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동아시아 농구의 새로운 지도, EASL의 현재와 미래
- 매거진 / 손대범 기자 / 2026-08-15 01:45:33
2017년 마카오에서 '슈퍼 8'이라는 대회가 열릴 당시, 주최 측은 동아시아 챔피언들이 출전해 교류하는 대형 리그를 만드는 것을 최종 목표라고 밝혔다.
1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 그들이 지향했던 인터리그는 탄탄한 밑그림 위에 자신들만의 색을 더하며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2000년대 중반, 인터리그는 동아시아 프로리그 수장들의 공통된 목표 가운데 하나였다. 야오밍의 NBA 데뷔 이후 최고 전성기를 누리던 중국 리그와 달리 한국과 일본 등은 조금씩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한 시기였다. 전체 시장 규모를 키우지 못하면 미래가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실제로 김영수 전 KBL 총재 집행부는 이 방안을 논의하며 여러 차례 만남도 가졌지만 끝내 실현되지는 못했다. 농구를 넘어 각국의 이해관계가 쉽게 맞물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중 올스타전, 한일 챔피언십 등의 이벤트도 나름의 관심을 끌었지만 2000년대를 끝으로 더 이어지지 못했다.

2017년 마카오에서 열린 슈퍼 8은 오랜만에 동아시아 프로팀들이 한자리에 모여 경쟁한 의미 있는 무대였다.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적지 않은 상금과 수준 높은 대회 운영은 많은 팀의 관심을 끌었다.
이 대회는 점차 규모를 키우며 '터리픽 12'라는 새로운 브랜드를 선보였고, 팬데믹을 이겨낸 뒤 마침내 EASL을 정식 출범시켰다.
애초 EASL은 홈 앤드 어웨이 방식을 기본 골자로 삼았지만 첫 시즌에는 코로나19 여파로 계획을 실현하지 못했다. 대신 2023년 3월 일본 우츠노미야와 오키나와에서 '챔피언스 위크'를 개최했고, 서울 SK와 안양 KGC가 KBL 대표로 출전해 나란히 챔피언결정전에 오르는 성과를 거뒀다. 오마리 스펠맨의 맹활약을 앞세운 KGC는 초대 챔피언에 오르며 저력을 과시했다.
홈 앤드 어웨이 시대
2023-2024시즌부터 EASL은 비로소 본래의 설계도대로 운영되기 시작했다.
EASL은 직전 시즌 각 리그 파이널 진출팀에 출전 자격을 부여했고, 이에 따라 KBL에서는 챔피언결정전 리턴 매치를 치렀던 SK와 KGC가 참가했다.
통합 우승 이후 정관장으로 리브랜딩한 KGC는 FA 자격을 얻은 우승 멤버들과 결별하며 대대적인 리빌딩에 들어갔다. 이 때문에 리그 성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EASL에서는 달랐다.
외국 선수를 동시에 기용할 수 있다는 장점을 적극 활용하며 필리핀 세부에서 열린 4강에 진출하는 성과를 냈다.
그러나 이 시즌 우승은 B.리그 치바 제츠의 몫이었다. 결승에서 서울 SK를 72-69로 꺾었다. 토가시 유키가 24점 7어시스트로 활약했고, 외국인 선수 존 무니는 16리바운드를 기록하며 골밑을 장악했다.
당시 정관장과의 경기에서도 강한 인상을 남겼던 무니는 시간이 흘러 2026-2027시즌부터 정관장의 외국인 선수로 KBL 무대를 다시 밟게 된다.
2023-2024시즌까지는 한국·대만·일본·필리핀 리그만 참가했던 EASL은 2024-2025시즌부터 새로운 식구를 맞이하기 시작했다.
KT와 KCC가 KBL 대표로 출전한 2024-2025시즌에는 홍콩과 마카오가 합류했고, 2025-2026시즌에는 몽골까지 참가하면서 12개 팀 체제가 완성됐다.
동아시아 각 리그 챔피언들이 참가하는 대회인 만큼 참가팀 확대는 곧 시장 확대를 의미했다.
