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슬램게임] "뭐든 이겨내는 선수" 성균관대 김태형…'승부처 맹위' 앞세워 만들어갈 다음 장면(014)
- 아마추어 / 이연지 기자 / 2026-09-30 18:18:19

[점프볼=이연지 인터넷기자] 지금껏 농구 하나를 바라보며 달려온 시간은 이제 프로라는 다음 무대를 앞두고 있다. '26슬램게임'은 KBL 드래프트를 향해 저마다의 시간과 가능성을 증명해야 하는 선수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이번 주인공은 성균관대 김태형(180cm, G)이다.

#001_Scan: 성균관대 김태형
머리 위로 뙤약볕이 내리쬐던 운동장. 그곳을 뒤로하고 들어선 체육관의 공기는 시원했다. 축구를 유난히 좋아하던 김태형은 '햇빛 알레르기'라는 얄궂은 체질 탓에 야외 스포츠를 마음껏 즐길 수 없었다. 그렇게 태양을 피해 우연히 발을 들인 체육관에서 김태형의 농구가 시작됐다.
초등학교 5학년 방과 후 수업 시간, 코트 위에서 재미 삼아 던져본 공이 림을 통과하며 내는 경쾌한 소리는 단숨에 김태형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호기심이 이끌림으로 변할 무렵, 그를 알아본 코치가 엘리트 선수의 길을 권유했다. 운동선수 출신인 아버지는 그 길이 얼마나 고된지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반대했지만, 농구를 향한 김태형의 열정을 꺾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나선 본격적인 여정의 출발점부터 순탄치는 않았다. 매산초를 졸업한 뒤 자신을 스카우트했던 코치를 따라 휘문중으로 진학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해당 지도자가 고려대로 떠났고, 팀의 색깔마저 자신의 플레이 스타일과 맞지 않았다. 결국 변화를 택한 김태형은 중학교 2학년, 삼일중으로 둥지를 옮겼다.
"휘문중에서 1년 반 정도 있다가 2학년 때 삼일중으로 왔어요. 삼일중이 제가 추구하는 플레이 스타일과 더 잘 맞았어요. 그래서 농구하는 게 더 즐거워졌죠."
하지만 전학 징계로 인해 실전 경기에 뛸 수 없는 긴 기다림의 시간이 주어졌다. 경기감각이 떨어지지 않게 연습 경기를 부지런히 소화했고, 드리블 훈련과 슛폼 교정에 매달리며 코트 밖에서의 시간을 오롯이 연습으로 채워 넣었다.
그 과정에서 아버지가 든든한 조력자로 나섰다. 김태형의 아버지는 주말마다 체육관에 나와 훈련 파트너가 되어 줬다. 공을 잡아주기도 하고, 훈련용 패드로 거칠게 몸을 부딪쳐 주기도 했다. 김태형은 그 충격을 버텨내며 숨이 턱끝까지 차오를 때까지 드리블을 친 뒤 슛을 쏘아 올렸다. 실전에서의 상황을 대비한 훈련이었다.
"갑자기 경기를 안 뛰다 보니까 슛폼이 망가졌어요. 그래서 부모님이랑 같이 연구하면서 연습을 많이 했어요. NBA에서 슛 잘 넣는 선수들 영상 보시고 팔꿈치 각도나 하체 밸런스 쓰는 방법을 많이 알려주셨어요. 제가 어떻게 하면 슛을 잘 넣을 수 있을지 저보다 더 많이 공부하셨죠. 제 노력 1~2% 정도에 아버지가 도움 주신 게 나머지였을 정도로 컸어요. 그때 그렇게 못 했으면 정말 슛 없는 선수가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점점 슛에 대한 자신감이 붙어서 저만의 강점으로 가져갔죠."

갈고닦은 3점슛은 그렇게 김태형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무기가 됐다. 긴 기다림 끝에 징계가 풀리고 나선 첫 대회인 연맹회장기에서 그 손끝이 불을 뿜었다. 김태형은 5경기 평균 21점 4리바운드 5.4어시스트로 맹활약하며 '감투상'을 거머쥐었다. 특히 침산중과의 경기에서는 3점 슛 7개 포함 30점을 폭격하며 그동안의 갈증을 해소했다.
