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슬램게임: 드래프트에 참가하시겠습니까?] (017) 동국대 김명진 “하이라이트 제조기가 되고 싶어요”
- 아마추어 / 정다윤 기자 / 2025-10-04 11:00:33


#001_Scan. 017번 참가자: 김명진
중학교 3학년 시절, 청솔중학교에 다니던 그는 이미 190cm 장신이었다. 쾌활한 성격 덕에 체육 시간마다 코트를 종횡무진하며 시선을 사로잡았다. 마침 친구의 아버지가 배재고 감독이었고, “키 크고 잘 뛰는 아이가 있다”는 말이 전해지면서 그의 이름은 자연스럽게 농구계에 흘러들어갔다.
“테스트 받아보라고 했거든요. 당시에는 어린 마음에 수학 학원을 하루 쉬고 싶어서 좋다고 했죠. 그랬는데 같이 운동해보는 게 어떻냐고 제안해 주셔서 고민하게 됐어요. 어머니께서 시켜보고 싶으셨는지 ‘한번 해보겠다’ 했죠. 사실 처음부터 큰 꿈을 가지고 시작한 것도 아니었고, 농구로 성공해야겠다는 마음도 아니었으며 대학을 가겠다는 각오도 아니었어요. 무모한 생각이었죠.”

그렇게 고등학교 1학년 때 농구의 여정이 시작됐다. 처음엔 배재고에 진학했지만 코치의 사임으로 인해 휘문고로 전학을 갔다. 새로운 무대에서 받은 충격은 더 컸다. 팀에는 이미 기량이 빼어난 선배들(이강현·이대균·조환희)이 버티고 있었다. 실력에 더해 성실함까지 갖춘 이들의 모습은 위압적으로 다가왔다. 동기들 또한 뛰어난 선수들이라 처음에는 그 흐름을 따라잡고 빠르게 적응하는 것만으로도 숨가빴다.
“수준이 아예 다른 사람들이더라고요. 그때 생각하면 절대 시작 안 했을 것 같아요. 오히려 축구를 더 좋아했거든요. 뭐에 홀린 듯 시작하게 된 것 같아요.
당시 3학년이 4명이었는데 4번 자리가 비어 있었죠. 원래 (김)수오가 맡던 자리였는데 무릎 부상으로 제가 들어가게 됐어요. 경기 출전이 늘면서 실력이 많이 늘었고, 추계대회 우승으로 자신감도 얻었죠. 송영진 감독님께 감사해요. 저와 같은 포지션 출신이셨는데, 저와 수오가 본인 고등학교·대학교 시절과 닮았다고 해주셨어요. 인사이드에만 두지 않고 내외곽을 모두 오갈 수 있게 가르쳐주신 덕분에 지금의 플레이를 만들 수 있었어요.”
출전 시간을 부여받으며 실력을 가파르게 키운 김명진은 늦게 농구를 시작했음에도 대회마다 20점대 득점과 두 자릿수 리바운드를 올렸고 블록슛까지 빠짐없이 기록했다. 블록슛은 지금까지도 그의 확실한 장점이다. 특히 2022년 종별대회에서는 29점 14리바운드 '7블록슛'을 폭발시키며 공수에서 맹활약했다. 2021년 추계대회에서는 20점 8리바운드를 기록하며 팀에 42년 만의 추계대회 우승을 안겼다.

#002_Life in University. (대학: 지명을 위한 1차 관문)
동국대에 진학한 김명진은 입학과 동시에 또 한 번의 벽을 마주했다. 고등학교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운동량이 늘어나며 적응이 쉽지 않았다. 특히 합류 첫날 진행된 체력 테스트에서 그 차이를 뼈저리게 느꼈다. 수업으로 자리를 비운 선배들을 제외하고 1학년 동기들만 뛰었는데, 세 명이 압도적인 기량으로 주어진 시간을 거뜬히 채우는 모습을 보며 곧 깨달았다.
“저 포함 3명은 맨날 뒤처지고 못 들어갔죠(웃음). 몇 바퀴씩 뒤처졌던 게 기억나요. 평소 훈련 때도 시간 안에 못 들어오면 다시 뛰어야 했거든요. 형들이 우스갯소리로 ‘시간 벌어주는 게 우리 셋’이라고 했죠. 그렇게 열심히 하다 보니 1학년 중후반쯤 체력이 많이 올라왔어요. 잘하는 친구들이 있어서 1학년 때는 경기를 많이 못 뛰었는데 팀원 부상으로 출전할 수 있게 됐어요. 그 기회를 놓쳐서 다시 못 뛰게 되면 스스로 자존심 상하고 화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정말 열심히 준비했죠.”
김명진은 누구보다 집요하게 몸을 단련했다. 런닝 훈련에서는 남들보다 세 바퀴 더 앞서겠다는 각오로 뛰었다. 작은 훈련 하나에도 끝까지 집중하며 더 빠르고 강하게 나아가려 했다. 그 치열함은 곧 성과로 이어졌다. 2학년이 되자 경기력이 눈에 띄게 상승했고 주목도 함께 높아졌다. 3학년에 접어들며 주축이던 이대균(현대모비스)과 백승엽(DB)이 빠진 뒤에는 상대의 견제가 고스란히 자신과 한재혁(동국대)에게 쏠렸다. 그럼에도 그는 흔들림 없이 도전을 이어갔다.
“집중 견제를 이겨낼 실력이 부족하다고 느꼈죠. 그래서 이번 1학기가 제일 힘든 시기였던 것 같아요. 경기 중에는 웃지도 않고 감정 조절도 어려웠어요. 생각이 많고 안 풀려서 위기였던 것 같아요. 지금도 극복하는 중이에요.
슬럼프를 처음 겪다 보니 방법을 몰랐어요. 그래서 운동도 생각 없이 해보고, 원정 가면 자면서 노래도 듣고, 마음 안정을 위해 경기 전에 책도 읽었어요. 원래 소설을 좋아했는데 지금은 경기 전에 동기부여가 되는 책 한 페이지를 읽어요. 마음을 울리는 에세이를 읽게 됐어요. 늘 펼쳐보는 페이지가 있어요. ‘지금 하는 일에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하자. 일, 사람, 관계 뭐든 최선을 다해봐야 나중에 후회가 없더라’라는 문구예요. 그 짧은 구절이 너무 인상 깊어서 항상 읽고 경기에 들어가요.”

