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지금은 청주 KB스타즈 시대' 여자농구 판도 바꾼 안덕수 감독

매거진 / 점프볼 기자 / 2021-02-16 14:06:13

[점프볼=편집부] 남들이 쉽게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한다는 건 큰 용기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청주 KB스타즈의 안덕수 감독은 결코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다. 일본에서 선수 생활을 했으며 대학농구연맹 사무국장으로서 행정 업무를 경험했고 일본에서의 지도자 생활을 통해 현재 WKBL 명장 반열에 올랐다. 흔히 박지수를 품에 안은 ‘행운아’로서 안덕수 감독을 소개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지금의 KB스타즈를 만든 건 안덕수 감독이다. 강한 인상, 그 속에 담긴 깊은 정이 새로운 컬러의 팀 스타일을 창조해냈다. 그런 그를 점프볼 취재진이 만나 깊은 대화를 나눠봤다.

※ 본 인터뷰는 농구전문매거진 점프볼 2월호에 게재된 글이며, 인터뷰는 1월 중순에 진행됐음을 알립니다.

삼일중을 졸업한 안덕수 감독은 이후 삼일상고가 아닌 일본 오사카에 위치한 하츠시바고로 진학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농구 유학은 쉽게 찾아볼 수 없었던 일. 안덕수 감독은 남들이 선택하지 않은 길을 찾아 떠나며 새로운 농구 인생을 시작했다.

민준구_ 선수 이력이 특이한 편이다. 최근 들어 농구 유학이 조금씩 늘고 있지만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생소했던 일이 아닐까 싶다. 삼일중 졸업 이후 곧바로 일본에 간 이유는 무엇인가.
아마 내가 1세대가 아닐까 싶다. 지금은 혼혈 선수가 많은 일본에서도 그때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내가 처음이자 시작이지 않았나 싶다. 삼일중 3학년 시절, 일본 고등학교에서 나를 원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원래는 삼일상고로 진학하는 게 맞았는데 조금 엇갈렸다. 고민 끝에 결국 일본으로 가게 됐고 지금 생각해봐도 후회 없는 선택이었다.

민준구_ 당시 일본은 슬램덩크가 나온 시기가 아니었나. 농구에 대한 인기도 대단했을 것 같다.
슬램덩크의 배경이 가나가와현이다. 때마침 그 지역에서 좋은 선수들이 많이 나왔다. 나보다 2살 많은 고등학교 3학년 선수들을 모델로 한 것으로 알고 있다. 꽤 재밌는 시대였다.

김용호_ 일본에서의 생활은 어땠나. 일본어조차 제대로 모르는 시기였을 텐데 어려움이 컸을 것 같다.
학교 생활은 재밌었다. 단 한국과 다른 생활이었던 만큼 적응하는데 애를 먹기도 했다. 한국에선 운동이 주가 된다면 일본은 모든 수업을 다 듣고 나서 운동을 한다. 패턴 자체가 다르다. 아침 7시에 일어나서 1시간 정도 훈련을 한 뒤 수업을 듣는다. 6교시가 끝나면 다시 훈련을 한다. 원래 공부하던 습관이 없었기 때문에 힘들었다. 일본어도 일반 학생들이 체육 시간을 가질 때 따로 나와서 배우곤 했다. 가장 힘들었던 건 굶주림이었다. 다른 선수들은 알게 모르게 먹을 걸 챙겨와서 먹는데 나는 아무것도 모르니 배고픈 채로 훈련을 해야 했다. 여러모로 몰라서 힘들었던 시절이었다.

서호민_규슈산업대 진학 후에는 상황이 조금 나아졌나.
일단 고교 시절에 적응이 된 상태로 대학에 진학하다 보니 어느 정도 문제는 해결됐다. 전체적인 훈련량은 한국이 더 많을 수 있겠지만 주어진 시간 내에서의 집중도나 강도는 일본도 만만치 않았다. 대학 시절에도 공부는 계속해야 했다. 4년 동안 124학점을 채워야 하는데 성적이 안 좋거나 학점을 이수하지 못하면 특기생 자격이 박탈된다. 그래서 더 열심히 해야 했다. 목표 의식을 세우는 데 있어 크게 도움이 되었다고 해야 할까.

