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슬램게임] "진인사대천명" 인생 좌우명 마음에 다시 새긴 '긍정의 아이콘' 중앙대 유형우 (021)
- 아마추어 / 김동환 기자 / 2026-10-17 11:00:46


유형우가 농구공을 잡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KCC 이상민 감독의 선수 시절 팬이었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걸음마보다 농구 관람이 빨랐고, 유형우는 유치원 때부터 자기도 모르게 장래 희망에 농구 선수를 적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농구에 대한 사랑을 키워가던 초등학교 3학년 유형우의 눈에 방과 후 수업 농구부원 모집 공고가 들어왔다. 유형우는 곧바로 부모님을 설득했고, 엘리트 농구 인생의 막을 열었다.
초등학생 유형우에게 농구는 가장 사랑하는 스포츠에 불과했지만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완전히 바뀌었다. 초등학교 농구와는 전혀 다른 농구에 진심으로 대하기 시작했고, 농구 선수라는 막연했던 꿈은 점차 확신을 더해갔다. 하지만 크나큰 걸림돌이 있었는데, 바로 신체 조건이었다.
"중학교 입학할 때 신체 조건이 너무 좋지 않았어요. 150cm대 초중반의 신장으로 중학교에 입학을 했고 신체 능력과 스피드, 웨이트가 다 좋지 않았죠. 중학교 졸업할 때까지도 다른 선수들에게 피지컬적으로 많이 밀렸어요. 중학교 때는 웨이트장이 없었어서 줄넘기를 엄청 했어요. 중학교에서는 줄넘기를 많이 하고 드리블 연습을 많이 했어요. 드리블도 좋지 않다고 생각해서 이 두 가지를 가장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극복이라기보다 버텼던 것 같아요. 부모님이나 선후배들과 많은 얘기를 나눴고, 좋은 조언도 많이 들었지만 결국 이겨내야 하는 건 나 자신이었어요.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연습도 많이 했지만 일단 버텼던 것 같아요. 연습을 하다 보면 언젠가는 눈이 떠지는 날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계속 버텼습니다."
피나는 노력과 주변 사람들의 조언으로 약점을 버텨냈지만 중학교 3학년 유형우는 다시 고난과 마주했다. 약점이었던 피지컬 열세와 함께 강점이라 생각했던 패스까지 되지 않으며 턴오버로 이어졌다. 어린 나이에 찾아온 슬럼프는 농구공을 놓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게 했다.
"중학교 3학년 동계훈련 때 연습 경기를 많이 했는데, 너무 못해서 벤치에 있는 시간이 많았어요. 패스를 주기만 하면 미스가 나왔거든요. 게다가 상대팀에는 유급생이 많아서 피지컬에서도 밀렸어요. 피지컬과 패스가 모두 안 돼서 처음으로 농구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진심으로 울면서 부모님께 농구 어려워서 못하겠다고 말했어요. 그래도 부모님께서 좀 더 해보자고 잘 잡아주셔서 계속 성장해 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중학교를 졸업한 유형우는 전주고로 향했다. 전주고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윤병학 코치였다. 농구를 시작할 당시 지도자였던 은사를 고등학교에서 다시 만난 유형우는 반가움과 함께 안도감을 가졌다. 하지만 예상과 다른 엄한 지도에 안도감은 금세 사라졌고, 초등학교와 고등학교는 다르다는 사실을 빠르게 인지했다. 정신을 차린 유형우는 곧바로 윤병학 코치의 가르침을 흡수하고자 노력했다.
"윤병학 코치님이 세세한 부분을 잘 알려주신 덕분에 농구를 하면서 처음으로 농구 일지를 썼어요. 농구 동영상도 많이 보면서 그때 농구에 대한 눈을 뜬 것 같아요. 윤병학 코치님의 지도로 세세한 부분들이 눈에 띄니까 저도 더 열심히 하게 되더라고요. 그때부터 똑똑하게 하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유형우가 윤병학 코치에게 가장 큰 가르침을 받은 시기는 2학년 때였다. 특히, 훈련이나 경기 도중이 아닌 자체 3대3 경기 중에 있었던 일이 유형우를 일깨웠다. 유형우에게 직접 한 말도 아니었지만 유형우의 머리와 마음에 확실하게 각인됐던 가르침이었다.
"2학년 때 3대3을 했어요. 근데 (김)준영이 형이랑 같은 포지션이다 보니까 신경전이 있었어요. 결국 저희 팀이 이겼는데, 윤병학 코치님이 준영이 형한테 '너가 개인적으로 더 잘해도 팀이 지면 너가 진거다'고 하셨어요. 그때 농구는 개인 스포츠가 아닌 팀 스포츠라는 것을 확실하게 깨달았어요. 승부욕, 팀워크를 모두 일깨워준 것 같아서 잊을 수 없어요. 물론 준영이 형한테는 끝나고 사과는 했습니다."