폭발적인 득점력 이면에는 코칭스태프의 믿음과 전술적 가르침도 자리하고 있었다.
"코치님들이나 주변 분들도 기대를 많이 했던 상황이었어요. 그 기대에 부응하고 싶어서 열심히 했어요. 친구들이 다 잘했던 선수들이라 저한테 공도 많이 줘서 많이 넣을 수 있었어요."
"삼일중에서 수비 자세랑 체력적인 부분을 중시하셨어요. 그때 제가 포인트 가드를 했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경기 조율을 어떻게 하는지, 어떤 상황에서 어떤 패턴을 골라야 하는지 자세하게 알려주셔서 당시에 엄청 늘었어요. '실수해도 괜찮으니까 슛도 많이 쏴보고, 패스도 많이 해보면서 자신 있게 하라'는 말씀을 많이 해주셨어요."
삼일중 시절, 그의 플레이를 눈여겨본 이시준 코치(현 대학농구 해설)의 부름을 받아 김태형은 안양고로 향했다. 바로 주전으로 뛸 만큼 큰 기대를 모았지만, 이번에는 코로나19라는 예상치 못한 변수가 코트를 덮쳤다. 시합이 멈춘 상황 속에서도 김태형은 핑계를 찾지 않았다.
"중학교보다 고등학교가 피지컬적인 부분에서 더 강해서 웨이트 트레이닝에 매진했어요. 안양고는 다른 고등학교랑 다르게 피지컬 트레이너 선생님이 계셔서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죠. 안 밀리면서 잘 뛰어다니기 위해 드리블 훈련도 많이 했어요."

이 시기 그가 가장 많이 참고한 선수는 '스테픈 커리(골든 스테이트 워리어스)'였다. 3점슛 말고도 커리의 볼 없는 움직임과 동료를 살려주는 플레이 메이킹 능력, 드리블 능력 등을 흡수하기 위해 머릿속으로 장면을 그려가며 움직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커리를 좋아해서 훈련 루틴 영상을 찾아보면서 거의 다 따라 해봤어요. 효과도 좋더라고요. 지금도 루틴 가져가고 있어요. 농구 경기 영상을 봐도 커리 영상을 보고, 심심할 때도 경기 하이라이트 영상 찾아봐요. 슈팅 훈련용 영상을 다 찾아보고 최대한 비슷하게 따라 해 보려고 노력했어요. 그게 저한테는 큰 영향을 줬어요. 원래는 아버지께서 커리 영상 보시고 저한테 빙의 시키고 싶어 하신 것 같아요(웃음)."
어느새 커리는 김태형의 롤모델이 됐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등번호 '30번'을 고집하는 이유다. 이는 그에게 동기부여와 자극제가 되기도 한다.
"제 또래에서 30번 얘기하면 다 저를 말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만큼 제겐 뜻깊은 번호예요. 신발도 커리 신발을 신어요. 그런데 아예 슛을 못 넣으면 그냥 커리 따라 하기만 하는 선수라는 말을 들을 것 같아서 더 열심히 연습하게 됐어요."
슛을 갈고닦던 김태형에게 안양고에서의 시간은 농구의 폭을 한 단계 넓혀준 시기였다. 당시 부임한 이상영 코치에게서 새로운 농구를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 이 코치 지도 아래 김태형은 육상 농구를 방불케 하는 속공과 트랜지션 게임, 풀코트 프레스 수비를 익혔다. 초·중학교 시절 경험하지 못했던 빠른 템포와 강력한 압박 수비를 흡수하며 자신의 플레이 기틀을 다져 나갔다.

코트 안팎에서 축적된 담금질의 시간은 고등학교 3학년, 제52회 추계연맹전에서 결과로 나타났다. 김태형은 이 대회 6경기 평균 33점 7.1어시스트라는 기록을 남기며 '득점상'과 'MVP'를 동시에 석권했다.
