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인터뷰] “재능은 없다” 천기범의 성장통
- 아마추어 / 맹봉주 / 2016-08-02 07:12:00

[점프볼=맹봉주 기자] “아직 드래프트까지 시간이 남았지만 4순위까지는 확정적이지 않을까 싶어요. 4순위가 나온 다면 ‘이 선수’를 뽑을 생각입니다.”
얼마 전 프로팀 관계자와 10월에 있을 신인 드래프트에 대한 대화를 나누던 중 4순위 얘기가 나왔다. 프로팀 관계자는 4순위로 생각하고 있는 선수에 대해 “현재 대학 선수 중 빅3를 제외하면 프로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선수에요. 1번과 2번을 모두 무리 없이 소화 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그가 말한 ‘이 선수’는 연세대 4학년 가드 천기범(22, 186cm)이었다.
‘빅3 드래프트’라 불리는 이번 드래프트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건 어찌 보면 1순위가 아닌 4순위다. 올 초까지만 해도 빅3 다음으로 누구를 뽑을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4순위는 천기범으로 좁혀지고 있다.
천기범은 고교시절부터 전국구 스타였다. 부산중앙고 시절 천재 가드로 일찍부터 이름을 떨쳤다. 그는 떨어지는 전력의 팀을 이끌고 전국대회에 나가 강팀들을 연이어 무너뜨리며 유명세를 탔다. 상대는 천기범을 막기 위해 이중 삼중으로 수비를 했지만 소용없었다. 천기범은 포인트가드가 지녀야 할 농구 센스, 어시스트 능력, 득점력, 리더십 등을 고루 갖춰 장차 한국 농구를 이끌 대형 가드 유망주로 손꼽혔다.
이후 기대를 한 몸에 받은 채 연세대에 진학했지만 결과는 좋지 못했다. 지난해까지 천기범은 대학 3년 평균 7.1득점 4.3리바운드 2.3어시스트를 올렸다. 나쁘지 않는 기록이었지만 고교시절 보여준 기대치에는 분명 못 미치는 활약이었다. 그동안 천기범에 대해 “슬럼프가 찾아왔다”, “농구를 포기하려 한다”하는 소문까지 나돌며 “대학 진학 후 실력이 오히려 퇴보했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하지만 4학년이 된 올해 천기범은 최근 자신을 둘러싼 부정적 평가를 모두 뒤집었다. 올 시즌 커리어 하이인 평균 10.73득점에 약점으로 지적되던 3점슛 성공률이 45.45%로 크게 올랐다(천기범의 지난 3년간 3점슛 평균 성공률은 26%였다). 이런 활약을 바탕으로 올해 이상백배 대표팀과 아시아퍼시픽 대회 한국A팀에 뽑히며 대학 진학 후 첫 태극마크를 달기도 했다.
롤러코스터 같은 선수 생활을 한 천기범을 직접 만나 그동안의 궁금증을 물어봤다. 그는 자신을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인터뷰가 시작되자 조리 있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며 그간의 오해에 대해 입을 열었다.
Q.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어요?
일본 교류전을 마치고 귀국해 학교에서 몸을 만들고 있어요. 다가오는 프로아마최강전을 시작으로 정기전, 대학리그가 연이어 있는 만큼 준비를 잘해야 할 것 같아요.
Q. 올해 이상백배와 아시아퍼시픽 대회에서 연이어 대표팀에 뽑혔어요. 대표팀에 뽑힌 건 U18대표팀 이후 처음이었죠?
네 맞아요. 성인대표팀은 아니었지만 태극마크를 달고 뛰는 것 자체가 영광이었어요. U18대표팀 이후로 정말 오래간만에 친구들을 만났죠. 그래서 그런지 대회 자체를 굉장히 즐기면서 임했어요.
Q. 4학년 들어 예전 기량을 되찾았다는 평가에요. 개인 기록도 좋아지고 플레이에도 군더더기가 없어졌어요. 이 때문에 이미 많은 프로팀 관계자들이 드래프트 4순위로 천기범 선수를 점찍고 있어요.
4순위라는 얘기를 들으면 기분이 좋죠. 하지만 고교 때 천재소리 들으며 붕 떠 있다가 대학 와서 제대로 당했잖아요. 그때는 제가 최고라 생각했는데 끝없이 내려갔었죠. 아직은 몰라요. 프로진출 생각은 접어두고 있어요. 연세대에서 할 게 남았거든요. 대학생활에 충실하다 보면 좋은 결과가 나올 거라 생각해요. 저에게는 마지막 대학시즌인 만큼 마무리를 잘하고 싶어요.