유형우는 윤병학 코치의 가르침을 몸에 새기는 것과 동시에 중학교 시절 약점이었던 피지컬도 점차 극복해갔다. 본인의 노력과 함께 좋은 시설, 김보배의 입김이 더해진 결과였다.
"고등학교는 웨이트 트레이닝 시설이 잘 되어 있었어요. 김보배 형이 틈만 나면 저를 데리고 가서 웨이트 트레이닝을 많이 했어요. 야간 운동 끝나고 다 집에 갔는데 더 하고 가자고 붙잡기도 해서 도움이 많이 됐어요. 그래도 스피드는 한계가 있더라고요. 스피드는 힘으로 바꿔보자는 생각으로 일부러 살을 찌우고 계란도 많이 먹으면서 웨이트가 늘어났던 것 같아요."

그 결과, 유형우는 엄청난 한 해를 보내며 본인의 이름을 확실하게 알렸다. 협회장기 대회에서 4경기 연속 트리플더블을 작성하며 평균 15.2점 12.2리바운드 11.3어시스트를, 추계연맹전에서는 평균 13.3점 10.3리바운드 10.3어시스트를 기록했다. 2개 대회에서 평균 기록 트리플더블을 만들어냈고, 4경기 연속 트리플더블은 중고농구연맹 최초 기록이었다.
"그때는 기록에 대해 신경을 아예 안 썼어요. 8번이나 한 것도 몰랐고, 4경기 연속 했을 때도 끝나고 기자님이 알려주셔서 최초라는 것도 알게 됐어요. 최초라고 해서 기분은 좋았어요. 제가 득점을 많이 하는 선수가 아닌데 그때는 득점도 많이 하고 어시스트는 패스를 주면 팀원들이 알아서 넣어줬어요. 지금이랑 비슷하게 수비와 리바운드, 리딩에만 신경을 썼던 것 같아요."
"비결은 아무리 생각해도 없는 것 같아요. 제 실력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 윤병학 코치님의 믿음과 진현민, 박야베스 등 후배들의 도움으로 가능했던 것 같아요. 빅맨이 없었던 것도 영향이 있었어요. 센터가 있었으면 리바운드를 많이 잡지 못했겠죠. 리바운드를 나눠서 잡으니까 가능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때가 제 인생에서 가장 재밌게 농구를 했던 시기인 것 같습니다."
기록과 본인의 재미,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던 3학년 한 해였기에 고등학교 졸업은 유형우에게 아쉬움이 더 클 수밖에 없었다. 농구 인생에서 가장 잘 맞았던 팀원들과의 이별과 새로운 환경을 마주해야 한다는 사실은 한편으로는 두려움이 되기도 했다.
"새로운 환경에서 농구를 접하고 적응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두렵기도 했어요. 이 선수들만큼 잘 맞는 선수들을 또 만날 수 있을까라는 걱정도 앞섰어요. 심적으로도 많이 편했고, 저를 많이 믿고 따라와줘서 농구를 하는 게 너무 좋았었죠. 지금도 그때의 향기를 느끼고 싶을 때, 연락을 많이 해요. 아쉬웠지만 선수는 어느 환경에 가서든 잘 적응해야 좋은 선수라 생각해서 빨리 다른 팀에 녹아드려고 했던 것 같아요."

유형우가 중앙대의 문을 노크한 것도 윤병학 코치의 영향이 컸다. 초등학교와 고등학교에서 윤병학 코치의 가르침을 받았던 유형우는 제자이자 후배로 남고 싶었다. 전주고 역시 윤병학 코치의 모교였지만 대학교 후배로도 남고 싶었던 유형우는 윤병학 코치의 모교인 중앙대로 다시 한 번 발걸음을 옮겼다.
"제가 가장 존경하는 윤병학 코치님이 중앙대 출신이었어요. 코치님의 영향이 컸던 것 같아요. 닮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에 전주고 후배로 끝나는 것이 아닌 중앙대 후배로 남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김휴범 형이 있었는데, 그 형 밑에서 같이 경쟁하면서 배우고 싶다는 생각도 컸어요. 많이 배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중앙대를 선택했습니다."
그렇게 9명의 동기와 함께 청룡 군단의 일원이 된 유형우는 곧바로 대학 무대의 벽에 가로 막혔다. 많아지고 복잡해진 패턴을 따라가는 것은 쉽지 않았고, 선배들의 노련함과 피지컬을 신입생이 극복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패턴도 너무 많아졌고, 학년도 하나 더 많잖아요. 4학년까지 있으니까 형들의 노련미나 웨이트적인 부분이 더 심하게 다가왔어요. 농구에 대한 디테일도 어려웠어요. 세세한 농구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해서 아직 더 발전해야 한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유형우는 이중원 코치의 도움으로 혼란스러운 신입생 시기를 이겨낼 수 있었다. 당시 중앙대를 지도하던 이중원 코치는 따뜻한 말이나 조언 대신 엄한 개인 훈련을 통해 유형우가 힘든 시기를 극복했으면 하는 진심을 전했고, 유형우는 땀과 눈물을 통해 더욱 성장할 수 있었다.
