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농시] "큰 꿈에는 큰 희생이 필요하다" 황민재의 '1년' 우회는 성장의 디딤돌이 됐다
- 아마추어 / 이연지 기자 / 2026-07-09 12:43:32

[점프볼=이연지 인터넷기자] 수능 점수 대신 오직 농구 실력으로 대학 문을 두드린 신입생들의 능력을 평가하는 시간.
'대학농구능력시험(대농시)'이다. 아직은미완성이지만, 앞으로 무궁무진한 정답을 채워 나갈 신입생들의 성장 기록을 들여다본다. 그 열네 번째 성적표의 주인공은 '명지대 황민재(182cm, G)'다.

#소년로그
"돌잡이할 때 농구공을 잡았대요."
웃으며 건넨 이 한마디만으로도 황민재의 농구 인생은 설명됐다. 농구인 집안은 아니었지만, 농구를 좋아하던 아버지를 따라 드나들던 동호회 체육관은 어린 황민재의 놀이터였다. 또래 아이들이 장난감을 손에 쥘 때, 그의 손에는 늘 농구공이 들려 있었다.
"4살 때부터 아버지 동호회를 따라다니다 보니 어느 순간 농구공을 잡고 있더라고요. 그러다 모비스 유소년 농구 클럽에 들어갔죠. 대회를 뛰고 있었는데 송정초 감독님께서 스카우트 제의를 주셨어요. 그렇게 3학년 때 본격적으로 선수 생활을 시작하게 됐어요."
이후 진학한 화봉중은 황민재를 한 단계 성장시킨 무대였다. "화봉중이 훈련 강도가 높다는 걸 알고 갔어요. 워낙 명장이시니까 조금이라도 더 배우고 싶었죠. 그래서 눈에 한 번이라도 더 잘 띄려고 노력했어요. 야간에 안 보이는 곳에서 따로 슛을 쏘고 연습했는데 그때 실력이 많이 늘었던 것 같아요."
흘린 땀은 성과로 돌아왔다. 3학년 시절 팀의 유일한 3학년이자 주장으로 제58회 춘계연맹전 결선 진출을 이끌며 미기상을 수상했다. 이어 제46회 협회장기에서는 한 경기 50점을 몰아치는 등 대회 5경기 평균 30.8점 9리바운드를 기록하며 뛰어난 공격력을 과시했다.

성장한 것은 실력만이 아니었다. 황민재는 팀을 먼저 생각하는 주장이 되며 한층 더 성숙해졌다.
"원래는 사회생활도 모르고 까불거리기만 했어요. 그런데 중학교 1학년 이후로 감독님을 만나면서 사람 자체가 완전히 바뀌었죠. 제가 팀을 이끌 수 있는 인격을 갖추도록 끊임없이 가르쳐 주셨거든요. 그 덕분에 동료들을 북돋아 더 높은 곳으로 가야 한다는 사명감을 배우게 됐어요."
화봉중에서 다진 리더십은 무룡고에서도 한층 깊이를 더했다. 연이어 주장 완장을 찬 그는 팀의 구심점 역할을 맡았고, 김진호 감독과 함께한 마지막 1년은 그의 농구 인생에 있어 잊을 수 없는 터닝포인트가 됐다.
황민재가 가장 선명하게 기억하는 경기도 그 시절이다. 제54회 추계 전국남녀중고농구 상주대회 인헌고와의 8강전. 3점슛 4개를 포함해 24점 3리바운드 4어시스트로 활약하며 승리를 이끈 그날은 단순히 기록이 좋았던 경기가 아니었다.
"고등학교 들어와서 농구가 정말 재밌다고 느꼈어요. 제가 잘하는 플레이가 그대로 나왔거든요. 처음으로 고등학교에서 희열감을 느낀 경기였어요."
치열한 승부의 이면에는 동료들과 함께한 소소한 웃음도 있었다. 매일 반복되는 고된 훈련이었지만, 그는 그 과정마저 즐거움으로 물들였다.
"(문)유현이 형이랑 맨날 남아서 슈팅 100개씩 쏘다가 바나나우유를 걸고 일대일 대결을 하기도 했어요."
쉼 없이 농구 하나만 바라보며 달려왔던 그였다. 하지만 그토록 농구를 사랑했던 황민재에게도 문득 농구가 버겁게 느껴지는 순간이 찾아왔다.

