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여자농구가 필요로 하는 그 사람, 김일구 WKBL 홍보마케팅 팀장

매거진 / 김용호 기자 / 2021-02-21 13:58:55

[점프볼=김용호 기자] 농구전문잡지 점프볼이 2021년 창간 21주년을 맞았다. 점프볼은 오랜 세월 한국농구와 함께하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농구매거진으로 자리 잡았다. 이에 본지는 창간 21주년을 기념하는 기획 시리즈로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하게 농구 발전을 뒷받침해온 주인공을 소개하는 시간을 만들었다. 두 번째로 찾아온 인물은 한국여자농구연맹(WKBL)의 김일구 홍보마케팅팀장이다. 우연찮게 찾아온 기회에 WKBL을 첫 직장으로 선택한 그는 어느새 이 조직에서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 됐다. 여자농구가 필요로 했던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 온 힘을 쏟았던 김일구 팀장. 그가 그리고 있는 여자농구의 미래는 어떨까.

 

※본 인터뷰 기사는 점프볼 2월 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농구에 빠져 살았던 이의 숙명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다. 김일구 팀장은 WKBL에서 그 두 번째 변화를 앞에 두고 있다. 한 조직에서 2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몸담는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단순히 시간이 문제가 아니라 그가 여자농구에 그만큼 필요한 존재였기에 가능했던 일 아닐까. 그런데 김일구 팀장의 어릴 적 꿈은 프로스포츠 연맹 직원이 아니었다.

Q.반갑습니다. WKBL에서 보낸 시간이 꽤 오래됐네요. 처음 입사할 때 이렇게 오랜 시간 근무할 거라고 예상했나요.

이렇게까지 오래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죠. 제가 2003년 10월에 첫 출근을 했어요. 처음에는 많은 배움이 필요할거란 생각에 유학도 생각을 했는데, 이곳에서 열심히 일을 배우고 결혼도 하게 되면서 마음도 정착을 하게 됐죠. 사실 제가 입사했을 때만 해도 직원이 그리 많지 않았어요. 여러 위기도 있었는데, 조금씩 인원도 늘어나면서 저 역시 이 회사를 계속 다닐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뭔가 제 숙명이지 않을까란 생각을 하게 됐죠.

Q. WKBL에 입사를 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고등학교 때 장래 희망이 체육교사여서 체육교육과로 진학했는데, 공부를 하다 보니 제 적성과는 조금 맞지 않더라고요. 대학 4학년이 되자 일반 회사 취직을 생각했어요. 유통회사나 대기업 쪽으로 취직을 준비중이였죠. 그런데 주변에서 ‘네가 가장 좋아하는 게 농구고, 잘할 수 있는 것도 농구인데 굳이 왜 다른 분야를 가느냐’라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고민을 많이 하고 있던 그때 마침 WKBL에서 직원을 모집했던 거예요. 정말 초고속으로 입사를 진행하게 되었죠. 일요일에 서류를 넣고, 월요일에 면접을 봤는데, 화요일에 첫 출근을 했었던거에요(웃음).주변에서 그랬을 정도면 원래 농구를 많이 좋아했나봐요. 제가 초등학생일 때는 주말마다 TV에 농구대잔치가 나왔으니까요. 실제로 경기장을 간 적도 많았고요. 집안에서 테니스 공을 가지고 농구를 하기 시작해서, 학교에 농구 골대가 생겼을 때는 더 많이 뛰어다녔죠. 중, 고등학교는 물론이고 대학에서도 4년 내내 교내 농구대회를 주최하는 장학생이었어요. 그때부터 심판이나 대회운영 같은 부분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배웠던거죠. 

Q. WKBL에 들어와서 햇수로만 따지면 벌써 19년째에요. WKBL 한 곳에서 일했지만 다양한 포지션을 경험했을 것 같은데요.
입사 첫 해에는 경기운영팀에서 근무를 했어요. 당시에는 모든 기록들을 수기로 남겼어요. 기록 시스템이 빈약했죠. 중간 중간 누락된 기록들도 많아서 매일같이 그런걸 찾는 게 일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초반에는 기록프로그램을 안정화시키는 데에 주력했죠. 덕분에 문자중계 시스템을 홈페이지에 만들어서 정보를 제공하는 일을 하기도 했어요. 그리고 2005년에 선배 한 분이 떠나게 되면서 기획팀으로 이동했어요. 연맹의 주요 행사나 사업을 유치하는 일을 했죠. 국가대표팀과 관련된 업무도 2004년부터 계속 담당하는 중이에요. 그러다 2012년에 지금의 홍보마케팅팀으로 오게 된 겁니다.

