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원·이경은 키워낸 ‘선일농구 대부’ 황신철, 39년 인연에 마침표

아마추어 / 곽현 / 2017-03-09 09: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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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곽현 기자] 한 학교에서 오랫동안 지도자 생활을 하는 것이 쉽지 않은 요즘이다. 팀 성적, 학부모들과의 관계 등을 잘 유지해야만 자리를 보존할 수 있다. 그래서 지도자들이 장수하기 힘들다.


그런 가운데 선일초·여중·여고에서만 39년 동안 지도자 생활을 하고 퇴임을 한 이가 있다. 바로 선일농구의 대부 황신철(65) 코치다.


황 코치는 지난 달 27일 퇴임식을 가졌다. 1978년 선일초등학교 코치로 부임한 이래 선일여중, 선일여고에서만 지도자 생활을 한 그는 39년 만에 지도자에서 물러나게 됐다.


이날 그의 퇴임식을 맞아 많은 제자들과 농구인, 그리고 학교 관계자들이 찾아 그의 퇴임을 축하했다. 프로선수 중에는 김연주(신한은행), 김가은(KB스타즈)등이 참석했다. 프로농구에서 활동 중인 제자들이 많지만, 아직 시즌이 끝나지 않아 불참한 이들도 여럿 됐다. 선일에서만 39년, 이전 경력까지 포함하면 40년이 넘는 그의 지도자 인생을 들어보았다.



▲“하면 된다” 노력하면 안 될 게 없더라
퇴임식이 열린 후 며칠 뒤 황 코치의 집 근처인 중계동의 한 식당에서 그를 만났다. “이제 실업자 됐으니까 시간 많지 뭐.” 황 코치는 오랜 만에 만난 기자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매일 가던 학교를 가지 않다보니 그는 요즘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 시원스럽기도, 때론 허무함도 느낄 듯 했다. “남자는 놀면 안 된다고 생각했거든. 무슨 일이든 계속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 그런 생각 때문에 40년이 넘도록 쉼 없이 지도자 생활을 해왔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의 집이 있는 중계동과 선일여고가 있는 갈현동까지의 거리는 상당히 된다.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을 했다는 그는 학교까지 꼬박 1시간 반이 걸린다고 한다. 적지 않은 시간. 그는 39년 동안 꼬박 왕복 3시간이 걸리는 출퇴근을 해 온 것이다. “그 동안 그런 건 잘 생각 안 했지. 얘들 가르친다는 즐거움으로 다녔던 것 같아.”


선일여고에서 그는 상징적인 인물이었다. 선일여고의 경기가 있을 때면 벤치에서 카리스마를 내뿜는 그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현 국내 농구 지도자 가운데 한 팀에서 가장 오랫동안 있던 인물로 꼽힌다.


“힘들기도 하고 좋을 때도 있고 그랬는데, 퇴임하고 보니까 정말 힘들었던 과정이 많았던 것 같아. 하고나서 보니까 허무하기도 하고. 지금 생각해보면 좋은 직장에서 근무를 했다는 사실이 정말 자랑스러워. 그 동안 함께 했던 감독, 부장 선생님들이 정말 좋은 분들이 많았던 것 같아. 작고하신 이선룡 이사장님께서 날 정말 잘 챙겨주셨어. 교장실에 자주 불러서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고. 나처럼 교장실에 자주 들어간 사람도 없을 거야.”


그가 물러난 선일여고 코치에는 박민혜 신임코치가 맡게 됐다. 박 코치도 황 코치의 선일여고 제자다. “나보다 더 잘 할 거야. 아주 야무지거든.” 황 코치는 제자에 대한 신뢰도 크다고 말했다.


선수로서 그의 경력은 그리 특별하지 않다. 중학교 시절 야구를 했던 그는 동대문상고 시절 농구를 한 경력이 전부다. 대학에선 농구를 하지 않았다. 그런 그는 대학 졸업 후 여자초등학교 코치로 처음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고 한다.



