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그리 베스트5’ 이글스, 그들은 누구인가? ②
- 아마추어 / 김기웅 기자 / 2016-10-16 06:01:00

[점프볼=김기웅 인터넷기자] 투혼으로 이뤄낸 성공적인 데뷔무대
갖은 고난을 겪으며 팀을 꾸려온 놀레벤트 이글스는 9월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열린 칭기즈 칸 컵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자신감을 얻어왔다. 사기가 오른 이글스는 국내 무대 데뷔를 추진했다. 데뷔무대는 연세대, 중앙대, 단국대 등 대학 강호들과 ‘전국 최강’ 국군체육부대가 총출동한 제97회 전국체육대회였다.
#만화 ‘슬램덩크’ 뺨치는 국내 데뷔무대
국제대회에서 몽골 국가대표팀과 대등한 경기를 펼치며 준우승을 차지했지만, 아직 국내 농구계에서 놀레벤트 이글스에 대한 평가는 박했다. 전국체전을 앞둔 상황에서 많은 농구팬은 국내 남자농구계에서 보기 힘든 실업팀이 출전한다는 것에 의아해할 뿐, 1승도 거두지 못하고 탈락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그 이면에는 이들이 이미 실패자라는 선입견이 강하게 박혀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글스 선수들은 그런 선입견을 무참히 깨버렸다.
창단 후 국내 첫 경기였던 1회전에서 조선대학교를 상대로 88-59, 29점 차 대승을 거두며 이변의 서막을 알렸다. 강한 공격력을 자랑하는 팀답게 전반전에만 무려 57점을 올리며 승부를 결정지었다. 3점슛은 13개나 성공시켰고, 이글스 특유의 압박 수비는 조선대를 무너뜨리는 데 충분했다.
8강전 상대는 대학리그 챔피언 연세대학교였다. 경기 전 이글스의 승리를 예상했던 이는 아무도 없었다. 모두의 예상처럼 경기 초반은 연세대가 압도했다. 연세대는 쉬운 승리를 예감한 듯 저학년 선수들을 투입했다. 그러나 반전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김형준의 외곽포가 폭발하며 2쿼터 역전에 성공한 것이다. 김형준은 전반에만 3점슛 5개를 성공시키며 전세를 뒤집는 데 앞장섰다.
기세가 오른 이글스는 천하의 연세대도 막을수 없었다. 전반에는 김형준이 있었다면, 후반에는 앞선을 이끄는 홍세용, 김준성이 그의 기를 이어받아 폭발했다. 3쿼터에도 10점차 리드를 지키며 4쿼터를 맞이했다.
그러나 선수 8명이 전부인 이글스는 4쿼터 체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를 간파한 연세대는 전면강압수비를 펼쳤다. 77-70으로 승리를 눈앞에 뒀던 이글스는 10점을 연속 허용해 77-80으로 역전당했다. 박성근 감독은 작전타임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박성근 감독은 작전타임을 불러 선수들에게 작전을 지시하지 않았다. 다만 선수들에게 포기하지 말자는 얘기를 건넸다.
박성근 감독은 선수들에게 “지금까지 눈물 흘리며 고생한 것을 생각하자.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 서럽게 운동하지 않았느냐. 사람들 관심을 받아서 성공하기 위해 지금까지 고생해온 것 아니겠냐. 지금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 조금만 힘내라”며 말했다.
열 가지 패턴보다 한마디 독려가 이들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일까? 작전타임 이후 이글스는 이제 경기를 시작한 선수처럼 활기차게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눈빛, 움직임 모든 것이 달라졌다. 김준성이 상대의 압박수비를 이겨내고 공을 지켜냈고, 장거리 3점슛을 2개나 성공시키며 재역전에 성공했다. 그리고 경기 막판 승부의 쐐기를 박는 스틸에 이은 레이업까지 성공했다.
결국 이글스는 연세대를 91-84로 꺾고 기적을 완성했다. 경기 후 이글스 선수들은 경기장에서 서로를 부둥켜안고 지난날의 힘든 시간을 다같이 이겨냈다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4강전은 프로에서도 최고의 선수들만 모인 국군체육부대와 경기였다. 이날도 2쿼터 초반 27-24까지 앞서가며 기적을 이어가는 듯 했다. 그러나 선수 8명으로 대회에 참여한 이글스 선수들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전날보다 야투도 들어가지 않았다. 에이스 홍세용은 24점을 기록했고, 정찬엽이 12점을 기록했지만 다른 선수들의 득점지원이 부족했다. 결국 이글스는 60-79로 패하며 기적을 이어가지 못했다. 그러나 이들은 경기가 끝나는 순간까지 이를 악물고 최선을 다했다. 이들의 모습에 팬들은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이들의 국내 데뷔무대는 이렇게 마무리됐다. 이글스 선수들은 아쉬움, 뿌듯함이 가득담긴 체육관을 뒤로한채 동메달을 목에 걸고 경기장을 빠져나왔다. 이는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더 노력하라는 하늘의 뜻이었을지도...

