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슬램게임] 늦깎이 농구 소년에서 ‘드래프트 1순위’ 유력…"최고가 될 선수" 고려대 이동근(001)

아마추어 / 정다윤 기자 / 2026-09-01 11: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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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정다윤 기자] 지금껏 농구 하나를 바라보며 달려온 시간은 이제 프로라는 다음 무대를 앞두고 있다. ‘26슬램게임’은 KBL 드래프트를 향해 저마다의 시간과 가능성을 증명해야 하는 선수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첫 번째 주인공은 고려대 4학년 이동근(197cm, F)이다.

#001_Scan: 고려대 이동근

이동근에게 농구는 처음부터 정해진 길이 아니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 그의 발길이 향한 곳은 야구장과 축구장이었고, 농구는 진로의 지도 어디에도 표시돼 있지 않았다. 그러다 중학교 2~3학년 무렵 선생님의 권유와 친구들의 손에 이끌려 농구 동아리에 들어가면서, 예상하지 못했던 길 하나가 그의 앞에 새로 놓였다.

친구들과 3 대 3 대회에 나가 좋은 성적을 거두자 재미로만 굴리던 농구공의 무게도 조금씩 달라졌다. 그 무렵 이동근의 가능성을 먼저 알아본 동아고 이상국 코치가 부산에서 인천까지 직접 올라와 선수 전향을 권했다. “농구를 하면 잘할 것 같다. 대학에도 갈 수 있고 좋은 선수가 될 수 있다”는 말은 몇 차례에 걸쳐 이어졌고, 반복된 설득은 어느새 이동근의 마음 한쪽에 농구 선수라는 선택지를 깊숙이 밀어넣었다.

다만 새로운 길 앞에는 부모님의 반대라는 문턱이 버티고 있었다. 당시 공부에서도 준수한 성적을 내고 있던 이동근이었기에, 굳이 고된 선수의 길로 방향을 틀 필요가 없다는 것이 부모님의 생각이었다.

그때 고등학교 1학년 끝날 무렵이었는데 제가 공부도 나쁘지 않게 했었어요. 3등급 위로 나왔는데 과학은 좀 못했지만요(웃음). 부모님께서도 공부해도 괜찮을 것 같다고 하셨어요. 운동선수가 워낙 힘든 걸 아시니까요. 공부를 계속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근데 제가 그때 농구에 완전 미쳐 있을 때여서 ‘한번 해보고 싶다’는 말씀드렸죠. 근데 부모님께서 ‘선택은 너의 몫이다’라며 허락해 주셨어요. 좀 나중에서야 들은 얘기지만 부모님이 ‘처음에 갔다가 힘든 걸 느끼고 와야지 공부를 열심히 할 것 같아서 허락해 줬다’고 하셨었어요(웃음).

시작부터 탄탄대로는 아니었다. 늦게 농구를 시작한 데다 코로나19로 대회가 잇달아 취소되면서 실전 감각을 채울 기회도 마땅치 않았다. 애초 유급할 생각은 없었지만 부족한 시간을 보충하기 위해 결국 한 해를 더 보내기로 했다. 처음 겪은 엘리트 훈련은 좋아하는 마음만으로 버티기엔 거칠었고, ‘이거 무언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스칠 만큼 고된 순간도 있었다.

결국 제가 부모님을 설득하면서 선택한 일이잖아요. 힘들어도 너무 쉽게 포기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어요. 그래서 열심히 하면서 악착같이 버텼던 것 같습니다. 처음엔 ‘이게 잘하고 있는 건가’ 잘 몰랐었는데 점점 하다 보니 실력이 느는 것도 보이고 더 재미를 얻어서 힘들어도 할 수 있었어요.

엘리트 농구의 강도는 시작한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온몸으로 와닿았다. 남들보다 늦게 출발한 만큼 벌어진 거리를 한 발씩 따라붙듯 시간을 코트에 쏟았다. 그렇게 유급으로 얻은 1년은 비어 있던 경험과 기본기를 하나씩 채워 넣는 시간이 됐다.

