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농시] "부러진 손가락이 준 신의 한 수" 연세대 김상현, 패배에 익숙했던 소년의 성장기
- 아마추어 / 정다윤 기자 / 2026-06-10 11:00:24

이른바 ‘대학농구능력시험(대농시)’이다. 아직은 미완성이지만, 앞으로 무궁무진한 정답을 채워 나갈 이들의 성장 기록을 들여다본다. 그 다섯 번째 성적표의 주인공은 '연세대 김상현(190cm, G)'이다.
김상현은 어렸을 때부터 몸을 움직이는 일을 좋아했다. 축구공을 쫓아다니기도 했고 배드민턴 채를 잡기도 했다. 농구 역시 특별한 의미를 가진 종목이라기보다 여러 취미 중 하나였다. 초등학교 4학년까지는 그저 친구들과 즐기는 운동에 가까웠다.
방향이 달라진 건 아버지의 한마디였다. 농구인인 아버지(김도명 심판)는 아들에게 취미가 아닌 선수의 길을 제안했다. “제대로 엘리트 운동을 해볼 생각은 없냐”는 물음이었다.
“취미 농구는 일주일에 한 번씩 하잖아요. 근데 엘리트 농구를 하면 일주일 내내 한다고 들었거든요. 맨날 하고 싶어서 하겠다고 했죠.” 가볍게 즐기던 농구는 그 순간부터 꿈을 향한 출발선이 됐다. 그렇게 김상현은 공 하나에 책임과 목표를 담기 시작했다.

그 무렵 김상현의 가슴 한구석에는 늘 아쉬움과 갈증이 자리하고 있었다. 중학교 시절 내내 예선 탈락의 쓴잔을 마시며 패배가 익숙해졌던 소년에게, 높은 곳에 서는 삼일고 선배들의 모습은 눈이 부실 만큼 거대한 동경으로 다가왔다.
“아버지가 말씀하시고 나서 삼일고 경기를 챙겨봤어요. 형들이 너무 잘하는 거예요. 지금 (이)주영이 형이 3학년 때 우승도 하고 그러더라고요. 저는 맨날 중학교 때 예선 탈락하고 가장 먼저 집에 오고 그랬어요. 근데 우승하는 걸 보니 너무 멋있는 거예요. 더 잘하는 학교로 가서 우승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컸어요.”
우승의 열망을 안고 삼일고에 입성했으나, ‘승리하는 팀’의 온도는 시작부터 달랐다. 삼일고의 이윤환 감독은 거듭된 패배의 기억 탓에 그의 마음속에 은연중 굳어 있던 소극적인 태도를 알아채고, 잠들어 있던 단단한 승리욕을 일깨워 주었다.
“사실 그러면 안 되지만 중학교 때 패배가 익숙해져 버렸거든요. 근데 삼일고로 와서 이윤환 선생님께서 ‘패배에 익숙해지면 안 된다’고 하셨어요. 그 팀에 맞게 행동해야 된다고 생각했고, 달라져야겠다고 받아들였죠.”
그러나 코트 위에서의 꿈과 목표는 늘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예상치 못한 변수가 찾아오고 정상으로 향하는 길은 쉽게 틈을 내주지 않기에, 그 속에서 길을 찾아내고 이겨내는 것 또한 온전히 선수의 몫이다. 삼일고의 색깔에 맞춰 빠른 속공 상황과 과감하게 경기를 해결하려 했지만, 마음만큼 따라주지 않는 현실에 김상현은 답답함을 삼켜야 했다.
“2학년 때 왕중왕전 대회가 농구 인생에서의 변환점 같아요.”
보통은 코트 위 화려한 기록에서 자신감을 얻기 마련이다. 그러나 김상현을 다시 뛰게 만든 원동력은 완벽했던 경기가 아닌, 마음을 어루만져 준 박찬성 코치(현 중앙대 코치)의 따뜻한 말 한마디였다.
“잘해서 자신감을 얻은 게 아니었어요. 그때 팀 로스터가 많이 빠졌을 때였죠. 당시 박찬성 코치님이 도움을 많이 주셨어요. 그 대회에서 팀은 3연패에 예선 탈락이었죠. 근데 코치님이 ‘이 대회에 온 이유는 너를 스텝업시키려 온 거야’라고 하셨어요. 정말 그 대회에서 저를 한 번도 혼내지 않으시고 오히려 잘했다고 칭찬해 주셨거든요.”
비록 결과는 아쉬웠을지라도 그의 잠재력을 믿어주고 다독여 준 그 신뢰의 온기 속에서, 김상현은 비로소 웅크렸던 날개를 펴고 진짜 선수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이때 아니었으면 저는 똑같이 3학년 때도 농구했을 거예요. 그때부터 연습도 더 자신감을 가지고 했어요. 계속 푸시해 주고 믿어주시니까 더 책임감이 생겨서 임했던 것 같아요. 그 대회 때도 혼자 2학년이었고 1학년들도 뛰는데 그 친구들한테 맡기기엔 너무 책임감이 없는 행동인 거예요.”

