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은 지금] 사리치는 필라델피아의 구세주가 될 수 있을까?
- 해외농구 / 이민욱 기자 / 2016-03-04 00:02:00

[점프볼=이민욱 칼럼니스트] 2015-2016시즌, 암흑기를 겪고 있는 필라델피아 76ERS에게 최근 좋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크로아티아 유망주 다리오 사리치가 차기 시즌에 필라델피아로 가겠다는 의사를 전했기 때문.
현재 터키 리그의 아나돌루 에페스(Anadolu Efes) 소속인 사리치는 208cm의 포워드로, 2014년 NBA 드래프트에서 12순위로 올랜도 매직에 지명된 뒤 바로 필라델피아로 트레이드 된 바 있다.
2015년 12월 4일, 유럽농구 유망주 소식을 다루는 「유로홉스(Eurohopes)」 사이트의 베르단 모드리치는 자신의 트위터에 “사리치의 아버지가 아들이 내년 필라델피아에 합류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라는 글을 올렸다.
사리치가 필라델피아 합류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5년 10월 31일, 크로아티아 뉴스 사이트, 「베체른지(vecernji)」와의 인터뷰에서도 비슷한 뉘앙스의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사리치는 “2016년 여름 에페스와 옵트-아웃이 있다. 그 때 필라델피아로 갈 예정이다” 라며 자신의 뜻을 밝혔다. (※ 사리치는 2014년 6월 24일, 에페스와 2+1 계약을 맺었다. 2년은 보장계약이었고 1년은 옵션이었다. 따라서 사리치는 2016년 오프시즌부터 에페스 외에 다른 팀을 선택할 수 있다.)
필라델피아는 그동안 사리치가 팀에 합류하기를 간절히 원했다. 다만 사리치의 계약이 끝나지 않았다는 점, 에페스가 내건 바이아웃 금액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 문제였다.
NBA 구단이 다른 리그 소속 선수를 데려오려면 바이아웃 금액을 내야 한다. 에페스 측이 내세운 바이아웃 금액은 한화 24억 6,000만원, 미화 212만 달러 정도였다.
그러나 현행 NBA 규정상 구단들은 바이아웃 금액으로 50만 달러 이상을 지출할 수 없다. 사리치가 나머지 금액을 본인 부담으로 해결해야 하는데, 사리치 입장에서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게다가 에페스 역시 사리치를 핵심자원으로 두고 있었기에 바이아웃 요청에 선뜻 응할 지도 의문이었다.
그런가 하면 몇몇 NBA 전문가들은 사리치가 루키 스케일 영향을 받지 않을 시기에 NBA 진출을 노릴 수도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ESPN」의 칼럼니스트 채드 포드는 2015년 6월 22일자 기사에서 “사리치의 계약은 2016년 오프 시즌에 플레이어 옵션이 걸려 있으나, 여전히 루키 스케일 안에 있기 때문에 2017년 여름쯤에나 NBA 진출을 노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는 시카고 불스의 니콜라 미로티치(209cm 포워드)의 케이스와 같다고 볼 수 있다. 사리치가 루키 스케일에 묶여있을 때 받는 돈보다 더 큰 돈을 만질 기회가 되는 때가 2017년 오프시즌이다. 그래서 포드는 2017-2018시즌쯤에나 NBA에 올 것이라 주장한 것이다.
하지만 최근 분위기를 보면 사리치를 NBA에서 보게 되는 날은 포드의 생각보다 좀 더 당겨질 것 같다.
그렇다면 대체 필라델피아는 사리치의 무엇을 봤기에 이토록 간절히 원하는 것일까? 유럽농구를 잘 모르는 농구팬들은 충분히 의문을 가질 만하다. 하지만 사리치의 청소년 대표팀 시기와 유럽 프로무대 활약을 농구팬들이라면 잘 알 것이다.
사리치는 무엇을 보여줬나
사리치는 1994년 크로아티아의 남동부 도시인 시베니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프레드락은 15년 동안 시베니크에서 슈터로 명성을 날렸던 농구선수였고, 크로아티아 농구의 전설인 故 드라젠 페트로비치와도 팀 동료였다.
사리치는 이미 청소년 시절 때부터 엘리트 대접을 톡톡히 받아왔다. 2010년 유럽 U16 선수권과 2012년 유럽 U18 선수권에서 크로아티아의 우승을 이끌었고, 당시 대회 MVP에도 선정됐다. U19 대회에서도 군계일학이었다. 우승하지는 못했지만, 대회에 나설 때마다 스포트라이트를 독식했다. (2011년 U19 대회에 나섰을 때 사리치의 나이는 겨우 17살이었다. 같은 팀에는 올랜도의 마리오 헤조냐도 있었다. 헤조냐가 당시 대회 최연소 참가자였다.)
