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슬램게임: 한 판 더!] “넌 초심을 잃었다” ‘로터리픽 후보’ 강지훈을 만든 아버지 강을준 전 감독의 잔소리

아마추어 / 이상준 기자 / 2025-11-03 11: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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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이상준 기자] KBL 신인드래프트는 하루뿐이지만, 그 하루를 향한 여정은 수천 번의 땀방울이 쌓인 서사다. ‘25슬램게임’은 그 여정의 기록물이다. 그러나 코트 밖에서도 이야기는 이어진다. 숫자로는 읽히지 않는 웃음과 인간적인 결이 담긴 순간들이 있다. 이번 챕터는 ‘농구 부자’ 간의 이야기를 담아보았다.

강지훈(연세대)은 농구 선수 강지훈 이전에 농구인 부부의 아들로 더 유명했다. 그의 아버지는 강을준 전 고양 오리온(현 소노) 감독이며 어머니는 전 국가대표 이유진 씨다. 그의 활약상을 담은 기사의 제목에는 늘 ‘강을준 아들’ ‘강을준 주니어’라는 수식어가 늘 포함되어 있었다. ‘25슬램게임’ 인터뷰가 진행될 때도 강을준 전 감독의 이야기는 수시로 등장했다. 본편에서는 다 담지 못한 농구인 부자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전한다.

#너는 남들보다 몇 배는 더 노력해야 돼

중학교 3학년이 되어서야 시작한 엘리트 농구부 생활. 강지훈은 자신보다 일찍 농구를 시작한 동기들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했다. “농구를 늦게 시작하다 보니 어떻게 남들을 따라가야 할지 고민이 많았어요. 호기롭게 시작한 것이다 보니 반드시 직업으로 삼아야 하는 것이라 생각하기도 했죠. 그때 아버지가 저에게 그러셨어요.”

“너는 남들보다 몇 배는 더 노력해야 돼.”

“어머니도 마찬가지였죠.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직업으로 운동선수를 생각한다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죠. 저희 팀이랑 상대하는 팀들 영상을 정말 많이 보고 경기에 나섰고, 누구보다 오래 체육관에 남아 갈고 닦으려 했습니다.”

고등학교 진학 후에는 인생 선배, 농구인 선배의 경험에서 나온 조언도 더해졌다. 그 속에는 강을준 전 감독의 고등학교 시절 김해시와 창원시 왕복의 기억이 자리 잡고 있었다. 존경심은 더 커졌다.

“아버지가 그 당시에 아침마다 학창 시절 이야기를 해주시더라고요. 아버지는 경상남도 김해시에서 거주하셨는데 학교는 창원시에 있는 학교(마산고)에 다니셨죠. 그래서 김해시에서 새벽 기차를 타고 마산역까지 가셔서 아침을 먹고, 운동을 시작하는 일상을 반복하셨다고 들었어요. 그러고 또 학교에서 야간 운동까지 하고 집에 오면 한 오후 10시 반이 됐대요. 창원시에서 김해시까지 거리가 좀 되는데… 그렇게까지 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더 존경심이 생겼어요.”

#득점에 맛 들이면 안 된다


농구인 아버지는 학교 밖 코치이자 든든한 과외 선생님이었다. 특히 강을준 전 감독은 농구 구력이 짧은 아들이 화려한 플레이만 좇을 것을 늘 경계했다고 한다.기본기를 되새긴 것은 그를 대학리그 최고의 센터 반열에 오르게 했다.


“연습을 많이 했죠. 골밑에서 기본적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알려주셨어요. 아버지는 늘 ‘너 득점을 하는 것에 맛 들이면 안 된다’라고 해주셨어요. 나중에 정체가 된다는 것이 이유였죠. 늘 화려한 것보다는 빅맨으로서 갖춰야 할 스텝, 포스트업 동작까지 기본적인 것들을 마스터할 수 있게 도와주셨어요. ‘기본기를 잘 정립해야 나중에 자연스레 득점을 많이 한다’라는 아버지의 지론은 큰 도움이 되었죠.”