민준구_ 대학 졸업 후 한국으로 넘어와 프로 선수가 됐다. 일본에서 돌아오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일본 역시 당시는 완전한 프로 시스템이 정착한 것은 아니었다. 대신 한국은 KBL이 출범하면서 몸집을 불리기 시작한 때였다. 솔직히 말하면 어딜 가든 자신이 있었던 시절이었다. 한국에서는 중학교 때까지 수차례 우승을 경험했고 일본에서도 고교 시절에는 오사카 대표로 전국 대회에서 준우승만 5번을 차지했다. 하지만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던 이유는 있었다.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선 언젠가 돌아가야 했다. 또 KBL 출범 이후 삼성에서 영입 제의가 있었다. 한국에 대한 그리움, 병역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마음 등 여러 가지가 섞이면서 결국 한국으로 오게 됐다. 좋은 타이밍이라고 봤다. 아버지와 오랜 대화 끝에 결정했고 한국에서 한 번 잘해보자는 마음으로 왔다.

김용호_ 예상 외로 프로 커리어가 그리 길지 않았다. 내심 아쉬움도 컸을 텐데.
많이 아쉽다.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내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한국 대학을 졸업한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주변 선수들과 막역한 사이도 아니었다. 솔직히 자신은 있었다. 그러나 어깨 수술도 있었고 나보다 더 뛰어난 선수들도 많았다. 결국 일찍 은퇴하고 말았다. 그때는 많이 아쉬웠지만 지금 돌아보면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시련과 아픔이 나중에 희망과 미래가 된다는 말이 지금 돌이켜보면 맞는 것 같다.

짧은 선수 생활을 끝낸 안덕수 감독. 그의 다음 스텝은 지도자가 아닌 행정가였다. 우연한 기회에 맡게 된 대학농구연맹 사무국장. 7년의 시간을 행정가로서 보낸 그는 농구의 새로운 면을 알게 됐다. 그러나 승부사의 피는 안덕수 감독을 행정가로서 남게 하지 않았다. 결국 다시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지도자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서호민_ 은퇴 후 행보가 남다르다. 대부분 지도자의 길을 걷는 반면 대학농구연맹 사무국장으로서 행정 업무를 담당했다.
현역 은퇴 후 삼일중 코치로 잠깐 있었다. 그러다가 2001년 5월 즈음 대학농구연맹 회장이었던 정봉섭 회장님이 사무국장으로 한 번 활동해보라고 제안을 했다. 개인적으로도 존경하는 분이고 또 나를 잘 아는 분이었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힘든 일도 많았고 즐거운 일도 많았지만 무엇보다도 어린 시절부터 존경한 정봉섭 회장님부터 박한 부회장님, 최희암, 최부영 감독님 등과 대화를 나누고 일을 한다는 것 자체에 보람을 느꼈다. 사무국장으로 있었던 7년의 시간 동안 많은 인맥을 쌓기도 했다. 한국농구의 전체를 볼 수 있게 됐고 선수 시절에는 몰랐던 행정 업무의 어려움을 몸소 겪기도 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또 다른 무언가를 얻게 됐다. 내게 있어 그 시간은 굉장히 큰 의미가 있었다.

김용호_ 대학농구연맹에 몸담았던 사람으로서 현재 여자 대학농구의 발전에 대해서도 한 번은 고민해봤을 것 같다. 여자프로농구 팀의 감독이 된 지금은 그 고민이 더 깊어졌을 것 같은데.

정문철 단장님께서 이런 말을 해준 적이 있다. 여자농구가 살기 위해선 2군 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냉정하게 말하면 신인 드래프트에서 지명되는 선수들만큼 집으로 돌아가는 선수들이 많다. 좋은 선수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은 제한적이다. 2군 제도가 도입된다면 또 다른 감독, 코치가 필요할 것이고 이 역시 여자농구의 규모가 커지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공감이 간다. 일본과 직접적으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그곳에는 프로, 그리고 실업을 합쳐 30개가 넘는 팀이 존재한다. 자유 영입인 만큼 선택의 폭이 넓다. 전체적인 기반이 잘 만들어져 있다고 보면 된다. 물론 우리가 100% 그들을 따라갈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다만 어떻게든 선수들이 오랫동안 농구를 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건 모두가 공감할 것이다. 그래야만 대학 선수들도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운동할 수 있다. 단지 이야기로 끝나서는 안 될 일이다. 누군가가 선구자가 되어 힘을 내야 한다.