경기 수 증가의 영향도 있었지만 전체 관중은 전 시즌 대비 41% 증가했고, 미디어 노출도 33% 늘었다.
국가대표팀 간 대결이었다면 홍콩·마카오·몽골의 참가가 경쟁력을 떨어뜨릴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수준급 외국인 선수를 앞세운 이들 프로팀은 예상보다 높은 경쟁력을 보여줬다.
홍콩 이스턴은 두 시즌 연속 홈에서 KBL 팀을 꺾었다.
몽골은 그동안 3x3 강국으로 알려졌지만 5대5 농구에도 꾸준한 투자를 이어오고 있다. 국가대표팀의 성적은 아직 답보 상태지만 프로팀들은 꾸준히 해외 대회에 참가하며 경험을 쌓고 있다.
매년 여름 한국과 중국 등을 찾아 전지훈련을 소화하며 전술과 시스템을 배우려는 의지도 상당하다.
사실 이런 미지의 상대들은 KBL 팀 입장에서 결코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주중 경기를 치러야 하는 일정까지 감안하면 시즌 중 장거리 이동은 코칭스태프와 선수 모두에게 큰 부담이었다.
게다가 KBL은 EASL 참가 리그 가운데 유일하게 경기당 외국인 선수 1명만 출전하는 리그였다. EASL 규정에 맞춰 외국인 선수 2명을 동시에 활용하는 준비도 충분하지 못했고, 그 장점을 제대로 활용할 여유도 없었다.
결국 지난 두 시즌 동안 EASL이 마카오에서 개최한 파이널 포(Final Four)에 KBL 팀은 단 한 팀도 오르지 못했다.

EASL, 일정은 고되지만
EASL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나오는 키워드는 바로 일정이다.
시즌 중 평일(수요일)에 경기가 배치되다 보니 컨디션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KBL뿐 아니라 많은 참가팀도 결코 쉽지 않은 일정이라는 데 공감하고 있다.
주말에 리그 경기를 치른 뒤 월요일 비행기를 타고 다른 나라로 이동해 경기를 치르고, 다음 날 다시 귀국하는 일정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필리핀 일부 팀은 비자 발급이 지연돼 경기 전날에야 부랴부랴 현지에 도착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B.리그 우츠노미야 브렉스의 베테랑 히에지마 마코토는 이를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모두가 똑같이 겪는 어려움이다. 빨리 적응하고 이겨내야 한다. 결국 가장 중요한 건 컨디션 관리다."
그러면서도 그는 EASL의 가치를 높게 평가했다.
"선수 입장에서는 아시아의 다른 강팀들과 맞붙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성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알바크 도쿄의 일본 국가대표 카이 테이브스 역시 비슷한 생각이었다.
"B.리그 일정에 천황컵, EASL까지 모두 소화하는 건 분명 쉽지 않다. 그래도 항상 이기겠다는 마음으로 코트에 선다."
이처럼 빠듯한 일정에도 각 팀이 EASL을 소홀히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먼저 높은 상금을 빼놓을 수 없다.
2025-2026시즌 우승 상금은 무려 150만 달러(약 20억 원)였다. 준우승은 75만 달러(약 10억 원), 3위는 37만 5천 달러(약 5억 원)를 받았다. KBL 우승 상금과 비교해도 결코 적지 않은 규모다. 어느 리그에서든 충분히 매력적인 보상이다.
두 번째는 강팀들과의 교류다.
일본과 대만 구단들은 EASL 원정에도 대규모 스태프를 동행시킨다. 홍보와 마케팅은 물론 경기 준비에도 많은 공을 들인다.
기자가 직접 취재했던 일본·대만·필리핀 경기에서는 평일 저녁 경기임에도 많은 관중과 취재진이 경기장을 찾았다. 홍콩과 몽골 구단 입장에서도 FIBA 무대에서는 쉽게 만날 수 없는 강팀들과 경쟁할 수 있다는 점이 큰 매력이다.
