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드시 프로 도전’ 한준혁의 농구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아마추어 / 진위재 기자 / 2017-07-30 13:19:00

[점프볼=진위재 기자] 2012년 4월 5일, 상주여중 체육관에서 열린 연맹 회장기 중고농구대회. 상주중과 명지중이 예선 첫 경기를 가졌다. 경기는 명지중의 승리(48-37). 그런데 경기를 승리한 명지중보다 더 관심을 받은 선수가 있었다. 바로 상주중 한준혁이었다. 이날 그는 27득점 11리바운드 11스틸로 트리플더블을 작성했다. 아마추어 농구에서 ‘트리플더블’은 쉽게 만나볼 수 없는 기록. 더 대단한 건 167cm의 작은 키로, 리바운드와 스틸에서 두 자리 기록을 달성했다는 것이었다. 한준혁은 이후 용산고를 거쳐 동국대에 입학, 키는 작지만 빠르고 재치 있는 모습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2017년 7월 현재, 더 이상 ‘대학농구선수’ 한준혁은 볼 수 없다. 동국대에서 운동을 그만두고 영남대학교로 입학하며 평범한 대학 생활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대로 농구를 떠날 것 같았지만, 한준혁 가슴 속 불씨는 아직 꺼지지 않았던 모양. 농구 TV프로그램에 모습을 드러내고, 동호회에서도 특유의 빠르고 저돌적인 플레이를 펼치며 조금씩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지난 23일, 영등포 타임스퀘어에서 열린 아디다스 크레이지코트에서도 그는 ‘KOC’ 부문에 등장해 만만치 않은 기량을 보였다. 앤드류 위긴스와 함께 하는 이벤트 경기에도 나섰다.
여전히 농구선수의 꿈을 접지 않고 있다는 한준혁을 만나 근황을 들어봤다.

Q. 동국대에서 선수 생활을 그만두고 어떻게 지냈나요?
동국대에서 자퇴하고 다시 공부를 했어요. 그리고 영남대 17학번으로 입학했죠. 지금은 교직 이수를 하고 싶어서 학점 관리에 신경 쓰고 있어요. 제가 체육학부인데 상위 10%가 교직 이수가 가능하거든요. 이번 성적이 5등이에요. 열심히 해서 다음 학기에도 좋은 성적을 유지하려고요.
Q. 선수로서, 그리고 학생으로서 보내는 대학생활의 차이점은?
일단 개인 시간이 많아요. 선수 때는 정해진 일정대로 생활했는데, 지금은 내 일정을 내가 정하고 생활을 하거든요. 단체 생활에서 개인 생활로 바뀐 느낌이에요.
Q. TV 프로그램 「리바운드」에도 출연했었어요.
운동을 그만두고 특기자 전형으로 서울대학교 입학을 준비했어요. 그러던 도중에 고등학교 동기인 성균관대학교 이윤수 선수를 통해서 「리바운드」 프로그램의 작가님께 연락을 받았죠. 윤수는 소속팀이 있다보니 출연하지 못했고, 대신 저를 추천해줘서 나가게 됐어요.
Q. 김승현 코치가 일반인 드래프트 참가를 돕겠다고 했는데, 정말로 준비하고 있나요?
우상이었던 선수가 저를 좋게 봐주시고, 충분히 할 수 있다고 해주시니 기분이 좋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교직 이수를 위해서 학점 관리에 신경을 쓰고 싶어요. 지금 말고 내년에 승현이 형께 조언과 도움을 구할 계획이에요.
Q. 리바운드 참가 후 바뀐 점이 있나요?
제 생활은 변한 부분이 없어요. 바뀐 점은 주위에서 나를 대하는 태도 같은 것들이에요. 일단 길가다가도 한 번씩 알아봐 주시고 사진 찍자는 요청과 사인 요청이 들어와요. 아쉬운 점이 있다면 99%는 남자들이에요. 유일한 여성분은 학교 근처 피시방 아르바이트생이었어요. 아! 또 하나 있어요. 하하 형께서 방송 당시에 같은 팀 멤버들과 계속 연락을 하며 경기도 나가고 있어요. 하하 형 덕분에 프리스타일 게임 광고에도 출연하고 네이버 v스타 방송에도 참가를 해 볼 수 있었어요. 고기도 많이 사주시고요.

