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출범 30주년 TMI’ 알아두면 쓸 데 있는 KBL 잡학사전

매거진 / 최창환 기자 / 2026-10-23 06: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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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최창환 기자]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어느덧 출범 30주년을 앞두고 있다. 1997년 출범한 KBL은 팬들과 희로애락을 함께하며 역사를 쌓아왔다. 화려한 플레이와 명승부로 즐거움을 선사하기도 했지만, 때론 웃지 못할 해프닝으로 제도를 손질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알아두면 쓸 데 있는 KBL의 30가지 TMI를 타임테이블과 함께 돌아봤다.

※본 기사는 농구전문 매거진 점프볼 10월호에 게재됐습니다.

1997년

원년 시즌에 등록됐던 91명의 국내선수 가운데 억대 연봉을 받았던 선수는 총 7명이었다. 이 가운데 전희철, 허재가 나란히 1억 2000만 원을 받으며 ‘연봉 킹’에 이름을 올렸다. 연봉 2억 원 시대를 처음 열었던 선수는 서장훈이다. 신인이었던 1998-1999시즌에 SK와 2억 원에 계약했다. 드래프트가 아닌 신생팀 지명을 통한 입단이었기에 가능한 연봉 계약이었다.

1997년 2월 1일
안양 SBS와 인천 대우증권이 치른 KBL 1호 경기에서 나온 첫 득점의 주인공은 이상범이었다. 오성식의 패스를 받아 45도에서 던진 3점슛이 림을 맞고 튀어 오른 후 그물을 갈랐다. KBL 첫 득점이자 3점슛이었으며, 이상범은 1호 리바운드를 따낸 선수이기도 하다. SBS는 108-107로 이기며 KBL 역대 최초의 승리를 거둔 팀으로도 이름을 남겼다.

1997년 6월 16일
KBL 출범 후 최초의 트레이드가 이뤄졌다. 샐러리캡에 압박을 느낀 SBS가 주전 가드 오성식, 박수호(현 여자대표팀 감독)를 LG에 넘겨주며 현금 1억 2000만 원을 받았다. 오성식은 “실업 시절 내가 그렇게 원해서 갔던 팀이었는데 트레이드를 통보받아 섭섭하긴 했다. 결과적으로는 잘 풀렸다. LG의 재활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어서 무릎 부상을 빠르게 털어낼 수 있었다”라고 돌아봤다.

1997-1998시즌
4년 동안 농구단 준비에 공을 들였던 진로그룹은 LG와 함께 막내 구단으로 KBL 회원사가 됐고, 팀명 ‘진로 맥카스’를 발표했다. 맥주 브랜드에서 따온 명칭이었으며, 충북 청원군에 맥주 공장이 있다는 것을 고려해 인근 도시인 청주를 연고지로 확정했다. 손규완, 윤제한 등을 축으로 창단 멤버까지 구성했던 진로는 창단식을 치르기도 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IMF 여파로 경영난을 겪게 된 탓이었다. 진로를 인수한 팀이 SK며, SK가 창단 초기 청주를 연고지로 사용한 배경이었다. SK와 더불어 제일제당(현 CJ), 한솔도 당시 진로그룹과 매각 협상을 벌인 기업이었다. 여기서 생기는 의문, “카스는 OB가 만드는 맥주 아냐?” 맞다. 진로가 탄생시켰지만, 1999년 OB가 인수하면서 OB를 대표하는 맥주가 됐다.

1998-1999시즌
주축선수 전희철, 김병철이 동시에 입대한 동양은 KBL 역대 최다인 32연패 늪에 빠졌다. 전력이 약했던 것은 분명하지만, 예기치 못한 변수도 겪은 시즌이었다. 8경기 평균 26.3점 11.6리바운드로 활약했던 그레그 콜버트가 돌연 미국으로 돌아간 것. 국내선수 1, 2옵션에 외국선수 1옵션까지 떠났으니 32연패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모르겠다. “아내가 자기 친구와 바람났다고 하더라. 가만두지 않겠다며 떠났다. 돈이고 뭐고 다 필요없다고 했다.” 당시 동양 관계자의 회고다. 아직 미혼이지만 콜버트의 마음도 이해된다.

