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성공 보장됐다고?’ 프로 직행이라는 달콤한 유혹, 그 명과 암

매거진 / 최창환 기자 / 2026-09-24 06:00:18
  • 카카오톡 보내기

[점프볼=최창환 기자] 고교 졸업 예정 신분으로 프로에 도전하는 흐름이 가속화되고 있다. 과거 가뭄에 콩나듯 등장했던 프로 직행 사례가 최근에는 부쩍 늘어났다. 심지어 연고 지명을 통해 데뷔, 시상식 무대에 오르고 성인 국가대표에 선발되는 선수까지 등장했다. 화려한 면만 놓고 보면 프로 직행을 마다할 이유가 없겠지만, 이면도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프로는 드래프트 단상에 오르느냐가 아닌 훗날 쌓은 커리어로 평가를 받는 곳이기 때문이다.

송교창 전후로 나뉘는 프로 직행

최고의 고졸 신화로 꼽히는 송교창이 대성공을 거둔 후 프로에 직행하는 고교 유망주가 심심치 않게 나왔지만, 엄밀히 말하면 송교창이 최초의 프로 직행 사례는 아니다. 송교창에 앞서 3명이 고교 졸업 후 곧바로 프로 유니폼을 입었지만, 이는 당시 리그의 특수성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KBL은 2008년 백업 또는 저연차 선수들의 성장을 위해 2군 리그를 공식 출범했고, 2013년까지 매년 2군 드래프트를 실시했다. 1군 드래프트와 같은 날 열렸던 2010~2013 2군 드래프트와 달리 초대 2군 드래프트는 한여름이었던 2008년 8월 26일에 진행됐다. 2008 신인 드래프트에서 선발되지 못한 선수들을 비롯해 각 팀에서 웨이버 공시된 선수, 은퇴 선수, 계약 만료 선수가 참가할 수 있었다.

송교창에 앞서 프로에 직행했던 3명도 2군 드래프트를 통해 선발된 선수들이었다. 최초는 2011 2군 드래프트 3순위로 울산 모비스(현 현대모비스)에 지명됐던 이우균이다. 이우균은 여수전자고 시절 평균 20점에 육박하는 기록을 남긴 데다 KBL&NBA 유소년 농구캠프에서도 ‘캠퍼 오브 더 데이’에 선정됐지만, 신장(174.6cm)이 낮아 대학팀들로부터 외면을 받았다.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드래프트에 참가해 KBL 1호 고졸 직행 사례가 됐지만, 프로의 벽은 높았다. 2011-2012시즌 10경기 평균 2분 2초 출전에 그친 끝에 2012년 은퇴했다. 프로에서는 1점도 올리지 못했다.

이후 2군 드래프트를 통해 선발됐던 고교 선수들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2012 2군 드래프트 10순위로 모비스에 선발됐던 양준영(신림고) 역시 2012-2013시즌 5경기 평균 2분 3초를 소화한 게 전부였다. 양준영은 2014년 은퇴 후 우석대 플레잉코치를 거쳐 3x3 선수, 스킬트레이너 등으로 활동했다. 대구 한국가스공사에서 뛰고 있는 양준우가 그의 동생이다.

이승배(경복고)의 커리어도 이우균, 양준영과 비슷했다. 2013 2군 드래프트 14순위로 창원 LG에 지명됐던 이승배의 1군 기록은 3경기 평균 2분 55초에 불과했다. 3명 모두 신체 조건 또는 발전 가능성에서 썩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해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2군 드래프트 제도를 통해 프로에 입성했지만, 그 이상의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진 못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고졸 프로 직행은 2군 드래프트가 사라진 이후라고 봐야 할 것이다. 서두에 언급한 송교창은 당시 고교 랭킹 1위 포워드였고, 구체적으로 입학과 관련해 얘기를 주고받던 명문대도 있었다. 무성한 소문을 뒤로 하고 2015 드래프트 접수 마감일에 신청서를 제출한 송교창은 3순위로 전주 KCC(현 부산 KCC)에 지명됐고, 성장을 거쳐 고졸 최초의 정규시즌 MVP라는 역사를 썼다.

“고등학교 1학년 때는 너무 어린 나이라 막연히 ‘대학에 가야지’라고 생각했지만, 3학년 때 U19 월드컵을 치르며 생각이 바뀌었다. 엄청 재밌더라. 국내에서 키 작은 선수들과 맞붙다가 덩치 좋고, 빠르고, 슛 좋은 외국선수들과 대결하면서 또 다른 매력을 느꼈다. 그때 프로 직행을 결심했다. 친구들에게서 대학 생활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들었고, 확실히 프로보단 개인 시간이 많다는 것도 느껴졌다. 친구들끼리 놀거나 축제 구경 가는 게 부럽기도 했지만, 내 결심이나 사고에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었다. 그게 부러웠다면 그냥 대학에 가지 않았겠나.” 송교창의 말이다.

