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여자농구단 통역들의 봄날의 수다, 삼성생명 류해림 & 하나은행 이유진
- 매거진 / 김용호 / 2020-05-05 12:34:04

[점프볼=김용호 기자] 어려운 일이라는 건 각오했던 일. 생소한 일이었지만 스포츠가 좋다는 이유로 낯선 농구의 세계에 뛰어든 두 사람이 있다. 아직 농구장에서 보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지만 이들은 이미 막중한 책임감을 갖고 임무를 훌륭히 수행한 ‘프로’였다. 바로 삼성생명 류해림, 하나은행 이유진 통역이다. 긴 시즌의 스트레스를 벗어난 두 여자농구단 통역을 만나보았다.
※ 본 인터뷰는 농구전문매거진 점프볼 5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Q. 인터뷰로는 처음 뵙네요! 통역을 하게 된 계기부터 들으며 시작해볼까요?
해림 처음 통역이라는 업무를 해본 건 21살 대학생 때였어요. 제가 경영학을 전공했는데 마케팅 쪽에서 해외로 출장을 갈 기회가 생겼었거든요. 처음부터 전문적인 통역 역할은 아니었어요. 아르바이트로 시작해서 편하게 영어를 활용할 곳이 어디일까 하다가 워낙 좋아하던 스포츠가 생각이 난거죠. 마라톤이나 사이클 대회에서 통역을 했는데, ‘트루 드 코리아’라는 사이클 대회에서 배구단 통역 언니를 만나면서 프로 구단도 접하게 됐죠.
유진 저는 일단 어렸을 때부터 스포츠 자체를 너무 좋아했었어요. 종목을 가리지 않고요. 축구나 농구, 수영은 취미로도 직접 했었는데, 이 분야에서 일을 하면 정말 즐겁게, 그리고 보람을 느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죠. 스포츠 분야에서 제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해봤더니 영어더라고요. 그래서 스포츠 구단 통역을 택하게 됐어요.

Q. 류 통역님은 두 시즌, 이 통역님은 이제 첫 시즌을 마쳤어요. 스포츠가 좋아서 시작하긴 했지만, 상상했던 것보다 다른 부분도 많았을 것 같아요.
해림 저는 원래 농알못이었어요(웃음). 그래서 당장 경기에 관한 내용을 통역하는 게 힘들어서 공부를 정말 많이 했는데, 농구가 알면 알수록 재밌더라고요. 밖에서 보던 농구는 그저 화려하기만 했는데, 팀에 들어오니 선수들은 주인공이고 지원스태프는 그림자 역할이라는 걸 알았죠. 제 인생의 주인공은 저였는데, 서포터 역할을 하다 보니 선수가 절 인정해 줬을 때 보람을 느끼게 되더라고요. 선수가 “You are my favorite”이라는 말을 해줄 때 정말 좋았어요. 외국선수는 팀에서 정말 중요한 존재인데, 제 액션으로 인해 경기가 수월하게 풀릴 수 있도록 숨은 역할을 하는 게 뿌듯하죠.
유진 이전까지 저에게 스포츠는 취미로 즐기는 거였는데, 팀에 들어오니 책임감이 생기면서 스포츠 자체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어요. 현장에 나가면 제가 왜 이 일을 하는지 다시 알게 되고 보람을 느끼게 됐죠. 그런 자부심이 느껴져서 좋았어요. 저는 예전에 광고기획사 인턴, 영어학원 강사, 행사 통역 등 여러 가지 일을 해봤는데, 특히 지금 하는 이 일은 남들한테 자랑하고 싶을 정도로 자부심을 느껴요.
