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슬램게임] “수비가 안 되면 진짜 못 뛰는구나”…‘성실함의 대명사’ 슈터 이해솔의 깨달음(006)
- 아마추어 / 정다윤 기자 / 2026-09-12 11:00:37


유치원에서 초등학교로 넘어갈 무렵, 이해솔의 키는 또래보다 성큼 자라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공을 튀기며 놀기 시작한 것이 농구와의 첫 인연이었다.
한창 농구에 재미를 붙이던 즈음, 창원에 살던 어머니 친구 아들이 창원 LG 유소년팀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어릴 때부터 운동을 유난히 좋아했던 그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자연스럽게 LG 유소년팀에 들어갔고, 6학년 때까지 유소년팀 생활을 이어갔다.
변화의 계기는 5학년을 마무리하던 겨울 대회에서 찾아왔다. 당시 그의 가능성을 알아본 광신중 하상윤 코치(현 삼성생명 감독)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은 것이다.
엘리트 선수의 길로 들어설 것인가를 두고 초등학교 6학년 내내 고민이 이어졌다. 그리고 이 고민의 물꼬를 터준 것은 다름 아닌 '전국 육상대회'였다. 농구 선수의 갈림길에서 만난 육상 트랙에는 과연 어떤 사연이 담겨 있었을까.
“제가 6학년 때 육상도 했었거든요. 학교 대표, 경상남도 대표로 나가서 성적도 좋았어요. 800m에서 전국 2등까지 해봤어요. 육상에서도 유망주 느낌이었어요. 여름이 지나갈 때쯤 육상을 해야 될지, 농구를 해야 될지 선택해야 하는 시기였죠.”
달리는 것에 독보적인 재능을 보이며 꾸준히 유망주 꼬리표를 달고 다녔지만, 육상과 농구라는 두 개의 선택지 앞에서 그의 마음은 농구로 기울었다. 자존심, 그리고 직접 득점을 터뜨리며 골망을 흔들었을 때의 성취감이 그를 농구선수라는 운명으로 이끌었다.
“당시 육상 전국대회를 두 번 나갔는데 각 2등, 3등을 했거든요. 3등을 한 대회가 마지막 대회였어요. 그 대회에서 제가 1등을 했다면 아마 육상을 계속 했을 것 같아요. 어린 나이여서 그런지 3등을 한 게 너무 기분이 상한 거예요. 그래서 그때 농구 선수가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농구를 하면서 얻은 성취감도 좋았거든요.”
마침내 광신중의 일원으로서 농구선수의 길에 접어들었다. 중학교 시절 그를 담당했던 하상윤 감독은 학년별 핵심 유망주를 강하게 가다듬는 스타일이었다. 저학년이던 이해솔이 그 집중 조련의 대상이 되면서, 남들보다 더 많은 피드백과 관심을 한몸에 받아냈다. 그리고 그 과정은 그를 코트 위에서 없어서는 안 될 단단한 카드로 완성해 나가는 밑거름이 됐다.
“그때는 진짜 힘들었는데, 감독님이 많이 붙잡고 운동도 시키셨어요. 그런데 또 그렇게 운동한 게 코트 위에서 결과로 나타나더라고요. 당시에는 멘탈적으로 많이 힘들었죠. 중학교 1, 2학년 때는 울면서 ‘나 그만두고 싶다’고 전화하고 맨날 그랬어요. 그런데 지금 지나고 보면 감독님이 없었으면 제가 이렇게까지 됐을까 싶기도 해요.”
중학교 입학 당시 이미 지금의 피지컬 프레임을 완성하고 있던 이해솔. 지도자 역시 그의 신장 조건을 살려 위협적인 장신 포워드로 가다듬으려는 구상을 품었다. 하지만 봄볕 같던 성장세는 예상보다 일찍 제동이 걸렸다.
“키가 더 안 크더라고요. 그래서 감독님이 기본기를 되게 중요하게 여기셨어요. 중학생인데 키가 크다고 센터로 넣으시는 게 아니라, 애초에 제가 밖에서 플레이할 수 있게끔 기본기도 가르쳐 주셨거든요. 또 중학교 2학년 올라갈 때부터는 ‘이제 완전히 슈터로 가야 된다’는 느낌으로 방향을 잡아주셨어요. 몇 개를 쏘든, 슛을 안 쏘면 혼날 정도였죠(웃음).”