Q. 앞서 말한 ‘대학 와서 제대로 당했다’라는 게 무슨 소리에요?
제가 연세대에 왔을 때 (김)기윤이 형, (허)웅이 형, (김)준일이 형 등 잘하는 선수들이 많았어요. 문제는 이들과 같이 뛸 때 제가 볼을 잡으면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는 거에요. 워낙 잘하는 형들이라 공을 잡으면 알아서 다 처리를 하니까 제가 할 게 없었어요. 경기 중에 ‘내가 뭘 해야 하지’라고 생각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때서야 제가 원맨팀 출신의 한계를 느끼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Q. 원맨팀 출신이라는 건 부산중앙고 시절을 말하는 건가요?
네. 고교시절 전국대회 준우승까지 차지했지만 결승까지 갈 멤버 구성이 아니었어요. 운이 좋았죠. 부상으로 운동을 제대로 못한 선수, 공도 잘 못 잡는 농구 초짜 등. 명문 학교로 불리는 경복고, 계성고, 용산고 등과 비교하면 선수층으로는 도저히 이기기 힘든 전력이었어요. 때문에 부산중앙고에선 모든 걸 제가 다 해야 했어요. 공격과 수비, 패스, 경기 운영 등등. 하지만 대학 와서는 잘하는 선수들이 많으니까 고교시절처럼 하면 팀이 엉클어져버리더라고요. 3학년 초반까지만 해도 제가 할 게 없어 헤맸어요. 강팀에선 각자 잘하는 분야만 충실히 해도 인정받을 수 있는데 그걸 몰랐던 거에요.
Q. 그렇다면 연세대에 온 걸 후회한 적은 없나요?
후회하진 않았어요. 제가 만약 중위권 팀에 갔으면 기회가 더 많이 왔을지 모르죠. 하지만 어차피 프로가 목적이라면 이러한 경쟁에 익숙해야 돼요. 프로에는 잘하는 선수들이 여기보다 훨씬 많잖아요. 신인선수로 프로에 뛰려면 자신보다 나이도 많고 실력도 뛰어난 형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해요. 대학 와서 미리 치여 보고 도전하는 게 나아요.
Q. 대학 1학년 때 농구를 포기하려 했었다는 얘기도 있었어요.
네 사실이에요. 1, 2학년 때 농구를 접을까 생각했었어요. 어린마음에 방황을 한 거죠. 제가 자존심이 강하거든요. 저보다 잘하는 선수들을 보며 인정을 못했어요. 어린 생각에 ‘이정도 실력을 갖고 농구를 계속하는 게 맞나’라는 생각을 했죠. 은희석 감독님이 오시고 나서 이런 저를 잡아주셨어요. 제가 무얼 해야 하고 어떤 걸 해야 잘 할 수 있는 지 알려주셨죠.
Q. 천기범 선수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천재’잖아요. 고교 시절부터 천기범 선수 앞에는 항상 ‘천재 가드’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어요.
솔직히 말하면 천재라고 불리는 걸 안 좋아해요.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잘하지 않았거든요. 초등학교, 중학교 동창인 (정)희원이나 마산에 있던 (최)준용이, 울산의 (최)성모와 어릴 때부터 농구를 많이 했는데 이 친구들에게 지기 싫어서 연습을 엄청했죠. 각자 그 지역을 대표하는 아이들이니까, 이들을 이겨야 내가 농구를 직업으로 삼는다는 말을 하지 않을까했어요. 그러한 노력이 없었다면 지금의 저도 없었을 거에요.
Q. 천재가드는 재능이 아닌 노력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말이군요?
노력하면 재능은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어요. 재능이라 해봤자 한 끝 차이에요. 생각하기 나름이죠. 다들 저보고 타고났다 하는데 저 고등학교 입학 때만 해도 별 볼일 없는 아이였어요. 항상 주목 받고 싶고 잘하고 싶어서 열심히 한 거죠. 그런데 어느 순간 주위에서 ‘천재 가드’, ‘타고난 재능’이라는 얘기를 하더라고요. 듣기 거북했어요. 저나 (최)준용이, (허)훈이 모두 마찬가지에요. 천재라는 말을 안 좋아하죠. 물론 재능이 있기 때문에 이정도 까지 됐을지 몰라요. 하지만 재능만으로는 농구를 할 수 없어요. 재능만 가지고 지금까지 농구 잘하는 사람은 한명도 못 봤어요. 농구를 하다보면 내 위에 잘하는 사람 천지고 아래에도 잘하는 친구들이 바로바로 치고 올라오니까요. 노력하지 않으면 계속 농구하기 힘들죠.
Q. 최준용, 허훈 선수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천기범 선수가 보는 최준용, 허훈은 어떤 선수인가요?
(최)준용이를 알고지낸지 10년이 지났지만 볼수록 남다른 것 같아요. 친구지만 정말 환상적인 선수죠. 그 키에 그 스피드, 팀에서 제일 빠를 걸요? 거기다 가드 못지않은 드리블과 패스 능력을 가지고 있잖아요. (허)훈이는 제가 정말 높게 평가하는 선수에요. 원래 잘하는 선수였지만 본인의 노력까지 더해지면서 발전 속도가 굉장히 빨라요. 공통점은 둘 다 농구 생각을 엄청 한다는 거에요. 훈이는 팀원들 몰래 개인연습을 하기도 하고 준용이는 훈련할 때의 집중도가 정말 뛰어나요. 저도 정말 열심히 한다고 생각하는데 준용이와 훈이는 그 이상이에요(웃음).