#넌 초심을 잃었다 & 고비를 넘기면, 더 좋은 선수 된다

어느 농구선수가 그렇듯, 슬럼프는 한 번씩 오게 된다. 슬럼프를 이겨내는 법도 여러 가지다. 취미 생활을 곁들이며 잡생각을 떨치거나 긍정적인 마인드를 장착한 채 코트로 나서기도 한다. 이에 반해 오히려 더 자신을 채찍질하는 유형도 존재한다. 강지훈에게 아버지는 후자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해주는 ‘팩폭러’였다.

“제가 느꼈을 때 고등학교 때 한번 정체기가 있었고, 대학교에 와서도 한번 정체기를 겪었어요. 다른 분들은 모를 수 있지만, 제 느낌에는 그랬어요.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냉정하게 말씀해 주셨어요. ‘넌 초심을 잃었다. 내가 알려준 것들을 다 까먹고 농구하는 것 같다.’ 항상 이 말씀의 다음은 기본기의 중요성을 되새기는 시간으로 이어졌죠.”

“다시 생각하고 다시 연습해 봐”

마냥 냉정한 말만 던지지는 않았다. 농구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할 때는 ‘긍정적인 마인드’ 장착에 힘을 쓰는 존재로 나섰다. ‘단짠단짠’의 진수였다.

“고등학교 2학년 때였나… 1학년에서 2학년 넘어가는 겨울 방학 때였나… 농구가 제가 생각해도 늘지도 않고 공격이 다 막히는 거예요. 수비는 말할 것도 없었고요. 기껏 농구한다고 했는데… 죄송한 마음이 컸어요. 결국 큰 결심을 하고 관두고 싶다고 말씀드렸죠. 혼날 줄 알았는데 아버지가 웃으시더라고요.”

“운동을 할 때 서너 번의 고비는 온다. 네가 이것을 극복하면, 좋은 선수로 크는 것이고, 그렇지 못하고 농구를 그만두면 그냥 그만두는 것이다.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너는 극복할 수 있으니 힘내라.”

“혼내지만 않고, 격려해 주신 아버지와 어머니의 존재는 생각을 고치고, 코트로 나서게 하는 힘이 되었습니다.”

#최초의 부자 동반 MVP

강지훈은 삼일상고(현 삼일고) 3학년 시절, 77회 전국남녀종별농구선수권 대회 남고부 MVP에 이름을 올렸다. 삼일상고의 2009년 이후 13년 만에 종별대회 우승 과정에서 골밑을 든든하게 수호한 힘을 인정받은 것. 농구를 시작한 지 4년 만에 가져온 성과였다.

이 MVP가 강지훈에게 특별한 이유는 하나 더 있었다. 종별 대회 부자 동반 MVP의 탄생을 알린 것이기 때문.

“MVP라고 그래서 얼떨떨했지만, 기분이 너무 좋았죠. MVP가 된 덕분에 인터뷰도 하고 그래서 더욱 신기하고, 감사한 마음이 컸죠. 이후 사진도 찍고, 아버지께 전화를 드렸는데 ‘야, 근데 아빠도 옛날에 부산이었나? 종별대회 MVP 받은 적 있다’라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놀란 것은 아버지도 MVP라는 것은 아니었어요. 저는 77회 MVP였는데, 아버지는 39회 MVP이신 거예요. 나이 차가 많이 나는 거잖아요. 새삼 아버지랑 이렇게 나이 차이가 많다는게 느껴지면서, 뭔가 신기한 감정이 컸어요.”

39회 MVP(강을준) - 77회 MVP(강지훈), 이제는 프로 무대에서 또 다른 농구인 2세의 성공 신화를 쓸 준비를 마쳤다.

#사진_강지훈 제공, 점프볼 DB(박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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