#기적의 주인공, 놀레벤트 이글스의 얼굴들 (등번호 순)
놀레벤트 이글스는 앞서 언급했듯이 박성근 감독과 선수 8명이 열심히 운동하고 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은 곳에서 시작해 기적을 만든 주인공들을 소개하려 한다.
박성근 감독
주요 이력
전 홍대부고-성균관대 선수
2002 제3회 아시아영맨농구선수권대회 대표팀 코치
2003 대구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한국대표팀 코치
전 성균관대학교 농구부 감독
전 몽골 농구 국가대표팀 감독
현 놀레벤트 이글스 농구단 감독
다른 이들에게는 호랑이 감독님일뿐이겠지만, 이글스 선수들에게는 아버지같은 존재다. 훈련 중에는 선수들을 독려하고, 동기부여하기위해 선수들과 함께 산을 뛰어다니기도 했다.
아버지같은 그의 모습은 코트 밖에서 더욱 빛났다. 이글스 팀을 창단하고, 운영하며 선수들을 돕기 위해 전국을 발로 뛰어다녔다. 연습경기를 잡기 위해, 후원받을 기업과 지자체 그리고 체육회를 찾기 위해 안해본 일이 없었다. 선수들도 팀 결성 초반에는 팀이 될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감이 있었지만, 행동으로 보여주는 박성근 감독의 모습에 감동받아 그를 믿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은 기적을 완성했다.
비록 박성근 감독은 불같은 성격을 이기지 못하고 4강전에서 석연찮은 판정에 항의하다 퇴장을 당했다. 그러나 경기 후에는 선수들과 함께 껴안고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같은 모습으로 돌아왔다. 박성근 감독이 선수들을 얼마나 아끼는지 보이는 대목이었다. 필자와의 인터뷰 중에도 항상 “우리 애들”이라는 말을 반복하며 선수들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박성근 감독이 만드는 진정한 기적은 완성본이 아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No.1 김준성
생년월일 - 1992년 10월 22일
신체조건 - 177cm/77kg
출신교 - 배재중-배재고-명지대
포지션 - 가드
주요 성적
<명지대학교>
2014대학농구리그 – 16경기 4.3점 3.3리바운드 2.2어시스트 1.3스틸
<놀레벤트 이글스>
제2회 칭기즈 칸컵 – 5경기 22점(3점슛 3.2개/성공률 40%) 5리바운드 6어시스트 2.6스틸
제97회 전국체육대회 – 2경기 14.3점(3점슛 3개) 5.3리바운드 3.7어시스트 5스틸
대학농구리그 4년간 평균득점 2.5점에 불과하고, 3점슛 성공률이 15%에 머물렀던 김준성은 온데간데 없었다. 드래프트 낙방한 이후 LP SUPPORT라는 동호회에서 운동을 꾸준히 해왔던 김준성은 농구에 대한 열정을 떨치지 못하고 이글스에 합류했다.
명지대와 LP SUPPORT에서는 본인의 공격보다 주로 리딩 가드를 봤던 김준성은 이글스에서 전혀 다른 선수로 성장했다. 속공, 3점슛, 패스, 안정적인 드리블을 통해 상대의 전면강압수비에서 벗어나는 모습 등 가드가 갖춰야할 것을 모두 갖춘 선수로 다시 태어났다. 특히 국가대표 허훈과 1라운드 지명이 유력한 천기범을 압도했기에 더욱 인상적이었다. 명지대 시절 성적이 다소 아쉬웠던 탓에 주목받지 못하고 있던 김준성은 이번 전국체전에서 기적을 이끌며 각 구단 스카우터들, 많은 농구팬들의 이목을 사로잡는데 성공했다.