"이중원 코치님께 많이 혼나기도 하고 배우면서 대학교 농구를 깨우친 것 같아요. MBC배 대회 끝나고 프로랑 연습 경기에서 엄청 못했어요. 이후 목요일에 외박을 받아서 일요일 복귀였는데, 체육관으로 와서 같이 운동하자고 금요일 낮에 코치님께 연락이 온 거예요. 별거 안 하겠지 했는데 서러울 정도로 힘들게 운동을 시키셨어요. 제가 못했던 시기이기도 해서 이겨냈으면 하는 마음에 하신 것은 잘 알지만 서러워서 울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래도 그때 이후로 많이 성장한 것 같아요."

점차 성장세를 보이면서 3학년에 대한 기대감도 컸지만 시즌 시작과 동시에 악재를 마주했다. 청소년 시절부터 경계했던 부상을 당한 것이다. 허리 부상으로 시술을 받게 됐고, 동기들과 선후배들이 뛰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다.
"3학년 때 시즌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허리를 다쳐서 시술을 받았어요. 처음에는 받지 않는 쪽으로 하려고 했는데 잘 안 돼서 시술을 받게 됐어요. 재활 과정에서 팀의 MBC배 대회 우승을 지켜봤어요. 같이 뛰지 못한 아쉬움이 너무 컸지만 팀의 일원으로 우승하니까 너무 좋았습니다."
고학년으로 접어드는 시점에 찾아온 부상은 유형우에게 너무 힘든 순간이었다. 흔들리는 유형우의 멘탈을 잡아준 사람은 윤호영 감독이었다. 윤호영 감독은 멘탈뿐만 아니라 농구적으로도 많은 도움을 제공했고, 유형우는 그에 대한 감사와 함께 미안함을 표했다.
"재활 당시 심적으로 너무 조급해졌어요. 보여줘야 하는 시기인 고학년 때 다쳐서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어요. 그때 윤호영 감독님이 부임하신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병원을 직접 알아봐 주시고 허리 수술 경험도 있으시다 보니까 좋은 말을 많이 해주셨어요. 재활도 서둘러서 하지 말고 몸을 잘 만들라고 해주셔서 너무 감사했어요."
"고등학교 때까지 제가 농구를 잘 알고 잘한다고 생각했어요. 대학교에 와서도 나쁘지 않게 한다고 생각했는데, 윤호영 감독님 부임 후에 제 농구는 단수가 낮았다는 것을 깨달았죠.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을 말씀해주시고 짚지 못했던 디테일들을 많이 알려주셨어요. 많이 가르쳐주시고 배려도 많이 해주셨는데, 그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아 죄송하네요."

"재활하고 복귀했는데도 몸이 많이 안 올라오고 다른 부위도 아파서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도 몸 관리를 꾸준히 하고 훈련하기 전에도 일찍 나와서 보강 운동을 했어요. 팀원들도 좋은 얘기를 많이 해줬고요. 자기 관리를 열심히 했어요. 보강 운동이나 자기 전에 1시간 스트레칭을 통해 아픈 부위를 풀어주니까 통증도 줄어들었고, 자신감도 생겼던 것 같습니다."
부상으로 3학년 시즌 4경기 출전에 그친 유형우는 가장 중요한 4학년 시즌에 돌입했다. 적응을 위한 혼돈의 시기였던 1~2학년을 거쳐 부상으로 경기에 나서지도 못했던 3학년까지 3년의 시간은 유형우에게 짙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래서 이를 만회하기 위한 4학년 시즌은 더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부정적인 생각이 가득해지자 유형우는 본인의 좌우명을 다시 되새겼다.
"오지 않을 것 같던 4학년이 왔고, 이제 드래프트까지 코앞으로 다가왔네요. 처음에는 엄청난 부담감으로 다가왔어요. 1~2학년 때 보여준 것도 없고, 3학년 때는 다쳤다 보니까 부담이 됐어요. 그래도 진인사대천명이라는 인생 좌우명을 생각하니까 마음이 편해졌어요. 최선을 다한 뒤에 운명은 하늘에 맡긴다고 생각하니까 마음 편히 드래프트를 준비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좌우명과 함께 유형우가 의지한 것은 동기들이었다. 함께 드래프트에 나서는 경쟁자지만 누구보다 서로를 아끼는 동기들이 있었기에 유형우는 중앙대에서의 4년을 버텼고, 즐거운 추억으로 남길 수 있었다. 같은 고민을 안고 있는 친구들이기에 유형우와 그들은 서로를 아끼며 도움을 주고받았다.