Q. 여러 팀에서 근무하며 가장 잘 맞는 역할도 있었나요.
딱히 어떤 일이 더 잘 맞았다고 할 건 없었어요. 그저 여자농구의 미래를 위해서 제가 어떤 일들을 해야 하는지 많이 고민했죠. 부족한 모습도 있었고, 결국 여자농구에 침체기가 왔는데 이런 상황을 보면 더 열심히 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라는 후회도 들어요. 앞으로 해야 할 게 더 많은거죠.

Q.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면서 바라본 여자농구에 대한 이미지는 어땠나요.
입사 때부터 상대적으로 비인기종목이라고 해서 아쉬웠던 건 없었어요. 규모는 작지만, 오히려 할 수 있는 게 더 많다고 생각했죠. 의사결정 속도도 빨랐고, 직원들이 각자 맡아야 할 몫이 많은 만큼 성취감도 크게 느꼈어요. 집에 가기 싫을 정도로 일을 재미있게 해왔던 것 같아요. TV에서만 보던 선수들과 지도자들을 경기장에서 매일 보게 되면서 왠지 모르게 어깨가 올라가기도 했고요. 전주원, 박정은 같은 스타들을 보면서 마치 연예인들을 보는 것 같았죠. 어마어마한 실력의 선수들을 현장에서 직접 보는 게 기쁨이었죠.

Q. 오랜 시간 그런 기쁨을 느꼈을 텐데 가장 뿌듯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대표팀과 관련된 일이 조금 많았던 것 같아요.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을 위해 대한민국농구협회와 손을 잡고 국가대표운영위원회를 구성했던 적이 있었어요. 그때 모두 힘을 모아 훈련 계획도 잡고, 예산도 최대한 배정해서 적극적인 투자를 했거든요. 제가 그 위원회의 한 담당자로서 직접 회의도 많이 하고, 예산과 관련해 총무도 맡았어요. 마침 체코에 지인이 있어서 그쪽 프로팀과 연습경기를 할 수 있도록 전지훈련도 갔고요. 결국 금메달까지 땄잖아요. 정말 뿌듯했던 일이었죠. 또, 연맹 차원에서는 지난 시즌까지 진행했던 위시코트 캠페인이 기억에 많이 남아요. 소외계층에 농구 코트를 기증하는 일이었는데, 많이 힘들기도 했지만 3년 동안 꾸준히 진행할 수 있었기에 좋은 일을 했다고 생각해요.

Q. 반대로 아쉽거나 힘들었던 순간도 있었겠죠.
2012년에 연맹 집행부가 잠시 유보상태였던 적이 있었어요. 당시 신세계 쿨캣도 해체를 발표하면서 새로운 집행부가 오기까지 몇 달 동안 멈춰있었죠. 재정적으로도 힘들고, 갈 곳을 잃었던 상황이었는데 그때가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구단들의 걱정도 많았고요. 두 번째로는 오랜 근무를 하다 보니 함께하던 동료들이 떠날 때가 조금 힘들었어요. 지금은 서울 삼성에 계시는 최진영 사무국장님이 제가 유일하게 믿고 따르던 선배였어요. 그 선배가 떠난 이후로 연차도 낮은 제가 혼자 해야 할 일이 많아져 당황스럽기도 했는데, 선배와 얘기했던 것들을 지키기 위해서 더욱 책임감 있게 버티려고 했던 기억이 나요. 개인적으로 많이 아꼈던 후배들이 떠나기도 했고요. 최근으로 보자면 코로나19를 겪어서 힘들기도 했어요. 리그가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가 있었으니까요.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어했던 것 같기도 해요.