No.5 홍세용
생년월일 - 1988년 10월 4일
신체조건 - 184cm/79kg
출신교 - 군산고-고려대-원주 동부-부산 케이티
포지션 - 가드
주요 성적
<원주 동부>
2011-2012 KBL – 16경기 0.63점 0.3리바운드 0.1어시스트 0.1스틸
<놀레벤트 이글스>
제 2회 칭기즈 칸컵 – 5경기 21.6점(3점슛 3.4개) 4.4리바운드 6어시스트 2.2스틸
97회 전국체육대회 – 3경기 27점(3점슛 2개) 2리바운드 1.7어시스트 1.7스틸
고려대학교 졸업 후 2011 KBL 신인 드래프트에서 20순위로 원주 동부의 유니폼을 입고, 부산 케이티를 거쳤지만 올시즌 재계약에 실패했다. 그러나 홍세용은 포기하지 않고, 놀레벤트 이글스에 플레잉코치로 합류하며 다음 시즌에 프로무대 재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홍세용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이글스에서 없어서는 안될 기둥이 됐다. 그는 “팀 사정상 스코어러 역할을 하고 있는데 이것이 프로 무대에 재입성하기 위해서 득이 될지, 독이 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경기장 밖에서 팀원들을 하나로 뭉치게 만들고, 코트 안에서 팀이 활로를 찾지 못할 때 공격을 이끄는 것도 그였다. 연세대를 격파했던 전설의 경기에서도 홍세용은 고비 때마다 막힌 곳을 뚫어주며 양팀 최다인 36점을 기록했다. 상무전에서도 유일하게 20점을 넘게 득점한 것도 그였다. 내년 이맘때쯤, 이글스의 에이스에서 프로팀 에이스로 발전할 그를 기대해본다.
No.7 김지훈
생년월일 - 1989년 5월 19일
신체조건 - 184cm/75kg
출신교 - 광주중앙중-광주고-건국대
포지션 - 가드
주요 성적
<놀레벤트 이글스>
제 2회 칭기즈 칸컵 – 5경기 1점 1.6리바운드 3.6어시스트 1스틸
97회 전국체육대회 – 2경기 1점 0.5리바운드 0.5어시스트 0.5스틸
김지훈은 건국대 3학년 재학중인 도중, 부상으로 인해 좌절을 겪었다. 재활의 어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군 입대를 결정하며 농구를 그만뒀다. 광주에서 생활체육을 하다가 꿈을 버리지 못해 이글스에 합류했다. 그러나 이글스에서도 부상 악령은 계속됐다. 첫 대회출전인 칭기즈 칸컵 예선 두 번째 경기인 북한전에서 손가락 골절상을 당해 제 실력을 발휘하기가 어려워졌다. 박성근 감독은 김지훈의 몸상태를 고려해 출전시간을 제한했다.
그는 손가락 부상의 상태가 호전돼 열심히 연습하며 몸상태를 끌어올렸다. 그러나 전국체전을 앞두고 가슴 통증이 발생했다. MRI 검사를 통해 결과를 받아보니 기흉이었다. 엎친데 덮친 격이었다. 그러나 김지훈은 팀에 선수가 부족해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수술을 대회 후로 미뤘다.
연이은 부상에서 완벽하게 회복해 제 기량을 발휘하며 부상으로 잃은 꿈을 다시 찾는 김지훈의 모습을 기다린다.
No.9 김형준
생년월일 - 1993년 6월 29일
신체조건 - 195cm/86kg
출신교 - 광신중-광신정보산업고-중앙대
포지션 - 포워드
주요 성적
<중앙대학교>
2012 대학농구리그 – 7경기 8.71점(3점슛 2개/성공률 37.84%) 2.86리바운드
<놀레벤트 이글스>
제 2회 칭기즈 칸컵 – 5경기 23.6점(3점슛 6.2개/성공률 41.3%) 7.4리바운드 3.4스틸
97회 전국체육대회 – 3경기 15점(3점슛 3개) 6리바운드
청소년대표팀 출신 장신슈터로 기대를 모은 김형준은 부상으로 인해 농구선수의 길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꿈까지 저버리지는 못했다. 결국 그는 이글스로 돌아와 왕년의 슛감을 폭발시키고 있다. 2016 KBL 신인 드래프트에서 지명이 유력한 그는 몽골에서 열린 칭기즈 칸컵 대회에서 3점슛을 무려 6.2개나 터뜨렸다. 성공률도 41.3%로 전혀 난사가 아니었다. 몽골 대학선발을 상대로는 무려 10개를 성공해 뜨거운 손맛을 자랑했다. 부상 전의 기량을 회복한 그는 연세대와 경기에서도 전반에만 3점슛 5개를 터뜨리며 경기의 분위기를 주도하며 역전에 성공했다. 이글스의 역전승은 그의 3점슛에서 시작됐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부상으로 인해 운동을 오랫동안 쉬고 복귀해 3점슛 하나로 경기를 지배하는 그는 마치 만화 슬램덩크의 정대만을 연상케 한다.