서호민_ 우메자키, 기무라, 정해일 감독. 이 세 사람은 본인에게 있어 평생 잊지 못할 이름이 될 것 같다.
우메자키 감독님은 대학 선수 시절부터 많이 봐왔던 분이었다.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또 프로 팀의 코치로서 나를 끌어준 분이기도 하다. 우메자키 감독님은 고려대와의 적극적인 교류는 물론 한국농구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3년 가까이 그분을 보좌하며 정말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었다. 깨닫는 부분도 있었고 실패도 겪었다. 그럼에도 든든히 날 지원해준 분이다. 기무라 감독님은 한국의 피가 섞이신 분이다. 여자대학팀에서 오래 계셨고 전국대회 우승 경험도 많은 명장이다. 우메자키 감독님이 떠나시면서 나 역시 이별의 순간이 다가왔지만 기무라 감독님이 함께하겠다고 말해주면서 샹송화장품에 남을 수 있었다. 우메자키, 기무라 감독님은 서로 다른 스타일을 지니고 있었지만 내게 많은 가르침을 준 스승이라는 점이 같다. 마지막으로 정해일 감독님은 1년 조금 넘는 기간 동안 함께했다. 어쩌면 가장 즐거운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한국농구를 일본농구에 접목, 새로운 농구를 보여줄 수 있다는 걸 증명한 때였다. KB스타즈로 오게 될 때에도 계약 기간이 남아 있어 애매한 상황이었지만 흔쾌히 보내줬다.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코치 생활을 하면서 모신 감독님들에게 정말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 그때의 시간이 지금의 자산이 된 것 같은 느낌이다.

민준구_ KB스타즈로부터 감독 제의를 받은 건 굉장히 갑작스러운 일이었다고 들었다.
정말 많이 고민했다(웃음). 우연한 기회였다. 2015-2016시즌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휴가 기간이었는데 플레이오프부터 챔피언결정전까지 현장에서 지켜보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우리은행이 우승한 후에는 축하 파티에 초대를 받기도 했다. 워낙 친한 분들이 많았고 또 그런 자리를 좋아하는 만큼 멋진 추억을 쌓고 있었다. 그러고 난 후 집에서 쉬고 있었는데 당시 KB스타즈의 황성현 사무국장한테 연락이 왔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천안 KB연수원에서 잠깐 만나게 됐다. 오랜 시간 동안 알고 지낸 사이였고 전지훈련을 오갈 때마다 서로 잘 챙겨줬기 때문에 기분 좋은 만남이었다. 그때였다. 나를 차기 감독으로 생각하고 있으니 한 번 고민해보라는 말을 들었다.

김용호_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좋은 일이지만 샹송화장품과의 계약이 남아 있었던 상황이 아니었나.
처음에는 감독보다는 코치로 영입해줬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샹송화장품과의 계약도 2년이 남아 있었고 또 감독 경험이 없었던 만큼 당장 걱정도 앞섰다. 한국여자농구에 대한 정보도 부족했다. 하지만 KB스타즈에서 나를 이미 결정했으니 잘 생각해보라는 말에 당황스러우면서도 설레는 감정을 느꼈다. 스스로에게 정말 많이 묻곤 했다.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집사람도 처음에는 한국에서 생활하는 건 긍정적이었지만 감독보다는 코치가 덜 부담스러울 거라고 말해줬다. 정말 많이 고민했다. 그러다가 결국 한 번 해보자는 생각에 결국 감독 제의에 동의했다. 정해일 감독님께도 꼭 가고 싶은 자리라고 말씀드렸더니 허락해주시더라. 대신 1년 동안 팀을 돌봐온 진경석 코치가 꼭 남아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기대 이상의 큰 도움을 주고 있어 고맙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우연한 일이었다. 그래도 여러모로 그때의 선택은 최고였지 않았나 싶다.

안덕수 감독은 호인(好人)이다. 겉모습은 카리스마 넘치는 무서운 남자로 보이지만 속정이 깊다. 코트 위에서 보여주는 강한 인상은 그때뿐이다. 코트 밖을 벗어나면 코치들에게는 성격 좋은 형, 선수들에게는 다정다감한 삼촌이 된다. 그렇기 때문일까. 개성 강한 KB스타즈가 ‘One Team’이 된 이유 역시 안덕수 감독의 리더십과 큰 연관성이 있다. 그는 그렇게 새로운 지도 스타일, 새로운 리더로서 WKBL 최강 KB스타즈를 이끌고 있다.