“슈터로 이제 제가 가고 있으니까 ‘다양한 슛도 연습해라’ 하시면서 실전에서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을 많이 연습했어요. 저 혼자서 더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일단 이렇게 하라고 하시면, 야간 운동이 끝나고 더 연습하면서 제 것으로 만들려고 했어요. 야간 운동이 끝나면 무조건 남아서 혼자 연습했거든요.”
2022 FIBA U18 대표팀 아시아컵 정상에 오르는 과정에서도 제 몫을 다했다. 특히 일본과의 결승전에서 27분간 12점 3리바운드를 올리며 팀 우승에 일조했다. 대회 평균 성적은 15.7분 동안 8점, 3점슛 1.8개(34.6%).
U18 대표팀의 우승을 함께 일구는 동안, 이해솔은 이세범 감독(용산고 코치)의 세밀한 지도 속에 전문적인 팀 수비를 경험했다. 자기 역할이 확실한 선수들 사이에서 처음엔 갈피를 잡기 못하고 헤매기도 했지만, 현지에서 동료들에게도 조언을 구하며 팀 시스템을 익혀 나갔다.
이해솔은 코트 위 수비가 가진 무게와 중요성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정말 그때 ‘수비가 진짜 중요하구나’라는 걸 처음 느낀 것 같아요. 그전에도 코치님이나 주변 어른들이 수비가 정말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지만, 크게 체감하지 못했거든요. 그런데 가서 직접 몸으로 부딪혀보니까 느껴지더라고요.”

신입생으로 연세대 유니폼을 입은 이해솔은 곧바로 2023 FIBA U19 월드컵 대표팀에 발탁되며 기량을 발휘했다. 대회 평균 12.1점 3점슛 2.4개(30.4%) 2스틸로 외곽을 맹격했고, MBC배에서도 5경기 평균 10.4점을 가볍게 터뜨렸다.
그가 연세대를 선택한 이유는 확실했다. 강팀들이 득실대는 코트 위에서, '프로의 작은 축소판'과도 같은 밀도 높은 경쟁을 거치며 스스로를 더 날카롭게 가다듬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장에서 직접 부딪혀본 현실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U18 대표팀에서 전문 수비 시스템을 체득했다고 생각했음에도, 대학 코트가 요구하는 정교한 수비의 눈높이를 채우기에는 부족함이 남아 있었다.
“수비에서도 제가 부족한 부분을 느꼈고, 출전 기회가 적을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제가 수비가 약하다는 걸 제대로 느꼈죠. 청소년 때는 실전에 대한 걱정 없이 항상 뛰는 게 당연했거든요. 그런데 대학 저학년 때 출전 기회가 없어지다 보니까 스스로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수비가 안 되면 진짜 못 뛰는구나. 프로에 가면 더 심하겠구나’라는 걸 크게 느꼈어요.”

“1학년 휴가 때 트레이너 형한테 수비랑 스텝이 좋아질 수 있는 운동을 알려달라고 요청했어요. 혼자 매일 체육관에 가서 운동했어요. 그러다 보니 좋아지는 게 느껴졌고, 동계 훈련을 하면서 감독님께서도 ‘수비 많이 좋아졌다’고 해주셨거든요.”
하지만 성장의 길목에서 부상이라는 벽을 마주했다. 2학년 6월 발목을 다친 데 이어, 3학년 때도 발등 부상을 당했다. 한창 코트를 누벼야 할 시기에 아쉬운 휴식기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3학년 때도 힘들게 전지훈련을 갔고, 스토브리그에서도 감독님이 기회를 많이 주신 것 같거든요. 그런데 예선 마지막에 발등 부상을 당하면서 지난해 MBC배 때 복귀하게 된 거죠. 청소년 때는 그런 큰 부상이 한 번도 없었는데, 2학년 때 발목을 다치고 3학년 때는 이제 보여줘야 할 시기인데 크게 다친 거예요. 처음에는 ‘어떡하지…’ 싶었는데, 이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잖아요.”
이미 엎질러진 물에 연연하기보다 당장 할 수 있는 최선에 집중했다. 시련을 털어내고 나선 지난해 MBC배부터는 부상 잔혹사를 끊고 건강하게 경기를 치러냈다. 팀 사정상 빠른 실전 투입이 경기 감각과 자신감을 되찾아준 약이 됐다. 같은 해 AUBL에서는 외곽에서 3점슛 7개를 터뜨리며 '플레이 오브 더 게임'에 이름을 올렸다.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하면서, 될 수 있는 데까지 몸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거의 헬스 전문가처럼요(웃음). 그렇게 MBC배에서 복귀한 뒤 경기 감각을 찾는 데 고생했지만, 그래도 점점 슛 감도 올라오더라고요. 당시 팀 주축 선수들이 대표팀에 나가 있어서 남은 선수들끼리 치른 대회였거든요. 그래서 경기도 많이 뛰고, 감을 더 빨리 찾은 것 같아요. 그러고 AUBL에 나가게 된 거죠. 그때 가서 자신감을 많이 찾은 것 같아요.”

