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A 올스타]지미 버틀러, 지미 조던이라 불리는 사나이!

해외농구 / 양준민 / 2017-02-16 23: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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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양준민 기자] ‘마이클 조던.’ NBA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이자 시대의 아이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만큼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던 농구선수였다. 지금도 TV에는 가끔씩 그의 하이라이트 영상들이 나오고 있고, 인터넷 매체에서도 조던의 영상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심지어 거리에는 조던의 이름을 딴 브랜드의 신발을 신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다.(*스크롤 압박이 심하니 사전에 양해 구합니다)

때문에 농구선수에게 있어 자신의 이름 앞에 ‘마이클 조던의 재림’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면 그보다 더 영광스러운 일은 없을 것이다. 지난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코비 브라이언트 역시 조던의 발자취를 쫓아가기 위해 커리어 내내 부단히 애를 썼다. 코비도 그러다보니 NBA 파이널 통산 5차례 우승, 정규리그 통산득점 3위 등 수많은 업적들을 남기고 정든 코트와 이별을 고했다.

물론, 코비 역시 NBA 역사상 뛰어난 선수 중 한 명이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다만, 기자의 주관적인 생각으론 코비가 조던처럼 시대의 아이콘으로 남기에는 어딘가 모르게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렇게 조던이라는 리그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를 소속팀에 두었던 시카고 불스의 팬들은 지금도 조던의 향수를 잊지 못하고 그를 그리워하고 있다. 기자는 가끔 조던이 샬럿 호네츠의 구단주가 아닌 시카고의 구단주였으면 얼마나 멋졌을까 하는 상상을 하곤 한다. 하지만 2017년 현재, 그때의 조던만큼은 아니지만 유나이티드 센터의 홈팬들을 열광시키는 선수가 있었으니 그 주인공은 ‘지미 조던’이라는 불리는 사나이, 바로 지미 버틀러(27, 201cm)다.



▲미셸의 헌신적인 사랑, 꼬마 노숙자 버틀러를 NBA 선수로 만들다!

버틀러의 유년시절 이야기는 익히 많은 매체들을 통해 다루어져 잘 알려져 있다. 버틀러는 그의 나이 13살, 친엄마로부터 버림받으며 혼자가 됐다. 알려진 사실에 의하면 버틀러의 아버지는 버틀러가 태어난 지 얼마 안돼서 가족들을 버리고 집을 떠났다. 이후 그의 어머니는 버틀러의 외모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버틀러를 버리고 집을 나갔다.

한창 사랑을 받고 자랄 나이에 버틀러는 천애의 고아가 된 것이다. 최근 인기리에 종영된 드라마, 도깨비에 나와 화제가 됐던 대사, “조실부모하고 사고무친”이란 말이 생각나는 버틀러의 유년시절이었다.

이후 버틀러는 약 3년이라는 시간을 거리에서 지냈고 때로는 친구들의 집에 얹혀 지내기도 했다. 당시에는 머리 누울 곳만 있으면 그곳이 바로 버틀러의 집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주머니에 땡전 한 푼도 없었던 버틀러에겐 농구가 곧 희망이었다. 버틀러는 간간히 생계를 이어오는 와중에도 끝까지 농구를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텍사스에 위치한 톰볼(TomBall) 고등학교에 진학하는데 성공했다.
톰볼 고등학교로의 진학은 버틀러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바로 버틀러의 양어머니, 미셸 램버트를 만난 것이 이때였기 때문. 미셸의 아들이자 버틀러의 절친한 친구로 알려진 조던 레슬리는 고등학교 재학 당시, 팀 경기가 끝나고 버틀러에게 3점슛 대결을 제안했었다.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은 급속히 친해졌고 급기야 버틀러는 레슬리의 제안으로 종종 그의 집에서 머무르게 됐다.(*레슬리는 버틀러의 한 해 선배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레슬리의 집 역시 부유한 것은 아니었다. 당시, 그의 어머니인 미셸은 사별한 전 남편과의 사이에 이미 4명의 자녀들을 두고 있었고 재혼한 남편과 사이에서 3명의 자녀를 더 낳는 등 그 집에는 무려 7명의 아이들이 있었다. 미셸 역시 처음에는 진심으로 버틀러를 환영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재정적인 부담을 느끼며 버틀러와의 생활이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결국, 남편과의 상의 끝에 미셸은 버틀러를 집에서 내보내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버틀러는 며칠이 지나도 미셸의 집을 떠나지 않았다. 결국, 미셸은 아이들을 불러 급기야 화를 내기에 이르렀다. 이에 그의 아이들은 “버틀러 형과 함께 하고 싶어요. 오늘 버틀러 형은 레슬리 형의 손님이 아니라 내 손님이에요”라는 말을 전했다. 미셸의 아이들이 진심으로 버틀러를 따랐기에 가능했던 말이었다. 이 말을 들은 미셸은 버틀러와 함께 지내고 싶은 아이들을 진심을 알고 버틀러를 가족으로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처음에는 이런 미셸의 결정에 주위 사람들 모두 우려의 시선을 보냈다. 심지어 그의 남편까지도 반대하고 나섰다. 그러나 미셸은 끈질긴 설득 끝에 남편의 동의를 얻었고 버틀러를 자신들의 가족으로 받아들였다. 빡빡한 살림이었지만 미셸은 버틀러와 아이들을 위해 큰 결심을 했다. 언론에 따르면 당시, 미셸 가족은 식비로만 일주일에 약 400달러를 쓰고 있었고 버틀러가 집으로 들어온 이후 미셸은 일자리를 두 개로 늘리기까지 했다.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가족을 얻은 버틀러였지만 그는 여전히 불안해했다. 이미 한 번 친부모들로부터 버림받은 아픔이 있었던 버틀러는 혹시나 양부모들도 자신을 버리지 않을까 전전긍긍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미셸은 사랑으로 버틀러를 감쌌고 그에게 연기가 아닌 진심으로 엄마가 돼주었다. 처음에 버틀러도 가족들의 눈치를 보며 시키지도 않은 집안일을 하는 등 어딘가 모르게 어색해보였다. 하지만 이내 안정을 되찾기 시작, 심리적인 안정을 얻은 버틀러는 농구실력도 일취월장했다.