No.10 박민환
생년월일 - 1994년 12월 25일
신체조건 - 188cm/100kg
출신교 - 배재중-홍대부고
포지션 - 포워드
주요 성적
<놀레벤트 이글스>
97회 전국체육대회 – 3경기 7.7점 5리바운드 2.7어시스트 1스틸
공식적인 선수경력은 고등학교 이후로 없지만, 동국대 농구부와 함께 훈련을 해왔다. 선수생활을 하면서 팀이 해체되는 등 여러 우여곡절로 인해 농구를 그만둔 선수다. 그러나 농구선수의 꿈을 포기하지 못하고, 이글스에 입단해 농구공을 잡았다. 몸은 학생선수시절 때보다 15kg가 불었지만 열정만은 그시절 이상이다. 빠른 시일내에 예전의 몸과 기량을 되찾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No.11 김웅빈
생년월일 - 1994년 2월 7일
신체조건 - 194cm/95kg
출신교 - 대경중-대경정보산업고-한양대
포지션 - 포워드
주요 성적
<놀레벤트 이글스>
제 2회 칭기즈 칸컵 – 5경기 2.4점 2.6리바운드 1.2어시스트
97회 전국체육대회 – 3경기 2.7점 3리바운드
한양대학교에서 1학년까지 선수생활을 하고 그만둔 선수다. 농구를 그만둔 이후 안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다양한 경험을 했지만, 최종 목적지는 결국 농구였다고 한다. 항상 의지하는 선배의 말에 힘을 내 이글스에서 다시 농구선수에 도전하고 있다.
본래 포지션은 스몰포워드지만 팀사정상 빅맨을 보고 있다. 최종 목표인 프로 진출을 위해서는 슈팅가드, 스몰포워드 포지션에 서야 하지만 팀을 위해서라면 당연히 빅맨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자신의 발전보다도 팀을 우선하는 선수로서 항상 욕심부리지 않고 팀플레이에 집중하는 선수다.
No.16 허석진
생년월일 - 1993년 12월 23일
신체조건 - 182cm/73kg
출신교 - 대전중-대전고-중앙대
포지션 - 가드
주요 성적
<중앙대학교>
2015 대학농구리그 – 16경기 7.81점 2.5리바운드 1.31어시스트 1스틸
<놀레벤트 이글스>
제 2회 칭기즈 칸컵 – 5경기 12점 2.6리바운드 5.2어시스트 2.2스틸
97회 전국체육대회 – 3경기 6.3점 2.7리바운드 1.3어시스트 1스틸
신인 드래프트 낙방 후 이글스 입단 전까지 중학교농구팀 코치로 꿈나무들을 가르치며 생활했다. 코치생활을 하면서 신인 드래프트 재도전을 준비하기 위해 본인 운동도 병행했다고 한다.
이글스는 김준성과 홍세용이 주로 볼을 갖고 공격을 전개하기에 허석진이 본인을 어필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전혀 섭섭한 감정이 없어보인다. 오히려 이들과 함께 뛰면서 자신의 장점인 속공 능력과 패스 능력을 선보일 수 있어 좋다고 한다.
항상 에이스 역할로 경기에 나서지는 않지만, 이글스에 없어서는 안되는 보조 득점원으로서 최선을 다했다. 허석진은 과연 재도전한 신인 드래프트에서 지명받을 수 있을까?
No.41 정찬엽
생년월일 - 1989년 3월 29일
신체조건 - 197cm/88kg
출신교 - 금정중-남산고-부경대
포지션 - 센터
주요 성적
<놀레벤트 이글스>
제 2회 칭기즈 칸컵 – 5경기 10.6점 6.8리바운드 2.2블락
97회 전국체육대회 – 3경기 6점 4.3리바운드
정찬엽은 놀레벤트 이글스 선수중 유일하게 정식 선수 경력이 없다. 정찬엽은 취미로 부산에서 동호회 활동을 했다. 부산 생활체육 농구계에서 실력자로 유명했던 정찬엽은 24살 때부터 각종 동영상을 통해 독학하며 농구선수의 꿈을 본격적으로 꾸기 시작했다. 그는 KBL 일반인 드래프트에도 지원한 경험이 있다. 그리고 올해 봄에 취업준비를 하던 중에 박성근 감독의 정성어린 부탁에 의해 이글스의 센터로서 활약하게 됐다.
정찬엽은 비선수출신으로서 어려움이 없냐는 필자의 질문에 “선수 경력이 없어 기본기, 전술 등 모든 면에서 따라가기가 벅차다”고 말했다. 그러나 11일 연세대와 경기에서 정찬엽은 골밑 수비와 궂은 일을 도맡아 이글스가 승리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4강전이었던 상무와의 경기에서는 국가대표 센터 최부경에게 리바운드에서 열세를 보였다. 그러나 스텝을 이용해 골밑에서 득점에 성공하며 12점을 기록했다. 이에 정찬엽은 “선수출신이 아니라 상대 선수들이 얼마나 잘하는지 몰랐기 때문에 더 겁먹지 않았던 것 같다. 생각없이 플레이했던게 오히려 좋은 결과를 가져왔던 것 같다”며 부산 사나이다운 대답을 내놨다. 마치 슬램덩크의 강백호를 보는 기분이었다.
#사진_김남승 기자, 한필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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