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현의 THE COACH] ‘독종’ 위성우 감독의 선수 시절 이야기
- 여자농구 / 곽현 / 2016-07-25 00:17:00

[점프볼=곽현 기자] 우리은행 위성우(45)감독의 현역 시절 플레이를 TV로 본 기억이 있다. SBS(現KGC인삼공사)스타즈 때였다. 흰색 유니폼을 입고 있었고, 3점슛을 성공시킨 뒤 방송 화면이 그의 얼굴을 클로즈업 했던 것이 기억난다.
그는 식스맨이었다. 팬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는 선수는 아니었다. 주전들의 체력을 비축하기 위해 주로 교체로 투입됐고, 수비 역할을 부여받곤 했다. 상대팀 에이스를 전담마크하며 파울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다 간혹 오픈 찬스에서 성공시키는 슛은 팀에 알토란같은 도움이 됐다.
선수 시절 큰 주목을 받지 못 했던 그가 우리은행 감독으로 부임했을 때, 기대를 한 이는 많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지금 여자프로농구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그가 이끄는 아산 우리은행 위비 농구단은 지난 시즌까지 통합 4연패를 달성하며 여자농구를 지배하고 있다. 스타플레이어 없이 꼴찌팀을 단숨에 우승팀으로 변모시킨 그의 지도력은 매 시즌 조명 받고 있다. 하지만 감독 위성우는 많이 알려져 있지만, 선수 위성우에 대해서는 알려진 부분이 적다.
여자농구 최고의 명장이기 전에 그는 어떤 선수였을까? 선수 시절 어떠한 경험들이 지도자로서의 성공을 뒷받침한 것일까? 위성우 감독의 선수 시절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만년 식스맨? 대학 때까지 에이스로 활약!
처음 농구를 시작한 계기는 여느 농구선수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농구에 전혀 관심이 없던 그는 단순히 키가 크다는 이유로 농구부 입단 권유를 받았다고 한다.
“농구부 선생님이 한 번 해보지 않겠냐고 하셨어요. 키가 크다는 이유로요. 그 전까지는 농구라는 스포츠도 잘 몰랐죠. 처음엔 오랫동안 할 생각은 없었어요. 그 때 선생님이 꼬시기를 6학년 때 전국체전을 제주도에서 하는데, 제주도에 갈 수 있다고 했죠(웃음). 농구에 크게 흥미는 못 느꼈는데, 하면서 조금씩 재미를 붙였던 것 같아요.”
또래보다 큰 키 덕에 처음 농구를 할 때 그의 포지션은 센터였다고 한다. “중 3때 181~182cm 정도 됐어요. 고등학교 때 다치면서 1년 반을 쉬었는데, 그 때 유급을 했어요. 고등학교 3학년 올라갈 때 포워드로 포지션을 전향했죠. 그 때 1학년 후배로 추승균, 박훈근 등이 입학을 했어요.” 그는 부산중앙고를 졸업했고, 추승균 KCC 감독, 박훈근 삼성 코치가 그의 2년 후배들이다.
“학창 시절 기억은 힘든 기억밖에 없어요. 형들한테 혼나서 도망 다니고, 훈련도 힘들었어요. 새벽, 오전, 오후, 야간까지…. 그땐 수업 안 들어가고 훈련을 많이 할 때였죠. 중 1때 운동을 관두려고 했는데, 한 번은 수업에 들어가 보니까 완전히 다른 세계더라고요. 다른 얘들은 영어책을 읽고 있는데, 난 이제 ABC를 하니까요. 초등학교 때 까지만 해도 공부를 그리 못하지 않았는데, 중학교에 올라가니 차이가 많이 벌어졌더라고요. 계속 운동을 해야겠다고 느꼈죠.”
부산중앙고를 졸업한 그는 단국대로 진학했다. 단국대는 대학농구에서 중하위권 수준의 팀이다. 단국대보다 강하고 좋은 조건을 가진 대학에서도 입학 제의가 왔지만, 단국대를 선택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한다.