물론, 미셸이 처음부터 버틀러를 온전한 가족으로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또, 고아였던 버틀러에 대한 이웃들의 시선은 여전히 차가웠다. 이에 미셸은 버틀러에게 “동생들이 존경할만한 형이 되어줄 것”을 부탁했다. 더불어 “학교 수업에 결석하지 말고 학교공부 역시 열심히 해줄 것” 이 두 가지는 꼭 지켜줄 것을 신신당부했다.

그리고 알려진 바와 같이 이후 버틀러는 미셸의 바람들을 성실히 이행, 시간이 지날수록 미셸가의 진정한 가족으로 거듭났다. 미셸 역시 버틀러에게 끊임없는 신뢰와 아낌없는 사랑을 보여줬다. 흑인선수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문신이 버틀러에게 없는 이유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다. 버틀러는 동생들이 문신한 자신을 보고 똑같이 따라할 것을 염려, 문신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안정을 찾은 버틀러는 앞서 언급했듯 농구 실력도 나날이 늘며 고등학교 졸업학기에는 팀의 주장을 맡기도 했다. 더불어 기록도 평균 19.9득점 8.7리바운드로 수직상승하는 등 버틀러는 팀 내 최고 스타로 발돋움하기도 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럼에도 버틀러를 원하는 대학이 단 한군데도 없었다는 점이었다. 당시, 톰볼 고등학교는 AAU, 전미 아마추어 농구 스포츠 총괄단체의 회원이 아니었기에 버틀러의 대학진학은 더욱 힘들었다. 결국, 버틀러는 인근에 있는 타일러 주니어 대학에 입학, 명문대로 진학은 못했지만 계속해 농구공만은 잡을 수가 있었다.

이후, 타일러 주니어 대학의 에이스가 된 버틀러는 점점 더 자신의 이름을 전국에 알려갔고 1년이 지난 후 급기야 수많은 학교들이 그를 모셔가기 위해 열을 올렸다. 그중에는 버틀러의 모교인 마케트 대학을 포함해 켄터키, 클렘슨, 미시시피, 아이오와까지 전국에서 내노라하는 대학들이 버틀러에게 입학을 제의하기도 했다. 이에 버틀러는 행복한 고민에 빠졌고 어느 대학으로 진학할지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결국, 버틀러는 고민을 거듭하다 어머니인 미셸에게 도움을 청했다. 미셸 역시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고민을 거듭한 끝에 아들에게 마케트 대학 입학을 추천했다. 미셸이 마케트 대학을 선택한 이유는 바로 마케트 대학교가 농구는 물론, 학업적으로 훌륭한 대학이란 이유에서였다. 버틀러가 농구선수로 무조건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었기에 미셸은 아들이 농구선수가 아닌 또 다른 길로도 가볼 것을 추천한 것이었다.