특히 ‘우승팀’ 리투아니아와의 조 예선 경기는 사리치 10대 시절 최고의 명승부로 꼽힌다. 토론토 랩터스에서 뛰고 있는 요나스 발렌슈나스(211cm, 센터)를 상대로 32분간 22득점 11리바운드를 기록하며 13점차(88-75) 승리에 기여했다.
사리치는 당시 미국 U19 대표팀에게도 제대로 한 방을 먹였다. 덕 맥더못(202cm, 포워드), 제레미 램(196cm, 가드), 팀 하더웨이 주니어(198cm 가드), 메이어스 레너드(213cm 센터) 같이 미래 NBA 리거들이 버티고 있던 미국과의 경기에서 17점 8리바운드로 활약하며 87-85, 2점차로 승리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이 대회 미국대표팀에는 고양 오리온 소속의 조 잭슨도 있었다.)
한편 이 대회에는 한국대표팀도 출전했다. 문성곤과 이승현, 이종현, 허웅 등이 당시 대표팀 멤버였는데, 이종현과 이승현은 부상 때문에 크로아티아 전에 나서지 못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사리치를 의도적으로 아낀 크로아티아에게 75-71로 이겼다.
▶ 2011년 세계 U19 선수권 대회, 팀 크로아티아 하이라이트
https://www.youtube.com/watch?v=s5iiF0CgI_E
사리치는 2013년 세계 U19 선수권 대회에도 출전했다. 당시 NBA 드래프트 때문에 대회 참가가 불투명했지만 막판 대표팀 합류를 결정했다. 이후 사리치는 대한민국을 상대로 트리플-더블(32점 12리바운드 12어시스트)을 기록하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 대회 한국팀에는 강상재와 천기범, 최승욱, 최준용 등이 있었다. 강상재가 35득점을 올렸지만 89-106으로 졌다.)
▶ 2013년, 세계 U19 선수권 대회, 다리오 사리치 하이라이트
https://www.youtube.com/watch?v=epILuyf5ZKQ
프로무대에서 사리치는 어느 정도의 적응기를 보낸 이후, ‘물 만난 고기’ 마냥 펄펄 날았다. 그가 본격적으로 유럽의 메인 무대에서 떠오른 시기는 2013-2014시즌이었다. 만 19세-20세 시기였다.
아드리아틱 리그(Adriatic League)에서 사리치는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파이널 포 MVP와 정규시즌 MVP에 모두 오른다. 역대 아드리아틱 리그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만 20세) MVP였다. 당시 그의 평균 *PIR(유럽농구의 공헌도)은 무려 21.15로 현재까지 아드리아틱 리그 역사상 2번째로 높은 기록(1위는 덴버 너게츠의 니콜라 요키치 21.96)이다.
사리치는 명문팀 시보나 자그레브(Cibona Zargreb)에서 유로컵(Eurocup) 경기를 뛰었는데, 팀에서 나이가 3번째로 어렸음에도 불구하고 경기당 32분 47초(팀 최다)를 출장했다. 자그레브가 사리치를 얼마나 믿는지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시보나는 결국 유로컵 정규시즌 탈락의 쓴잔을 마셨지만 사리치는 빛났다. 정규시즌 10경기에 모두 출전했고, 12.9점 8.3리바운드 2.7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이후 사리치는 2014년 NBA 드래프트(6월 27일)가 열리기 3일 전인 6월 24일, 터키의 명문 클럽인 에페스와 2+1 계약소식을 공식적으로 발표한다. 에페스는 터키리그(BSL)를 대표하는 강팀으로서 당시 돌아오는 시즌에 유로리그와 터키리그에서 만족할 만한 성적을 올리기 위해 유럽리그의 스타급 선수들을 데려오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 2014-2015시즌에 에페스 소속이 된 선수들
IN →
네나드 크리스티치(213cm 센터 -> 2014년 6월 23일 계약)
다리오 사리치(208cm 포워드 -> 2014년 6월 24일 계약)
맷 재닝(196cm 가드 -> 2014년 7월 10일 계약)
돈테이 드레이퍼(180cm 가드 -> 2014년 7월 2일 계약)
스테판 라스미(203cm 포워드 ->2014년 6월 22일 계약)
스트라토스 빼빼로글루(203cm 포워드 -> 2014년 6월 18일 계약)
토마스 우르텔(189cm 가드 -> 2014년 12월 27일 계약)

사실 사리치의 에페스 생활이 처음부터 순탄하지 않았다. 초기에는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다. 사리치의 아버지 프레드락은 2014년 10월 14일자 크로아티아 언론인 「유타르니 리스트」 와 가진 인터뷰에서 “코치와의 마찰 때문에 사리치가 힘들어한다”며 사리치가 에페스를 떠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폭탄선언을 하기도 했다.