민준구_ 안덕수 감독의 선수단 장악, 그리고 소통 및 친화력은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 어쩌면 오랜 시간 지도자 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원동력이지 아닐까.
처음에는 선수들이 많이 싫어했을 것이다. 화도 많이 냈고 여러 부분을 꼬집었고 또 꾸짖었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선 대체로 와일드한 편이다. 처음에는 흥분하면 일본말이 자동으로 나오기도 했다. 선수들도 당황했던 기억이 남아 있다(웃음). 아무래도 지금의 내가 된 것은 큰 변화가 있었다는 것과 같다. 가장 큰 역할을 한 건 코치진이다. 중간 다리 역할을 잘해주면서 선수들과의 간격을 좁혀줬다. 선수들과의 소통이 원활해지다 보니 그들에게 배우는 것도 많았다. 내 생각만 밀고 가는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받아들이고 또 어떤 일에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그러다 보니 주위 이야기가 잘 들리더라. 시작은 불안했지만 지금에 이르러 안정적인 팀이 된 건 내가 아닌 주변 사람들이 잘해줬기 때문이다. 성적을 떠나 내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아웅다웅 지내면서도 즐겁게 시간을 쓰는 것 자체에 행복감을 느낀다. 그렇기 때문에 결과도 좋은 것 같다.

김용호_ KB스타즈 구단 창단 이래 56년 만에 사상 첫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안긴 감독으로 기록됐다. 부임 당시에 이런 역사를 쓰겠다는 욕심이 있었는지.
회장님이 KB스타즈의 우승을 바랐다. 이곳의 감독으로 부임한 만큼 결과에 책임져야 한다고 매번 생각했다. 능력이 안 되면 스스로 떠날 생각도 했다. 몸담는 시간 동안은 최선을 다하려 노력했고 한 번은 꼭 정상에 서고 싶었다. 이 모든 건 지수를 지명하기 전에 생각한 일이었다. 만약 지수를 지명하지 못했더라도 FA 영입, 트레이드를 통해 어떻게든 전력을 갖추려 노력했을 것이다.

김용호_ 운도 잘 따르는 것 같다. 박지수를 전체 1순위로 지명할 당시 14.3%라는 적은 확률을 가지고 있었다. 큰 절 퍼포먼스는 아직도 기억에 남는 명장면이다.
미리 준비한 건 아니다. (박)지수를 뽑고 싶은 건 모두가 공감하는 부분이지 않았을까. 그날을 생생히 기억한다. 지수를 지명하면서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됐다. 만약 지수를 지명하지 못했다면 지금의 안덕수가 있었을까? 또 지금의 KB스타즈가 있었을까? 지수는 대단한 선수다. WKBL 역사에 있어 최다 연속 더블더블 기록을 세웠다. 가장 대단한 점은 매 순간 발전한다는 것이다. 지수는 최고의 선수임에도 스스로 성장하는 속도를 늦추지 않고 있다. 이 정도의 선수를 지명했으니 설날이나 제사 때 하는 큰 절을 하지 않았을까? 하하.

서호민_ 박지수를 품은 KB스타즈는 단숨에 우승후보로 떠올랐다. 큰 기대도 갖고 있었지만 ‘우승 후보’라는 족쇄는 상당히 부담스럽기도 했을 텐데.
여러모로 많은 부담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부분에 치우쳐 있으면 내가 해야 할 것을 못하게 된다. 또 스스로 작아질 수 있다. 지수가 있어 당연히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는 부담을 어떻게 극복해낼 것인지를 매 순간 고민하고 생각해야 한다. 좋은 평가, 또 안 좋은 평가 모두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한 팀이 우승하기 위해선 한 명의 선수가 아닌 하나의 팀이 되어야 한다. 스타 플레이어가 있으면 그 뒤를 받쳐주는 선수들이 필요하다. 자기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을 때 이뤄지는 결과가 바로 우승이다. 지수를 데리고 있으면서 많은 욕을 먹은 것도 사실이지만 그저 내 몫일 뿐이다. 지금 있는 이 자리에서 더 열심히 하면 모든 게 괜찮다는 생각만이 가득하다.

민준구_ 박지수 이외에 첫 우승의 큰 공헌을 한 선수들을 돌이켜보자면?
이제는 코치가 된 (정)미란이. 그리고 주장 (강)아정이. 마지막으로 내가 원했던 (염)윤아가 정말 대단한 역할을 해주고 있다. 미란이는 내가 감독으로 부임하자마자 주장 자리를 내줘야 했다. 기분이 나쁠 수도 있었지만 흔쾌히 본인의 역할을 잘 찾아줬다. 아정이는 에이스에서 이제는 스스로 희생할 줄 아는 선수가 됐다. 또 훈련 때나 경기 때 함께하면 선수들의 눈빛을 달라지게 할 수 있는 존재다. 윤아는 우승을 위한 마지막 퍼즐이었다. (심)성영이가 혼자 큰 부담을 안고 있었던 만큼 덜어줄 존재가 필요했고 또 아정이의 옆을 지켜줄 또 한 명의 베테랑이 절실했다. 윤아는 리더십, 그리고 코트 밸런스, 궂은일 등 다양한 부분을 해줄 수 있는 선수다. 이 세 사람이 있기에 첫 우승을 해낼 수 있었다. 내가 해야 할 역할을 선수들이 도와주니 이보다 더 기분이 좋을 수 있을까.