#재도전로그
"낙방하고 나서 농구할 생각이 없었어요."
고교 시절 꾸준히 자신의 이름을 알렸지만, 바라던 대학 합격 소식은 끝내 찾아오지 않았다. 황민재는 한동안 농구와 거리를 뒀다. 농구공을 놓으려 했던 순간, 다시 손을 잡아준 건 가족이었다. "할머니하고 부모님이 제가 농구하는 걸 좋아하세요. 그래서 한 번 더 도전하기로 마음먹었죠."
하지만 마음을 먹는 것과 몸이 따르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1년이라는 공백은 생각보다 깊었다. 몸은 쉽게 돌아오지 않았고, 농구 감각도 예전 같지 않았다. 동호회까지 찾아가 감을 되찾으려 애썼지만, 원하는 만큼 돌아오지 않았다.
방황의 끝자락에는 화봉중 시절 스승인 김현수 코치가 있었다. 황민재가 농구를 놓지 않도록 그 곁을 온전히 지킨 지도자였다.
"코치님께 정말 많이 혼나기도 했어요. 그런데 안 되는 부분이 있으면 끝까지 같이 남아서 계속 볼을 잡아주셨어요. 제가 원래 잘 안 고쳐지는 스타일인데 안 되는 부분 하나씩 짚어주시니까 결국 고쳐지더라고요. 그 시간이 저에게 진짜 소중해요. 김현수 코치님이 없으셨다면 지금의 저도 없을 것 같아요. 완전히 농구를 포기했겠죠."
김 코치는 황민재를 붙잡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다시 코트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코치의 소개로 6월부터 합류하게 된 부산 BNK썸 인스트럭터 생활은 그에게 새로운 출발점이었다.

"3월까지 농구를 쉬었어요. 그러다가 6월부터 인스트럭터를 하게 됐죠. 그때부터 다시 몸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근육 자체가 다 빠진 상태라 급하게 만들어보려고 해도 만만치 않더라고요. 생각처럼 안 되니까 스트레스도 받았어요."
하지만 BNK에서의 발걸음은 단지 재정비 과정만은 아니었다. 매일 프로 선수들과 같이 땀을 흘리며 그는 서서히 농구를 다시 삶의 중심에 놓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큰 힘이 된 건 박혜진, 안혜지, 김소니아 등 프로 선수들이 건네는 진심이었다. 연습이 끝난 뒤 짧게 건네는 조언, 등을 두드려주는 격려 한마디, 누군가에게는 스쳐 지나갈 일이었지만 황민재에게는 다시 앞으로 걸어갈 이유가 됐다.
"다 대단하신 선수잖아요. 그런데 좋은 말도 많이 해 주시고 용돈도 많이 챙겨주세요. 제가 명지대 합격해서 올라갈 때는 안혜지 선수님이 잘하라고 편지를 정말 정성을 담아서 써주셨어요. 그게 가장 기억에 남아요. 지금도 힘들 때마다 방에 붙여놓은 그 편지를 계속 보면서 힘내고 있어요. BNK 못 들어갔으면 진짜 피폐한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싶어요."
재수의 시간을 이겨낼 수 있었던 데에는 오래 이어온 습관도 한몫했다. 중학교 시절 선배들의 모습을 보며 자연스럽게 시작한 독서는 어느새 황민재의 일상이 됐다. 이는 단순한 루틴을 넘어, 흔들릴 때마다 그를 붙잡아주는 버팀목이 됐다. 지금도 그는 경기 전이면 늘 책을 먼저 펼친다. 독서로 마음을 가다듬은 뒤 코트에 들어서고, 하루의 끝도 책과 함께 정리한다.
결국 그 시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하나의 문장으로 압축된다.
"재수할 때 '지금의 고통은 더 단단해지는 길이 될 거니까'라는 문장이 크게 다가왔어요. 그 문장이 마음을 지탱해 주는 힘이 됐던 것 같아요."
스스로를 다독이던 인고의 시간은 대학이라는 목표를 향한 집념으로 바뀌었다. "제가 잘했던 영상들을 보면서 대학에 가면 어떤 농구를 할지 계속 꿈꿨어요. 그게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계기가 됐죠. 대학에 가서 잘하고 싶었어요. 재수 시즌에 보여주지 못했던 농구를 다음 해에 꼭 증명하겠다는 마음으로 준비했어요."
떨어져도 다시 튀어 오르는 농구공처럼, 황민재의 재수는 끝이 아니라 더 높이 도약하기 위한 반동이었다. 돌고 돌아 다시 제자리를 찾은 그는 이제 지난 1년을 후회하지 않는다. 길었던 우회는 결국 단단한 디딤돌이 됐다.

#대학농구능력시험
일반 학생들에게 수능이 그간의 노력을 입증하는 관문이라면, 선수에게 경기는 곧 스스로의 가치를 보여주는 시험장이다. 푸른 유니폼을 입고 대학 무대에 선 황민재 역시 자신의 농구를 다시 점검하며 성적표를 써 내려갔다.
공격과 슈팅 능력, 볼 핸들링에 각각 2등급을 부여했다. "고등학교 때도 공격적인 부분은 뒤처지지 않았어요. 슈팅 능력도 사거리 상관없이 멀리서도 던질 수 있어요. 볼 핸들링도 워낙 어릴 때부터 농구를 시작했다 보니까 좋은 것 같아요."
이러한 자신감은 고교 무대에서 남긴 퍼포먼스에서 기인한다. 그는 딥쓰리와 수비수를 따돌리는 플로터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공격에서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특히 무룡고 3학년 시절 뿜어내던 에너지는 단연 돋보였다. 주말리그 왕중왕전 여수화양고전에서 20점 10리바운드 14어시스트로 트리플더블을 작성했고, 이어진 경북에너지기술고와의 맞대결에서도 3점슛 8개를 몰아치며 39점 12리바운드를 기록하는 기량을 과시했다.