이렇게 버틀러는 마케트 대학에 진학했지만 이는 새로운 시련의 시작이었다. 타일러 주니어 대학시절과는 달리 버틀러는 벤치신세를 면하지 못했다. 자신의 리쿠르팅을 적극 추진하던 버스 윌리엄스 코치가 자신을 중용할 것이라 믿었기에 버틀러의 실망감은 더욱 컸다. 이런 상황들이 반복되자 버틀러는 농구를 그만둘 생각까지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럴 때마다 버틀러를 다독여준 것은 역시나 그의 엄마, 미셸이었다. 미셸은 아들이 힘들다고 전화를 할 때마다 진심으로 버틀러를 격려했고 용기를 북돋아줬다. 이에 힘을 얻어 버틀러는 끝까지 농구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



이후 마음을 추스르고 노력을 거듭한 버틀러는 3학년부터 실력이 일취월장, 졸업반 시즌에는 팀의 주전으로 올라서며 평균 15.7득점(FG 49%) 6.1리바운드 2.3어시스트를 기록했다. 버틀러는 벤치멤버로 활약하는 동안 웨슬리 메튜스, 라자르 헤이워드 등 자신과 같은 포지션에 있던 여러 선배들과의 연습을 통해 그들의 모든 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 노력했다.

당시에 대해 버틀러는 “메튜스와 헤이워드와 함께 연습한 것은 내게 최고의 경험이었다. 그들은 나에게 있어 최고의 개인교사들이었다. 그들은 나에게 어떻게 플레이를 해야 하는지 알려줬고 득점은 올리는 방법은 물론, 어떻게 하면 리더가 될 수 있는지도 알려줬다”라는 말을 전하기도 했다.

때문에 버틀러는 졸업반 시즌 NBA 구단들로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심지어 한 스카우터는 공·수에 능한 버틀러의 다재다능함에 반해 매년 마케트 대학의 경기를 관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당시 버틀러는 자신이 NBA로 가지 못할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고 NBA 구단들이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조차 전혀 몰랐다고 한다.

그 예로 버틀러는 경기 후 자신을 찾아온 NBA 스카우터를 사기꾼으로 오해해 도망치기도 했다. 심지어 버틀러는 마지막 홈경기 직후 대학 후배들과 팬들이 졸업하는 선배들을 격려하려고 만든 자리인 일명, 시니어(Senior) 데이에 참석한 이후 집으로 돌아와 드래프트 현장에 나가지도 않았다.

잠시 시니어 데이 때 얘기를 하자면 버틀러는 자신들을 찾아온 가족들에게 큰 감동을 느끼고 하루 종일 기쁨의 눈물을 흘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그의 어머니인 미셸도 마찬가지였다. 버틀러는 당시 가족들이 시니어 데이 때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시 드래프트 얘기로 돌아와 결국, 버틀러는 톰볼에 위치한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TV로 신인드래프트를 지켜봤다. 혹시나 지명되는 것이 아니냐는 동생들의 장난에 버틀러는 그저 웃으며 자신이 지명될 일은 전혀 없다고 확신에 찬 어조로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만은 버틀러의 확신이 틀렸었다. 평소 꾸준히 버틀러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시카고가 1라운드 전체 30순위로 버틀러를 지명한 것이었다.

TV를 보고 있던 버틀러와 그의 가족들은 버틀러의 이름이 호명되자 믿기지 않는다는 듯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내 버틀러의 NBA 입성이 현실임을 확인한 가족들은 버틀러의 NBA의 입성을 진심으로 축하했다. 미셸은 버틀러의 지명소식을 듣고 그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버틀러는 드래프트 현장의 생생한 감동을 느끼지는 못했지만 자신의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했다.

NBA 입성 후 버틀러의 이런 사연들이 널리 퍼지면서 버틀러는 언론과 팬들로부터 많은 주목을 받게 된다. 실제로 2011년 6월 29일(이하 한국시간)에 있었던 버틀러의 입단기자회견 당시 백인인 미셸의 참석이 언론들의 눈길을 끌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버틀러는 NBA 입성 후 얼마 안돼서 가진 ESPN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말한 적이 있다.

“저와 미셸 가족은 매우 사이가 좋아요. 지금의 제가 여기에 있을 수 있는 건 다 엄마 덕분이에요. 제가 엄마에게 신뢰를 보이자 엄마는 사랑과 보살핌으로 저에게 보답했어요. 엄마가 저에게 새로운 삶을 선물해준 것이나 다름없어요. 저는 엄마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그런 그녀는 저의 엄마입니다”라는 미셸의 아낌없는 사랑과 헌신에 대해 고마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버틀러는 시카고 입단 후 등번호를 결정할 때도 엄마인 미셸에게 자문을 구할 정도로 버틀러에게 있어 미셸은 낳아주지는 않았지만 가슴으로 낳아준 엄마였다. 이처럼 남들의 반대에 불구하고 끝까지 사랑과 보살핌으로 버틀러를 감싼 미셸의 존재가 없었다면 아마 지금의 버틀러도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다.