예선 첫 경기부터 31점을 몰아치더니, 다음 경기에선 3점 슛 6개 포함 38점을 기록했다. 휘문고와의 일전에서는 무려 42점을 쏟아부었고, 대부분의 경기를 풀타임으로 소화하며 준결승과 결승에서는 더블더블까지 작성했다. 3학년 내내 슛 밸런스가 잡히지 않아 주말마다 빈 체육관에 나가 홀로 슈팅 훈련에 매달렸던 집념이 빚어낸 결과였다.
그렇게 대회 기간 내내 물오른 농구로 다양한 선택지를 보여줬다. 수비가 떨어지면 가차 없이 외곽포를 꽂았고, 슛을 막기 위해 수비가 달라붙으면 여유롭게 돌파로 제치고 들어가 림을 공략했다. 협력 수비가 들어오면 비어 있는 동료에게 패스를 건넸다. 스스로도 "농구를 쉽게 한 순간"이라 회상할 만큼, 시야와 밸런스가 극에 달해 있었다. 결국 팀은 '우승'을 차지했다.
"경기 종료 버저가 울리고 나서는 별다른 느낌이 없었어요. 그저 '이겼구나' 싶었어요. 그런데 누나들이랑 매형이 수고했다고 하이파이브 해주는데 저도 모르게 감정이 훅 올라왔어요. 거의 울 뻔한 걸 꾹 참았죠. 그동안 늘 입상 문턱에서 졌거든요. 첫 우승이기도 해서 너무 행복했어요."
"예선 첫 경기부터 30점 이상을 넣어서 '이번 대회에는 30점 이상으로만 넣어보자' 싶었죠. 항상 득점하는 가드가 하고 싶었고, 득점상 한 번은 꼭 받아보고 싶었어요. 고등학교 마지막 대회에서 받아서 MVP 받았던 것보다 크게 와 닿았어요."

#002_Life in University
그럼에도 김태형의 대학 진학 과정은 쉽지 않았다. 지원한 학교 6곳이 모두 불발되며 갈 곳이 없던 상황이었던 것. 위기의 순간 속 휴대폰이 짧게 울렸다. 성균관대 입학처에서 온 문자였다. 합격 여부를 확인하라는 안내를 따라 화면을 열자 '합격'이라는 글자가 떠올랐다.
"다 떨어지고 나서 재수를 해야 하나, 아니면 정말 농구를 관둬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어요. 그날 부모님이랑 여권 사진을 찍으러 갔었는데, 핸드폰에 문자가 하나 띵 오는 거예요. 성균관대학교 입학처를 확인해 보라고 와서 바로 확인했죠. '합격하셨습니다'가 떠서 저는 무덤덤했는데 부모님이 되게 좋아하셨어요."
어렵게 대학 진학의 문턱을 넘었으나, 코트 위 상황은 또 달랐다. 한숨 돌릴 새도 없이 입학 직후 부상이 찾아왔다. 강릉 동계 훈련 중 치른 용산고와의 연습경기, 스텝을 딛는 과정에서 발목이 꺾이며 인대가 파열됐다. 농구를 시작한 이래 손가락을 삐거나 무릎이 아파 하루이틀 쉰 적은 있어도 이토록 큰 부상은 처음이었다.
"부상을 너무 쉽게 생각했어요. 빨리 경기 뛰고 싶은 마음에 한 달 뒤 일본 동계 훈련 때 무작정 뛸 수 있다고 했죠. 그런데 막상 뛰려니까 안 움직여지는 거예요. 결국 재활 기간만 한 달이 더 늘어났고, 그 사이 경기 감각은 다 식어버렸어요."
부상만큼 그를 짓누른 건 환경의 변화였다. 늘 주전으로 코트를 누볐지만, 대학에서는 벤치에서 출전을 기다려야 했다. 고교 시절보다 2~3배 이상 빠른 경기 템포는 숨을 차게 했고, 강한 수비 압박 탓에 몸 밸런스도 무너졌다. 그로 인해 1학년 시절 3점슛 성공률은 21.4%(3/14)에 그쳤다.