무엇보다 KBL 팀을 꺾었다는 사실 자체가 이들에게는 하나의 훈장이 된다.
마지막은 홍보다.
EASL은 매 시즌 중계사와 송출 지역을 꾸준히 확대하고 있다.
구단에는 해외 홍보 효과를, 선수들에게는 자신의 가치를 알릴 수 있는 무대를 제공한다. 이는 KBL에서 뛰는 필리핀 아시아쿼터 선수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서울 SK가 알빈 톨렌티노를 영입할 수 있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 역시 EASL을 통해 자신의 경쟁력을 충분히 보여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회의 규모가 커질수록 'EASL 출신' 선수들의 이동도 활발해지고 있다.
KBL만 봐도 2026-2027시즌을 앞두고 존 무니가 정관장에 합류했고, 지난 시즌 푸본 브레이브스 소속으로 잠실을 찾았던 아치 굿윈도 창원 LG 유니폼을 입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런 사례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EASL의 지향점
EASL이 꿈꾸는 모델은 축구 UEFA 챔피언스리그다. 각 리그 정상급 팀들이 참가한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 이 구조는 EASL의 가장 큰 장점이면서 동시에 숙제이기도 하다.
매년 참가팀이 바뀌다 보니 새로운 팀의 역사와 스토리를 팬들에게 다시 소개해야 하고, 운영 방식도 새롭게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EASL CEO 헨리 케린스 역시 이러한 어려움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매년 참가팀이 달라진다. 새로운 팀의 스토리와 비전을 팬들에게 전달해야 하고 운영 노하우도 다시 공유해야 한다. KBL뿐 아니라 처음 참가하는 구단은 운영진도, 팬들도 모두 낯설 수밖에 없다."
반면 EASL이 익숙한 류큐 골든킹스는 달랐다. EASL 티켓을 시즌권 패키지에 포함해 일찌감치 매진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런 고민은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이기도 하다.
리그의 역사가 쌓이고 사례가 늘어날수록 팬들의 인지도와 구단들의 운영 경험도 함께 축적될 것이기 때문이다.
2026-2027시즌 KBL에서는 KCC와 소노가 EASL에 참가한다. KCC는 두 번째 출전이고, 소노는 창단 후 처음 EASL 무대를 밟는다.
지난 플레이오프에서 팬들을 위해 전세기까지 동원하는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화제를 모았던 소노는 EASL을 위해서도 다양한 아이디어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파이널 포를 중립 지역에서 개최하는 방식은 유로리그나 NCAA 파이널 포와도 닮아 있다.
EASL은 최근 2년 연속 마카오에서 파이널 포를 개최했다.
고급 호텔이 많고 대규모 인원을 수용하기 쉽다는 점, 도시 내 이동이 편리하다는 점이 장점이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점은 단순히 농구 경기만 치르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소년 농구 클리닉, 아시아 농구 발전을 위한 세미나 등 다양한 교류 프로그램을 함께 운영하며 리그의 가치를 넓혀가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2018년 여름 진행됐던 코치 클리닉이 다시 열리기를 기대한다.
당시 브라이언 고지언 감독은 실전 전술을, 지미 알라팍은 리더십을 주제로 강연했는데 내용의 완성도가 상당히 높았던 기억이 남아 있다.

B.리그와 P.리그+가 주도하는 EASL의 지형
지난 두 시즌의 EASL은 일본 B.리그와 대만 P.리그+가 주도하는 구도였다.
흥행 면에서도 일본은 압도적이었다. EASL 정규시즌 홈경기 평균 좌석 점유율은 90.2%를 기록했다. 특히 류큐 골든킹스는 두 차례나 100% 매진을 달성하며 뜨거운 농구 열기를 보여줬다.
관중의 열기는 자연스럽게 성적으로도 이어졌다.
지난 시즌 EASL에 출전한 우츠노미야 브렉스, 알바크 도쿄, 류큐 골든킹스는 정규리그에서 모두 4승 1패를 기록하며 각 조 1위로 파이널 포에 진출했다.