▲지미 버틀러, 황소군단의 중심에 서다!

이렇게 버틀러는 2011 NBA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30순위로 시카고의 유니폼을 입고 지금까지 시카고의 빨간 유니폼을 입고 있다. 버틀러는 데뷔시즌인 2011-2012시즌 벤치멤버로 출장, 42경기에서 평균 2.6득점(FG 40.5%) 1.3리바운드를 기록했다. 당초, 시카고는 수비적인 역할을 기대하며 버틀러를 데려왔다. 탄탄한 체격과 더불어 운동능력까지 좋기에 에이스 스타퍼로써 버틀러의 성장가능성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드래프트 당시 전문가들도 버틀러의 성장한계를 수준급 벤치멤버로 단정 짓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드래프트 동기인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카와이 레너드(25, 201cm)처럼 버틀러 역시 매 시즌 성장을 거듭했다. 이 모두가 버틀러의 성실성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예로 버틀러의 평균 득점은 매 시즌 상승곡선을 그리며 올 시즌에는 정점을 찍고 있는 중이다.

버틀러는 해를 거듭할수록 슈팅능력이 발전, 클러치상황에서도 강한 모습을 보이는 등 시카고의 예상과는 다르게 에이스형 선수로 성장해갔다. 급기야 버틀러는 2012-2013시즌 플레이오프 당시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한 리차드 해밀턴을 대신해 주전으로 나서기도 했다. 여기에 더해 버틀러는 르브론 제임스를 상대로 끈질긴 수비를 보여주는 등 자신의 주가를 더욱 끌어올렸다.

결국, 버틀러는 이같은 활약을 바탕으로 2013-2014시즌 팀의 주전 슈팅가드로 발돋움, 67경기에서 평균 13.1득점(FG 39.7%) 4.9리바운드 2.6어시스트를 기록했다. 무엇보다 톰 티보듀 現 미네소타 팀버울브스 감독의 전폭적인 신뢰가 있어 버틀러는 무럭무럭 성장할 수 있었다. 버틀러는 2013-2014시즌 데뷔 후 처음으로 NBA 올-디펜시브 세컨드팀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리고 모두가 알다시피 2014-2015시즌 버틀러는 그해 기량발전상을 수상, 리그가 주목하는 스타의 반열에 올라서는데 성공했다.

2014-2015시즌, 버틀러는 65경기에서 평균 20득점(FG 46.2%) 5.8리바운드 3.3어시스트를 기록했다. 득점은 전년 시즌에 비해 무려 6.9점이나 상승했다. 파울유도 개수도 제임스 하든에 이어 리그 2위를 기록했다. 이런 버틀러의 상승세는 플레이오프에서도 이어졌다. 버틀러는 2014-2015시즌 플레이오프에서도 평균 22.9득점(FG 44.1%)을 기록, 팀 내 득점 1위를 기록했다. 무엇보다 시카고로선 팀의 중심이던 데릭 로즈가 좀처럼 부상악령에서 탈출하지 못하며 부진을 거듭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버틀러의 성장은 가뭄에 단비와도 같은 소식이었다.

버틀러는 기량발전상 투표에서 92개의 1위표를 획득, 총 535점을 기록했다. 2위는 골든 스테이트 워리어스의 드레이먼드 그린으로 총 200점을, 그 뒤를 189점으로 유타 재즈의 루디 고베어가 3위를 차지했다. 버틀러의 수상소식에 시카고 동료들은 진심으로 기쁨을 감추지 못했고 팀의 전설, 스카티 피펜 역시 “버틀러의 기량발전상 수상을 축하한다. 버틀러는 NBA 데뷔 후 가파른 성장세를 보여주는 선수 중 한 명이다”는 말로 버틀러의 기량발전상 수상을 축하하기도 했다.

이렇게 자신의 이름을 NBA 팬들에게 알린 버틀러는 2015-2016시즌 자신의 커리어에 또 한 번의 전환기를 맞이한다. 우선, 제한적 FA였던 버틀러는 2015년 여름 시카고와 5년간 9,500만 달러에 재계약을 체결하는데 성공했다. 버틀러의 영입을 위해 댈러스 매버릭스, LA 레이커스 등 NBA 다수의 팀들이 구애를 펼쳤지만 버틀러의 선택은 시카고 잔류였다.