"초·중·고 내내 주전으로 뛰다가 대학교에 와서 출전 시간이 줄어든 상황에 익숙해져야 했는데, 부상까지 당해버리니까 적응할 시간도 없어져서 많이 힘들었어요. 성균관대 농구가 고등학교 때 했던 농구랑 흡사한 부분이 많아서 노력하면 잘 맞을 수 있겠다 싶었어요. 많이 성장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출전 시간을 많이 못 받다 보니 성장할 시기를 놓쳤던 것 같아 아쉬웠죠."

김태형은 조급함을 버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나씩 찾기 시작했다. 몸을 만드는 방식도 완전히 뜯어고쳤다. 당시 성균관대 소속 안정현 트레이너(현 고양 소노)의 세심한 관리가 큰 힘이 됐다.
"안정현 선생님께 어떻게 하면 빨리 회복할 수 있는지 많이 여쭤봤어요. 제 상태를 잘 봐주시고 '빨리 나을 거다. 걱정하지 말라'는 말도 많이 해주셔서 항상 감사했어요. 그때부터 코어 운동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시작했는데 기능적인 웨이트랑 같이 병행하다 보니까 훨씬 밸런스 찾기가 수월해졌어요."
회복 기간에도 농구공은 놓지 않았다. 발목을 쓰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상체 웨이트를 꾸준히 하며 복귀 후의 몸싸움에 대비했고, 의자에 앉거나 한 발로 서서 슛을 던지며 감각을 유지했다.
이는 전반기 마지막 일정이었던 6월 한양대전에서 빛을 발했다. 당시 김태형은 3점슛 2개 포함 10점 3리바운드 2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반등의 신호탄을 쐈다.
"부상당하고 적응을 잘 못하고 있다가, 몇 경기 뛴 다음에 운동 방식을 바꾸고 들어간 경기였어요. 슛도 잘 들어갔었고 한 경기가 잘 되다 보니까 내 방식이 맞구나라는 확신도 생겼죠. 그 경기 이후에 자신감을 많이 찾았어요."
자신감을 회복한 그는 한 달 뒤 열린 7월 MBC배 대회에 이르러 본연의 궤도에 올랐다. 대회 5경기를 모두 소화하며 평균 4.4점을 기록, 부상을 딛고 대학 무대에서 자신의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2학년 시즌을 앞두고 당한 코뼈 부상 역시 그를 막지 못했다. 안면 마스크를 쓴 답답한 상황을 오히려 전화위복으로 삼았다. "수비할 때 시야가 가려지는 부분도 있고, 슛 시도 때도 약간 위아래가 닫혀 있다 보니까 연습할 때 불편했어요. 적응하다 보니까 슛 쏠 때 골대밖에 안 보이니까 집중이 더 잘 되는 거 같기도 했어요. 그래서 성공률도 좋았죠."
답답함마저 긍정으로 바꾼 그의 손끝을 더욱 정교하게 만든 건 결국 연습량이었다. 오전 수업이 없는 날, 야간 훈련이 끝난 뒤에 그는 텅 빈 코트에 남아 슛폼을 가다듬었다. 코칭스태프의 조언에 따라 3점 라인 밖으로 한 걸음 더 물러나 던지는 딥쓰리 장착에 공을 들였다. 그 결과 2학년 시절 3점슛 성공률 34%, 2점슛 성공률 55%라는 기록지를 남겼다.

탄탄대로일 것 같았던 흐름은 3학년에 이르러 다시 흔들렸다. 치열한 팀 내 경쟁 속에서 김상준 감독에게 확고한 믿음을 주지 못했고, 출전 시간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짧게 주어지는 출전 시간은 압박감으로 다가왔다. 무언가 보여줘야 한다는 조급함은 잦은 실수로 이어졌고, 한 시즌 동안 기록한 3점슛은 단 4개에 불과했다. 코칭스태프의 교체 사인이 떨어질 때마다 코트 위의 자신감은 깎여 나갔다.