서호민_ 그렇다면 점 찍어둔 KB스타즈의 미래는 누구인가.
우연히 내가 생각한 우리 팀의 미래 3인방이 한 사진에 담겨 있는 걸 본 적이 있다. (허)예은이, (김)민정이, 그리고 지수가 우리 팀의 미래라고 할 수 있다. 이 자체로 이야기가 끝난 게 아닌가 싶다. 성영이와 아정이, 그리고 윤아가 있어 큰 문제 없이 성장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우리는 베테랑, 그리고 현재, 미래가 함께 있는 팀이다. 이상적인 밸런스라고 생각한다.

서호민_ 평소 KBL을 즐겨 본다고 들었다.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고 보는지 궁금하다.
가장 주의 깊게 살펴보는 건 2대2 플레이다. KBL은 외국선수가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처를 어떻게 하는지 궁금했다. 또 최근에는 DB 경기를 즐겨 봤다. 김종규와 외국선수가 어떤 식으로 하이-로우 플레이를 하는지 지켜봤다. 워낙 가깝게 지내는 형님들이 KBL에서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강을준 감독님, 그리고 이상범 감독님에게는 여러모로 배울 점이 많다. 의지하고 싶은 형님들이라고 해야 할까. 또 KCC 강양택 코치님은 내가 우승했을 때 가장 먼저 달려와 준 사람이다. 그분들에게 조언을 듣고 힘을 얻으며 생각을 빌리고 있다. 유도훈 감독님은 볼 때마다 항상 손을 잡자고 한다(웃음). 최근에 코로나19로 인해 만날 일이 적었는데 그래서인지 순위가 조금 떨어진 것 같다. 하하.

민준구_ 올 시즌 정규리그 통산 100승을 달성했다. 100승 달성 시기가 솔직하게 예상보다 빨랐나 아니면 늦었나.
빠르지도, 그렇다고 느리지도 않았다. 내가 몇 승을 해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어떤 경기를 했는지, 그리고 한 시즌에 어느 정도의 성적을 내는지가 중요하다.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얻은 승리가 아닌 선수들이 얻은 승리라는 점이다.

서호민_ 최다승 기록의 주인인 위성우 감독은 200승을 넘어섰다. 개인적으로는 여자농구 감독으로서 몇 승을 목표로 하는지.
개인적인 욕심으로는 많은 승수를 쌓고 싶다. 그러나 미래만 바라보면 내가 해야 할 일들을 놓치게 된다. 200승? 아니 300승도 좋다. 때가 찾아와 이루는 결과라면 말이다. 하지만 내게는 눈앞에 놓인 경기에서 승리하는 게 더 의미 있다. 만약 역사를 쓰게 되는 순간이 온다면 뒤를 돌아봤을 때 더 보람을 느끼게 될 것 같다. 그게 더 감동적이지 않을까.

김용호_ 나름 굵직한 지도자 생활을 보내고 있다. KB스타즈에서, 그리고 지도자로서 미래에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있을까.
정말 보람찬 순간도 있었고 새벽까지 술을 먹어도 스트레스가 해소되지 않았던 때도 있었다. 매 순간 힘들다고 하면서 결국 오랜 시간 감독으로서 지내온 것 같다. KB스타즈에서 최소 1~2회 우승을 더 해보고 싶은 건 분명한 사실이다. 감독으로서 바라는 목표다. 더 나아가서 한국여자농구의 발전을 위해 뛰고 싶다. 농구, 그리고 체육 쪽에서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농구를 위해 희생하는 사람, 그리고 스포츠 교류가 활발해질 수 있도록 체육인들을 대변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미래의 목표다. 아직은 그려지지 않은 상황이지만 천천히 나만의 그림을 완성하고 싶다.

# 인터뷰_ 민준구, 김용호, 서호민 기자

# 정리_ 민준구 기자

#사진_문복주 기자

 

[ⓒ 점프볼.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후원합니다.

많이 본 기사

오늘의 이슈

포토뉴스

JUMPBALL S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