“어느 초등학교였는데 이름이 잘 기억이 안 나. 농구협회 추천을 받아서 갔는데, 내가 운이 좋은 사람이었어. 처음부터 봉급을 받았는데, 그런 사람이 흔치 않았거든. 그 땐 맨땅에서 운동할 때야. 눈이 오면 눈 치우고 농구를 했었지.”


이후 숭의초등학교로 옮겨 코치를 하던 그는 당시 라이벌이었던 선일초등학교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고 한다.


“당시 나를 스카우트하신 분이 이봉학 전 초등연맹 회장님이셨어. 당시 선일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이셨는데, 나를 이끌어준 분이지. 그분께 정말 감사해. 선일초등학교를 갔는데 체육관이 정말 좋았어. 코트가 3개나 되더라고. 그 땐 그런 데가 없었어. 아이들이 농구하기가 정말 편했었지.”


선수로서 경력은 길지 않았지만, 그는 지도자로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재미에 푹 빠졌다고 했다. “농구를 해보니까 매력이 있더라고. 승부도 있지만, 내가 아이들을 가르칠 때 아이들이 내가 가르친 거 이상으로 할 때 보람을 느꼈어. 이렇게 하면 되는구나. 나도 아이들한테 많이 배웠어. 가르치면서 배운 거지.”


그는 좋은 지도자가 되기 위해 다른 이들의 지도 방식을 많이 보고 배우려고 했고, 자문도 구했다고 전했다.


“잘 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가르치는지 몰래 엿보고 그랬지. 몰래 가서 적기도 하고, 경기 끝나면 물어보기도 하고. 유수종 감독이 대표팀 감독할 때 많이 가르쳐줬어. 임영보 감독님도 많이 알려주셨고, 김윤 감독님에게도 많이 배웠지.”


그가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늘 가슴 속에 품어뒀던 좌우명은 ‘하면 된다’라고 한다. “코트 센터 써클에 그렇게 써놨었다. 그걸로 된 거야. 얘들은 하면 되는 줄 알았어. 근데 그렇게 하니까 정말 되더라고.”



▲전주원, 이경은 등 프로선수들 대거 발굴
지금까지 그에게 농구를 배운 선수들이 굉장히 많다. 여자농구 레전드로 불리는 우리은행 전주원 코치를 비롯해 허윤자(삼성생명), 김연주(신한은행), 이경은(KDB생명), 김가은(KB스타즈), 신지현(KEB하나은행) 등이 그의 가르침을 받고 프로에서 활약하고 있다.


전주원 코치는 황신철 코치에 대해 “선생님한테 축하드리는 게 맞는 거냐고 여쭤봤다(웃음). 선일에서 40년 가까이 계시면서 많은 인재를 길러내셨고, 여자농구의 발전을 위해 정말 많이 노력하셨다. 선생님께 정말 감사하고 수고하셨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우리가 전승 우승을 했다. 그 때는 훈련도 즐겁게 하고, 좋은 기억밖에 없다. 선생님에게 가르침을 받은 선일 출신 졸업생들이 각 분야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으면 좋겠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황 코치는 그 동안 자신을 거친 제자가 워낙 많고, 농구를 잘 했던 선수들도 많았다고 얘기했다.


“(전)주원이는 노력형이야. 나중에 보니까 운동신경도 뛰어나고 머리도 좋았던 것 같아. 이경은, 신지현도 다 장점이 있었고, 머리가 똑똑한 선수들이었어. 아마 공부를 했어도 잘 했을 거야. 이름이 알려진 선수들뿐만 아니라, 이름이 안 알려진 선수들 중에서도 잘 한 친구들이 정말 많았지.”


그는 제자들이 잘 성장해 살아가는 것을 볼 때 지도자로서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농구를 하지 않은 제자들 중에서도 자랑스러운 제자들이 많다고 했다.