다시 세계로 뻗어나갈 여자농구를 그리며

한국여자농구는 최근 세대교체를 통해 부활을 도모하고 있다.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19 사태에 지난해에 열렸어야 할 도쿄올림픽이 연기된 상태지만, 이미 한국여자농구는 12년 만에 올림픽 본선행 티켓을 거머쥐면서 반등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다시 세계에 한국여자농구를 알릴 날을 기다리며 김일구 팀장은 긴 시간을 오롯이 견뎌냈다. 부흥기와 침체기를 모두 겪은 그는 앞으로 WKBL, 더 나아가 여자농구계에서 어떤 존재가 되어갈까.

Q. 여자농구의 부흥기와 침체기를 모두 겪어보셨잖아요. 침체기인 지금 시점에서 가장 아쉬운 점이 있다면 어떤 부분일까요.
사실 아쉽다는 표현이 맞을지는 모르겠어요. 제가 처음 WKBL에 입사했을 때 봤던 선수들은 정말 대단했다고 많이 느꼈던 기억이 나요. 국제대회 성적도 말해주고요. 그때는 중국에게 두 번 지면, 우리가 다시 두 번을 이기기도 하고, 일본과 대만을 상대로는 쉬어가는 페이지라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으니까요. 냉정하게 지금은 그렇지 못하잖아요. 예전에 여자농구가 열리는 경기장을 가면 전주원, 박정은, 이미선, 변연하 같은 스타 선수들을 항상 쫓아다니던 팬들이 있었어요. 경기만 있으면 꼭 오시는 분들이었는데 이제는 보이지 않더라고요. 그런 풍경을 보면 새로운 스타가 더 많이 나와야하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요. 물론 선수들은 잘하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연맹이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껴요.

Q. 그렇다면 스타 발굴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뭔가 따로 발굴을 한다기보다는 연맹 차원에서 선수들의 의미 있는 기록들을 많이 찾아보는 중이에요. 지난 시즌까지는 국내선수들이 외국선수들에게 가려져 출전 기회가 적어지고, 자연스럽게 공헌도나 개인기록이 많이 떨어지는 구조였잖아요. 올 시즌에는 잠정적으로 외국선수 제도가 폐지되면서 박지수나 박지현같은 걸출한 유망주들이 연일 개인 기록을 경신하고 있죠. 리그 차원의 새로운 기록도 많이 나오고 있고요. 이럴 때 연맹에서 선수들이 더 자부심을 갖고 뛸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유튜브 채널 활용에도 많은 신경을 쓰고 있는거고요. 아직 만족할 수준은 아니지만, 꾸준히 컨텐츠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실제로 재밌는 컨텐츠들도 많이 생성돼서 이제 선수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줘요. 연맹은 선수들이 자기 홍보를 잘 할 수있게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Q. 많은 노력이 돋보이네요. 그렇다면 앞으로 어떤 말을 들었을 때, 여자농구의 인기가 다시 살아났다고 실감할 것 같은지요.
‘여자농구는 꼭 보러가야지’라는 말 아닐까요. 많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여자농구가 몇 시에 어느 체육관에서 하는지 알게 된다면 그게 바로 인기가 살아났다는 증거겠죠. 팬들이 능동적으로 현장에 와서 여자농구를 보려하는 상황이 온다면 실감이 날 것 같아요. 지금도 그런 상황을 계속 상상하면서 일을 하고 있어요. 진심으로 여자농구 인기의 부활을 원하시는 만큼 그리운 장면도 있을 것 같아요. 2005년쯤 여름리그, 겨울리그로 분리해서 경기를 할 때 장충체육관에서 중립경기를 했어요. 챔피언결정전 3경기를 그곳에서 열었는데, 홈팀이 있는 체육관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관중들이 정말 많이 들어왔어요. 우리은행, 신한은행, 금호생명같이 강팀들의 인기가 최고였죠. 그런 들이 장충체육관에서 경기를 하면 관중석이 꽉 찼거든요. 만원 관중들이 응원전을 펼치던 그 장면은 잊을 수가 없어요. 그런 풍경을 위해 대회를 준비해놓고 관중들을 기다리는 설렘이 있었어요. 그런 날이 꼭 왔으면 좋겠습니다.