알아야 할 것도 많고 처음에는 어떻게 움직이는지도 모르니까 저 혼자 어긋나고 체력 운동도 정말 많이 해서 ‘내가 알던 농구랑은 다르다’는 걸 느꼈어요. 동아고가 체력 운동이 거의 메인이거든요. 시즌 때도 거의 70~80%는 체력 운동을 많이했던 것 같아요. 학교 뒤에 있는 산도 뛰고 운동장 트랙도 뛰고 체육관도 뛰었죠. 제가 그래도 체력도 나쁘지 않은 편이고 잘 뛰는 편이었지만 그래도 운동을 계속하던 친구들과는 조금 차이가 나더라고요.

아무래도 남들보다 많이 늦게 시작했잖아요. 그래서 노력이 더 많이 필요했어요. 그럴 때 코치님이 도와주시고 덕분에 따라잡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동근의 강점은 내외곽을 가리지 않는 다재다능함이다. 그의 현재 모습은 이미 고교 시절부터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당시 지도자들은 '키가 크다'는 이유만으로 이동근을 골밑에 가두지 않았다. 현대 농구에서는 안팎을 모두 소화해야 한다는 가르침 아래 골밑 플레이는 물론 드리블과 코트 위 움직임까지 폭넓게 익혔다. 그렇게 쌓은 기술과 코트 안팎의 태도는 지금의 이동근을 떠받치는 단단한 밑거름이 됐다.

제가 자유투 던지기 전에 인사를 하는 루틴이 있거든요. 그때 코치님이 대학리그 경기하는 걸 보시면서 ‘자유투 던지기 전에 심판한테 인사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 보이지 않냐’고 하셨거든요. 저도 맞다고 생각했고 그때부터 자유투 던지기 전이나 받을 때 인사하는 습관이 생겼어요.

비록 우승까지 닿지는 못했지만 그렇게 쏟아부은 시간은 제법 달콤한 열매를 맺었다. 2021년 연맹회장기에서 이동근이 가세한 동아고는 시즌 첫 8강 진출에 성공한 것. 10경기에서 평균 26.7점 21.3리바운드라는 괴력을 뽐낸 이동근은 불과 1년 만에 팀의 중심으로 올라섰고, 2021 KBL 유스 엘리트 캠프에서도 베스트 5에 이름을 올리며 존재감을 넓혀갔다.

성장세는 이듬해 더욱 가팔라졌다. 2022년 왕중왕전에서 평균 28.4점 21.8리바운드를 쓸어 담으며 '득점상'과 '리바운드상', '수비상'까지 거머쥐었다. 늦게 출발하며 벌어진 거리를 따라잡는 데 그치지 않고 어느덧 자신의 이름을 앞줄에 새겨 넣고 있었다.

#002_Life in University

그렇게 이동근은 강호 고려대의 문을 두드렸다. 고려대의 연락은 반가움만큼 고민도 안겼다. 뛰어난 선수들이 모인 곳에서 과연 경쟁력을 보여줄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일반 학생으로 고려대를 졸업한 아버지의 권유와 '좋은 선수들 사이에서 부딪히며 성장할 수 있다'는 기대가 그의 선택을 이끌었다.

대학 무대의 벽은 예상보다 높았다. 이동근은 입학 직후부터 고려대가 강조하는 ‘센터도 가드를 막을 수 있어야 한다’는 수비 원칙을 익혀야 했고, 겨울 전지훈련에서 처음 그 난도를 온몸으로 실감했다.

“고등학교 때와는 완전히 달랐어요. 가드 수비는 아예 따라가지도 못했고, 농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더라고요. 저 혼자 다르게 움직일 때가 많아서 ‘나는 재능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도 계속했어요. 전지훈련에서도 가드 수비를 따라가지 못해 감독님과 코치님께 많이 혼났죠.

