다고 다 말할 순 없지만, 선수들이 방향성을 헷갈리지 않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해요. 틀에 가두지도 않을 것이고요. 결국 선수가 잘해야 감독도 좋은 평가를 받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전술이 있어도 결국 선수가 못하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일단 오프시즌 훈련 계획을 문서화하고 있는데 거의 다 완성됐어요. 제가 자리를 비웠을 때도 코치들이 진행할 수 있도록 세부적인 부분까지 정리를 하고 있습니다. 삼성에서 감독대행을 맡았을 때는 사실 이상민 감독님이 했던 운영 그대로 이어가면서 시즌을 마무리하는 정도였습니다.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다르죠. 결정을 내려야 하는 부분도, 고민해야 할 부분도 많습니다. 선수들을 제재하기보단 시스템이 갖춰질 수 있도록 노력하려고요. DB가 잘 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하면서 시즌을 준비하겠습니다.
선수 시절부터 원정으로만 찾았던 원주를 홈으로 두게 됐습니다. 원주 팬들을 향한 한마디를 남긴다면?
이규섭 감독 ‘윈디’가 열성적인 팬덤이라는 건 유명합니다. 상대 입장에서 응원 때문에 위축될 때도 있을 정도였죠. 제 집이 용산인데 동네에서 돌아다니면 “농구선수셨죠?” 정도만 물어보시는데 원주는 식당, 카페 등등 어디를 가도 “우리 팀 감독님”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분은 덥석 제 손을 잡으셨죠(웃음). 국가대표 시절 원주에서 강화훈련을 한 적도 있는데 지원을 많이 해주셨습니다. 그만큼 원주는 농구에 진심인 도시예요. 팬들의 눈높이가 굉장히 높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상징적인 전임 감독도 있었고요. 부담도 되지만, 제가 이 팀에 온 이유와 해야 할 일에 대해선 명확히 알고 있습니다. DB가 잘 되는 것. 그게 제일 중요합니다. 당연히 팬들에 대한 감사한 마음도 갖고 있고, 관심도가 높은 만큼 매사에 신중하고 조심해야 합니다. 복장도 신경 써야 하고요. 감독이라면 그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규섭 감독은 형 이흥섭 단장의 영향을 받아 농구에 입문했다. 대경상고 시절 정식 농구선수가 된 이흥섭 단장은 뒤늦게 농구를 시작했음에도 한때 고교 랭킹 5위에 올랐고, 한양대에 진학했다.
“형이 농구하는 걸 보러 간 적이 있어요. 처음에는 그저 호기심이었지만, 제 평생 직업이 될 줄은 몰랐죠. 형이 대학 선발에 뽑히면서 흥미가 생겼어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선수가 됐다는 것에 기뻤고 저 역시 같은 길을 걷고 싶었죠.” 이규섭 감독이 8년 전 점프볼과의 인터뷰에서 남겼던 말이다.
이흥섭 단장의 영향을 받아 농구공을 잡았듯, 이규섭 감독의 두 아들도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았다. 이승준-이승민 형제는 농구 명문 용산고에서 엘리트 선수로 활약하며 프로선수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
“아내는 두 아들이 농구하는 걸 반대했어요. 대치동에 살았던 이유가 학업 때문이었거든요. 개인적으로는 스포츠, 언어는 어릴 때 배워두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틀을 잡아두면 몸이 기억하니까요. 이렇게 둘 다 농구할 줄 알았다면 더 어릴 때부터 시켰겠죠(웃음).”
조상현-조동현부터 이승준-이동준, 문정현-문유현 등에 이르기까지. 나란히 프로선수가 된 형제는 많았지만, 형제 모두 프로선수가 된 후 아버지를 적으로 만난 이들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허웅-허훈 형제의 아버지는 ‘농구대통령’이라 불렸던 허재 전 감독이다. 이들 가운데 장남 허웅은 허재 전 감독이 KCC 지휘봉을 잡고 있던 시절 부자 대결을 펼친 바 있다. 김승기 전 소노 감독의 두 아들 김진모-김동현도 프로선수가 됐고, 형제 모두 아버지가 이끄는 팀과 맞대결을 펼친 경험이 있다.
이규섭 감독도 언젠가 프로선수가 된 아들과 대결하는 날을 맞이할 수 있을까. 이를 위해선 전제조건이 성립해야 한다. 이승준-이승민 형제가 프로선수가 되기에 앞서 이규섭 감독이 사령탑으로서 롱런해야 한다. 롱런은 곧 구단이 납득할 만한 성적을 거둬 계약을 연장했다는 걸 의미한다. 이규섭 감독에게 부자 대결이 성사된다는 건 그야말로 ‘가문의 영광’인 셈이다.
이를 전하자 “와…. 그런 일이 생긴다는 건 축복이죠. 너무 행복할 것 같아요. 우리 모두에게 좋은 일이 생겨야 일어날 수 있는 일이잖아요. 아들과 같은 팀에서 뛴 르브론 제임스보다 더 행복할 것 같아요. 상상만 해도 재밌네요”라며 웃었다.
이를 듣던 이흥섭 단장은 “제가 20년 넘게 농구단에서 근무하고 있지만 동생과 같은 팀에서, 그것도 감독으로 만날 거라곤 상상도 못 했어요. 아니, 상상 자체를 하지 않았죠.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이렇게 이뤄졌잖아요. 모르는 겁니다”라며 에둘러 조카들을 응원했다.

이규섭 감독에게 농구 선배이자 아버지로서 두 아들에게 한마디를 남겨달라고 부탁했다. 이규섭 감독은 “아, 그건 감정이 올라올 것 같아서…”라며 말을 아꼈다. 그리곤 감정을 추스른 후, 격려와 조언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진심을 전했다.
“둘 다 열심히 노력하고 있어요. 꿈을 이룰 수 있을지는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는 건데 지금처럼 노력을 이어간다면 원하는 결과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저와 같은 코트에 선다면 정말 영광스러운 일일 텐데 그때는 저도 냉정하게 보여줘야죠. 물론 제가 쓴맛을 당할 수도 있겠지만…(웃음). 아이들은 새벽 6시에 나가서 밤 10시 반에 들어와요. 안쓰럽죠. 제가 직접 할 때는 당연한 거였는데 아이들을 보면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란 걱정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집에서는 농구 얘기를 안 해요. 제가 직접 가르치는 것도 생각 안 해본 건 아니지만, 어릴 때 해보니까 그건 아니더라고요. 농구는 코치에게 배워야 합니다. 스킬 트레이닝은 보내고 있어요. 다녀오면 어땠는지 물어보는 정도죠. 요새는 스킬 트레이너가 많잖아요. 저와 방향이 다르다 해도 아이들이 좋다고 하면 거긴 보내요. 농구는 받아들이는 사람이 거부감이 들거나 불편해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사진_문복주 기자, 이규섭 감독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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