“대학 졸업장, 뼈저리게 느낄 때가 있었다”

송교창의 성공 신화는 후배들의 진로에 큰 영향을 끼쳤다. 고교 무대에서 경쟁력을 검증받았다면 곧바로 프로에서 부딪치며 성장하는 것도 좋은 선택지라는 게 증명됐고, 앳된 얼굴의 유망주들이 심심치 않게 프로 무대를 두드렸다.

이를 통해 서명진은 현대모비스의 주전으로 자리 잡았고, FA 협상을 통해 거액의 계약도 맺었다. 김형빈 역시 시즌을 거듭할수록 서울 SK의 주요 식스맨으로 성장했고, 지난 시즌에는 데뷔 후 처음으로 50경기 이상을 소화하기도 했다.

KBL은 더 나아가 연고 지명을 받은 선수가 프로에 직행하는 시대까지 맞이했다. 2025-2026시즌에 에디 다니엘(SK), 김건하(현대모비스)가 나란히 이 제도를 통해 프로에 입성했다. 특히 다니엘은 신인 신분으로 식스맨상을 수상한 데 이어 만 18세에 성인대표팀에 선발되며 10대 국가대표 계보까지 이었다.

고졸 선수들을 바라보는 프로팀들의 시선도 달라졌다. 송교창과 서명진이 주전으로 자리 잡자, 더 높은 순번으로 고교 선수를 지명하는 팀이 속속 등장했다. 차민석(제물포고)은 2020 드래프트에서 역대 최초 고졸 1순위의 영예를 안았고, 2024 드래프트에서는 1순위(박정웅-홍대부고)와 2순위(이근준-경복고) 모두 고졸 예정 선수로 채워졌다.

지명률도 높은 편이었다. 송교창이 선발된 2015 드래프트 이후 졸업을 앞두고 드래프트에 참가한 고교생은 총 11명이었으며, 이 가운데 9명이 프로팀의 선택을 받았다. 2017년 양홍석의 동생 양성훈(부산중앙고)과 2022년 오창욱(횡성고)만 선발되지 못했고, 이 가운데 오창욱은 엘리트 선수가 아니었다.

최근 10년간 지명률(81.8%)만 놓고 보면 도전을 망설일 이유가 없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프로 직행이 반드시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2년 사이 드래프트에서 지명됐던 5명은 샘플이 적어 평가를 유보한다 해도 이들에 앞서 프로에 직행했던 4명은 명과 암이 분명했다.

특히 차민석은 ‘최초 고졸 1순위’라는 타이틀로 인해 누구보다 많은 기대 속에 데뷔했지만, 입대 전까지의 성장세는 기대치를 밑돌았다. 5시즌을 치르는 동안 125경기 평균 12분 56초를 소화하는 데에 그쳤고, 뚜렷한 포지션이나 장점을 보여주지 못했다. 차민석은 상무에서 군 복무 중 소노로 트레이드됐고, 이는 프로에 직행한 고졸 출신 가운데 첫 이적이었다.

차민석을 품은 손창환 소노 감독은 “삼성에서 3번으로 전향시키려 했는데 잘 안됐던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가 구상하는 것도 크게 다르진 않겠지만, 3번과 4번을 오갈 수 있는 유형으로 키워야 하지 않을까 싶다. 트레이드가 동기부여가 될 수도 있다. 본인도 이적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라고 말했다.

차민석의 드래프트 동기 조석호 또한 2년 차 시즌에 4경기 평균 7분 15초만 뛰었고, 현역으로 병역 의무를 이행했다. 사실상 20대 중반에 원점서 새 출발하는 셈이다.

결국 선수가 부딪치며 성장해야 할 곳은 코트다. 더 높은 수준의 훈련, 지원을 받는 프로에서의 경험 못지않게 꾸준히 실전을 치르는 것도 이제 막 성인이 된 선수들이 성장하는 데에 필요한 항목 가운데 하나다. 선수에 따라선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요소일 수도 있다.