2001-2002시즌

KBL에서 뛰었던 최초의 혼혈 선수는? 토니 러틀랜드도, 이승준-이동준 형제도, 전태풍도, 문태종-태영 형제도 아니다. 미국인 아버지-한국인 어머니에서 태어난 권종오가 주인공이다. 군산고 출신 권종오는 실업 시절 기아자동차에 입단했고, KBL 출범 후에는 기아-현대를 거쳤다. 190cm의 신장에 덩크슛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정도의 운동능력을 지녔지만, 이외에 내세울 무기가 없었다. KCC에서 뛰었던 2001-2002시즌을 끝으로 은퇴했다. 통산 기록은 21경기 평균 4분 43초 1.6점.

2003년 12월 20일
SBS는 KCC와의 홈경기에서 4쿼터 종료 5분 16초 전 정덕화 감독이 심판 판정에 항의한 끝에 테크니컬 파울 누적으로 퇴장당했다. 지휘봉을 넘겨받은 이상범 코치는 남은 작전타임 2회를 연달아 사용했고, 이후에도 선수들을 코트로 내보내지 않으며 경기를 포기했다. 사상 초유의 몰수패로 인한 파장은 예상보다 컸다. 이튿날 김영기 총재가 사퇴했고, 이어 박효원 사무국장과 이인표 경기위원장 등 집행부도 나란히 물러났다. SBS에 중징계가 내려졌다. 정덕화 감독에게 300만 원, 구단에 1억 원의 벌금이 부과됐고 이충기 SBS 단장은 2시즌, 이상범 코치는 3시즌 자격정지 징계를 받았다. 이후 징계가 완화돼 이상범 코치에 대한 자격정지는 2004년 10월까지로 감면됐고, SBS에 대한 벌금은 3000만 원으로 완화됐다.

2004년 3월 7일
KBL 구성원 중 1명이라도 타임슬립 영화의 주인공이 된다면, 시간을 2003-2004시즌으로 되돌리지 않을까. 몰수패 파문에 이어 정규시즌 마지막 날 팬들을 기만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개인 타이틀을 밀어주기 위해 대놓고 3점슛을 수비하지 않고, 상대가 만드는 블록슛의 희생양이 되어주는 경기가 곳곳에서 벌어진 것. 이로 인해 우지원은 최다득점(70점), 문경은은 최다 3점슛(22개) 기록을 세웠지만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기록으로 남았다. 전자랜드-TG삼보에서는 무려 3명(앨버트 화이트, 김주성, 정훈)이 트리플더블을 달성하기도 했다. KBL은 이 여파로 해당 시즌부터 개인 타이틀에 대한 시상을 폐지했고, 이는 ‘밀어주기’ 사태 이후 20시즌 만인 2023-2024시즌에 부활했다.

2003-2004시즌
2003 외국선수 드래프트 1라운드 5순위로 삼성의 지명을 받은 셸리 클라크는 단상에서 김동광 감독과 기념사진을 찍은 후 돌연 삼성 합류를 거부했다. 클라크는 지명을 받은 직후 삼성에 뒷돈을 요구했고, 삼성이 이를 거부하자 계약서에 사인하지 않은 채 현장을 떠났다. 당시 관계자들에 따르면 클라크는 다른 팀과 가계약을 맺은 상태였고, 월급의 일부도 지급된 터였다. 드래프트 제도의 폐단이 드러난 일화였고, 이는 외국선수 제도가 드래프트에서 자유계약으로 바뀌게 된 결정적 계기 가운데 하나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2003-2004시즌
시즌 일정이 늘어나지 않는 이상 전희철이 2003-2004시즌에 세운 55경기 출전은 불멸의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KCC 소속으로 시즌을 맞이한 전희철은 18경기를 치른 시점서 SK로 트레이드됐다. 전희철과 홍사붕이 SK 유니폼을 입었고, 조성원과 강준구는 KCC로 향했다. 트레이드가 발표된 시점, SK는 KCC보다 1경기를 덜 치른 터였다. 전희철은 이적 후 남은 37경기를 모두 소화했고, 두 팀에 걸쳐 55경기를 소화하며 시즌을 마쳤다. KBL은 이후 제도를 개선, 동일한 경기를 소화한 팀의 선수에 한해서 트레이드가 가능하다는 조항을 추가했다.