큰 신장으로 가드까지 제어하는 수비력은 그렇게 이동근의 몸에 또 하나의 무기처럼 달라붙었다. 다만 화려한 재능들이 빼곡히 들어선 고려대에서 1학년 이동근의 존재감은 쉽게 햇빛을 받지 못했다. 쟁쟁한 동료들 틈에서 자신의 부족함까지 선명하게 마주해야 했던 시기였다.

“솔직히 1학년 때는 정말 그만두고 싶었어요. 잘하는 친구들이 워낙 많았고 저는 많이 부족해서 따라가는 것조차 벅찼거든요. ‘내가 정말 선수가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많이 했어요.

그래도 이동근을 코트에 붙들어 둔 끈 하나는 남아 있었다. ‘잘하고 싶다’는 단순하고도 분명한 목표였다. 훈련이 끝난 뒤에도 농구 영상을 파고들며 부족한 조각을 하나씩 맞췄고 조금씩 자신의 몫으로 만들어 갔다.

“그저 잘하고 싶었고 주전으로 많이 뛰고 싶었어요. 감독님과 코치님도 많이 도와주셨고 저도 농구 영상을 정말 많이 찾아보면서 계속 공부했어요. 그렇게 노력하다 보니 힘든 생각도 조금씩 지울 수 있었죠. 당시에는 힘든 생각이 들었는데 지나고 보니 결국 지나가더라고요.

성장의 밑바탕에는 지도자들의 세심한 손길이 있었다. 정규 훈련은 물론 야간에도 이동근을 비롯한 몇몇 선수와 별도로 코트에 남아 부족한 부분을 짚어 줬고, 힘이 들 때 건넨 조언은 흔들리는 마음을 다시 세우는 버팀목이 됐다.

지도자들이 거듭 강조한 것은 화려한 기술보다 기본이었다. 골밑에서는 드리블에 의존하기보다 스텝으로 수비의 균형을 허무는 법을 익혔다. 공을 튀겨야만 길이 열린다고 믿었던 이동근에게 발의 움직임은 새로운 선택지를 만들어 줬고 공격의 가지도 자연스럽게 늘어났다.


자신을 향했던 물음표를 하나씩 지워낸 이동근은 한층 단단해진 모습으로 2학년을 맞았다. 그동안 갈고닦은 기량이 더 빛을 보면서, 내외곽과 공수를 두루 오가는 ‘육각형 포워드’의 면모도 드러나기 시작했다.

마침내 결실도 굵직했다. 이동근은 대학리그 정상에 올라 MVP수비상을 동시에 거머쥐었고, 고려대의 3년 연속 통합 우승을 이끌었다. 13경기 평균 27분 58초를 뛰며 13.1점 10.4리바운드 2.1어시스트 1.2스틸 2.8블록. 팔방미인이라는 수식어를 숫자로 증명하고 있었다.

MVP도 받을 줄 몰랐거든요. 물론 뿌듯했지만 기쁘기보다는 그때도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어요. ‘아직은 받을 상이 아닌 것 같다’라고요. 더 MVP에 맞는 선수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해야겠다는 동기부여가 됐습니다.” 

고교 시절까지 준수했던 외곽슛은 대학에 올라온 뒤 좀처럼 말을 듣지 않았다. 1학년 15.6%, 2학년 20.5%에 머물자 3학년을 앞두고 슈팅에 더 많은 시간을 쏟았다. 야간 운동은 물론 틈이 날 때마다 공을 던지며 감각을 끌어올렸고, 그 결과 3학년에는 34.6%까지 성공률을 끌어올리며 감각을 되찾았다.

그렇게 넓어진 보폭은 태극마크까지 닿았다. 이동근은 2025년 독일에서 열린 하계세계대학경기대회에서 유니버시아드 대표팀 유니폼을 입었다. 한국은 최종 6위에 오르며 1967년 준우승, 1997년 5위에 이어 역대 세 번째로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 이동근 역시 5·6위 결정전 진출을 확정한 경기에서 3점 슛 4개를 포함해 27점 9리바운드 4블록슛을 쏟아내며 한몫을 단단히 했다.