버틀러로선 2014년 시카고가 제시한 4년 4,400만 달러의 재계약 안을 거절한 것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다. 2015년 시카고와의 대형 재계약은 아이제아 토마스와 함께 2011 NBA 신인드래프트 최고의 스틸픽이 버틀러였다는 점을 확인시켜줬다.(*토마스는 2011 NBA 신인드래프트 60순위로 NBA에 합류했다)

또, 정규시즌에 들어선 부상으로 부진한 로즈를 대신해 팀의 1옵션으로 발돋움, 시카고의 에이스로 거듭난 버틀러였다. 여기에 더해 정규시즌 개막을 앞두고 버틀러는 “NBA 최고의 퍼리미터 수비수는 누구인가”는 항목에서 전체 10.3%의 지지를 얻으며 3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버틀러는 2015-2016시즌 67경기에서 평균 20.9득점(FG 45.4%) 5.3리바운드 4.8어시스트를 기록했다. 기록적으론 2014-2015시즌에 비해 큰 상승폭이 없었다.

하지만 시카고 팀 내에서 버틀러의 영향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무엇보다 로즈와 버틀러 모두 외곽슛에 약점을 가지고 있다 보니 궁합이 좋지 않았다. 실제로도 두 선수가 함께 코트에 들어설 때 득·실점 마진은 마이너스를 기록할 정도였다. 그리고 이는 한 때 두 선수 간의 불화설로까지 이어졌었다. 결국, 모두가 알다시피 올 시즌 개막을 앞두고 로즈는 시카고를 떠나 뉴욕 닉스로 둥지를 옮기며 이들의 동행은 끝이 났다.

버틀러 역시 2015-2016시즌 후반기 무릎부상 등 잔부상에 시달리며 정상컨디션이 아니었다. 또, 여기에 더해 시즌 중반에는 프레드 호이버그 감독과의 불화설까지 터져 나왔다. 버틀러는 2015년 12월 20일 뉴욕과의 경기 직후 인터뷰에서 “호이버그 감독의 팀 관리가 느슨하다. 호이버그 감독은 좀 더 팀을 엄격한 분위기에서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말로 불만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지난 시즌 막판과 오프시즌, 호이버그 감독이 자신에게 불만을 품고 있는 버틀러를 트레이드 할 것이란 소문이 양산되기도 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결국 화해에 성공, 지금은 서로에게 큰 신뢰를 보내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뒤에서 언급할 내용이지만 두 사람은 최근 또 한 번의 불화설에 휘말리고 말았다.

다시, 2015-2016시즌 버틀러의 활약상으로 돌아온다면 버틀러에게 있어선 지난해 2월, 왼쪽 무릎에 부상을 당한 것이 치명적이었다. 버틀러는 부상 전까지 평균 22.4득점 5.2리바운드 4.3어시스트를 기록 중이었다. 수비에서도 버틀러는 엄청난 영향력을 선보이며 대체 불가한 자원으로 성장했다. 버틀러의 득점부문 커리어-하이 기록인 53득점(FG 50%)도 2016년 1월 15일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와 경기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날 버틀러의 기록은 53득점(FG 50%) 10리바운드 6어시스트 3스틸. 무려 25개의 자유투를 얻어 21개나 성공시키는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는 등 시카고는 버틀러의 종횡무진 대활약에 힘입어 필라델피아에 20점차 대역전극을 만들어냈다. 버틀러의 경기력은 파우 가솔, 로즈 등 주축 선수들이 부진했기에 더욱 빛났다. 소위 말하는 하드 캐리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준 경기가 아닐 수 없었다. 이때 당시 해설자들은 버틀러의 플레이가 흡사 조던과 같다며 그에게 ‘지미 조던 버틀러’라는 별명을 선사, 지금의 지미 조던이라는 별명이 탄생할 수 있었다.

또, 1월 3일에 있었던 토론토 랩터스와 경기에선 전반전 2득점으로 부진했지만 후반에만 40득점(FG 70%)을 기록, 조던이 기록한 종전 39득점을 넘어 시카고 소속 선수로 후반에 가장 많은 득점을 올린 선수에 그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버틀러의 대활약에 힘입어 시카고는 12점차의 열세를 뒤집고 2점차의 짜릿한 역전승을 거둘 수 있었다. 이렇게 버틀러는 2016년 들어 쾌조의 컨디션을 뽐내고 있었다. 덴버 너게츠전에서도 무릎부상으로 코트를 떠나기 전까지 18분 동안 19득점(FG 66.7%)을 올리고 있었다.

이후 한 달이 지난해 3월, 버틀러는 부상에 복귀했지만 이전과 같은 경기력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버틀러는 다친 무릎부상이 계속해 말썽을 부리며 3월 한 달 12경기에서 평균 15.7득점(FG 42.2%)을 기록하는데 그쳤다. 팀의 중심인 버틀러의 부진은 자연스럽게 소속팀 시카고의 부진으로 이어졌다.