2005년 2월 2일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이 이어지던 도중, 대학 졸업 예정자들이 한 감독의 손짓에 너나 할 것 없이 드래프트 현장을 빠져나갔다. “다들 나가!”라며 집단 거부를 주도한 이는 최부영 당시 경희대 감독이었다. 2순위 김효범, 3순위 한상웅 등 외국 경력을 이유로 높은 지명 순위로 선발되는 선수가 연달아 나오자 불만을 표출한 것. 김효범은 당시 사유가 적힌 서한을 보낸 후 트라이아웃에 불참한 상태였다. “평생 프로농구 무대만 바라보고 온 선수들이 재미교포들 때문에 지명을 못 받는다면 누가 책임질 것인가.” 최부영 감독의 외침이었다.

2005-2006시즌
외국선수 합계 400cm 신장 제한이 있던 시절, 전자랜드는 코칭스태프와 불화를 겪은 앨버트 화이트를 탱 해밀턴으로 교체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1옵션 리 벤슨의 신장이 203cm였던 만큼, 해밀턴의 신장이 197cm 미만이어야 벤슨-해밀턴 조합을 꾸리는 게 가능했다. ‘모의고사’에서 신장이 195cm 안팎으로 측정됐던 터라 안심하고 있었지만, KBL 공식 신장 측정에서 해밀턴의 신장은 197.6cm가 나왔다. 0.6cm 차이로 등록이 불발될 위기에 놓인 것. 화이트는 이미 미국으로 돌아간 터였다. 전자랜드는 위기에 슬기롭게 대처했다. 강력한 빅맨을 원했던 오리온스에 벤슨을 넘겨주며 기량이 한 단계 낮은 안드레 브라운을 받았다. 박지현까지 영입하며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을 넘겨주는 후속 딜이 포함된 트레이드였다.

2006년 4월 30일
LG는 전자랜드로부터 현금 3억 원을 받으며 조우현, 정선규, 정종선을 넘겨줬다. 언뜻 이해되지 않는 트레이드에 대한 의문은 FA 시장이 막을 내린 후 해소됐다. 로스터가 황무지가 된 LG는 KTF에서 뛰었던 FA 조상현을 영입했고, KTF는 임영훈을 보상선수로 지명했다. 크게 보탬이 되지 않는 전력이었지만, KTF로선 임영훈 외에 마땅히 택할 선수가 없었다. 보상선수 지명이 끝나자, LG는 전자랜드와 시간 차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황성인과 3억 원을 전자랜드에 넘겨주며 박지현, 박훈근, 박규현, 임효성을 영입한 것. LG가 제도의 빈틈을 악용, 보상선수 유출에 따른 전력 약화를 최소화한 셈이었다. KBL은 이후 5라운드부터 플레이오프까지였던 트레이드 금지 기간을 6월 말까지 늘렸다.

2007년 5월 30일

이상민의 이적은 KBL의 규정을 바꿀 정도로 파장이 컸다. 2007년 FA 최대어 서장훈을 영입한 KCC는 보호선수 명단을 서장훈, 임재현, 추승균으로 꾸려 삼성에 제출했다. 당시는 보호선수 명단이 공개됐을 뿐만 아니라 보호선수가 3명에 불과했다. 삼성은 이상민을 지명하지 않는 대신 보상금(14억 1000만 원)과 2008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을 요구했지만, KCC는 이를 거절했다. 대학 4학년 김민수, 윤호영, 강병현 뿐만 아니라 NBA리거 하승진도 드래프트에 참가할 수 있다는 루머가 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삼성은 협상이 틀어지자 이상민을 택했고, KCC는 최고의 인기스타를 놓친 것에 대한 팬들의 비난으로 홍역을 앓았다. KBL은 이후 보호선수를 4명으로 늘렸고, 보호선수 명단도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2007-2008시즌
2007년, KBL은 특정 선수의 연봉이 팀 샐러리캡의 40%를 초과할 수 없다는 규정을 신설했다. ‘뒷돈’을 근절하자는 취지였지만, FA 원소속팀 우선 협상 기간이 있던 당시에는 선수 입장에서 족쇄나 다름없었다. 원소속팀이 샐러리캡의 40%에 해당하는 금액을 제시하면, 선수는 의사와 관계없이 계약을 맺어야 했다. ‘FA 최대어’였던 김주성은 당시 샐러리캡의 40%에 해당하는 6억 8000만 원에 계약하며 연봉 1위에 올랐지만, 신설된 규정으로 인해 자신의 가치를 온전히 평가받진 못했다. 연봉 상한선은 2012-2013시즌을 끝으로 폐지됐다.