터널의 끝에서 그가 찾은 돌파구는 '수비'였다.
"3학년 내내 기죽어 있는 플레이, 자신감 없는 플레이를 많이 해서 눈에 띄지 못했던 것 같아요. 멘탈 문제라고 느껴서 제가 중고등학교 때 잘했던 경기들을 많이 보면서 '다음에 경기 들어가면 자신 있게 해야지' 다짐했어요. 제 마인드가 확 바뀐 게 '일단 수비부터 하자'였어요. 수비가 돼야 경기에 뛸 수 있다고 감독님께서 말씀해 주시기도 했죠. 수비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경기에 임하니까 자연스럽게 제 플레이도 나오고 팀이 승리하기도 하더라고요."
3학년 시절 뼈저리게 느꼈듯, 코트에 서기 위한 기본값은 여전히 '수비'였다. 공격적인 능력과는 별개로 수비 디테일은 여전히 그의 숙제였다. 올해 일본 동계 훈련부터 시즌 개막 직전까지 수비에 대한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그는 코트 위에서 끊임없이 스텝의 방향을 고민하며 수비 밸런스를 교정했다. 1대1 수비시 공격자에게 쉽게 길을 열어주지 않으려 악착같이 따라붙었고, 골밑으로 치고 들어가지 못하게 길목을 차단하며 강하게 압박했다. 그러자 수비는 점차 끈적해졌고, 스틸로 이어지기도 했다. "아직은 부족하지만, 확실히 예전보다 지적받는 횟수가 줄었고 잘 막아낸 장면도 늘었다"며 스스로 체감할 정도였다.
수비로 예열을 마친 4학년 시즌, 팀에 닥친 악재는 아이러니하게도 그에게 기회의 문을 열어줬다. 팀 득점을 책임지던 이관우가 부상으로 이탈한 것이다.
"관우가 다쳤을 때는 팀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선수니까 마음이 안 좋았어요. 그런데 주변에서 기회라고 이때 못 보여주면 다시 기회가 안 올 수도 있다고 하셨죠. 꽉 잡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정말 열심히 준비했어요. 관우가 팀에서 득점 비중이 높고 3점슛도 좋아서 최대한 그 부분을 메우기 위해 찬스 때 꼭 넣어야겠다는 각오였어요."

준비된 자에게 온 기회는 가치를 입증할 무대가 됐다. 김태형은 MBC배 대회 6경기에서 평균 13.5점, 3점슛 성공률 36.2%를 기록하며 성균관대의 외곽을 책임졌다. 놀라운 집중력으로 찬스를 득점으로 연결했고, 수비가 몰릴 땐 동료의 공간을 살리는 여유까지 생겼다.
도약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드래프트를 앞둔 그는 신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단순한 3&D 역할에 머물지 않고, 경기 조율 능력을 끌어올리는 데 집중했다. 올 여름 프로팀과의 연습경기에서 그는 주눅 들지 않고 돌파와 리딩, 3점슛을 선보이며 인상을 남겼다.
"대학교에서 피지컬 좋다는 선수들하고 부딪혀봤을 때랑은 달랐어요. 프로 팀은 더 강한 선수들이 많고 빨라서 힘들었어요. 다행히 제가 그 시기에 올해 들어서 컨디션이 제일 좋았어요. 그래서 수비 한 명 돌파하는 데 있어서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죠. 돌파하고 제 슛 찬스도 보고, 외곽에 있는 동료 살려주는 플레이를 해서 개인적으로 만족한 경기였어요."
연습경기 2경기를 치르고 8월에 갑작스러운 맹장 수술로 한 달을 통째로 쉬어야 했지만, 이미 단단하게 다져진 그의 폼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그의 한결같은 땀방울은 현재 대학리그 2점슛 성공률 52%, 3점슛 성공률 46%라는 수치로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다. 빠른 스피드, 2대2 게임, 확률 높은 미드레인지 점퍼와 폭발적인 3점슛까지 연습으로 자신의 플레이를 입체적으로 완성해 내는 중이다.