버틀러의 부진은 정규리그 막판 플레이오프 진출 경쟁을 벌이던 시카고에게는 매우 치명적이었다. 결국 3월과 4월, 두 달간 12승 12패를 기록하는데 그친 시카고는 2015-2016시즌 42승 40패로 5할 승률 이상을 거뒀지만 동부 컨퍼런스 9위를 기록, 7시즌 만에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이후 시즌이 끝난 직후 시카고는 대대적인 팀 개편에 들어갔다. 우선, 앞서 언급한대로 로즈가 팀을 떠남은 물론, 가솔과 조아킴 노아 등 팀 주축선수들 대부분이 시카고를 떠났다. 개편의 칼바람은 버틀러 역시 피해가지 못했다. 시즌 막판부터 트레이드 블록에 이름을 올렸던 버틀러도 트레이드 대상 중 한 명이었다. 실제로 미네소타의 티보듀 감독은 부임과 동시에 버틀러의 영입을 간절히 원했다. 보스턴 셀틱스 역시 신인드래프트 지명권을 골자로 버틀러와의 트레이드를 시도하기도 했다.

이에 버틀러와 시카고의 동행도 끝이 날 것으로 예상됐지만 시카고는 버틀러를 지키기로 결정했다. 무엇보다 시카고에 남으려는 버틀러의 의지가 강했다. 버틀러는 지난해 오프시즌 언론과 인터뷰에서 “나는 트레이드 루머에 신경 쓰지 않는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난 시카고를 떠나서 어디에도 가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나는 이미 시카고와 지난해(2015년) 재계약을 맺었다. 이는 내가 시카고에서 오래 뛰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시카고는 내가 정말로 사랑하는 도시고 앞으로도 나는 내 이름 박힌 시카고 유니폼을 입고 뛸 것이다”라는 말을 전하기도 했다.

여기에 더해 호이버그 감독도 “버틀러의 트레이드에 대해 구단으로부터 들은 것이 없다. 무엇보다 나와 버틀러의 사이는 매우 좋다. 이미 버틀러와 많은 대화를 나누며 공감대를 만들었다. 버틀러는 우리 팀에 있어 매우 중요한 선수다. 나 역시도 이를 잘 알고 있는 바이다”라는 말로 버틀러와의 불화설을 해명함과 동시에 버틀러의 트레이드는 없을 것이라 못 박기도 했다.

결국, 시카고에 남게 된 버틀러는 어수선한 오프시즌을 뒤로 하고 2016 리우올림픽에 미국대표팀으로도 참가, 조국에 15번째 금메달을 선물하기도 했다. 버틀러는 올림픽 기간 동안 벤치멤버로써 8경기 전경기에 출장, 평균 5.6득점(FG 34.2%) 2.5리바운드 1.4어시스트를 기록했다. 또, 이번 대회에서 평균 94.4%의 자유투 성공률을 기록, 팀 내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시카고로선 버틀러가 무릎부상에서 완벽히 회복했음을 확인한 것이 가장 큰 수확이었다.



그리고 올 시즌인 2016-2017시즌, 버틀러는 17일 현재 개막 후 50경기에서 평균 24.4득점(FG 45.2%) 6.3리바운드 4.9어시스트를 기록, 리그 정상급의 득점원이자 시카고의 어엿한 에이스로 발돋움했다. 이런 활약을 바탕으로 버틀러는 2017 NBA 올스타 동부 컨퍼런스 베스트5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이번 2017 NBA 올스타전은 뉴올리언스의 홈, 스무디 킹 센터에서 열린다.

이번 팬 투표에서 버틀러는 총 691,072표를 얻어 동부 컨퍼런스 프런트부문 5위에 그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기자단 투표와 선수단 투표를 통해 순위를 뒤집었다. 이는 버틀러의 데뷔 후 첫 올스타 베스트5 선정이자 3시즌 연속 올스타 선정이기도 하다. 버틀러는 시카고 소속으로는 유일하게 올 시즌 올스타전에 초대받았다.(*지난 시즌에는 가솔과 버틀러가 시카고 소속으로 올스타전에 초대받았다)

버틀러의 올스타 베스트5 선정 소식에 호이버그 감독은 “버틀러는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는 선수다. 버틀러는 올 시즌 스스로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버틀러는 모든 것을 잘할 수 있는 선수다. 그는 이미 리그 정상급의 수비수 중 한 명이다. 더불어 올 시즌은 공격력까지 갖춘 선수로 성장하는 등 완전체를 향해 가고 있는 중이다”라는 말로 버틀러의 올스타 선정을 축하하기도 했다.