Q. WKBL이 첫 직장인 건데 이곳이 마지막 직장이 될 수도 있을까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는데요(웃음). 그동안은 어떤 책임감에 제가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살아왔던 것 같아요. 지금은 유능한 직원들도 많이 들어왔고, 동료들이 각자 자기 역할을 잘 하고 있죠. 이제는 이 사람들을 믿고 함께 걸어가는 게 가장 좋은 방향이라고 생각을 해요. 멀리가려며 함께 가라는 말이 있더라고요. 요즘 가장 많이 되뇌는 말이에요. 더 많은 직원들이 지금처럼 노력한다면 우리 여자농구의 미래도 밝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후배들의 앞길을 막지 않는 선배가 되면서 여자농구가 더 알려질 수 있도록 하는 일을 더 해야죠. WKBL이 마지막 직장일지에 대해서는 생각하고 있지 않지만, 이 조직이 저를 필요로 한다면 그날까지는 계속 열심히 일 해야죠.

Q. 언젠가는 WKBL을 떠나게 될 텐데, 그 전에 꼭 남기고 싶은 추억이나 목표가 있다면요.
제가 혼자서 이룰 수 있는 일은 아닌데, 과거에 W챔피언십이라고 한일 프로최강전을 홈앤어웨이 방식으로 했어요. 한국이 계속 이기다보니 자연스럽게 대회가 없어졌는데, 이제는 일본 여자농구도 수준이 많이 올라왔잖아요. 당장은 코로나19 때문에 힘들겠지만, 그런 교류가 다시 시작됐으면 해요. 또, 작년부터는 실무자들 사이에서 KBL과 컨텐츠 교류를 하자는 의견도 많이 나왔어요. BNK가 울산 현대모비스의 홈구장에서 제2연고지 경기를 추진하기도 했잖아요. 더 나아가 배구처럼 올스타전을 남녀가 같이 개최한다던가 파이를 키울 수 있는 기회가 분명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면 농구계에 더 좋은 시너지가 나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는 대표팀이 영광의 순간을 다시 한 번 누렸으면 해요. 과거 LA올림픽 은메달, 시드니올림픽 4강 성적을 올렸는데, 그만한 결과를 낼 구성원들은 준비가 된 것 같아요. 한국여자농구가 세계 4강에 드는 날이 꼭 다시 왔으면 좋겠어요.

Q. 마지막 질문입니다. 먼 훗날 여자농구계가 ‘김일구 팀장’을 어떻게 기억해주면 좋을까요.
제가 입사 첫 해부터 ‘팀장’이라는 직함을 달았어요. 연맹 내부에서는 신입사원이었지만, 입사와 동시에 연맹을 대표해 대외적인 일을 많이해야 했기에 제가 당차게 부탁드렸던 거죠. 그래서 그런지 예전 선수들이 ‘일구 오빠’라고 부르기도 하면서도 결국 가장 많이 듣는 말은 ‘김팀
장’이었어요. 대표팀에서는 ‘김총무’였고요. 이런 말이 아무래도 가장 듣기 좋은 말이 아닐까 해요. 저를 김팀장, 김총무라고 부르면서 찾는다는 건 제가 그만큼 필요하기 때문이잖아요. 예전에 태국에 아시아선수권대회를 하러 갔을 때인데, 어느 날 선수들 표정이 안 좋아보였어요. 이유를 물으니 한국팀의 연습시간은 1시간인데, 일본은 2시간이었던 거죠. 그때 제가 대회본부에 강하게 어필해서 일본보다 더 좋은 환경에서 2시간을 훈련할 수 있게 협조를 받았던 기억이 나요. 그렇게 제가 여자농구에 도움을 주면서 선수들은 물론 많은 구성원들과 가까워질 수 있었죠. 이런 느낌이 좋은 것 같아요. 누군가 저에게 도움을 구하면서, 더 좋은 방향을 도모하려고 할 때 부르는 김팀장, 김총무라는 말이요. 그런 반가운 존재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프로필김일구 팀장은...

1977년 12월 2일 출생이다. 2003년 10월에 WKBL에 입사해 지금까지 한눈 팔지않고 인생의 최대 과업인 여자농구 발전에 헌신해왔다. 1999년에 출범한 WKBL 내부에서 여자프로농구 업무와 변천사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산증인이기도 하다. 경기운영팀, 기획팀, 홍보마케팅팀 등 위치를 가리지 않고 여자농구 부흥을 위해 에너지를 쏟고 있다.

#사진_문복주 기자

점프볼 / 김용호 기자 kk2539@jumpba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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