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한의 벤치톡] ‘미지명’은 끝이 아니니까…사천시청이 만드는 ‘프로 가는 길’
- 여자농구 / 청주/홍성한 기자 / 2026-08-20 08:00:36

[점프볼=청주/홍성한 기자] “프로로 진출할 수 있는 길을 우리가 만들어주자고 생각했다.” 야구의 독립구단처럼 말이다.
아직 우리에게 실업농구는 프로의 꿈을 이루지 못한 뒤 향하는 무대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러나 한 곳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잠시 돌아갈 뿐, 다시 도전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길이 되고 있다.
19일 청주체육관에서 열린 2026~2027 WKBL 신인선수 드래프트. 청주 KB스타즈는 1라운드 5순위로 원이아나를 지명했다.
2001년생인 원이아나는 미국 NCAA 하부리그 격인 NAIA에서 뛰었던 169cm 가드다. 1대1 공격에 강점이 있다. 지난해 열린 드래프트에도 참가해 구단 관계자들 사이에서 이름이 오르내렸던 자원이다.
그러나 끝내 선택받지 못했다. 원이아나는 여기서 꿈을 접지 않았다. 이후 직접 실업팀 사천시청에 연락해 새로운 기회를 모색했고, 지난 1년 동안 김승환 감독의 지도를 받으며 다시 한번 WKBL의 문을 두드릴 준비를 했다.

1년 뒤, 결과는 달라졌다. 어느 구단의 부름도 받지 못했던 원이아나는 이번에 1라운드에서 당당히 자신의 이름을 들었다.
이로써 사천시청은 지난해 고리미(KB스타즈)에 이어 2년 연속 프로 선수를 배출했다. 여기에 프로를 경험한 뒤 은퇴해 최근까지 사천시청에서 뛰었던 김수인도 트레이드를 통해 부천 하나은행으로 향했다. 올해에만 2명이 사천시청을 거쳐 WKBL 무대로 간 셈이다.
이상적인 그림이다. 프로의 선택을 받지 못한 선수들이 실업에서 기량을 다듬고, 다시 WKBL에 도전할 수 있는 통로가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드래프트 현장에는 김승환 감독도 자리했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프로에 가지 못하는 선수들이 많다. 대학에 가더라도 학업과 운동을 병행해야 하니 쉽지 않다. 그래서 지난해부터 우리 팀이 생각을 바꿨다. 선수들이 다시 프로로 진출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주자고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야구에는 독립구단이 있지 않나. 우리도 그런 콘셉트로 가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예전과 달리 실업농구도 많이 젊어졌다. 다시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면 프로에 가지 못했다고 해서 그대로 도태되는 경우도 줄어들지 않을까 싶었다”고 덧붙였다.


물론 사천시청 입장에서는 주축 선수들을 연이어 떠나보내는 게 달갑기만 한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구단주인 박동식 사천시장부터 흔쾌히 이 프로젝트에 뜻을 모았다. 당장의 성적보다 더 큰 무대로 향할 기회를 열어주는 것도 실업팀이 할 수 있는 역할이라는 데 공감했기 때문이다.
김승환 감독은 “선수 육성도 해야 하고 팀 성적도 내야 하는 위치다. 그런데도 이해해 주신 시장님께 너무 감사한 마음이다. 우리 선수들이 대부분 어린데 이들이 프로에 가는 사례가 나와야 다른 선수들에게도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힘들다(웃음). 하지만 이건 남아 있는 사람들의 몫이다. 우리가 또 새로운 선수들을 잘 만들어서 프로로 보내는 흐름이 계속된다면 좋은 방향이 되지 않을까 싶다. 많은 선수가 이렇게 나아가야 아마추어 농구가 발전하고, 프로농구 역시 더 튼튼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뛰는 리그가 다를 뿐, 코트에서 요구되는 자세는 프로와 다르지 않다. 그렇기에 김승환 감독도 선수들에게 늘 ‘프로 의식’을 말한다.
그는 “선수들에게 항상 이야기한다. 리그가 다를 뿐이다. 우리도 돈을 받고 농구하는 선수들이다. 실력에 따라 자신의 가치가 결정된다. 그렇기 때문에 프로와 다르지 않은 마음가짐과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사천시청은 앞으로도 이러한 방향을 이어가겠다는 계획이다. 김승환 감독은 “선수들이 이곳에서 1~2년, 길게는 2~3년 동안 대학에 다닌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준비해 다시 프로에 갔으면 좋겠다. 그런 순환이 계속되는 게 우리 팀이 가고자 하는 방향”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원이아나와 김수인을 떠나보내는 마음에는 아쉬움보다 기쁨이 컸다. 김승환 감독은 “눈물이 날 정도로 반가웠다. 김수인도 잘돼서 정말 다행이다. 프로에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게 끝은 아니다. 가서도 자신의 몫을 잘해 계속 인정받는 선수들이 됐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이번 드래프트에는 외국 국적 동포 선수들의 참가로 국내 선수들의 설 자리가 크게 좁아졌다. 1라운드에 이름을 올린 국내 선수는 단 2명. 모든 라운드를 통틀어 국내 선수를 한 명도 선택하지 않은 구단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지명받지 못했다고 해서 도전이 영원히 끝나는 것은 아니다. 사천시청의 사례는 드래프트에서 이름이 불리지 않은 선수들에게 실업팀이라는 또 다른 선택지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원이아나가 그랬고, 지난해 고리미도 같은 길을 걸었다. 실업팀이 ‘또 다른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것. 사천시청이 만들어가고 있는 길이 선수들에게 던지는 가장 큰 메시지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이 일부 실업팀의 노력에만 머물러서도 안 된다. 여자농구계 전체가 프로와 실업의 접점을 넓히고, 선수들이 다시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
프로의 세계가 냉정한 건 사실. 다만 같은 꿈을 향해 흘린 땀방울의 가치까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한 번의 선택으로 놓치기에는 모두 여자농구의 소중한 자원들이다.
#사진_점프볼 DB, WKB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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