실제 사리치는 10월 12일에 열린 터키리그 1라운드, 로엘 헤일 전에 단 1초도 출장하지 못했다. 당시 미국의 「NBC 스포츠」는 사리치의 소유권이 있는 필라델피아가 사리치의 상황에 대해 관심을 가진다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사리치는 자신 앞에 닥친 역경을 코트에서 실력으로 극복했다. 유닉스 카잔(러시아)과의 유로리그 정규시즌 1라운드(10월 16일) 경기를 계기로 사리치의 근심과 걱정은 깨끗이 사라졌다. 카잔과의 경기에서 사리치는 21분을 뛰었으며, 9점(2점 4/6, 자유투 1/2), 3리바운드, 3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 승리(82-76)에 일조했다.
특히 4쿼터가 끝나는 순간에도 코트에 서 있던 것이 인상적이었다. 사리치는 이 경기 이후 에페스에서 꾸준히 출장시간을 보장받으며 탄탄대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역대 최연소 유로리그 월간(11월) MVP(만 20세 7개월)에 오르는 영예도 누렸다.
그리고 에페스는 2012-2013시즌 이후 2년 만에 유로리그 8강 플레이오프에 올랐다. 에페스의 상대는 2014-2015시즌 유로리그 우승팀이자 트리플 크라운(유로리그 우승/ 코파 델 레이 우승/ 스페인리그 우승)의 주인공 레알 마드리드였다.
불만족스러운 부분이 없었던 건 아니다. 냉정하게 경기를 바라봐야 할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유로리그 첫 시즌에 치른 8강 플레이오프 경기라는 것을 감안해 보면 사리치는 그 나이대 선수치고 정말 잘한 편이었다. 1 2차전에서는 두 자리 득점(1차전 : 13점, 2차전 : 11점)을 기록했다. 홈에서 펼쳐진 3, 4차전에서도 사리치의 불꽃은 쉽게 꺼지지 않았다. 두 자리 수 리바운드(3차전 : 12리바운드, 4차전 : 15리바운드)를 기록하는 등 공수 양면에서 사력을 다했다.
에페스는 현재 유로리그에서 8강 진출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16강 조별리그(Top 16) 경기를 치르고 있는 중이다.
다재다능한 사리치는 공격에서는 충분히 1번을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리고 탄탄한 기본기가 그가 가진 최고의 자산이며 리바운드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또 팀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어떻게 경기에 임해야 될 지 ‘너무나 잘 알고 농구를 하는 점’ 도 매력적이다. 그리고 최근 유로리그에서는 3점슛의 정확도가 좋아지면서 상대 수비는 사리치를 제어하기가 더 힘들어졌다.
▶ 점점 좋아지는 3점슛 성공률
2013-2014시즌 유로컵(10경기 출장 4/13) : 30.8%
2014-2015시즌 유로리그(27경기 출장 19/62) : 30.6%
2015-2016시즌 유로리그 정규시즌 16강(총 17경기 출장 19/45) : 42.2%
사리치는 인사이드와 아웃사이드 경기가 모두 가능하다는 장점도 가지고 있다. 그리고 10대 시절부터 프로선수들과 경기를 자주 해서인지 능구렁이같이 노련한 경기운영에도 강한 면모를 드러내고 있고, 승부근성도 매우 강한 편이다.
수비 부분에 있어서 사리치는 유럽 대비로 나쁜 수준의 수비수는 아니다. 수비 집중력이 뛰어나고, 센스도 있으며, 덩치들을 상대로 버텨낼 수 있는 힘도 10대 시절에 비해 좋아진 편이다.
다만 NBA에 워낙 괴물 같은 운동능력을 지닌 좋은 선수들이 많기 때문에 지금 유럽 시절의 수비력이 얼마나 통할 지는 아직 물음표다. 사리치의 운동능력은 NBA 기준으로 냉정하게 특급은 아니다.
다만 이 약점들을 상쇄할 만한 무기도 잔뜩 있다. ‘기술자’ 로서의 면모와 큰 경기를 많이 겪어본 풍부한 경험 그리고 포워드로서 좋은 신장(208cm)과 공수에서의 남다른 센스가 바로 그 무기. 필라델피아에서는 내년 사리치가 팀에 합류할 경우 그의 이런 장점들을 코트에서 십분 발휘할 수 있도록 적정한 역할을 찾아봐야 한다.
식서스가 사리치를 제대로 코트에서 쓰고 싶다면, 시스템으로 옥죄기보다는 자기가 마음껏 재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코트에서 하고 싶은 대로 자유롭게 풀어놓아야 한다. 그런 면에서 벤치에서 나와 불을 마구 지필 수 있는 자원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만하다. 또한 사리치 특유의 다재다능함을 활용하기 위해 ‘포인트 포워드’ 역할을 맡겨보는 것도 괜찮은 생각이다. 필라델피아는 현재 최악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저 멀리 유럽에서 들려오는 사리치와 관련된 소식은 절망에 빠진 필라델피아 팬들을 충분히 들뜨게 할 만 하다. 최근 뉴스에서 언급한 대로 다음 시즌, 사리치가 NBA에 진출하여 필라델피아의 시련의 시기를 끝내는 구원자가 될 수 있을지 지켜보자.
사진=유로리그, FI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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