그 순간 김상현의 머릿속으로 지난 대회에서 이윤환 감독이 상대 선수의 탈구된 손가락을 직접 맞춰내던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벤치로 달려가자 이 감독은 엇나간 뼈마디를 잡아 단숨에 끼워 맞췄다. 병원에서도 “잘 맞춰졌다”고 할 정도의 응급처치였다. 코트를 지키겠다는 일념 하나로 진통제를 삼킨 그는 부러진 손가락에 테이핑을 감은 채 다시 코트 위로 뛰어 나갔다.
“근데 부러진 것도 신의 한 수예요.”
부상을 ‘신의 한 수’라고 표현한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평소 김상현은 슛을 던질 때 왼손 엄지손가락으로 공을 밀어버리는 습관이 있었다. 하지만 골절 부상이 그 습관을 강제로 교정해 주는 치료제가 됐다.
“그런데 엄지손가락이 다치니까 못 쓰잖아요. 안 쓰고 슛을 쏘는데 슛이 더 일정하게 날아가더라고요. 퍼센티지도 훨씬 좋아졌어요. 그때부터 습관이 바뀌었어요.” 다친 손가락이 가져다준 뜻밖의 전화위복이었다.
중학 시절 내내 패배의 씁쓸함에 익숙했던 김상현. 우승이라는 간절한 꿈을 품고 삼일고 유니폼을 입었지만, 그를 맞이한 현실의 벽은 차갑고 높기만 했다.
특히 동기인 최영상과 양우혁이 고교 최강의 ‘백코트 듀오’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때면, 정작 자신만의 확실한 색깔이 없다는 초조함이 피어오르곤 했다. 고등학교 3학년이라는 시간은 마냥 기다려주지 않았다. 코트 위에서 스스로를 완전히 증명해야 하는 냉혹한 시험대가 찾아온 것이다.
그러나 시련 속에서 단단해진 김상현은 고3이 되어 비로소 폭발적인 기량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그가 깨어나자 삼일고의 전력도 걷잡을 수 없이 강해졌다.
마침내 찾아온 지난해 8월, 2025 한국중고농구 주말리그 왕중왕전. 삼일고는 고교 최강이라 불리던 용산고와 경복고를 차례로 무찔렀다. ‘꽃이 필 차례가 그대 앞에 있다’는 말처럼, 김상현은 그토록 갈망하던 ‘우승’의 달콤한 열매를 맛보게 된다.

“제가 받을 줄 몰랐어요. 사실 (양)우혁이 덕분에 우승한 건데, 우혁이한테 너무 미안했어요. 저에겐 너무 과분하거든요. 그때 우혁이를 축하해줄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제 이름이 불리는 거예요. 그래서 미안하다고 했거든요.”
그러나 양우혁의 답변은 아쉬움보다 동료에 대한 인정이었다. “뭘 미안해, 네가 잘해서 받은 건데.”
김상현은 당시를 돌아보며 동기들에게 공을 돌렸다. “그 친구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았어요. 사실 (최)영상이랑 (양)우혁이에게 너무 고마울 정도로 도움을 많이 받았거든요. 워낙 능력이 좋아서 수비가 몰리면 저에게 찬스가 많이 나고 패스도 잘 줬어요. 영상이와 우혁이가 없었으면 저는 연세대에 오지 못했을 거예요.”