올 시즌을 앞두고 시카고는 선수단을 대대적으로 개편하는 과정에서 드웨인 웨이드, 라존 론도를 영입, 백코트진을 보강했다. 객관적인 수치만을 놓고 본다면 두 선수의 영입은 확실히 플러스요인이었다. 다만, 세 선수 모두 외곽슛이 약한 선수들이고 볼을 들고 하는 농구에 능한 선수라 이들이 얼마만큼의 시너지효과를 낼지에 대해 사람들은 계속해 물음표를 보냈다. 더욱이 버틀러의 경우 올림픽에서도 볼 없는 움직임에 미흡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외에도 시카고는 인사이드의 열세 등 오프시즌 수많은 과제들을 안고 시즌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들의 예상은 대부분 기우였다. 웨이드는 올 시즌을 앞두고 트레이닝캠프에서 3점슛과 캐치-앤 슛 연습에 매진하는 등 스페이싱 문제를 최소화하기위해 노력, 그 결과 올 시즌 자신의 커리어-하이인 평균 32.2%(평균 0.8개 성공)의 3점슛 성공률을 기록하는 등 버틀러와 동선이 겹치지 않으려 노력 중이다. 론도의 경우는 선발이 아닌 벤치에서 출전 중이다.

또, 인사이드 열세라는 말이 무색하게 코트 위의 전 선수 모두 리바운드에 참여하는 등 올 시즌 평균 리바운드 2위와 공격리바운드 1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팀도 다름 아닌 시카고다. 이런 활약을 바탕으로 17일 현재 시카고는 정규리그 27승 29패를 기록하며 동부 컨퍼런스 7위를 달리고 있다.

물론, 이런 시카고의 선전에는 버틀러의 성장도 한몫하고 있다. 올 시즌의 기록들이 말해주듯 버틀러의 공격력은 한층 더 성장했다. 빅맨들과의 2대2플레이는 물론, 올 시즌 평균 9.6개(FT 86.5%)를 얻어낼 정도로 파울을 얻어내는 능력 역시 지난 시즌에 비해 성장했다. 버틀러는 웨이드가 팀에 합류한 이후 웨이드에게 경기에 관한 부분은 물론, 경기외적인 부분들까지 조언들을 구하며 성장을 갈구하고 있다.

실제로도 올 시즌 버틀러가 +40득점을 기록한 경기만 해도 벌써 5경기에나 이른다. 범위를 넓혀 +30득점을 기록한 경기는 10경기에나 이르는 등 올 시즌 버틀러는 리그를 대표하는 득점원으로 확실하게 거듭났다. 1월 한 달에도 12경기에서 평균 24득점(FG 45.2%) 6.8리바운드 5.8어시스트를 기록하는 등 버틀러는 2월을 제외하고 올 시즌 매달 평균 +20득점을 적립했다.

그중 1월 3일에 있었던 샬럿전에선 52득점(FG 62.5%)을 기록, 시카고 구단 역사상 단일경기 최다 +50득점을 기록한 선수 2위에 그 이름을 올렸다. 버틀러는 지난 시즌에 이어 올 시즌까지 커리어 사상 두 번째로 +50득점을 기록하며 순위에 이름을 올렸다. 또, 이는 시카고 프랜차이즈 역사상 홈경기 최다 득점 3위에 해당하는 기록이었다. 1위는 모두가 알다시피 30회를 기록한 조던이다.(*1위와 2위는 모두 조던으로 각각 55득점과 53득점을 기록했다)

버틀러는 경기 직후 인터뷰에서 “나는 그저 농구를 했을 뿐이다. 내가 무엇을 하든 가장 중요한 것은 팀의 승리다”라는 말을 전하기도 했다. 이날 시카고는 웨이드와 론도가 모두 결장했지만 버틀러의 활약에 힘입어 118-111로 승리를 거뒀다.

위에서 살펴봤듯 선수 버틀러로선 올 시즌은 최고의 시즌이자 시카고에 있어선 없어선 안될 선수다. 그 예로 버틀러는 최근 발뒤꿈치 부상으로 연이어 경기에 결장했다. 그리고 버틀러의 공백은 곧바로 시카고의 경기력 부진으로 드러났다. 팀이 중심인 버틀러가 빠진 4경기에서 시카고는 1승을 기록하는데 그쳤다. 버틀러는 11일 피닉스 선즈전에서 복귀, 이날 20득점(FG 37.5%)을 올렸다. 그러나 팀은 115-97로 패배, 버틀러의 복귀에도 좀처럼 연패의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버틀러는 2일에 있었던 오클라호마시티 썬더전에서 발뒤꿈치 부상을 당했다)

이는 버틀러가 계속해 부상후유증에 시달리는 등 완벽한 몸 상태로 돌아온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15일에 있었던 토론토전에서도 버틀러는 19득점 12어시스트로 더블-더블을 기록했지만 야투성공률은 20%에 그쳤다. 그러나 팀은 버틀러의 안정적인 경기운영에 힘입어 105-94로 승리, 3연패에서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이날 버틀러는 19개의 자유투를 얻어 15개나 성공시키는 집중력을 발휘했다. 특히, 승부처인 4쿼터에만 10개의 자유투를 얻어 무려 8개나 성공시키기도 했다.