"제가 힘들 때 주눅 들어 있으면 제 방에 가장 먼저 찾아와서 괜찮냐고 물어봐 주는 게 동기들이었어요. 항상 힘들 때 먼저 와서 말을 걸어주고 저를 웃게 해줘서 좋은 친구들입니다. 많이 수고했으니까 노력에 대한 보상을 다 같이 같은 날에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동기들도 스트레스가 많을 거예요. 1~2학년 때와는 또 다르게 농구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농도가 다른 진심으로 속내를 털어놓고, 서로 좋은 말을 많이 해주고 있어요. 1학년 동기애와 4학년 동기애는 다른 것 같아요. 다 같이 프로에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커서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드래프트는 지금까지 쌓아온 시간을 평가받는 자리인 동시에, 앞으로의 가능성을 직접 설명해야 하는 무대이기도 하다. 수많은 후보 가운데 자신의 이름을 남기기 위해서는 무엇을 잘하는 선수인지, 어떤 모습으로 팀에 보탬이 될 수 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 줄 필요가 있다. 유형우가 내세운 본인의 무기는 단연 '수비'였고, '에너지 레벨'과 '마인드'도 덧붙였다.
"저는 상대 에이스를 잘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 선수에 대해 분석도 많이 하면서 상대방이 하고자 하는 플레이를 잘 못하게 할 수 있습니다. 상대 선수의 공격을 다 막을 수는 없겠지만 최대한 힘들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리바운드나 수비 같은 궂은 일을 먼저 나서서 열심히 하고 팀의 사기를 끌어올릴 수 있는 에너지 레벨도 충분히 있습니다. 그런 부분들을 극대화시킬 수 있게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공격에서는 간간히 넣어줄 수 있는 3점슛과 패스가 장점이지만 보완을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한 박자 빠른 패스를 할 수 있어서 슈터나 다른 선수들을 잘 살릴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긍정적인 마인드도 장점입니다. 항상 뱉은 말이나 생각들이 이루어진다고 믿는 사람이라 부정적인 생각은 빠르게 버리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그래야 제 마음도 편하고 잘 풀릴 수 있다고 생각해서 최대한 긍정적으로 살아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강점으로 수비를 강하게 어필한 유형우는 롤모델 역시 수비에 대한 생각이 묻어 있었다. KBL에서 '수비'하면 떠오르는 선수 중 한 명인 최원혁(서울 SK)을 꼽았고, 수비뿐만 아니라 웨이트, 슈팅, 보조 리딩, 패스 등 플레이 스타일까지 닮고 싶은 마음을 드러냈다.
"닮고 싶은 선수는 최원혁 선수입니다. 팀원들도 저를 중앙대 최원혁이라고 부르는데 과분한 것 같아요. 수비를 엄청 잘하고 웨이트도 엄청 좋아요. 연습 경기에서 상대해봤는데 힘이 너무 좋으시더라고요. 3점슛도 잘 넣어줄 수 있고, 보조 리딩도 하시고 패스도 잘하셔서 팀의 연결 역할 느낌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그런 팀에 필요한 퍼즐이 되는 것이 목표라 영상을 보면서 많이 배우려고 하고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한번쯤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먼저 그려보는 순간이 있다. KBL 입성을 꿈꾸는 드래프트 참가자들에게도 '프로 선수가 된 나'는 오래 품어온 가장 선명한 상상일 터다. 유형우는 화려함보다 성실함을 통해 오래 살아남는 미래를 꿈꾸고 있었다.
"제 플레이 스타일이 많은 팬들을 환호시키거나 눈에 띄는 것은 아니지만 감독님들이 믿고 기용할 수 있는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 보여주고 싶은 플레이는 상대 에이스를 묶는 수비를 보여주고 싶어요."
"팀에 필요한 선수가 되고 싶어요. 10개 구단 중 어느 팀을 가더라도 다 맞출 수 있는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상대 선수를 매너 있고 깔끔하게 잘 막는다는 평가를 받는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 성실하고 착실한 농구 선수로 기억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우선 단기적인 목표는 프로에 진출해 코트를 밟는 것입니다. 장기적인 목표는 출전 시간을 부여받고 늘려가면서 프로에서 30대 중반 이후까지 오래 살아남는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
끝으로 유형우는 오랜 시간 뒷바라지를 해준 부모님께 전하는 감사 인사도 잊지 않았다.
"지금까지 열심히 뒷바라지해 주셔서 너무 감사하고 죄송스러운 마음이 큽니다. 뒷바라지해 주신 만큼 좋은 결과를 받아들고 드래프트장에서 웃을 수 있도록 해드리고 싶습니다. 노력에 대한 보상을 꼭 해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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