올해 조동현 감독이 새롭게 지휘봉을 잡으면서 수비 완성도를 끌어올릴 적기를 맞이했다. 디테일을 강조하는 새 사령탑의 가르침 속에 수비를 바라보는 시선은 한층 더 깊어졌다. 세밀한 결까지 가다듬으며 코트 위 스펙트럼을 넓혀가는 중이다.
“이제 1학기 지나면서 조동현 감독님이 추구하고 원하는 부분을 알게 됐어요. 수비를 되게 디테일하게 가르쳐주세요. 수비할 때 발 하나하나까지 가르쳐주셔서 저는 너무 좋았어요. 또 프로에 계셨으니까 ‘너네가 이런 걸 해놔야 프로 가서도 가능성이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가르쳐 주시거든요.”
올해 MBC배 불참을 결정한 뒤, 연세대는 체력 담금질에 사활을 걸었다. 땀방울을 쏟아내며 몸 상태를 극한으로 끌어올렸다. 향후 프로 무대에서 기다리고 있을 더 매서운 훈련을 감안하면, 미리 맞은 예방주사나 다름없었다.
“MBC배에 나가지 않고 체력 훈련을 하면서 스스로도 몸이 좋아지는 걸 느꼈어요. 뛰는 건 자신 있었거든요. 너무 힘들었지만 연습경기를 하면서도 제 몸이 올라온 게 스스로 느껴지더라고요. 수비도 좋아진 부분은 느끼지만 더 해야죠. 더 해야 합니다.”

“끈질긴 선수예요.”
“농구적인 부분에서는 3점슛이 가장 큰 장점이에요. 세트슛도 좋지만, 움직이면서 쏠 수 있는 무빙슛이 강점이라고 생각해요. 이번 시즌 2인 외국인 제도로 인해 외곽에서 찬스가 났을 때 확실하게 마무리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체력이 좋다 보니까 속공에서도 잘 뛰는 편이고, 속공에 참여하거나 패스를 받아 마무리하는 것도 자신 있어요.
성실함과 포기하지 않는 마음가짐도 제 강점이거든요. 농구를 하면서 지고 있어도 경기장에서는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평상시에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하는 편이고요. 고학년이다 보니 후배들이 실수했을 때도 뭐라고 하기보다는 ‘괜찮다’고 다독여주는 편이에요.”

누구에게나 한번쯤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먼저 그려보는 순간이 있다. KBL 입성을 꿈꾸는 드래프트 참가자들에게도 ‘프로 선수가 된 나’는 오래 품어온 가장 선명한 상상일 터다. 이동근 역시 그 장면의 끝에 한 가지 목표를 분명하게 적어 뒀다. ‘국가대표.’
“수비 못한다는 소리는 절대 듣고 싶지 않아요. 가서 배울 게 많으니 부족하더라도 열정적으로 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남은 후반기와 정기전에서도 지금까지 힘들게 준비해왔던 만큼, 부족한 부분도 많이 보완한 모습을 보여드리면서 슈터로서의 가능성도 보여드리고 싶어요. 성실한 선수로 불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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