이렇게 팀 내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버틀러이기에 시카고는 이번 버틀러의 올스타전 출전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시카고의 지역지, 시카고 트리뷴이 16일 보도한 것에 따르면 현재 존 팩슨 부사장을 비롯한 시카고 구단프런트들이 올스타전 버틀러의 출전금지를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후반기를 위해 출전을 감행하기보단 치료에 전념해야한다는 것이 이들이 주장이다. 때문에 버틀러의 이날 출전여부는 좀 더 지켜봐야할 것이다. 설령, 출전하더라도 장시간 버틀러를 코트 위에서 보는 것은 불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언급한대로 선수 버틀러는 올 시즌 최고의 시즌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리더 버틀러로선 아직은 많이 부족한 시즌이 아닐 수 없다. 지난 1월 26일 버틀러는 애틀랜타 호크스와 경기 직후 공개적으로 팀원들을 비난하는 인터뷰를 남겨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웨이드 역시 버틀러의 말에 동의, 그 여파는 일파만파로 퍼져나갔다.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론도 또한 자신의 SNS를 통해 버틀러를 비난하는 어조의 문구와 케빈 가넷, 폴 피어스와 함께한 빅3의 사진을 함께 올리면서 시카고의 팀 분위기는 한순간에 냉전체제로 돌변했다.

이에 호이버그 감독은 버틀러와 웨이드, 두 선수의 행동에 아쉬움을 토로했다. 호이버그 감독은 “자신의 불만을 언론에 공개적으로 말하는 것은 용납할 수가 없다. 이는 시즌 첫 미팅 때도 선수들에게 했던 말이다. 무엇보다 문제가 있으면 나를 찾아와 얘기를 하면 된다. 얘기를 통해 서로의 불만을 이해하고 개선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또, 호이버그 감독은 1월 28일에 있었던 마이애미 히트전, 구단의 결정과는 관계없이 자신의 뜻대로 웨이드와 버틀러, 두 선수를 선발에서 제외했었다. 구단 자체적으로는 이번 일에 관련된 론도와 버틀러, 웨이드 세 선수에게 모두 벌금을 부과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날 마이애미전, 버틀러는 어딘가 모르게 경기에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며 3득점(FG 7.7%)을 올리는데 그쳤다. 때문에 버틀러는 언론과 팬들로부터 태업을 한 것이 아니냐는 질타를 받기도 했다.(*시카고는 이날 경기 100-88로 패배했다)

최근 시즌 전 약점으로 지적되던 것들이 문제점으로 드러나며 힘겨운 시즌 레이스를 펼치고 있었던 시카고이기에 팀 분위기를 망가뜨리는 버틀러의 이와 같은 행동은 더욱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버틀러와 팀 동료들은 신뢰를 회복, 플레이오프 진출을 위해 노력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웨이드가 먼저 나서 사과를 함과 동시에 스스로 팀 미팅을 주선하는 것은 물론, 자율적으로 선수들과 야간훈련을 진행하는 등 선수단이 신뢰를 회복하는데 있어 크게 공헌한 것으로 알려졌다. 버틀러 역시 선수단 분위기 회복을 위해 선배 웨이드의 조언을 잘 따랐다는 후문.

버틀러가 화려한 플레이 말고도 시카고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소탈함’이다. 그 예로 버틀러는 매년 9월이 되면 모교인 타일러 주니어 대학을 방문, 선수들에게 농구를 가르쳐주는 것은 물론, 인생선배로서도 조언을 아끼지 않는 등 스타가 됐음에도 여전히 겸손한 모습이다. 또, 가족들에게도 여전히 든든한 아들이자 형으로써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앞으로 버틀러가 조던의 향수를 완벽히 지워낸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다만, 그럼에도 시카고 팬들에게 있어 유나이티드 센터의 또 다른 영웅으로 성장하고 있는 버틀러를 지켜보는 건 조던의 화려한 퍼포먼스와는 또 다른 즐거움을 주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지미 버틀러 프로필
1989년 12월 14일생 201cm 105kg 슈팅가드/스몰포워드 마케트 대학출신
2011 NBA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30순위 시카고 불스 지명
NBA 올스타 3회 선정(2015-2017), NBA 올 디펜시브-세컨드팀 3회 선정(2014-2016) 2015 NBA 기량발전상 수상, 2016 리우올림픽 금메달

#사진=NBA 미디어센트럴, 나이키, 손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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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준민 양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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