“고등학교 때 그래도 농구를 좀 했어요. 선배인 (오)성식이 형이 연세대를 가서 저도 좋은 학교에 가고 싶은 생각이 있었죠. 유급을 한 이유도 좋은 대학에 가고 싶은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고민이 많았어요. 포지션 전향도 했고, 키도 많이 안 커서 포지션이 어정쩡했거든요. 과연 좋은 대학에 가서 실업팀까지 갈 수 있을까 하고요. 집안 환경도 안 좋다보니 미래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죠. 그러면서 좋은 대학에 가는 것보다 내게 맞는 수준의 대학에 가는 게 낫다고 판단했어요. 실업팀에 못 가더라도 취직을 할 수 있는 곳으로요. 단국대는 체육교육과를 들어갈 수 있어서 나중에 교사를 할 수 있는 가능성도 있었거든요. 지금 생각해보면 제 인생에 있어서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친구들이 연·고대를 갈 때 부럽기는 했지만, 만약 저도 그랬다면 오늘의 나는 없었다고 생각해요. 단국대가 성적은 그리 좋지 않았지만, 인성을 중요시했고, 운동선수들에게 장학금도 줬어요. 학교에서 도움도 많이 줬고요. 동기가 7~8명이었는데, 졸업할 때는 저 혼자 남았었죠.”
프로에서는 식스맨에 수비전문 선수였지만, 대학 시절까지 그는 팀의 주공격수로 활약했다. 전국체전에서는 고려대를 상대로 40점을 넣은 적도 있다. 대학 시절 그를 지도했던 장봉군 단국대 부장은 “위 감독이 팀 에이스였다. 그 때는 공격도 잘 했다. 또 술, 담배도 안 하고 모범적인 선수였다. 정말 성실히 했다. 대학 때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고 나중에 잘 될 것이라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비주류 대학을 나왔지만 그는 실업 최고의 명문팀인 현대에 입단 제의를 받게 된다. 장 부장은 “좋은 선수였는데, 실업팀 가는 게 여의치 않았다. 그러다 현대와 연습경기를 할 기회가 생겼다. 연습경기 때 보고 현대에서 위 감독을 스카우트하게 됐다”고 전했다.

▲생존 전략 ‘전문 수비수’가 되자!
“그땐 금융팀에 가는 게 목표였어요. 한국은행이 참 가고 싶은 팀이었죠. 현대, 삼성은 연·고대 선수들을 많이 뽑았어요. 그래서 현대에 가게 됐을 때 정말 좋았어요. 어릴 적부터 동경하던 팀이었으니까요.”
위 감독은 현대에서 1년 반을 뛰고 상무에 입대하게 된다. 지금도 그렇지만 상무에 입대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모든 선수들이 상무 입대를 희망하지만 모두 받아줄 수 있는 건 아니다. 경쟁을 통해 보다 좋은 성적을 낸 선수들만이 상무에 입대할 수 있다. 그만큼 실업무대에서도 경쟁력을 발휘한 그다.
2년여의 복무를 마치고 전역할 당시 현대는 프로농구 최강팀이었다. 1997-1998시즌 이상민, 조성원, 추승균, 조니 맥도웰을 앞세워 프로농구 우승컵을 들어 올린 시기였다.
위 감독은 전역 후 곧바로 SBS로 트레이드 됐다. 프로무대에 뛰어든 그는 자신만의 생존전략이 필요했다고 전했다.
“틈새시장이라고 할까요? 외국선수가 둘이 뛰었기 때문에 설 자리가 없었어요. 국내선수 열 몇 명이 세 자리를 놓고 경쟁하던 때였죠. 그래서 생각한 게 전문 수비수였어요. 각 팀마다 상대 에이스를 막을 수 있는 수비수가 필요했던 때였죠. 공격은 외국선수들이 하니까, 상대 공격수만 죽기살기로 막자고 했죠. 공격에선 오픈 찬스가 났을 때 슛을 던져야 했어요. 죽기살기로 슛 연습만 했던 것 같아요. 얼마나 정확하게 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었죠. 지금 감독을 맡고 있지만, 현역 시절 잘 했던 것보다도 착실하게 선수 생활을 했던 게 오늘 날 제가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농구를 잘 했던 것도 아니고, 눈에 띄는 선수도 아니었으니까요.”