프로 감독으로 많은 경험을 쌓았을 뿐만 아니라 고졸 선수도 지도한 경험이 있는 김진 전 LG 감독은 “고교 졸업 예정 선수의 프로 진출은 장단점이 명확하다. 프로팀이 대학에 비해 더 체계화된 시스템을 갖춘 만큼,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량과 체격을 키운다는 것은 선수에게 득이 되는 부분이다. 팀 입장에서도 미래에 대비할 수 있다. 다만, 대학에서 당장 많은 경기를 소화하며 감각을 쌓는 것도 한창 성장하는 선수들에겐 중요한 요소다”라고 견해를 전했다.

주희정 고려대 감독 또한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를 남겼다. “나도 이른 나이에 프로에서 성공했지만, 은퇴 후 대학 졸업장이 필요하다는 걸 뼈저리게 느낄 때가 있었다. 고교 졸업 후 바로 프로에 가는 것만큼 대학을 거치는 것도 분명 배울 점이 있다. NBA에서도 코비 브라이언트, 르브론 제임스 정도로 특출한 게 아니라면 대학을 거쳐 성공한 선수가 더 많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물론 경제적인 부분도 동기부여가 되겠지만, 주위에 자문을 많이 구한 후 결정을 내렸으면 한다. 일찍 프로에 간다고 그만큼 더 오랫동안 선수로 뛰는 게 보장된 것도 아니다. 1, 2년 이내에 가능성을 못 보여주면 대학 졸업 후 입단한 선배들에게 밀릴 수 있다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주희정 감독의 견해다.

당장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순 있겠지만, 결국 프로는 드래프트 단상에 오르는 것만으로 평가받는 무대가 아니다. 지명 순위에 걸맞은 가치를 보여줘야 할 뿐만 아니라 꾸준한 자기 관리와 성장을 통해 롱런해야 하는 전쟁터다. 프로 직행을 꿈꾸는 고교생 혹은 더 어린 선수들이 반드시 유념해야 할 명제다.

NBA조차 규제하는 ‘고졸 신화’

NBA의 살아있는 역사라 할 수 있는 르브론 제임스(필라델피아)는 어쩌면 고교 졸업 후 NBA에 직행해 성공한 마지막 사례가 될 수도 있다. 케빈 가넷을 시작으로 코비 브라이언트, 아마레 스타더마이어, 르브론 등이 NBA에 직행하며 슈퍼스타가 됐지만, NBA는 2005년 드래프트 참가 규정에 제한을 뒀다. 대학을 1년 이상 마쳤거나 드래프트가 열리는 날을 기준으로 만 19세 이상이어야 드래프트에 참가할 수 있다는 규정을 신설한 것. 곧바로 NBA에 뛰어들어 실패한 사례를 통해 이에 대한 위험부담을 최소화하는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콰미 브라운이다. 브라운은 2001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지명됐고, 당시 그를 선택한 워싱턴 위저즈의 사장이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이었다는 배경까지 더해져 어마어마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브라운은 기대와 달리 NBA에서 그저 그런 선수로 뛰다 30살의 나이에 은퇴했다.

NBA가 반강제적으로 고교 유망주들의 대학 진학을 명문화하자, NBA는 대학에서 1년만 뛰고 드래프트에 나서는 이른바 ‘원 앤 던(One and Done)’이 유행처럼 번졌다. 명문 대학들이 유망주를 스카우트하는 데에 있어서 이를 유혹의 수단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케빈 듀란트, 데릭 로즈, 앤서니 데이비스 등이 NCAA를 ‘찍먹’한 후 NBA에 진출한 선수들이다.

이는 NBA에서 여전히 ‘뜨거운 감자’이기도 하다. 단순히 주목을 받는 데에서 그치는 게 아닌, 하루빨리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프로 직행을 원했던 고교 선수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트레이시 맥그레이디도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농구를 선택한 선수 가운데 1명으로 잘 알려졌다.

실제 선수 노조는 2011년 NBA와의 CBA 협상에서 드래프트 참가 나이 제한 폐지를 강력히 요구한 바 있고, NBA도 2018년 고졸 선수들의 프로 직행을 다시 허용하는 규정을 진지하게 검토하기도 했다.

결론은 현상 유지였다. NCAA에서도 웬만한 NBA 선수 못지않은 대우를 받을 수 있고, 경제적 문제가 시급하다면 만 18세 이후부터 뛸 수 있는 G리그를 통해서도 급한 불을 끄는 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될 성싶은 떡잎은 1년이라도 빨리 불러들이는 게 리그 흥행의 호재로 작용하겠지만, 나무가 아닌 숲을 바라보는 NBA다.

#사진_점프볼DB(문복주, 유용우, 박상혁 기자), KBL PHOTOS

 

[ⓒ 점프볼.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포토뉴스

많이 본 기사

최근기사

JUMPBALL S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