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서 돌아온 슈퍼 유망주 여준석 “10년 뒤 정점을 찍는 선수 되고 싶다”
- 아마추어 / 민준구 / 2020-03-30 12:34:00

[점프볼=민준구 기자] “10년 뒤 어느 곳에서든 정점을 찍는 선수가 되고 싶다.”
여준석(203cm, F)이 돌아왔다. 중·고교 무대를 휩쓸고 호주로 농구 유학을 떠난 그가 약 2년 만에 다시 대한민국의 품에 안겼다. 꿈의 무대였던 NCAA 디비전Ⅰ 진출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지만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발목을 잡았고 끝내 국내 리턴을 결정해야 했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자신이 속한 곳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르겠다는 마음으로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다.
여준석은 현재 NCAA 디비전Ⅰ 데이비슨 대학의 이현중(201cm, F), 다섯 번째 NCAA 진출을 노리는 양재민(200cm, F)과 함께 대한민국 농구의 미래로 평가되고 있다. 국내에선 이미 적수가 없었으며 좋은 신체 조건, 포지션 파괴 등 다양한 능력을 뽐냈다.
용산고로 돌아온 여준석은 호주 국제학교에서의 학업이 인정되지 않아 2학년으로 유급된 채 2020년을 시작해야 한다. 남들보다 1년이 늦어졌지만 조급함은 없었다. 현재보다 미래가 더 기대되는 선수이기에 차근히 앞을 바라보고 있다.
다음은 여준석과의 일문일답이다.
Q. 오랜만에 대한민국으로 돌아왔다. 현재 어떻게 지내고 있나.
그동안 2~3달 간격으로 다녀갔다. 하지만 완전히 돌아온 만큼 느낌이 새롭다. 호주에서 다닌 국제학교가 국내에선 학업 인정이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 그래서 용산고 2학년으로 유급됐다. 후배들과 친구가 되어야 한다는 게 조금 어색하긴 하다(웃음). 코로나19 때문에 제대로 훈련도 하지 못하고 있지만 앞으로 잘 해낼 자신이 있다.
Q. 훈련은 어떻게 하고 있나?
학교에서 하는 훈련이 어렵다 보니 개인적으로 몸을 만들고 있다. 코로나19 때문에 외부에서 운동하는 게 쉽지는 않다. 남한산성 쪽을 뛰면서 체력을 다지고 있는데 하루라도 빨리 코로나19가 사라져서 제대로 운동하고 싶다.
Q. 국내 리턴을 결정하는 데 있어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고 들었다.
호주에 계속 남아 있을지 아니면 1년이라도 더 빨리 돌아올지에 대해 많이 대화했다. 그동안 아버지와 대화할 때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이번 일로 조금은 생각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보다 안정적인 것을 원하셨던 것 같다. 도전을 원했던 내게 확신이 없으셨을 수도 있다. 지금의 선택에 대해 당장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저 지금부터 내 실력을 갈고 닦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Q. 이현중과 함께 호주로 떠났지만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다.
농구를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외국에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중학교 3학년 때 아시아 퍼시픽 캠프에 참가한 적이 있다. (이)현중이 형과 같이 나갔었는데 NBA 아카데미 관계자 분이 내게 관심이 있다고 하시더라. 그래서 바로 가려고 했는데 아버지가 고등학교 생활은 해보고 가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셔서 1년 더 있다가 가게 됐다.