Q. 많은 통역들이 말씀하시길 통역은 외국선수들의 매니저라고 하더라고요. 두 분은 직접 통역 업무를 해보니 어떠셨나요?
해림 제가 두 시즌 동안 5명의 외국선수들(아이샤 서덜랜드, 티아나 하킨스, 카리스마 펜, 리네타 카이저, 비키 바흐)을 만났어요. 다른 팀 통역들은 두 명을 만날 시간 동안 예상치 못한 상황들이 더 많았죠. 선수의 성격이 까다롭다거나 하는 건 예상 가능한 범위인데, 하킨스 선수의 경우에는 아기들이 있었잖아요. 제가 그때는 유모 역할까지 해야 했어요. 하킨스가 사촌동생을 유모로 데려오긴 했었는데, 경기가 끝나면 그 사촌동생도 하킨스도 지쳐있죠. 저도 경기를 하는 동안 쉰 건 아니지만 아기들이 저를 많이 좋아해줬거든요.
유진 저는 이렇게 하루 종일 휴대폰을 끼고 사는 일인 줄 몰랐어요(웃음). 잠들기 전에도, 아침에 일어날 때도 계속 휴대폰을 손에 쥐고 있게 되더라고요. 마이샤(하인스-알렌)든 (이훈재) 감독님이든 언제 급한 연락이 올지 모르잖아요. 휴식기에도 통역은 외국선수랑 함께 있어줘야 하니까 집을 이렇게 오랫동안 가지 못할 줄은 몰랐어요. 그래도 제가 그렇게 바쁘게 지내는 걸 마이샤가 눈치 채고 집에 강아지 보러 가라고 배려도 해주더라고요. 시즌이 끝나고 나니 지금은 휴대폰과 잠시 치워둘 수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해요.

Q. 힘든 일이 더 많았겠지만, 한 두 시즌을 치러보니 통역을 하길 잘했다는 순간도 있었겠죠?
유진 저도 경기를 이겼을 때 통역을 하길 잘했다 싶어요. 힘든 경기일 수도 있겠다 싶을 때 이기면 짜릿하거든요. 저희 팀이 길었던 KB스타즈 전 연패를 끊어냈을 때도 그렇고, 팀이 언더독의 입장에서 포기하지 않고 승리를 거머쥘 땐 그 선수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아요. 삶에 용기도 얻고요. 사람이 왜 계속 노력을 하고 목표를 이뤄야하는지 많이 느껴요. 저 역시 외국선수의 “Thank you” 한 마디에도 큰 보람을 느끼고요. 선수가 좋아하는 간식을 갖다 주고 고맙단 말 한마디만 들어도 그날은 그렇게 보람찰 수가 없답니다.
해림 당연히 경기를 이겼을 때죠. 저희 팀이 2018-2019시즌에 챔피언결정전을 갔을 때는 아드레날린이 뿜어지는 느낌을 받았어요. 많은 분들이 플레이오프에서 우리은행이 이길 거라는 예상을 했었는데, 저희가 챔피언결정전에 올라갈 때 살면서 가장 큰 희열을 느꼈어요. 또, 외국선수가 자신이 만나본 통역 중 최고라고, 소울메이트라고 평가해줬을 때 좋았죠. 통역은 전 세계의 친구들을 만드는 일이라 생각해요. 올 시즌에 만났던 바흐는 그 친구 집에서 넷플릭스를 보면서 함께 누워있고, 심지어 캘리포니아에 있는 자기 집에 와서 같이 있자고 할 정도로 친했거든요. 이 일은 단순히 언어만 전달하는 역할이 아니라 하나의 관계를 만드는 일인 것 같아요.
Q. 그렇다면 2019-2020시즌을 돌아보면 어땠나요.
유진 저는 첫 시즌이어서 비교할 수 있는 표본이 있는 건 아니지만, 팀이 마지막까지 좋은 분위기 속에서 희망을 찾은 것 같아 좋았어요. 새로운 감독님 밑에서 새 출발을 하는 거라 선수들도 활기찼고요. 선수들이 프로의식을 가지고 앞으로 점점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 그리고 감독님이 강조하시는 이긴다는 마인드에 저도 긍정적인 생각으로 첫 시즌을 마친 것 같아요.
