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바언박싱]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샌안토니오

매거진 / 서호민 기자 / 2020-09-27 11:25:22

[점프볼=서호민 기자] '언박싱(unboxing)'은 말 그대로 '상자를 열어' 구매한 제품의 개봉 과정을 보여주는 것을 말합니다. 언박싱 과정을 지켜보면서 어떤 제품이 나올지 기대하고 궁금증을 해소하는 재미를 얻습니다. 그래서 준비해봤습니다. 미국프로농구(NBA)의 한 달을 가장 뜨겁게 달굴, 혹은 기대를 모을 키워드와 이슈를 소개합니다.

※ 본 인터뷰는 농구전문매거진 점프볼 8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샌안토니오 사전에 위기란 없다
명가(名家) 샌안토니오 스퍼스는 지난 7월 말 재개된 NBA 2019-2020시즌에서 피닉스 선즈와 함께 가장 큰 반전을 이뤄낸 팀이 아닐까 싶습니다. 비록 아쉽게도 23시즌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이라는 대위업을 달성하는 데 실패했지만 샌안토니오는 재개 시즌을 통해 나름 의미있는 성과를 이뤄냈습니다. 사실 재개 시즌이 시작될 무렵만 해도 샌안토니오를 향한 전망은 그리 낙관적이지 못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주축 선수들의 부상 이탈 때문이었는데요. 우선 프런트 코트 에이스 라마커스 알드리지(어깨)가 올랜도행을 포기한 데 이어 핵심 식스맨 트레이 라일스(맹장염)까지 잃으며 빅맨진에 큰 공백이 생기게 됐습니다. 팀 사정상 골밑에서 활약해줄 재원이 마땅치 않은 탓에 시즌 재개 전 연습경기에서는 더마 드로잔을 파워포워드로 기용하는 촌극(?)까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이 때문에 많은 이들은 올해야 말로 지난 1997-1998시즌부터 22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 기록을 이어왔던 샌안토니오에 가장 큰 위기가 찾아왔다며 위기론을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걱정은 ‘샌안토니오 걱정’이라 했던가요. 샌안토니오는 이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삼았습니다. 그렉 포포비치 감독의 노련함이 또 한번 빛을 발하게 된 것입니다. 빅맨진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궁리하던 포포비치 감독은 나름대로 승부수를 내놓았습니다. 바로 오래 전부터 종종 사용했던 스몰라인업 카드를 다시 꺼내든 것입니다. 그런데 그냥 스몰라인업이 아니었습니다. 가드 4명과 빅맨 1명을 내보내는 극단적인 스몰라인업이었는데요. 어차피 안 되는 빅볼을 버리고, 확실한 스몰라인업을 통해 기동력을 살리자는 포포비치 감독의 심산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는 계획대로 실행됐습니다. 샌안토니오는 이러한 스몰라인업을 앞세워 재개 시즌 8경기에서 5승 3패로 기대 이상의 성적을 남겼습니다. 포포비치 감독 마저도 이 정도로 잘할 줄은 몰랐던 것일까요? 그는 지난 8월 12일 휴스턴전 승리 후 인터뷰에서 "전부 다 약물 검사를 해봐야 하는 것 아니냐"며 자조 섞인 농담을 던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포포비치 감독이 재개 시즌에서 어떤 라인업과 전략을 통해 스몰라인업의 완성을 이끌어냈는지 그 면면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재개 시즌 샌안토니오의 주전 라인업은 다음과도 같습니다.

샌안토니오 주전 라인업
데릭 화이트 / 193cm
디욘테 머레이 / 193cm
로니 워커 / 196cm
더마 드로잔 / 198cm
야콥 퍼들 / 216cm

216cm의 퍼들을 제외하면 모두 가드로 이루어진 라인업입니다. 신장이 가장 큰 퍼들이 상대 센터들을 막고, 나머지 선수들은 무한 스위칭을 통해 상대 수비에 교란을 유발하는 구조입니다. 휴스턴 마이크 댄토니 감독이 추구하는 극단적인 스몰라인업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또 공격 시에는 기존의 다운 템포 기반의 농구를 과감히 버리고, 트랜지션과 모션 오펜스 전략을 극대화했습니다. 이정도면 팀 컬러 자체가 완전히 바뀌었다고 해도 무방한데요. 이는 기록으로도 확연히 드러납니다. 