Q. 천재라는 수식어와 함께 뒤따르는 말이 ‘게으르다’라는 말이에요.
제가 어릴 때부터 건들대는 이미지가 있잖아요. 여유도 많은 편이라 제가 연습 안하는 걸로 소문이 나있더라고요. 놀지 않고 농구만 했다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노는 것 안 좋아하는 사람 있나요? 전 놀 땐 놀고 할 땐 하자는 주의에요. 밖에서는 제가 어떤 노력을 하는지 몰라요.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요. 우리팀엔 (최)준용이 (허)훈이처럼 농구 욕심이 있는 선수들이 많아서 모두 선의의 경쟁을 하며 훈련을 하거든요. 팀 훈련 외에도 개인 시간을 내서 꾸준히 웨이트 훈련도 하고요. 저뿐 아니라 팀원 전체가 경쟁적으로 연습을 하는 분위기에요.
Q. 약팀의 에이스로이던 고교시절과 지금을 비교하면 어때요?
장단점이 있죠. 농구하기는 지금이 편해도 원맨팀은 스포트라이트를 독점하잖아요. 기분이 좋죠. 하지만 언제까지고 원맨팀의 주인공이 될 순 없어요. 스타플레이어로 1, 2년 농구 하는 것보다 10년 이상 오래 하고 싶거든요. 장수하는 게 성공하는 선수라고 생각해요.
Q. 이번 드래프트에서 천기범 선수와 함께 1라운드 상위 픽을 놓고 다툴 선수로 고려대 최성모, 중앙대 박지훈 선수가 많이 언급되고 있어요. 특히 부산중앙고의 천기범, 울산무룡고의 최성모는 고교시절부터 대표적인 라이벌이었잖아요.
(최)성모가 어린 시절부터 계속 옆에 있었던 친구였다면 (박)지훈이는 어느 순간 ‘짠’하고 등장한 친구죠. 성모랑은 악연인지 필연인진 모르겠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계속 맞붙고 있어요(웃음). 저는 김해, 성모는 울산 출신이라 어릴 때부터 매주 경기에서 상대로 만났어요. 이제는 인연을 끊을 때가 됐죠, 하하. 주위에서 많이 비교하시는데 사실 저희 둘은 농구 스타일이 완전 달라요. 성모는 저보다는 (박)지훈이와 비슷한 유형이죠. 둘 다 1번보다는 2번에 가까운 선수들이에요. 슈팅과 스피드를 겸비했죠. 저보다 나은 점도 있지만 포인트가드로서는 제가 더 자신 있어요.
Q. 라이벌 고려대 얘기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올 시즌 고려대는 지난해보다 약해졌다는 평가인데 천기범 선수가 보기엔 어떤가요?
작년에 비해 전력이 떨어진 건 맞아요. (이)종현이, (강)상재는 더 성장했을지 몰라도 앞선은 약해졌어요. 그동안 고려대는 뒷선뿐 아니라 앞선도 높은 팀이었어요. (이)동엽이 형, (문)성곤이 형이 워낙 높았거든요. 하지만 이제는 높이 싸움에서 밀리지 않아요. 오히려 1~3번 높이만 보면 우리가 앞서요. 특히 저는 (최)성모와 매치업이 되는데 성모한테 만큼은 지기 싫어요. 이길 자신 있습니다.
Q. 고등학교 땐 포인트가드로 활약했지만 지금은 슈팅가드로 뛰고 있어요. 프로에 가면 어느 포지션에서 뛰고 싶나요?
1번으로 뛰고 싶어요. 포인트가드가 편하고 제가 더 재밌게 농구를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대학와서 2번으로 많이 뛰고 있지만 지금도 (허)훈이를 도와 경기 리딩을 많이 보고 있어요. 훈이가 빠질 땐 1번도 보고요. 요즘은 1, 2번 구분이 심하지 않잖아요. 가드 포지션을 두루 할 수 있다는 게 제 가장 큰 장점 아닐까요?
Q. 앞서 말한 대로 어느덧 대학 마지막 시즌이에요.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을 것 같은데요.
연세대 성적이 부진하면서 팬들의 성원이 조금 준 것 같아 아쉬워요. 제가 1학년 때만 해도 대학교 팬들의 호응이 어마어마했거든요. 대학리그 중계까지 없어지다 보니 관심이 예전에 비해선 줄어든 느낌이에요. 좋은 후배들도 많고 저희도 남은 기간 열심히 할 테니 많은 관심 가져줬으면 좋겠습니다.
사진_유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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