세계 무대를 경험하고 대학 리그 정상까지 밟은 이동근에게 얼리 엔트리는 충분히 가능한 선택지였다. 하지만 그의 선택은 졸업이었다. 한 해를 더 대학에 남기로 한 순간, 이제는 최고참으로 팀을 이끌어야 한다는 책임과 부담도 자연스럽게 그의 몫이 됐다.

대학교 올 때랑 3학년 올라갈 때도 있지만, 4학년 올라온 지금이 제일 큰 터닝포인트 같아요. 4학년 되니까 책임감이 훨씬 더 커지고 리그 시작하기 전에 부담감이 훨씬 더 크게 다가오더라고요. 고참으로서 좋은 모습도 모습이지만, 팀을 잘 이끌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할까 봐 부담감이 컸었어요.

현재 대학 리그 4위(11승 3패)에 위치한 성적표. 늘 승리에 가까이 있던 이동근에게 최고참이 되어서야 마주한 패배는 더 무겁게 다가왔다. 패배의 이유를 가장 먼저 자신에게서 찾았고, ‘내가 더 잘했더라면’이라는 생각은 쉽게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리그 3패를 한 게 처음이거든요. 제 탓인 것 같은 생각이 계속 들었어요. ‘내가 더 잘했으면 이겼을 거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거든요. 그때도 코치님들도 농구를 오래 하셨고 그러다 보니 ‘농구하다 보면 질 때도 있고 이런저런 상황도 있는 거다’라고 해 주셨죠.

심적으로는 4학년이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패배가 쌓이고 성적이 그 전보다 안 좋으니까요. 제가 더 팀의 중심을 잡았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모습을 보였던 것 같아요. 그래도 감독님, 코치님께서 ‘저학년 때보다 책임감이 더 커진 것 같다’는 좋은 말씀도 해 주셨고, ‘이런 상황들이 네가 더 단단해지는 계기가 될 거다’라는 말도 해 주셨어요. 덕분에 저도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고 전보다 농구를 대하는 자세가 달라진 것 같아요.

같은 해, 이동근은 3x3 무대에서도 굵직한 성과를 남겼다. 지난 4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FIBA 3x3 아시아컵 2026에서 대표팀의 '준우승'에 힘을 보태며 국제 무대에서도 경쟁력을 입증했다. 상승세는 네이션스리그에서도 이어졌다. 이동근, 김승우, 이주영, 구민교로 구성된 Team KOREA는 2026 FIBA 3x3 네이션스리그 STOP 1과 2를 연달아 제패한 데 이어 STOP 6에서도 정상에 올랐다.

이제 이동근의 시선은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으로 향한다. 친구들과 웃으며 뛰던 3x3는 어느새 나라를 대표해 결과를 증명해야 하는 무대가 됐다. 그때의 즐거움으로 시작된 공 하나가, 이제는 태극마크와 금메달이라는 무게를 품게 됐다. “그땐 친구들하고 재미로 했던 기억이 있는데 이렇게 국가대표까지 되어서 감회가 새로워요. 더 설레고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목표는 무조건 금메달이에요.

#003_Application

늘 곁을 지키던 동료들은 하나둘 먼저 새로운 길로 향했다. 지난해 문유현과 윤기찬이 얼리 엔트리로 프로에 도전했고, 올해는 유민수도 일본으로 무대를 옮겼다. 같은 유니폼을 입고 달렸던 시간은 그렇게 하나씩 갈림길을 맞았고, 이제 이동근에게 남은 것은 홀로 마주한 드래프트라는 마지막 관문이다.

많이 외롭습니다(웃음). 저희가 너무 사이좋게 가족처럼 지냈던 친구들이거든요. 작년에 (문)유현이랑 (윤)기찬이가 나갈 때도 많이 아쉬웠는데 이제 (유)민수까지 갔잖아요. 다 같이 대학교 마무리를 잘하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기에 아쉬운 마음이 큽니다. 그래도 우리 동기들이 다 잘했으면 좋겠고 늘 응원하고 있습니다.