"대학은 피지컬 차이가 커요. 피지컬이 좋은 선수들과 붙으면 공격, 수비 모두 힘에서 많이 밀려요. 한 명 뚫기가 힘들더라고요. 수비 디테일도 확실히 달라요. 1대1 수비는 자신 있는데 2대2 수비는 이해도가 아직 부족해요. 많은 지시가 한꺼번에 들어오면 머릿속에서 정리가 안 될 때도 많아요. 그래서 틀리더라고요."
고민은 곧 성장의 동력이었다.
"제가 더 발전하는 수밖에 없어요. 잘해내려고 그날 혼났던 부분들을 일기 쓸 때 계속 적어둬요."
황민재에게 일기장은 매일의 실수를 복기하는 오답노트다. 고민을 꾹꾹 눌러 적는 그 흔적들은 그를 조금씩 더 단단한 가드로 빚어내고 있다.

#대학로그
황민재는 대학에서 자신만의 속도로 빈칸을 채워가는 중이다. 입학 직후 동계 훈련은 혹독한 신고식이었다.
"몸이 완벽하게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훈련에 들어가다 보니 제 기량을 보여주지 못했어요. 자신감도 많이 떨어졌죠. 그래도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고 스스로 다잡았어요. 부족했던 스피드도 웨이트 트레이닝을 통해 개선해 나갔어요."
진짜 벽은 압박감이었다. "원래는 긴장을 잘 안 하는 편이었어요. 그런데 대학에 와서는 실수하면 안 된다는 불안감에 손이 떨리기도 하고 긴장을 많이 하게 되더라고요. 출전 시간에 비해 보여준 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조심스러워요."
하지만 조급함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멈추는 대신 자신의 존재감을 하나씩 쌓아갔다. 전반기 11경기 평균 3.73점 3.73리바운드 2.91어시스트. 신입생 중 가장 오래 코트를 누비며 어시스트 부문 팀 내 2위에 올랐다.
기록 이상의 변화는 내용에서 나타났다. 경기를 조율하고 빈 곳을 메우는 모습에서 그가 오랫동안 꿈꿔온 역할에 한 걸음 다가섰음을 엿볼 수 있다.
황민재에게 코트를 지휘하는 1번(포인트가드) 자리는 중학생 때부터 가슴 한편에 묻어두었던 갈증이었다. 중·고교 시절 팀 사정상 2번(슈팅 가드)과 3번(스몰 포워드)을 오가며 득점에 집중했다.
대학 입학 후 이태우의 부상으로 공격의 시작을 맡게 된 그는 매 경기를 경험 삼아 차근차근 자신의 영역을 넓혀가는 중이다. 침착한 경기 운영은 그가 팀에 안정감 있게 적응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특히 황성인 코치님께 많이 배우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몸이 안 좋으신데도 훈련 중간중간 직접 몸을 쓰시면서 알려주시거든요. 말씀 하나하나를 제 것으로 만들려고 계속 집중하고 있어요. 전반기 동안은 경기 운영을 많이 익힌 것 같아요."
그의 시선도 달라졌다. 득점의 즐거움을 알던 그는 이제 동료의 슛 찬스를 만드는 과정 자체에서 새로운 재미를 찾고 있다.
"지금은 1학년이다 보니 동료를 살리는 패스나 궂은일을 많이 기대하시는 것 같아요. 저도 득점에서 돋보이기보다 어시스트나 리바운드 부분에서 좋은 모습 보이고 싶어요. 득점은 워낙 할 사람이 많다 보니까 (장)지민이 형을 많이 살려주는 쪽으로 하고 있어요."
동료를 살리고자 하는 지금의 방향성은 그가 꿈꾸는 경기를 조율하는 가드와 맞닿아 있다. 황민재가 그리는 청사진은 명확하다. "양준석 선수처럼 경기를 마음대로 가지고 놀 수 있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템포 조절도 하면서 쏠 때는 쏘고 2대2 플레이도 잘하시잖아요. 그런 부분을 닮고 싶어요. 대학에서 많이 배워 결점 없는 프로 선수로 자리 잡는 것이 목표예요."
스스로 98%가 부족하다 말하지만, 그 이면에는 더 나아지려는 성실함과 꾸준함이 깃들어 있다. 묵묵히 제 조각을 맞춰가는 태도야말로 그의 진정성을 설명하는 정확한 언어다.
흩뿌려진 가능성이 하나둘 자리를 찾아 여백이 채워질 무렵, 그가 그려낼 윤곽은 한층 또렷해진다. 황민재가 써 내려갈 다음 장면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사진_황민재 제공, 점프볼 DB
[ⓒ 점프볼.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