SAS 영건들에게 기회의 땅이 된 올랜도 버블
샌안토니오 영건들에겐 올랜도 버블이 기회의 땅이 됐습니다. 팀 성적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껏 뛸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인데요. 대표적으로 화이트, 머레이, 로니 워커가 이번 재개 시즌을 통해 실력이 한 단계 스텝업했습니다. 특히 재개 시즌 드로잔에 이어 팀 내 득점 2위(평균 18.9점)에 오른 화이트의 성장세가 돋보였습니다. 화이트가 팀 내 득점 2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슈팅에서 큰 발전을 이뤄낸 덕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간 슈팅에서 다소 약점을 보였던 화이트는 재개 시즌 들어 슈팅 정확도를 대폭 끌어올렸습니다. 재개 시즌 화이트가 올린 전체 득점 중 무려 50.9%가 3점 슛이고, 리그 재개 전 평균 35.6%에 그쳤던 3점슛 성공률도 평균 39.3%로 껑충 뛰어올랐습니다. 캐치 앤 슛은 물론, 동료들의 오프 더 스크린을 활용해 슈팅 찬스를 창출하는 능력도 눈에 띄게 발전한 모습이었습니다. (*재개 시즌 화이트는 오펜시브 레이팅(ORtg) 118.6을 기록)

이런 화이트의 진가는 수비에서 더욱 빛납니다. 193cm 신장에 2m에 이르는 윙스팬을 보유한 화이트는 한 경기에서 4개 이상의 블록을 기록했을 정도로 세로 수비에 강점을 두고 있습니다. 올 시즌에도 경기당 평균 0.9개의 블록슛을 기록, 가드 중에서 가장 월등한 블록 능력을 자랑했습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화이트는 수비 시 몸을 잘 활용하는 선수이기도 합니다. 상대의 돌파 경로를 간파한 뒤 스틸을 노리는가 하면 차징 파울을 유도해내기도 합니다. 재개 시즌에서도 화이트는 11개의 공격자 파울을 유도, 전체 선수 가운데 가장 많은 공격자 파울을 얻어냈습니다. 이런 화이트의 공수 활약은 그렉 포포비치 감독을 흐뭇하게 만들었습니다. 무엇보다 포포비치 감독은 화이트가 3점슛을 장착한 것에 대해 큰 만족감을 드러냈다고 합니다. 포포비치 감독은 “3점슛은 이제 리그의 트렌드다. 3점을 시도하지 않으면 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정도로 3점슛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다”면서 “화이트는 슛에 대한 자신감을 얻은 것 같다. 스페이싱을 넓게 가져가며 팀에 기여하고 있다. 이런 역할은 아주 중요하다”는 말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또 카와이 레너드 이후 좀처럼 포워드 유망주 수집에 어려움을 겪었던 샌안토니오는 재개 시즌에서 켈든 존슨(20, 196cm)이라는 원석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2019 드래프트 전체 29순위로 샌안토니오에 지명된 존슨은 운동능력이 뛰어난 포워드 유망주입니다.

 

