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순위 신기성, 저평가를 신인왕으로 되갚아주다
- 프로농구 / 김종수 / 2023-10-04 01:15:28

프로농구 신인드래프트에서 1~4순위까지에 해당하는 이른바 ‘로터리 픽’은 차세대 스타의 등용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수 풀이 넓지 않은 상황에서 모두가 탐을 내고 관심있는 자원은 많지 않다. 황금 드래프트 혹은 흉년 드래프트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다섯 손가락 안에서 걸린다고 보는게 맞다. 로터리픽이 어떤 의미인지가 바로 느껴지는 대목이다.
물론 모든 스타나 주전급 선수가 로터리픽에서만 나오면 드래프트를 실시하는 의미가 없을 것이다. NBA 등 타리그 드래프트 등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가능성이 낮다 뿐이지 그 외 순번에서도 의외의 대박픽, 스틸픽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실제로 1순위 못지않은 비 로터리픽도 존재했다. 그게 바로 드래프트를 즐기는 매력중 하나이기도 하다.
비 로터리픽 성공신화의 스타트는 '총알탄 사나이' 신기성(48‧180cm)이 끊었다. 그가 참여했던 원년 드래프트에서 가장 많은 화제를 뿌린 선수는 단연 현주엽이었다. 휘문고, 고려대 시절에 걸쳐 부동의 동년배 1위를 유지했던 것을 비롯 이미 국가대표팀에서도 활약을 하고 있었지라 1순위는 따놓은 당상이었다.
'현주엽 드래프트'라는 말이 당연스레 인정받았다. 이후부터는 난전이었다. 몇몇 좋은 선수들이 남아있었지만 누가 2순위가 되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확 치고 나가는 선수는 보이지 않는 분위기였다. 당시 외국인선발은 장단신으로 구분되었던지라 단신 외인을 가드 포지션에서 뽑은 팀도 적지 않았다.
때문에 골밑에서 활약할 토종 선수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이를 입증하듯 윤영필(2순위), 김택훈(3순위), 변청운(4순위)이 차례로 로터리픽을 채웠다. 그렇다면 여기서 느껴지는 궁금증이 있다. 신기성은 어디로 갔을까? 아무리 당시 드래프트가 가드가 뒷전으로 밀려버린 상황이었다해도 현주엽과 함께 고려대를 이끌었던 주역 신기성이 로터리픽에 포함되지 않은 것은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분명 이변이었다.
현주엽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대학 시절의 이름값과 활약상을 놓고 보면 2순위에 가장 가까운 선수라고 보는게 맞았다. 놀랍게도 신기성은 자그만치 7순위까지 밀린 끝에 나래의 선택을 받았다. 로터리픽이 끝난 후에도 이은호(5순위), 박재일(6순위)의 이름이 불린 다음에야 선택을 받은 것이다.
해당 드래프트에 참가했던 가드 중에서는 첫번째에 뽑혔지만 어지간한 해였으면 전체 1순위도 거뜬했을 특급 포인트가드가 7순위까지 밀린 것은 원년 참가팀들의 실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려대 시절 호화 멤버 속에서 동료들을 살려주고자 이른바 튀지 않는 플레이를 펼쳤다는 점도 저평가의 원인 중 하나로 짐작된다.
현주엽을 뽑은 SK를 제외하고 신기성을 거른 5개 팀의 경우 만약 그를 뽑았다면 팀의 운명이 달라질 수도 있었다. 신기성은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는 가드였다. 5개팀 어디에도 신기성보다 나은 1번을 보유한 팀은 없었다. 특히 대우증권(현 한국가스공사)과 동양(현 소노)은 한동안 변변한 야전사령관이 없어서 무척 고생했다.
동양은 이후 조금 시간이 지나 김승현이라는 천재 가드를 뽑아 우승까지 차지하지만 그 이전까지는 하위권을 전전하며 최다연패기록까지 세우면서 약체의 대명사로 불렸다. 전희철, 김병철 듀오가 있었으나 별반 힘을 쓰지 못했다. 김병철같은 경우 대학 시절부터 1번으로의 포지션 전향에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프로에서마저 불합격 판정을 받았다. 만약 신기성이 중심을 잡아줬더라면 동양은 동네북 신세는 면했을 공산이 크다.