김명진은 2025년 이상백배 한일 대학대표팀에 발탁됐다. 화려한 공격보다 수비와 궂은일로 팀에 힘을 보탰고, 이는 곧 그의 가치를 확장하는 과정이었다. ‘23학번 황금 세대’ 속에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에서 팀에 보탬이 되겠다”는 태도로 자신을 증명했다. 김현국 감독 아래 압박 수비를 익히며 한 단계 도약한 경험은 프로 무대에서도 강점으로 이어질 자산이 됐다.
“대표팀을 가는 게 너무 큰 꿈이었어요. 태극마크 달고 뛰는 친구들 보면 너무 부러웠거든요. (박)승재 형, (이)대균이 형이 가는 거 봤죠. 형들도 너무 좋은 경험이라고 하더라고요. 유니폼 뒤에 영어로 이름 써있는데 너무 멋있어서 제가 유니폼 좀 보여달라고 계속 졸랐거든요(웃음). 그랬는데 제가 발탁되니 너무 기분 좋았죠. 이번 3학년은 특히 황금 세대라고 불리잖아요. 근데 거기서도 잘하는 친구들이 열심히 하니까 충격이면서 동기부여가 된 것 같아요.
원래 제가 수비를 디나이, 압박을 하는 스타일이 아니거든요. 김현국 감독님(경희대)은 완전 압박 수비 스타일이세요. 처음에는 지적을 많이 받았죠. 한발 더 나가서 압박하는 수비도 많이 배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런 저런 경험이 쌓이면 프로에서도 적응하는 데 도움이 되니까요. 너무 값진 경험이었어요.”
지난 동국대를 돌아본 김명진은 2학년으로 넘어가던 전지훈련을 성장의 분기점으로 꼽는다. 팀이 워낙 독보적이던 박승재(삼성)에게 의존하다 보니 상대의 견제가 몰리면 공격이 쉽게 막히고 팀 전체 흐름까지 흔들렸다. 그는 그 과정을 지켜보며 더 이상 소극적으로 머물 수 없다고 깨달았다. 결국 2학년을 앞둔 동계 훈련에서 공격적으로 변하겠다는 다짐을 굳혔고 슛 연습을 하루 1000개 메이드로 다듬으며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슛이 안 들어가면 감독님이 ‘오늘은 천 개 넣을 때까지 쉬지 마라’고 극단적으로 말씀하시곤 했어요. 실제로 저희가 천 개를 다 쏘기도 했죠. (이)대균이 형은 원래 슛이 잘 들어갔는데도 똑같이 시키시니까 억울했는지, 오히려 더 집중해서 하나하나 다 세면서 끝까지 쏘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그래야 슛이 좋아지구나 싶었죠. 저도 따라 하면서 안 쉬고 하다 죽을 뻔했죠(웃음). 혼자 할 땐 새벽 1시까지 체육관에서 천 개를 쏘기도 했는데 그렇게 반복하다 보니 슛 감각이 확실히 좋아지더라고요.”

대학 리그에서 김명진의 블록슛은 손에 꼽힌다. 그는 1학년 때 9경기 8개, 2학년 16경기 35개, 3학년 16경기 26개를 기록하며 꾸준히 존재감을 드러냈다. 특히 2학년 시즌에는 평균 2.19개로 '전체 2위'에 올랐고, 3학년 때의 26개 역시 '리그 최다 개수'였다. 고교 시절부터 이어진 블록슛 본능은 큰 신장과 정확한 점프 타이밍을 무기로 삼아 상대 슛을 단호히 차단하며 빛을 발했다.
“블록슛 타이밍이 잘 보여요. 제가 높다 보니 ‘늦었다’ 싶어도 운 좋게 걸리더라고요. 점프 높이만큼은 자신 있어서 붕붕 뜨는 점프가 좋게 작용했죠. 지난해에 (이)대균이 형이 항상 말했어요. ‘앞선이 뚫려도 걱정하지 말고 로테이션 돌자고, 명진이가 알아서 블록슛 쳐줄 거다’라고요. 그렇게 믿어준 덕분에 자신감과 책임감이 생겼고 한 발 더 뛰어 수비한 게 좋은 기록으로 이어진 것 같아요.”