“채데레사라는 제자가 있어. 중3 때까지 내가 가르쳤는데, 그 때 랭킹 1위였어. 근데 더 이상 키가 안 크더라고. 그래서 대화를 했지. 공부를 해도 충분히 잘 될 수 있겠다고. 그러더니 시험을 보고 서울대에 합격을 했어. 체육교육과를 나와서 지금은 학교 교사를 하고 있지. 이번에도 찾아왔더라고. 잊지 않고 찾아주고 식사대접도 해줘. 그런 제자들이 농구만 한 제자보다 훨씬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는 지도자를 하면서 가장 기억나는 순간으로 1997년 숭의여고와의 경기를 꼽았다. “그 때 연장전을 3번이나 했어. 숭의여고에는 이옥자 감독이 있었지. 그 분한테는 좀 미안했는데, 우리가 3차 연장 끝에 어렵게 이겼어. 숭의여고에는 김계령, 우리 학교엔 허윤자가 있을 때였지. 그 땐 허윤자가 엄청 잘 했어. 나가는 경기마다 다 이길 때였지.”


그는 선일초에서 3년, 선일여중에서 3년, 그리고 나머지 시간은 선일여고에서만 보냈다. 지도자 생활 동안 우승을 총 몇 번이나 한 것 같냐는 질문에 “정확히 안 세어봐서 잘 모르겠어. 한 100번은 하지 않았을까 싶어”라고 말했다. 그만큼 그는 지도자 생활 동안 숱한 우승을 차지하며 선일여고를 명문으로 이끌었다.


그는 지도자로서의 철학이 있냐는 질문에 “나보다 더 훌륭한 제자를 많이 키워내는 게 목표였어. 또 사회에 나가서 잘 되게 하고 싶었어. 교육 쪽으로는 아이들에게 채찍질 보다는 칭찬을 많이 해준 편이야. 농담도 많이 하려고 했고. 아이들과 너무 세대차이가 나면 안 되니까.”


그는 고등학생들과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외모도 최대한 젊게 하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염색도 하고, 옷도 신경 써서 입고, 늘 깔끔하게 하고 다녔다. 그래서인지 그는 자신의 또래들보다 훨씬 더 젊어보였다. “교장선생님께서 그러시더라고. 늘 젊게 하고 다니라고. 염색도 하고, 깔끔하게 하고 다니라고. 그래야 얘들이 우리 선생님은 늙었다고 생각 안 할 거 아냐(웃음).”



▲언제든 농구계에 종사하고픈 마음
“그 때는 몰랐어. 근데 지나고 나서 보니까 정말 고맙더라고. 아내가 없었으면 내가 이렇게 지도자 생활을 못 했을 거야. 아내한테 정말 고마워.” 황 코치는 40여년간 지도자 생활을 꾸준히 할 수 있었던 데에는 뒤에서 묵묵히 뒷바라지를 했던 아내의 도움이 있었다고 전했다.


“내가 결혼을 늦게 했어. 사실 결혼도 안 하려고 했지. 지도자들은 결혼을 하기 힘들겠더라고. 온 신경을 다 지도에 쏟아야 하니까. 아내와는 선을 봐서 만났는데, 내가 쫓아다녔어. 내가 여자한테 쫓아다닌 건 처음이었지. 지나고 보니까 아내한테 정말 고마워. 그 사람 덕분에 내가 지금까지 지도자를 잘 할 수 있었던 것 같아.”


그는 최근 줄어들고 있는 여자농구 인프라에 대해 걱정을 전하기도 했다. “요즘 아이들을 많이 안 낳는 추세니까. 학교에도 학생 수가 엄청 줄었어. 한 반에 30명도 안 되는 것 같아. 또 힘든 운동을 안 시키려고 해. 여고농구팀이 보통 6~7명 정도밖에 안 되더라고. 안타까운 현실이지.”


황 코치는 현직에선 물러났지만,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곳이라면 언제든 농구계를 위해 봉사하고 싶다고 말했다.


“유소년 아이들을 가르쳤으면 좋겠어. 생각해보면 내가 초등학교 코치 때 정말 열정적으로 했거든. 초등학교 때 기초를 잘 닦아야 좋은 선수가 된다고 생각해. (전)주원이도 키가 작았어. 근데 눈이 살아 있더라고. 기초를 잘 배우면서 좋은 선수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해. 어디에선가 날 불러주면 농구계에 종사하고 싶어. 한국농구가 잘 될 수 있는 길이라면 내가 도와야지.”


#사진 - 선일여고 제공, 점프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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