#003_Application
드래프트를 앞둔 김태형의 가장 확실한 장점은 중요한 순간에 주저함이 없다는 것이다. 경기 전날 밤 침대에 누워 수많은 승부처 상황을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하는 그는 코트에 서면 오히려 잡음을 잊는다. 승부가 갈리는 위기마다 그의 손끝에서 버저비터나 클러치 득점이 나오는 이유다.
"슛만큼은 제가 1등이라고 생각해요."
"긴장하지 않는 성격이라 중요한 경기나 상황이 왔을 때 한 방 꽂아줄 자신이 있어요. 실제로 버저비터나 접전 상황에서 제 득점이 많이 터지곤 하는데, 그 한 방과 어시스트로 팀 분위기를 확 살려내는 게 제 플레이 스타일이에요. 물론 코트 안에서 경기를 풀어주는 리딩도 할 수 있어요."
후반기 첫 승리를 거둔 경희대전에서도 그의 해결사 본능이 빛났다. 상대의 거센 추격으로 분위기를 내줄 위기의 순간, 3점슛을 꽂아 넣으며 상대의 추격 의지를 단숨에 꺾어 놓았다.
승부처에서의 침착함은 자유투에서도 드러난다. 현재 올 시즌 자유투 성공률은 87.5%다.
"자유투는 실력보다는 멘탈이 중요하다고 느껴요. 부모님께서도 자유투는 놓치지 말자고 당부하세요. 그래서 ‘당연히 넣어야 하는 거다. 넣는 게 특별한 게 아니다’라고 가다듬으면서 최대한 편하게 쏘려고 해요. 관중들이 자유투 방해하려고 소리를 지르다가 슛이 들어가면 확 조용해지는 데서 오는 쾌감이 좋기도 해요."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먼저 그려보는 순간이 있다. KBL 입성을 꿈꾸는 드래프트 참가자들에게도 '프로 선수가 된 나'는 오래 품어온 가장 선명한 상상일 터다.
김태형이 그리는 모습은 코트의 흐름을 단숨에 뒤바꾸는 '게임 체인저'다.
"1년 차 때는 지금 대학에서 하는 것처럼 경기가 잘 안 풀릴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식스맨이 되고 싶어요. 강한 압박 수비를 해주고, 3점슛도 넣어주고 속공 전개도 빠르게 해주면서 분명한 보탬이 되고 싶어요."
목표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 그는 지금 이 순간에도 KBL 최고의 가드들을 교본 삼아 연구 중이다.
"이정현 선수(고양 소노)랑 허훈 선수(부산 KCC) 플레이를 많이 봐요. 이정현 선수가 외곽슛을 어떻게 만들어내는지, 득점 상황에서 어떤 움직임을 가져가는지를 많이 봐요. 허훈 선수는 2대2 능력이 너무 좋아서 항상 보면서 공부해요. 제가 2대2 능력이 아직은 많이 부족해서 훈련할 때 따라 해봐요."
새로운 도전을 앞둔 길목에서 김태형이 가장 먼저 떠올린 얼굴은 언제나 곁을 지켜준 가족이었다.
"제가 경기에 나설 때마다 가족들이 번갈아 가며 경기장을 찾아줬어요. 부모님이 못 오시면 누나들이 와줘서 든든했죠. 누나들이 농구화도 사줬는데 그게 저한테 제일 좋은 선물이었거든요. 그리고 고3 때 울산에서 대회(연맹회장기)를 했는데 첫째 누나가 플랜카드에 사진 붙여서 만들어 와서 응원해 줬어요. 그때가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프로 보내기 위해서 정말 뒤에서 어떻게 보면 저보다 더 많이 노력하셨어요. 제가 경기를 못 뛸 때나 부상일 때는 걱정하시고 힘든 날도 있으셨을 거예요. 더 열심히 해서 꼭 뽑혀서 효도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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