이동근은 짧은 구력에도 빠른 성장세를 보이며 일찌감치 관계자들의 눈도장을 받았다. 큰 신장에 기동력과 스피드를 갖췄고, 해를 거듭할수록 슈팅 능력까지 끌어올렸다. 직접 치고 나가 공격을 전개할 수 있는 데다 수비가 몰리면 패스로 동료의 기회를 살리는 시야도 갖췄다. 인사이드와 아웃사이드를 넘나드는 다재다능함에 아직 더 많은 잎을 틔울 성장 가능성까지 더해지며, 이번 드래프트의 강력한 ‘1순위 후보’로 꼽히고 있다.

아직 제가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1순위 후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물론 순위가 당장은 좋겠지만 결국 프로에서 증명을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거기서 잘하는 게 더 중요해요. 그래서 순위 욕심이나 주변에서의 평가들을 최대한 연연하지 않으려고 하고 있고 어느 순위로 가든 제 역할을 톡톡히 해서 팀에 보탬이 되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드래프트는 지금까지 쌓아온 시간을 평가받는 자리인 동시에, 앞으로의 가능성을 직접 설명해야 하는 무대이기도 하다. 수많은 후보 가운데 자신의 이름을 남기기 위해서는 무엇을 잘하는 선수인지, 어떤 모습으로 팀에 보탬이 될 수 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 줄 필요가 있다.

저는 집요한 선수입니다.

뭔가 하나에 빠지면 계속해서 집요하게 파고드는 성향이 있어요. 안 되더라도 될 때까지 시도하고 도전하는 자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 큰 신장에 잘 뛰고 달릴 수 있고 리바운드 같은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선수예요. 높은 에너지로 팀의 사기를 높여 줄 수 있는 선수고 농구적인 부분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많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배워 가면서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성격은 내향적인 편이라서 어색하긴 하지만 사회생활 잘할 수 있고 형들하고도 잘 지낼 수 있는 성격입니다(웃음).

#004_My Future

누구에게나 한번쯤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먼저 그려보는 순간이 있다. KBL 입성을 꿈꾸는 드래프트 참가자들에게도 ‘프로 선수가 된 나’는 오래 품어온 가장 선명한 상상일 터다. 이동근 역시 그 장면의 끝에 한 가지 목표를 분명하게 적어 뒀다. ‘최고’다.

항상 말해 왔지만 최고가 되고 싶어요. KBL에서도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언젠가는 최고가 되고 싶습니다. 많은 팬들이 응원해 주시는 경기장에서 경기를 뛰고, 최고가 돼서 잘하는 모습을 상상하고 싶습니다.

농구를 잘하는 건 당연한 거고 그런 모습으로 보였으면 좋겠어요. 또 농구만 잘하는 게 아니라 경기장 안에서 페어플레이나 매너가 좋은 모습으로도 지켜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또 항상 밝고 팬들한테 잘하는 선수가 되겠습니다. 저는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중에 프로에 가서도 더 최고의 모습으로, 최고의 선수가 돼서 좋은 모습으로 비치겠습니다.”

‘이제 시작’이라고 말한 이동근은 인터뷰 말미 자신의 출발을 만들어 준 사람들도 잊지 않았다. 늦게 농구를 시작한 자신을 처음 발견해 준 지도자와, 결과와 상관없이 한결같이 곁을 지켜 준 부모님이었다.

일단 저를 발견하고 키워 주신 동아고 이성국 감독님께 너무 감사드려요. 농구 처음 시작했을 때 생활적으로나 농구적으로 많이 알려주셨고 정말 많은 힘이 됐어요. 부모님도 제가 잘하건 못하건 언제나 항상 지지해 주고 지원해 주시거든요. 제가 말로 표현을 못하는 성격이라 직접 표현을 잘 못해요. 이 자리를 빌려 부모님께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사진_점프볼DB, 정다윤 기자, 대한농구협회 제공, 이동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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