#003_Application. (드래프트 참여를 원하십니까?)
김명진은 대학 무대를 끝까지 채우기보다 한 발 앞서 나가기로 했다. 그는 3학년을 마친 뒤 곧바로 얼리 엔트리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얼리 엔트리 결심은 부모님과 상의한 게 컸어요. 저도 1년 일찍 도전해서 부딪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고등학교 때부터 얼리 엔트리를 긍정적으로 생각해왔거든요. 어쨌든 목표는 프로 선수니까 한 발 더 빨리 다가갈 수 있다면 좋은 거고, 1년이라는 시간이 헛되이 보내는 시간은 아니니까요. 일찍 적응하는 게 더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감독님, 코치님께 상의드렸는데 제 선택을 존중해주셔서 너무 감사했죠. 참가를 결정하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치열한 경쟁 속 자기 PR의 중요성 역시 더욱 커진다. 취업준비생인 드래프트 도전자들이 입사 희망 기업인 KBL 10개 구단에게 왜 다른 도전자들보다 자신을 선발해야 하는지 적극적으로 어필해야 할 필요성은 더욱 커진다. 그렇기에 ‘25슬램게임’은 각 도전자들에게 ‘1분 자기소개’의 시간을 부여하기로 했다.
“저는 성장형 선수입니다.”
“운동 능력 하나만큼은 꿀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제일 큰 강점이자 첫 번째 무기라고 봅니다. 대학은 물론 프로까지 포함해도 저보다 점프 잘 뛰는 선수는 많지 않다고 생각해요. 스피드도 있어서 앞선 수비가 가능하고 뒷선에서는 헬프 수비, 블록슛 타이밍도 잘 보는 편입니다. 프로에서도 수비를 중요시하니 구단에서 데려가면 요긴하게 쓰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저는 계속 성장 중입니다.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하나하나 보완해 나갈 거예요. 공부도 하고 있고 꾸준히 가파르게 성장하는 것도 큰 장점이에요. 주변 선생님들의 조언도 잘 들어서 이행할 수 있습니다. 받아들이는 자세가 됐기에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004_My Future (‘프로’농구 선수 김명진의 삶은?)
누구나 행복한 상상이라는 것을 해본 적 있지 않나. KBL 일원이 되고 싶은 꿈을 가진 드래프트 참가자들은 저마다 한 번씩 “내가 프로 선수라면?”이라는 행복한 상상을 해봤을 것이다. 그래서 물었다. 프로 선수가 된 당신은 어떤 플레이를 펼치고 팬들과 동료들에게 어떤 칭호를 받는 선수가 되어있을 것 같은지에 대해 말이다.
“제가 가진 가장 확실한 목표 중 하나는 중요한 경기에서 위닝 버저비터를 성공시키는 거예요. 그 짜릿함을 직접 느껴보고 싶다는 게 제 버킷리스트입니다. 그런 기회가 온다면 꼭 잡고 싶어요.
저는 하이라이트 제조기가 되고 싶습니다. 점프가 좋으니까 시원한 덩크슛이나 블록슛으로 하이라이트를 많이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또 하나의 목표는 국가대표예요. 이번에 처음 대학 대표팀에 갔을 때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했던 경험이었거든요. 이번 성인 대표팀이 이번에 ‘원 팀’ 분위기로 좋은 성적을 낸 걸 보면서 너무 멋있다고 생각해요. 유튜브에서 관련 영상들을 보면서도 계속 동기부여가 됐죠. 언젠가는 그 안에서 같이 웃고 울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그는 앞으로 함께하지 못할 동기들과 후배들을 떠올리며 진심 어린 메시지를 전했다. 그는 팀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남겼다.
“먼저 나가게 돼서 미안한 마음이 커요. 사실 4학년까지 다 채우고 싶은 마음도 있었죠. 그렇지만 더 멀리 내다봤을 때 1년 일찍 프로 도전을 결정하게 된 거라 동기들한테 미안한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남은 시간 동안은 더 재미있고 많은 추억을 만들고 싶다고 말하고 싶어요.”
‘하이라이트 제조기’를 꿈꾸는 김명진은 늦깎이 출발에도 집요한 노력으로 단단해졌다. 천 개 슛 훈련과 끈질긴 수비, 블록슛 본능은 그만의 무기다.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온 그는 이제 KBL에서 어떤 색을 입힐지 기대된다.
#사진_김명진 제공, 점프볼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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