Q. U18 아시아농구선수권대회에서의 아쉬움도 해외 진출에 대한 의지를 견고히 한 계기가 됐을 것 같다(당시 대한민국은 8강에서 중국에 패배했고 순위결정전에서도 연패를 거듭, 결국 8위로 마무리했다).
솔직히 굉장히 큰 자극이 됐다. 포지션적인 면에서 아쉬움도 컸다. 5번이 아닌 3~4번으로 뛰었을 때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감독님께서 그런 것을 원하지 않으셨고 나 역시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성장하고 싶다는 의지를 더 강하게 해준 시기였다. 현중이 형도 그랬을 것이다.
Q. 2018년 10월에 호주로 떠난 뒤 약 2년이 지났다. 원하던 바를 이루고 돌아온 것인가.
원래는 NCAA 디비전Ⅰ 진출을 목표로 뒀다. 현중이 형이 먼저 데이비슨 대학에 입학하면서 부러움과 함께 나도 같은 위치에 서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근데 조금씩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려운 부분이 있더라. 개인적으로 농구만 봤을 때는 충분히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근데 운동보다 학업에 더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고민이 많아졌다. 농구를 100% 하더라도 성공할 수 있을지 모르는 곳에서 완벽하지 않은 영어로 공부까지 해야 한다는 것이 발목을 잡았다. 오히려 농구적으로 더 퇴보할 수 있다는 판단이 서게 됐고 아버지와의 대화를 통해 돌아오게 됐다.
Q. 결국 공부가 발목을 잡은 것 같은데.
호주에서 지낸 세월이 있기 때문에 기본적인 영어는 할 줄 안다. 하지만 수업은 다르지 않나(웃음). 현중이 형도 과제 때문에 엄청 힘들어한다고 하더라. 그래도 공부 잘하는 형인데 힘들어한다는 걸 보면서 더 감당이 안 됐다.
Q. 호주에서의 생활은 어땠나?
항상 심심했다. 같이 지내는 애들끼리 재밌는 시간도 많았지만 주변에 아무것도 없어서 갈 곳이 없었다. 그저 운동과 공부, 두 가지만 할 수 있는 곳이었다. 가끔씩 친구들과 통화하는 것 말고는 무료함을 달랠 게 없었다. 호주 친구들은 가끔 집에서 파티도 하는데 개인적으로 그런 분위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Q. 가장 중요한 건 농구다. 얼마나 발전했는지, 그리고 하고 싶어 했던 농구를 했는지 궁금하다.
국내에선 내 신장 정도 되는 선수가 밖에서 플레이하는 것을 그리 좋아하시지 않는다. 충분히 돌파할 수 있을 것 같은 상황 속에서도 다른 것을 해야 한다. 하지만 호주에서는 달랐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하고 싶은 것을 다 해야 한다고 했다.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던 때였다.

Q. 대한민국이 아닌 세계로 나가게 되면 결국 203cm의 신장은 포워드로 분류된다. 그동안 센터로 뛰었던 것이 몸에 익숙해져 있었을 텐데?
그렇다. 센터 움직임이 몸에 남아 있어서 처음에 적응하기 힘들었다. 나보다 10cm는 더 큰 선수가 앞에 있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하하. 다행히 현중이 형이 조금씩 알려주면서 포워드의 움직임에 대해 배웠고 3점슛도 예전보다 많이 던질 수 있었다. 국내 대회에서도 3점슛은 종종 던졌는데 실패했을 때 다음 조치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몰랐다. 호주에서 그런 부분을 배웠고 점점 포워드다운 모습을 보일 수 있었다.
Q. 이현중과 함께한 시간이 크게 느껴졌을 것 같다.
처음 호주에 갔을 때 몇 개월 정도 함께 생활했다. 영어도 잘 되지 않았던 그때 든든하고 의지가 되는 형이었다. 현중이 형이 미국으로 떠나기 전에 이집트, 나이지리아에서 온 친구들을 소개 시켜 줬는데 다행히 지금도 연락할 정도로 많이 친해졌다. 힘든 일이 있으면 함께 이겨냈던 것 같다.
Q. 어렵게 자리 잡은 끝에 2019년에는 국경 없는 농구 아시아 캠프에서 MVP에 선정되기도 했다.
아시아 퍼시픽 대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처음 선수들과 만났을 때 이 정도면 상은 받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웃음). 그래서 열심히 뛰다 보니 좋은 결과가 있었던 것 같다.
Q. 국내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솔직히 후회되지 않나.
개인적으로 많이 아쉽다. 현중이 형이 데이비슨 대학에서 활약하고 있는 걸 보면 부럽고 멋있었다. 하지만 해외 진출을 목표로 한 내 꿈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NCAA는 가기 힘들 수 있겠지만 NBA 서머리그에 도전하고 싶다. 그전에 국방의 의무부터 마쳐야 하지 않을까.
Q. 앞으로의 계획, 그리고 어떤 선수로 성장하고 싶은지 궁금하다.
용산고에서 이룰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내고 싶다. 좋은 선수들이 많고 앞으로 열릴 대회에서 모두 우승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개인적으로 어떤 곳에서 뛸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대한민국 농구 선수로서 정점을 찍고 싶다. KBL, NBA 등 어느 곳에서든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싶다.
# 사진_점프볼 DB(한필상, 유용우, 박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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