Q. 9년 동안 왼손에서 오른손으로 바꾸기가 힘들었을 텐데?
울산 모비스에서 슛 감을 기르기 위해 야구공으로 캐치볼을 한다는 기사를 봤어요. 저도 동국대 야구부 선수들과 캐치볼을 해봤는데, 왼손 제구가 안 되더라고요. 그때 ‘이래서 슛이 안 들어가는 구나’하는 상실감이 들었어요. 이후에 바꿔야겠다고 결심했는데 당시엔 대학리그에서 식스맨으로 출전해야 하는 상황이라서 바꾸기가 쉽지 않았어요. 농구부를 그만두고 나서 오른손으로 연습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시간이 날 때마다 슛 연습을 했죠. 골 밑슛 스냅 연습을 하고, 경남 장유에 계시는 장석구 선생님께 3주간 합숙하면서 배웠어요. 처음 3~4개월 동안은 엄청 힘들고 손목도 많이 붓고 열이 많이 나서 아파서 움직이지도 못했는데 5개월 때부터 슛 거리가 늘고 자신감이 생기고 바꾸길 잘했다 생각이 들었어요. 프로 진출에 대한 자신감이 더 생겼고요.
Q. 크레이지 코트에서 아쉽게 결승 진출에 실패했는데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나요?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었어요. 3on3 4강이 일요일이었는데, 수요일부터 부산에서 열리는 두바배에 출전했어요. 금요일에 2경기 토요일 3경기 마치고 아침에 기차를 타고 올라왔더니 제 실력을 다 발휘하지 못한 거 같아요. 내년에 기회가 된다면 컨디션 관리에도 신경을 써야 할 것 같아요.
Q. 앤드류 위긴스와 3on3와 풀코트 경기를 뛰었는데 소감이 어떤가요?
정말 좋았죠. 정식 경기는 아니었어도, 그래도 같이 농구했다는 추억은 간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Q. 최근 여러 대회에 참가를 많이 했는데, 농구대회가 인기가 많아지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요즘 SNS를 활용해야 할 거 같아요. 저도 ‘농구 인생’이라는 페이지를 즐겨보는데 농구를 다루는 채널들이 더욱 많아지면 사람들이 관심을 두지 않을까 생각해요. 일단 그러면서 농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더 적극적으로 참가하고, 우승이나 승리가 먼저가 아니라 농구는 즐길 수 있는 스포츠라는 인식을 먼저 갖는 게 가장 중요한 거 같아요.
Q. 작은 키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궁금해요.
코트 안에서 누구보다 빨라지려고 노력했어요. 절대 드리블을 뺏기지 않도록 드리블 연습에 집중하고, 또 앞 선에서는 상대방을 압박할 수 있는 수비능력을 키우려고 했어요. 높이에서는 밀릴지라도 힘에서는 밀리지 않도록 웨이트 트레이닝도 열심히 했고요.

Q. 여전히 롤 모델은 김승현인지?
저는 김승현 선수 때문에 농구를 시작했어요. 사실 중간에 아이재아 토마스, 카이리 어빙, 크리스 폴 등 여러 우상이 스쳐 지나갔지만 그래도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선수는 김승현 선수였어요. 김승현 선수만이 아직 롤 모델로 남아있죠.
Q. 앞으로의 계획이 있나요?
2학기 때는 학점을 잘 받는 것이 목표에요. 그리고는 운동에 전념할 겁니다. 승현이 형이 도움을 주신다면 감사하겠지만, 여건이 안 된다면 모교에서라도 운동을 하면서 2018년 드래프트에 일반인 자격으로 참가하고 싶어요.
Q. 최종 꿈은 뭔가요?
프로 무대에 서는 것이죠. 프로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태극마크를 달아서 일본의 토가시 유키와 국제대회에서 시합하고 싶어요. 그리고 어릴 때부터 꿈이었던 한국에 있는 단신 가드들의 롤 모델이 되고 싶어요.
# 사진=점프볼 DB(한필상 기자), 한준혁, 아디다스 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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