해림 저희 팀이 여태까지 꼴찌를 한 적이 없었다고 들었어요. 카이저의 부상에, 바흐도 제가 친하다보니 겉으로 비춰지는 것보다 훨씬 몸이 좋지 않다는 걸 알았거든요. 언니들도 그렇고요. 결과는 아쉽지만 다음 시즌을 위한 초석이 아닐까 해요. 팀 분위기만큼은 지난 시즌보다 좋지 못한 것도 아니었거든요. 팀이 다시 치고 올라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Q. 두 분이 다음 시즌에 더 활짝 웃으셨으면 좋겠네요. 뒤를 돌아본 김에 올 시즌에 가장 뿌듯했던 순간도 꼽아볼까요?
유진 두 가지가 생각이 나요. 먼저 마이샤가 시즌 중에 안정감을 느끼지 못하고 감정 기복이 생겼다고 느꼈던 때가 있었어요. 아무래도 타지이다 보니 개막하고 한 달 정도 됐을 때 힘들어했던 기억이 나요. 그때 마이샤가 많이 의지하는 강아지를 한국으로 데려오려 했었거든요. 근데 그 절차가 생각보다 복잡하더라고요. 그래도 어렵사리 강아지를 데려와서 마이샤가 안정을 찾는 걸 보며 너무 뿌듯했어요. 두 번째로는 통역을 위한 농구 용어를 열심히 공부했는데, 마이샤가 많이 공부했다고, 실력이 늘었다고 했을 때에요. 통역은 팀 내에 한 명이다보니 평가해줄 선배 스태프가 없기 때문에 외국선수의 코멘트 하나가 크게 다가오거든요.
해림 저는 외국선수 뿐만 아니라 (김)한별 언니도 있고, 올 시즌에는 신인으로 (최)서연이도 들어왔잖아요. 3명을 케어하게 됐는데, 특히 한별 언니한테 인정을 받을 때가 가장 뿌듯해요. 예전에 있던 통역 언니도 한별 언니와 오랜 시간을 지냈는데, 저한테도 “너 농구가 많이 늘었다. 네가 최고다. 진짜 고맙다”라는 말을 해주면 가슴에 많이 와닿더라고요. 사실 한별 언니가 곁을 잘 주지 않는 타입이에요(웃음). 근데 언니가 저한테 곁을 주니 너무 뿌듯하죠. 아, 그리고 외국선수가 선물을 한 번 해줬었는데, 저한테 꼭 주고 싶었던 선물이라 하더라고요. 사실 외국선수에게 선물을 받을 거란 생각을 못했었는데, 다른 통역들한테는 비밀로 해달라면서 줬어요. 하하. 외국선수가 코트 밖에서도 제 생각을 했다는 마음이 너무 고마웠어요.
Q. 자연스러운 과제일 것 같은데, 통역 업무가 힘들 때면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해림 다행히 올 시즌은 그렇게 힘든 일은 없었어요. 다만, 지난 시즌에는 까다로운 선수 한 명이 있어서 제가 머리카락이 빠질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었어요. 누군지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웃음). 제 본래 업무로 힘든 건 괜찮지만, 그 외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으니 통역 업무에 대한 경계선이 애매해지더라고요. 그럴 때면 일단 원인이 외국선수니까 그 선수와 직접 풀어보려고 해요. 대화로 푸는 편이죠. 그리고 일단 저는 삼성생명에서 너무 좋은 직장 상사들을 만났어요. 사무국장님, 감독님, 코치님들 모두 너무 좋은 분들이셔서 축복받았다고 생각해요.
유진 어차피 시즌 중에는 팀과 함께 있어야 해서 가족이나 친구들을 자주 못 보잖아요. 합숙을 하면서 좋은 점이 있다면 방과 헬스장이 가깝다는 거예요. 뭔가 힘든 게 있으면 저녁에 운동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또, 저 같은 경우는 스태프분들에게 고마운 게 많아요. 정말 좋은 사람들과 일을 하고 있는데, 특히 장유영 매니저와 동갑이고 방도 같이 써서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나누곤 하죠.