특히 4강에서는 우츠노미야와 류큐가 다시 만나 B.리그 파이널 리턴 매치를 성사시키며 또 하나의 흥미로운 스토리를 만들어냈다.
다른 한 자리는 대만의 타오위안 파일럿츠가 차지했다.
타오위안은 2년 연속 챔피언결정전에 올랐지만, 결국 B.리그 팀의 벽을 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2025-2026시즌 P.리그+를 다시 한번 제패한 만큼 다음 시즌에도 강력한 우승 후보로 평가받고 있다.
타오위안을 이끄는 인물은 스페인 출신의 카미노스 이우르기 감독이다.
그는 외국인 선수와 로컬 선수의 조화를 이끌어내며 팀을 빠르게 성장시켰다. 부임 이후 타오위안은 BCL(바스켓볼 챔피언스리그)과 EASL 등 각종 국제대회에 꾸준히 참가하며 경험을 축적했다.
경기 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P.리그+에서 부족할 수 있는 실전 감각을 국제대회를 통해 보완한 셈이다.
이우르기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EASL에서 다양한 팀과 맞붙으면서 선수들이 크게 성장했다. 특히 루춘샹은 EASL을 통해 한 단계 도약했다."
이어 그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우리는 매 시즌 성장하고 있고, 상대 팀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항상 겸손한 자세를 유지하면서도 큰 목표를 향해 도전하겠다."
KBL은 아직까지 타오위안을 상대로 단 한 번도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EASL뿐 아니라 전지훈련 기간 치러진 비공식 연습경기에서도 쉽지 않은 승부를 펼쳤다. 서울 SK 역시 조별리그에서 69-89로 완패했다.
결국 KBL이 다시 EASL 정상에 서기 위해서는 일본과 대만을 대표하는 강호들을 반드시 넘어야 한다.

더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EASL은 매 시즌 온·오프라인 모두에서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온라인에서는 다양한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생산하며 팬들의 관심을 유지하고 있다. 덕분에 FIBA 브레이크 기간처럼 각국 리그가 잠시 멈추는 시기에도 방문자 수가 크게 줄지 않았다.
그러나 한 단계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
바로 중국의 합류다. 2019년 '터리픽 12'까지는 랴오닝과 저장 광샤 등 CBA 팀들이 참가했지만, 코로나19 이후 교류는 사실상 중단됐다. 만약 CBA 구단들이 다시 EASL에 참가한다면 리그의 수준은 물론 팬들의 관심과 시장 규모도 지금과는 전혀 다른 단계로 도약할 가능성이 크다.
EASL도 이러한 점을 잘 알고 있다. 꾸준히 중국과의 접촉을 이어가는 이유다. 지난 7월 6일 고양에서 열린 중국과 대만의 FIBA 월드컵 아시아 예선 경기에 EASL CEO 헨리 케린스가 직접 방문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다만 현실적인 장벽도 존재한다. 앞서 언급했듯 일본, 중국, 대만 사이에는 농구를 넘어 정치·외교적인 이해관계까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이는 EASL이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한편 한국 시장에서의 존재감은 아직 아쉬운 수준이다. 성적뿐 아니라 미디어 노출과 홍보, 마케팅 등 대부분의 지표에서 다른 참가국보다 뒤처져 있다. KBL은 EASL 일정을 배려해 수요일 경기 수를 조정하고 있지만 평일 저녁 경기만으로는 흥행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결국 한국 팬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경기 일정뿐 아니라 중계 방식, 마케팅, 팬 참여 프로그램 등 다양한 변화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
EASL은 이제 막 첫걸음을 뗀 리그다.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는 많지만, 지난 10년 동안 보여준 성장 속도는 분명 인상적이었다.
동아시아 농구가 하나의 무대에서 경쟁하고 교류하는 시대.
EASL이 그 중심에서 어떤 새로운 지도를 그려나갈지, 앞으로의 행보를 지켜볼 만한 이유는 충분하다.

#사진=EASL 제공, 점프볼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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