어쩌면 이번 버블 시즌 최대 수혜자 중 한명이 아닐까 싶은데요. 리그재개 전만 해도 존슨은 사실상 가비지 타임 때나 나오는 선수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재개 시즌을 앞두고 알드리지를 비롯한 주축 선수들의 줄 부상이 이어지면서 포포비치 감독은 강제적(?) 스몰 라인업 운영을 통해 경기를 치를 수밖에 없었고 여기서 존슨이 가장 많은 중용을 받게 됩니다. 존슨의 활약은 공수에 걸쳐 정말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운동능력이 좋고 무엇보다 상대 빅맨과의 몸싸움을 두려워하지 않는 존슨은 주로 돌파를 통해 확률 높은 득점을 올렸고, 여기에 외곽에서 공 없는 움직임에 이은 캐치 앤 샷까지 다양한 형태의 공격 루트를 선보였습니다. 특히 재개 시즌이 종료되기 직전 2경기에선 연속 24득점을 기록, 자신의 가치를 확실하게 어필했습니다. 이와 함께 존슨은 수비에서도 스몰라인업 체제에서 2번부터 4번까지 다양한 포지션을 커버하는 등 로테이션 운영에 쏠쏠한 보탬이 돼 줬습니다. 이와 같이 재개 시즌 깜짝 활약을 선보인 존슨을 두고 현지에선 ‘스틸픽’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기대감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선수들은 알드리지와 드로잔의 뒤를 이을 그리고 곧 찾아올 포스트 포포비치 감독 시대를 책임질 영건들입니다. 이렇게 원석들을 하나 하나 모으고 있는 샌안토니오가 향후 이들을 어떤 보석으로 탈바꿈시킬지 더욱 기대가 됩니다.


갈림길에 선 샌안토니오 스퍼스
이처럼 버블에서 8경기는 향후 샌안토니오의 미래를 기대하도록 만들기 충분했습니다. 재개 시즌 내내 ‘Development(성장)’이란 단어를 외치며 어린 선수들의 성장에 초점을 둔 포포비치 감독 역시 “어린 선수들이 이번 버블 시즌을 통해 성장해준 것에 대해 매우 기쁘게 생각하고 있다. 우리는 이들과 함께 내년 시즌부터 다시 힘차게 달릴 것이다”라며 의지를 드러냈습니
다. 다만 그에 앞서 해결해야할 문제들 역시 산적해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우선 팀의 중심인 알드리지와 드로잔의 거취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두 선수 모두 계약 만료가 임박한 가운데 드로잔의 경우, 이번 시즌 종료 후 드로잔은 플레이어 옵션(약 2,700만 달러)을 가진 채 FA(자유계약선수) 시장에 나올 수 있습니다. 드로잔은 이번 시즌 평균 22.1득점(FG 53.1%) 5.5리바운드 5.6어시스트로 여전히 리그 정상급 득점원으로 활약중이지만, 팀의 명운을 짊어지기엔 한계점이 뚜렷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만약 드로잔이 FA 시장에 풀린다 하더라도 그를 영입할 팀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입니다. 일단 드로잔 본인이 자신의 거취에 관한 질문에 “지금 상황에서는 이와 관련해 어떤 생각도 하고 있지 않다”며 함구하고 있습니다. 드로잔이 과연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될지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알드리지의 거취 역시 관심사입니다. 알드리지는 시즌 내내 드로잔과 함께 트레이드 루머에 시달렸는데요. 가장 큰 이유는 나이 때문이었습니다. 알드리지는 다가오는 2020-2021시즌 계약이 만료됩니다. 계약 만료 시점이 되면 그의 나이도 서른 여섯. 갑작스레 기량 저하가 찾아와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나이입니다. 현지에선 시즌 중반부터 친정팀 포틀랜드 트레일 블레이저스를 비롯해 여러 팀이 알드리지 트레이드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또 최근에는 시즌 종료 후 센터진이 부족한 보스턴 셀틱스가 고든 헤이워드, 세미 오젤레예를 골자로 한 트레이드로 빅맨보강에 나설 것이란 루머가 돌기도 했습니다.

이 밖에도 샌안토니오는 마르코 벨리넬리(비제한적 FA), 브린 포브스(비제한적 FA), 야콥 퍼들(제한적 FA) 등 핵심 식스맨들이 연이어 FA 시장에 풀리게 됩니다. 특히 이번 시즌을 통해 한 단계 성장한 포브스와 퍼들은 내년, 내후년 샌안토니오가 더 나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 꼭 필요한 자원입니다. 이들이 계속 성장해 훗날 제 2의 마누 지노빌리와 보리스 디아우와 같은 역할을 해줘야 할 것입니다. 샌안토니오가 더더욱 포브스와 퍼들을 붙잡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 사진_AP 연합뉴스, NBA.com(샷차트) 


점프볼 / 서호민 기자 syb2233i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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