2007년 7월 22일

“로빈슨, 나와주세요. 이 자리에 없습니까?” 2007 외국선수 드래프트 현장에서 웃지 못할 일이 일어났다. 허재 KCC 감독은 2라운드 8순위로 제이슨 로빈슨을 지명했지만, 그는 현장에 없었다. 2라운드가 막바지로 향할 때까지 이름이 불리지 않자 지명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 공항으로 향했던 것. KBL은 다른 선수를 지명하라며 재촉했지만, KCC는 선수 자격 박탈 조치를 두고 거세게 항의했다. 결국 KCC와 KBL은 지명 순위를 21순위로 조정하는 것에 합의했고, 에이전트의 연락을 받은 로빈슨은 택시를 타고 부랴부랴 현장으로 돌아와 KCC 유니폼을 입었다. 2007-2008시즌도 완주했다.

2009-2010시즌
명장, 슈퍼스타, 초호화 외국선수 등 SK는 성적을 내기 위해 영입할 수 있는 모든 분야에 투자했지만, 좀처럼 암흑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서장훈이 떠난 2002-2003시즌부터 10년 사이 플레이오프에 오른 건 2007-2008시즌이 유일했다. 비과학적인 방법까지 총동원했다. 농구단 로고에 있는 칼은 제작 초기 아래 방향을 향해있었다. “이래서 우리가 위로 올라가지 못하는 거야!” SK는 미신이라도 믿는 심정을 담아 2009-2010시즌에 칼의 방향을 위로 바꿨지만, 그래도 플레이오프에 못 오른 건 마찬가지였다. SK를 암흑기에서 구한 건 김선형이었다. KBL에 데뷔한 2011-2012시즌은 플레이오프로 이끌지 못했지만, 속공이라는 확실한 팀 컬러를 주입했다. 이어 2012-2013시즌에 KBL 역대 최다승(44승)을 안기는 등 KT로 떠나기 전까지 2차례 챔피언결정전 우승, 4차례 정규시즌 우승을 이끌었다. 그야말로 암흑기에 등장한 흑기사였다.

2011-2012시즌

오리온스는 트레이드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에 합의, 이면 계약 이슈로 날을 세웠던 김승현에 대한 임의탈퇴를 철회했다. 이후 LG와 김승현-김현중 1대1 트레이드에 대한 구두 계약까지 마쳤다. 김현중의 경기수를 조절하면서까지 트레이드를 준비한 사이, 오리온스는 LG와의 약속을 깨고 삼성과 김승현-김동욱 트레이드를 발표했다. “선수가 원하는 팀에 보내주기로 한 조항이 있었다”라는 부연설명도 곁들였다. 격분한 LG는 이의 신청을 통해 오리온스에 피해 보상금 100억 원, 김현중의 1경기 결장에 따른 보상금 463만 원(연봉의 1/54),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 오리온스 구단주의 공식 사과를 요청했다. 이후 심용섭 오리온스 단장이 직접 사과하자 LG는 이를 더 이상 문제 삼지 않기로 했고, KBL은 오리온스에 제재금 500만 원을 부과했다.

2012-2013~2013-2014시즌
2012년 11월 2일, KCC를 75-65로 꺾으며 시작된 SK의 홈 연승 행진은 무려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이어졌다. 2012-2013시즌 잔여 홈경기에서 모두 승, 종전 기록(모비스 12연승)을 훌쩍 뛰어넘는 홈 23연승을 달성한 SK는 2013-2014시즌 초반 4경기를 더해 무려 홈 27연승이라는 역사를 만들었다. 이후 전자랜드(17연승), KGC(15연승), 삼성(13연승)이 역사에 도전했지만 SK가 김선형, 애런 헤인즈 등을 앞세워 만든 27연승은 여전히 깨지지 않고 있다. 앞으로도 깨지지 않을 불멸의 기록 가운데 하나로 남지 않을까.

