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이승준, 사진으로 돌아보는 그의 커리어

프로농구 / 손대범 기자 / 2016-05-29 03: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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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손대범 기자] 이승준. 1978년 3월 18일생. 205cm.점프볼이 처음 매거진에 그를 소개했을 때만 해도 그는 이승준보다는 에릭 산드린이란 이름으로 유명했다. 시애틀 퍼시픽 대학을 나와 NBA 서머리그팀에 이름을 올리는 등 유망한 선수였다. KBL 무대를 처음 밟을 때만해도 그의 신분은 국내선수가 아닌 외국선수였다.

2007년 겨울의 일이다. 이승준은 KBL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로 동생 이동준과의 첫 맞대결을 꼽는다. 오리온이 아직 대구에 연고를 두고 있던 그 시절의 일이다. 그는 "한 코트에 함께 서있는 것만으로도 기뻤다"고 돌아봤다.


그랬던 이승준이 귀화혼혈선수 드래프트를 통해 화려하게 KBL에 데뷔한다. 첫 소속팀은 삼성. 비록 이승준이 합류할 무렵의 삼성은 다소 전력이 약해진 시점이었지만, 코트 안팎에서 보인 쇼맨십과 팬 서비스만큼은 많은 사랑을 받았다. 길거리 행사에서든, 언제든 그는 팬들이 원할 때는 주저하지 않고 점프했다.


삼성 선수로 출전했던 2010년 올스타전에서는 MVP가 되기도 했다. 그는 선수로 뛰는 동안 올스타 덩크슛 컨테스트에서만 4번 우승을 차지했다. 누구보다 성의있게 점프하고 내리꽂았던 선수였다.


이승준이 팬들에게 사랑을 받은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국가대표였다. 놀라운 탄력과 힘을 앞세워 한국농구가 포스트에서 보이지 못했던 부분을 해주었다. 귀화 후 처음 나선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은메달을 품기도 했다.


2012년, 이승준은 귀화혼혈선수 규정에 따라 삼성을 떠나 새 소속팀으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바로 동부였다. 점프볼도 2012년 6월에 이승준을 표지로 실었다. 모비스로 이적한 문태영, 오리온으로 이적한 전태풍도 함께 했다.

사실 동부에서의 이승준은 적어도 전적만 본다면 환영을 받지 못했다. 개인적으로든, 팀으로든 기대했던 성과가 나지 않았다. 이 가운데 찾아온 악재가 있었다. 2013-2014시즌 막판 KGC인삼공사 전에서 왼쪽 아킬레스건 파열을 당했던 것. 이승준은 곧바로 수술대에 올라 1년 넘는 시간 동안 코트를 밟지 못했다. 부상 때문에 2014년 아시안게임에도 출전하지 못했다. 이승준이 가장 아쉬워 했던 부분 중 하나였다.

“대표팀에 몇 년간 선발되면서 한국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에 대한 욕심도 컸다. 부상 때문에 예비명단에도 포함되지 않아 정말 아쉬웠다. 물론 금메달을 딴 선수들은 자랑스러웠다. (유재학)감독님께 문자도 보내드렸다.”- 당시 점프볼 인터뷰 중


2015년 여름, 우여곡절 끝에 이승준은 새 소속팀에서 재기의 기회를 갖는다. 서울 SK가 그의 새 소속팀이었다. 동생 이동준과 함께여서 더 감회가 남달랐다. 그러나 부상 공백이 가져간 운동능력은 결코 그를 부상 전으로 돌려놓지 못했다. 2016년 5월, 자유계약선수로 풀려난 그는 어느 팀과도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결국 정든 코트를 떠나게 됐다.

5월 28일, 미스코리아 출신의 최지윤(23) 씨와 화촉을 올리며 인생의 새 출발을 알린 이승준. 코트안팎에서 새 출발을 하게 된 이승준의 앞날에 기쁜 일만 가득하길 기대한다.


# 사진- 문복주, 유용우, 한필상 기자

# 일러스트- 광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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