Q. 두 분 모두 좋은 통역이 되실 거란 느낌이 들어요. 자신의 발전을 위해 욕심나는 부분도 있나요?
해림 사실 농구가 이렇게 어려운 종목인지도 몰랐고, 영어도 한국에서 배웠는데, 둘 다 배우면 배울수록 새로운 게 나와요. 그래서 꾸준히 농구 공부를 하는데, 이 분야에 있어 계속 성장하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평소에 NBA를 보기도 하고, 외국사이트를 돌아다니며 용어 공부도 하고요. 지역마다 팀마다, 그리고 선수들마다 쓰는 단어가 달라서 계속 공부를 해야 할 것 같아요.
유진 저는 단순히 영어 통역이 아니라 농구단 통역이잖아요. 해림 언니가 말한 것처럼 농구에 대한 깊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나의 전술, 하나의 용어를 공부하더라도 그게 언제 쓰이는지, 포지션에 따라 어떻게 바뀌는 지 정확히 알아야 하잖아요. 저는 김완수 코치님이 초반에 스파르타라면 스파르타식으로 영상 편집을 정말 많이 주문하셨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가장 고마운 분이죠. 코치님 덕분에 팀이 원하는 자료를 빠르게 뽑아내게 됐어요. 통역은 어찌 보면 외로운 포지션인데 코치님이 이 일을 빨리 배울 수 있게 해주셨어요. 앞으로도 농구에 대한 지식을 더 깊게 해보려고 해요.
Q. 앞으로 더 많은 외국선수들을 만나게 되실 텐데요. 혹시 만나고 싶은 스타일의 외국선수가 있나요?
해림 전 사람 대 사람으로 잘 맞는 선수요. 농구도 잘하면 금상첨화죠. 농구 실력은 구단에서 판단해서 뽑으시는 거고, 저는 그저 오픈 마인드를 가지고 저와 교류를 할 준비가 돼있는 선수를 만나고 싶어요. 그럼 평생 친구가 될 수도 있잖아요. 사실 짧은 시간에 5명이나 만나다보니 저를 이용하는 선수도 있었어요. 저를 친구로 생각하고 부탁을 하는 거랑, 부탁할 게 있을 때만 저를 찾는 건 느낌이 다르거든요. 개인적인 바람이지만, 도움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선수를 만나고 싶어요.
유진 저 같은 경우에는 제가 줄 수 있는 도움에 대해 부담을 많이 느끼지 않는 외국선수였으면 좋겠어요. 마이샤는 재밌기도 하고 오픈 마인드를 가졌지만, 워낙 독립적인 성격이라 그런지 제 도움을 받는 걸 종종 부담스러워하더라고요. 저는 외국선수를 위해 많은 걸 해주고 싶기 때문에 빚이라 생각하지 말고 제 도움을 받아줄 수 있는 선수였으면 좋겠어요.

Q. 두 분이 통역으로서 농구장에서 좋은 추억을 쌓아나가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먼 미래에 어떤 통역으로 기억되고 싶은지 전해주세요.
유진 가장 원하는 건 정확하게 통역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선수들이 비시즌에 열심히 준비한 걸 반 년 간의 시즌에 모두 쏟아 붓는데, 저도 그 현장에 영향을 끼치는 사람으로서 정확히 전달하는 역할을 해내야죠. 외국선수가 명확하게 작전 수행을 할 수 있게 하고, 훈련한 만큼 코트 위에서 실력을 발휘할 수 있게끔요. 실력파 통역이 되고 싶어요(웃음).
해림 제 영어 이름이 ‘리아’인데, “리아가 있으면 괜찮아”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통역이 되고 싶어요. 저로 인해 외국선수가 기분이 좋아지고 팀에 애정을 가지면 2점 넣을 게 3점이 될 수도 있잖아요. 그렇게 외국선수와 팀의 관계를 잘 만들어주는, 선수가 소속팀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다리 역할을 했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하하.
류해림 통역 프로필_
1991년 10월 28일생, 연세대학교 경영학 전공, 2018~ 용인 삼성생명
이유진 통역 프로필_
1996년 6월 11일생, 이화여자대학교 국제학부 전공, 2019~ 부천 하나은행
# 장소 제공_ 정월(서울 강남구 강남대로102길 46)
# 사진_ 박상혁 기자, WKBL 제공
점프볼 / 김용호 기자 kk2539@jumpba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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