2013년 1월 23일

2011-2012시즌에 창단 첫 우승을 달성했던 KGC는 이를 기념하는 과정에서 우를 범했다. 외국선수 크리스 다니엘스, 외국인 코치 스티브 영 코치에게 우승 반지를 전달하지 않은 것. 이 사실은 2012 외국선수 트라이아웃 현장에서 외국선수들 사이에서 급속도로 퍼져나갔고, 해를 넘긴 1월까지도 지급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져 결국 언론에 의해 보도됐다. KGC는 이후 “제작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다. 어떠한 의도를 가졌던 건 아니다. 잘못된 부분은 시정해 나가겠다”라며 뒤늦게 다니엘스, 영 코치에게 우승 반지를 전달했다.

2013년 1월 26일
올스타게임에 앞서 진행된 이벤트(레전드 올스타게임)에 출전했던 강동희 동부 감독이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았다. 벤치에 앉아 덩크 콘테스트를 관전하던 도중 추락한 항공로봇에 얼굴을 맞은 것. 항공로봇은 KT가 김현민의 덩크 콘테스트에서 선보일 퍼포먼스를 위해 마련한 기기였고, 이 가운데 한 대가 오작동을 일으켜 사고가 일어났다. 강동희 감독은 곧바로 응급실로 향했고, 턱 아래 부분이 약 4cm 찢어져 12바늘을 꿰맸다.

2013년 12월 18일
무려 8명의 선수가 오가는 트레이드가 백지화될 뻔했다. KT는 전태풍, 김승원, 김종범, 랜스 골번을 받았고 김도수, 장재석, 임종일, 앤서니 리처드슨이 오리온스로 향했다. 트레이드 발표 후 문제가 생겼다. 김도수가 KT 소속일 때 받은 도핑테스트에서 양성 반응이 나와 KBL로부터 9경기 출전정지 징계를 받은 것. 오리온스가 이를 문제 삼으며 강력히 항의했지만, KT가 2014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을 넘겨주는 것을 추가 조항으로 넣으며 사태는 일단락됐다. 전창진 KT 감독은 마지막 맞대결 후 추일승 오리온스 감독과의 악수를 거부하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오리온스가 KT로부터 받은 지명권으로 선발한 선수는 이호현(7순위)이었다.

2015년 4월 2일

모비스와 동부의 챔피언결정전 3차전 도중, 경기 보조 계시원이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나가 경기가 5분 동안 지연됐다. 동부가 득점에 성공한 직후 유재학 감독은 작전타임을 요청했지만, 본부석은 볼 데드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이에 유재학 감독이 항의하자, 경기 보조 계시원이 중도 퇴장한 것. KBL은 “경기 진행이 매끄럽지 못했던 사항에 대해 팬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앞으로 안정적인 경기 운영을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을 약속드린다”라며 사과문을 발표했다.

2015-2016시즌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오리온 농구단의 출범 초기 명칭은 대구 동양 오리온스였다. 2003년 구단 최대 주주였던 동양제과가 사명을 오리온으로 변경하면서 명칭도 대구 오리온스로 바뀌었고, 2011년 연고지를 고양으로 이전하며 고양 오리온스가 됐다. 2015년, 또 한 번의 명칭 변경이 있었다. 오리온스는 모기업 명칭과 농구단 명칭을 분리하기 위해 구단 공식 소셜미디어로 명칭 공모를 진행했다. 이를 통해 타 팀들처럼 지역명+기업명+팀명으로 이뤄진 새로운 명칭을 선보일 계획이었지만, 농구단의 시선을 사로잡는 아이디어는 없었다. 결국 새로운 명칭은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로 확정했다. 오리온은 이 명칭으로 맞이한 2015-2016시즌에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달성했고, 마지막 시즌이 된 2021-2022시즌까지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2018년 1월 28일
창단 40주년을 앞뒀던 삼성은 등번호 11번에 대한 영구결번을 발표했다. 삼성을 대표하는 선수로 활약했던 서장훈, 이상민의 업적을 모두 기리는 의미에서 하나의 등번호에 2명을 모두 영구결번하기로 했다. 구체적인 영구결번식 날짜까지 담겨있었지만, 삼성은 보도자료 발표 2시간 만에 이를 철회했다. “영구결번 당사자와 협의가 다 됐다고 생각했는데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라며 계획을 백지화했다. 세월이 흘렀고, 이제 11번은 서장훈 또는 이상민으로 영구결번할 수 없는 번호가 됐다. ‘사실상 영구결번’으로 여긴 번호였으나 2019-2020시즌 천기범이 사용하며 봉인 해제됐고, 지난 시즌은 삼성으로 돌아온 이관희의 등번호가 11번이었다. 올 시즌은 임동언이 11번을 달았다.