▲김승현을 부탁해
2001년 대구 오리온스로 이적한 그는 식스맨으로 뛰며 2001-2002시즌 통합 우승에 기여했다. 당시 오리온스는 김승현, 마르커스 힉스, 전희철, 김병철, 라이언 페리맨 등 호화 멤버를 앞세워 리그를 주름잡았다. 위성우 감독도 경기당 12분 21초를 뛰는 비중 있는 식스맨이었다. 주전들의 체력을 메워주고 상대 에이스를 괴롭히는 것이 그의 임무였다.
“프로 생활하면서 처음이자 마지막 우승이었어요. 김진 감독님이 절 데려온 것도 경기에 뛰는 것보다는 고참으로서 후배들을 잡아주는 부분에 있어 역할을 해주길 바라셨던 것 같아요.”

당시 그는 신인이자 우승의 주역이었던 김승현과 룸메이트를 했다고 한다. 김승현의 관리(?)를 위한 김진 감독의 숨은 뜻도 있었던 것 같다고 그는 떠올렸다.
“승현이를 많이 잡아주셨으면 했던 것 같아요. 제가 술을 전혀 못 하다 보니 걔를 데리고 술을 먹거나 어디 놀러가진 않을 거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웃음).”
▲절대 질 수 없었던 한 가지, ‘체력’
우리은행은 여자농구에서 훈련양이 많은 팀으로 잘 알려져 있다. 기자가 직접 취재를 하면서 지켜본 입장에서도 훈련의 강도나 양이 상당하다. 매 경기 상대를 압도할 수 있는 데에는 강한 훈련을 기반으로 한 체력과 정신력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선수들을 극한의 한계까지 몰아붙이는 위 감독은 ‘독종’이다. 선수들과 쉽게 타협하지 않는 완벽주의적인 성격 덕에 이 자리까지 팀을 만들 수 있었다. 그렇다면 선수 시절 그의 체력은 어땠을까?
“체력훈련 하면 늘 상위권이었어요. 뛰는 것만큼은 남한테 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죠. 제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었어요. 저를 많이 채찍질 했던 것 같아요. 타고난 건 아니었는데, 악으로 깡으로 뛰었죠. 그런 경험이 있기 때문에 지금 선수들에게 그런 정신력을 많이 강조하고 있어요.”
그러면서 들려준 일화 하나. SBS 시절 때의 이야기다. 전지훈련으로 설악산 대청봉을 오르는 훈련을 했는데, 위 감독이 선수단 중 1등을 했다고 한다. “말 그대로 산길인데 뛰어올라갈 수가 없는 코스에요. 뛰고 기면서 미친 듯이 올라갔는데, 1시간 20~30분 만에 완주를 했어요. 김인건 선생님이 감독이셨는데, ‘얜 뭐냐’하는 표정으로 쳐다보셨죠. 지금도 만나면 그때 얘기를 하십니다(웃음).”
남보다 뛰어나지 못 했기에 더 노력했고, 근성과 투지를 불태웠던 그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다. 그가 선수들에게 무엇보다 정신력을 강조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체력훈련으로 체력을 올린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정말 어렵고 힘든 훈련을 하면서 자신과 싸운다고 생각하는 거죠. 경기 박빙 상황에서 정말 힘들 때 누가 더 정신력을 발휘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거든요. 훈련 때 그런 고비를 넘긴 선수들이 경기 때도 고비를 넘길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프로 시절 그의 기록을 보면 꾸준히 선수생활을 해왔다는 걸 알 수 있다. 총 7시즌을 뛴 그는 정규리그 평균 13분 11초를 출전했다. 식스맨이 평균 10분 이상을 꾸준히 출전하기는 쉽지 않다. 대학 시절 날고 기었던 선수들 중에서도 프로에 적응하지 못 하고 조기 은퇴를 하는 선수들이 많기 때문이다. 2005년 은퇴 당시 그의 나이는 서른다섯이었다. 꾸준한 자기관리가 없었다면 오랫동안 선수생활을 하지 못 했을 것이다.
“후회 없는 선수 생활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제 자신에게는 부끄럽지 않다고 생각해요. 4~5명의 감독님께 배우면서 그 분들의 지도 방식을 많이 배울 수 있었죠. 지금 지도자를 하는데 있어 좋은 경험이 된 것 같습니다.”