대우같은 경우 이후 전자랜드 시절까지 포함해서 오랜 시간 1번 부재로 고생했던 대표적 팀이다. 전체적인 선수층은 나쁘지 않았지만 이를 하나로 묶어줄 코트의 리더가 아쉬웠다. 때문에 신기성이 당시 대우에 들어갔다면 1번 정도는 챔피언결정전 우승까지도 가능하지 않았을까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더욱이 신기성은 대우의 연고지와 같은 인천 출신이다. 인천에서 태어나 인천 명가 송도고를 졸업했다. 인천의 아들로서 인천농구의 상징이 될 수도 있는 신기성을 지나친 것은 대우 입장에서 엄청난 실책이었다. 당시 신기성은 공격형 가드로 불렸다. 그만큼 공격력이 출중해서인데 사실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퓨어포인트가드와 듀얼가드 사이에 놓인 밸런스형 1번이라고 평가하는게 맞겠다.
상대적으로 스스로의 공격력에 가렸을 뿐(?) 준수한 시야를 앞세워 패싱게임에서도 빼어난 역량을 과시했기 때문이다. 김승현 등처럼 화려한 패스가 없다뿐이지 최근의 듀얼가드같이 본인 공격 위주로 플레이를 가져가는 유형과는 거리가 있었다. 선패스 마인드를 바탕으로 동료들을 살려주는 운영에 능했다.
신기성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엄청난 스피드와 정교한 외곽슛이다. 이상민, 김승현, 주희정 등 당시에 함께 활약했던 스타급 포인트가드들은 하나같이 빠른 발을 자랑했다. 신기성은 그중에서도 가장 빨랐다고 평가받을 만큼 그야말로 독보적인 스피드를 인정받았다. 특히 수비 리바운드를 본인이 잡거나 빠르게 볼을 건네받은 경우 이름 그대로 신기에 가까운 돌파력을 보여줬다.
상대 수비진이 진열을 갖추지 않았다고 판단되면 지체없이 원맨속공으로 돌파를 성공시켰다. 드리블을 치면서 달려나가는 속도가 공없는 수비수보다도 더 빠를 때가 많아 경기중계를 하던 해설자들을 헛웃음 짓게 했다. 거기에 빠른 타이밍에서 쏘는 특유의 무회전 3점슛은 어지간한 전문 슈터 못지않은 정확성까지 뽐냈다.
통산 3점슛 성공률이 42.8%에 명 슈터의 기준이라는 170클럽을 네 번이나 달성했을 정도다. ‘신기성이 10cm만 더 컸어도 국가대표 주전 슈터 자리는 그의 몫이 되었을 것이다’는 말이 과장으로 들리지 않는 이유다. 다수의 팀들은 역대급 가드를 눈앞에서 놓쳐버린 셈이 되고 말았다. 당시 드래프트의 신인왕도 12.9득점, 4.1어시스트의 성적으로 맹활약한 신기성의 몫이었다.
고려대 시절 신기성은 욕심부리지 않고 묵묵히 동료들을 지원하느라 베스트5중 인지도가 제일 낮았다. 하지만 프로에서의 활약상을 놓고 보면 현주엽은 물론 전희철, 김병철, 양희승보다도 우위에 서며 가장 좋은 커리어를 남겼다. 첫해부터 맹위를 떨친 신기성의 영향이었을까. 신인드래프트에서 가드 포지션이 극단적으로 밀리는 경우는 이후 찾아보기 어려웠다.
◆ 신기성 정규리그 통산기록 ☞ 통산 613경기 출전, 평균 10.2득점, 2.9리바운드, 5.3어시스트, 1.4스틸
◆ 신기성 챔피언결정전 통산기록 ☞ 통산 20경기 출전, 평균 12.4득점, 3.1리바운드, 5.7어시스트, 1.2스틸
⁕ 정규리그 한경기 최다기록: 득점 ☞ 1999년 12월 23일 안양 SBS전 = 34득점 / 3점슛 성공 ☞ 1999년 3월 7일 대구 동양전 = 6개 / 어시스트 ☞ 2006년 3월 11일 서울SK전 = 14개 / 리바운드 ☞ 1999년 1월 2일 청주 SK전 = 11개 / 스틸 ☞ 2005년 12월 4일 서울 SK전 = 6개
◆ 주요수상 기록: 신인왕, 우승(1회), 정규시즌 MVP(1회), 3점슛 성공률 1위(1회)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KB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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