2018년 12월 12일
KGC와 KCC의 경기에서 보기 드문 일이 일어났다. KCC가 3쿼터 첫 공격을 코트 체인지 없이 똑같은 골대를 향해 진행했고, 심지어 송교창이 득점까지 올렸다. 김승기 KGC 감독이 항의했지만, 득점은 정정되지 않았다. 심판진은 KBL 경기 규칙 제44조 정정할 수 있는 실수 2항 ‘실수가 발생하고 그것이 발견되기 전에 발생한 파울, 득점, 경과된 시간 그리고 다른 추가적인 사항은 유효한 것으로 남는다’라는 조항에 의거, KCC의 득점을 인정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애초 3쿼터 첫 공격을 해야 할 팀은 KCC가 아닌 KGC였다. 보기 드문 미숙한 경기 운영이 2차례 나오자, KBL은 사후 조치를 통해 해당 심판들에게 내부 징계를 내렸다.

2018년 4월 6일
“허리 펴세요. 또 한 번 불량한 자세가 나오면 안 됩니다.” “다 폈어요.” KBL 직원과 찰스 로드가 신장 측정을 두고 긴장감 넘치는 대화를 주고받았다. KBL은 2018-2019시즌부터 외국선수 장단신 제도를 개편했다. 장신은 200cm 이하, 단신은 186cm 이하로 제한했다. 이전 시즌 신장이 200.1cm로 표기됐던 로드로선 신장을 조금이라도 낮춰야 KBL에서 커리어를 이어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신장을 측정하는 데에는 약 10분이 소요됐고, 로드는 바람대로 199.2cm라는 신장을 받는 데에 성공했다. 그는 위닝샷이라도 넣은 듯 무릎 꿇고 세리머니를 펼치며 감격을 표했다.

2020년 3월 26일

KBL이 코로나19 여파로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정규시즌을 조기 종료했고,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플레이오프는 개최하지 않기로 했다. 조기 종료 시점 기준 28승 15패를 기록한 DB와 SK가 공동 1위, 3위는 KGC로 확정됐다. 이때 이례적으로 DB의 연고지 원주시에서 공문을 통해 정식으로 이의를 제기했다. SK와의 상대 전적에서 3승 2패 우위를 점한 DB의 단독 1위가 합당하다는 주장이었다. KBL이 “이사회 승인이 난 결의 사항이기 때문에 재고할 수 없는 사안”이라 밝히며 해프닝으로 일단락됐다.

2026년 2월 9일
김효범 삼성 감독은 수원 KT와의 원정경기에 지각했다. 2쿼터 중반이 되어서야 경기장에 도착했고, 이로 인해 김보현 코치가 전반 내내 선수단을 이끌었다. 감독이 경기에 지각한 최초의 사례였다. 사유와 관련해 여러 설이 떠돌았지만, 김효범 감독은 KBL 재정위원회에서도 구체적인 사유를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구단을 통해 “개인적인 일로 지각한 부분에 대해 진심으로 반성한다”라고 밝혔다. KBL은 김효범 감독에게 제재금 300만 원을 부과했고, 삼성도 자체적으로 벌금 200만 원 조치를 내렸다.

#사진_점프볼DB(문복주, 유용우, 박상혁 기자), KBL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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