▲여자농구, 희망의 빛을 보다
위 감독은 지난 6월 열린 올림픽 최종예선에서 대표팀 감독으로 팀을 이끌었다. 5위까지 올림픽 진출을 할 수 있는 이번 대회에서 대표팀은 안타깝게 6위를 차지했다. 비록 올림픽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여자농구는 희망의 빛을 봤다는 평가다. 이미선, 변연하, 신정자, 하은주 등 여자농구를 이끌어왔던 고참들이 대거 빠졌지만, 충분한 가능성을 확인시켰다. 이러한 주위 평가 속에서 감독인 그는 많은 고민과 걱정이 있었을 것이다.
“저나 선수들 모두 걱정이 많았죠. 연하, 미선이 등 오랫동안 언니들을 따라갔는데, 지금 선수들이 잘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들었어요. 작년 아시아선수권에 나갈 때는 운동보다 자신감을 키워주는데 포커스를 맞췄어요. 분위기를 좋게 만들었죠. 근데 막상 대회에 가보니까 위기 때 우왕좌왕 하더군요. 팀을 이끌 리더가 없었고, 저도 큰 실수를 했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이번에 고민한 게 작년과 똑같이 해선 얻을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했어요. 원 없이 해보자고 했죠. 제 스타일대로 팀을 만들었어요. 훈련기간은 작년과 비슷했는데, 여건은 더 안 좋았어요. 일찍 소집하는 바람에 선수들 몸도 안 만들어졌고요. 운동을 강하게 했죠. (박)지수한테도 얘기했어요. 너도 더 이상 어린 애가 아니라고요. 여자농구에서 널 기둥이라고 하고, 올 해 프로에서도 뛰어야 하는데, 더 이상 언니들한테 기대면 안 된다고 했죠. 나도 널 애로 생각하지 않겠다고, 마음 단단히 먹으라고 했습니다.”

한 차례 실패를 경험한 선수들은 자신감과 경험이 쌓인 모습이었다. 박지수는 이번 대회에서 세계적인 선수들에 밀리지 않으며 충분한 경쟁력을 발휘했다. 강아정은 변연하의 자리를 대신해 간판슈터로 성장했고, 김단비는 내외곽에서 팀을 이끌었다.
“작년에 망신을 당한 게 선수들에게 약이 된 것 같아요. 달라졌다고 느껴지더군요. 책임감이 생긴 것 같았어요. 올 해 다들 어렵다고 하니까 선수들에게 자극도 됐고, 오기도 생긴 것 같아요.”
대표팀은 예선 첫 승 제물로 여겨졌던 나이지리아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했지만, 벨라루스를 꺾고 기사회생, 최종 순위결정전까지 진출했다.
“사실 나이지리아는 이길 수 있을 줄 알았어요. 근데 나이지리아와 벨라루스의 경기를 보고 좌절했죠. 생각 외로 너무 잘 해서요. 나이지리아전에서 아깝게 져서 아쉬었습니다. 벨라루스한테는 당연히 안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생각으로 경기를 치르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경기장 들어가는데 선수들 눈빛에서 한 번 해보자는 의지가 보이더라고요. 잘 했던 것 같아요. 결국 5, 6위 전에서 힘없이 졌지만, 개인적으로 선수들에게 고마운 점이 많아요. 여러 지원 부분에서 부족한데, 선수들이 잘 해줘서 정말 고맙습니다.”
언니들의 은퇴로 어려울 거라 예상했던 여자농구는 젊은 선수들의 성장으로 다시 한 번 희망의 빛을 보게 했다. 선수들에게 동기부여를 잘 심어준 위성우 감독의 지도력 덕분이었다.
이제 위 감독은 프로시즌 준비에 열을 올리고 있다. 우리은행은 여수에서 전지훈련을 통해 강한 체력과 몸을 만들고 있다.
“외국선수들이 바뀌었는데, 올 해도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올 해도 빠른 농구를 하고 싶어요. 이번엔 (모니크)커리가 들어와서 종전과 또 다른 농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지켜야 하는 입장이에요. 박신자컵을 보니 다른 팀들도 점점 좋아지고 있는 것 같더군요. 좋은 외국선수들도 많이 들어왔고요. 언제나 그랬든 쉬운 경기는 없으니까요. 부딪쳐봐야죠.”

#사진 - 문복주 기자, KBL, WKB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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