# 대학농구능력 시험
김상현은 코트 위에서의 치열한 활약으로 연세대의 유니폼을 입게 됐다. 본인이 직접 평가한 솔직한 등급표를 바탕으로, 그의 뚜렷한 장단점과 앞으로의 가능성을 짚어본다.
공격- 4등급
수비- 5등급
슈팅 능력- 3등급
피지컬- 5등급
운동능력- 2등급
김상현은 삼일고 3학년 시절 팀 내 유일한 장신이었다. 팀 사정상 어쩔 수 없이 밑선을 책임져야 했지만, 그는 오히려 자신보다 더 큰 선수들과 맞붙으며 수비력을 키우는 성장의 계기로 삼았다.
“밑에서 큰 사람들을 막으면서 수비에서 많이 배웠어요. 이런저런 포지션을 하면서 피지컬이 많이 부족하다고 느꼈고요. 그래도 리바운드에는 자신 있어요. 큰 사람들을 상대로 잡을 수 있는 방법도 많이 생각해봤고요.”
내외곽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자원임에도 그는 자신의 2대2 기술과 세부적인 기술 완성도에 아쉬움을 느끼며 스스로에게 공격 ‘4등급’이라는 박한 평가를 내렸다. 슛에 대해서도 냉정하게 돌아봤지만, 동시에 노력으로 한계를 극복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자신감의 원천은 결국 노력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슈팅은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했어요. 많이 노력하면 3등급만큼 올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그때까지는 1000개씩 쏴야 될 것 같아요.”
다만 큰 키에 비해 마른 체구는 여전히 숙제다. 피지컬을 키우기 위해 웨이트 트레이닝과 체중 증량에 힘쓰고 있지만 고민도 만만치 않다.
“5등급도 과해요. 좀 더 내려가야 돼요. 고등학교 때도 에디다니엘(SK) 같은 친구를 막으면 너무 힘들었어요. 현재 쉬는 동안 살을 찌우려고 한 달 동안 열심히 먹었는데 2kg밖에 안 찌더라고요. 정말 쉽지 않아요. 웨이트 트레이닝도 많이 하고 밥도 많이 먹고 프로틴도 챙겨 먹었는데요. 근데 점프할 때 좀 안 뛰어지는 것 같아요. 다시 빼야 하나 싶기도 해요(웃음).”
그럼에도 그가 지닌 최고의 무기는 단연 압도적인 운동능력. 김상현은 카멜레온처럼 변화무쌍한 매력을 뽐내는 자원이다. 특히 삼일고 시절 최영상과 합작한 앨리웁 덩크는 늘 하이라이트 필름을 장식하곤 했다. 백보드 앨리웁 덩크와 시원한 블록슛 등 폭발적인 탄력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2학년 때부터 속공 상황에서 달려들어 뛰고 그랬던 것 같아요. 점프도 많이 해야 는다고 하더라고요. 덩크슛이 하고 싶어서 맨날 연습했어요. 영상이가 워낙 패스를 잘 줘서 앨리웁 패턴이 몇 개 있어요. 근데 몇 번 하다 보니까 상대도 다 알아서 상대팀이 제 패턴도 아닌데 ‘7번(김상현) 앨리웁 패턴’이라고 하더라고요(웃음). 그래도 운동능력은 제 무기로 계속 가져가려고요.”

삼일고 시절의 행복한 기억과 성적표를 품은 채, 김상현은 연세대라는 당당한 무대로 자리를 옮겨 성인 선로서의 첫걸음을 뗐다. 그러나 고등학교와 대학 무대의 차이는 확실했다. 완전히 달라진 팀 구성과 새로운 플레이 방식에 마주한 그는, 이제 자신 앞에 놓인 수많은 빈칸을 차근차근 채워나가야 하는 출발선에 서 있다.
“고등학교 때는 센터가 없어서 완벽한 구성이 아닌 상태에서 다섯 명이 돌아가면서 농구를 했어요. 대학은 각 포지션마다 특출난 형들이 모이는 곳이잖아요. 그 포지션에 맞게 배우는 것도 있고, 센터 형들도 있으니까 거기에 맞춘 움직임을 많이 배우는 것 같아요.”
현재 연세대는 밑선이 약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팀 리바운드 7위(36.2개)에 머물러 있다. 가드 포지션이면서도 적극적으로 리바운드에 참여하는 김상현의 플레이 성향은 팀에 매우 매력적인 카드다. 그는 팀의 약점을 메우기 위해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전했다.
“활동량이나 팀의 사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플레이를 하고 싶어요. 고등학교 때도 리바운드를 많이 잡았으니까 대학교에 와서도 궂은일을 많이 하려고요. 팀 리바운드가 하위권인데 제가 더 보탬이 되고 싶어요.”
비록 피로골절 초기를 진단받아 잠시 코트를 비워야 했지만, 김상현은 지난 2일 단국대와의 맞대결을 통해 복귀전을 치렀다. 대학 무대 위에 선 그가 가장 먼저 보완해야겠다고 다짐한 부분은 다름 아닌 수비였다.
“잠깐이라도 뛰더라도 형들이 힘들 때 들어가서 구멍 나지 않게 잘해야죠. 저는 수비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비디오를 돌려보면 어떤 게 문제점인지 확실히 보이잖아요. 그러면서 보완할 점도 보이고요. 1대1 수비나 팀 디펜스에서 더 부지런하게 움직여야 될 것 같아요.”

“4학년 때 우승하고 싶어요. 지금은 형들도 있고 내년, 내후년에도 형들이 있으니까요. 제가 최고참일 때 당당하게 우승하고 프로에 나가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열심히 해서 경기에서 공을 잡으면 상대가 두려워하는 선수가 되는 게 목표예요. 제가 수비하면 상대가 부담을 느끼고, 제가 공격하면 막기 까다로운 선수요. 다방면으로 잘하는 선수가 되고 싶죠. 공격이 안 풀려서 말리는 것보다 하나가 안 되면 다른 걸 잘하고, 꾸준히 잘하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대학 농구라는 새로운 장을 펼친 김상현. 우승을 향한 꿈도, 상대가 두려워하는 선수가 되고 싶다는 목표도 이제는 현재진행형이다. 그 이야기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기대를 모은다.
#사진_점프볼 DB(배승열 기자), 김상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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